슬픈 열대
레비 스트로스 지음 | -
제1부 여행의 마감인류는 이미 그 자체의 엄청난 수효와 또 거기에서 비롯되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문제에 싫증이 나 있었으며, 그것은 마치 커뮤니케이션의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대되는 물적·지적 교류에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인류의 피부가 염증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시멘트에 묻힌 폴리네시아 섬들은 남쪽 바다 깊이 닻을 내린 항공모함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아시아 전체가 병든 지대의 모습을 띠게 되고, 판잣집 거리가 아프리카를 침식해 들어가고, 아메리카·멜라네시아의 천진난만한 숲들은 그 처녀성을 짓밟히기도 전에, 공중에 나는 상업용·군사용 비행기로 인해 하늘로부터 오염당하고 있는 오늘날, 여행을 통한 도피라는 것도 우리 존재의 역사상 가장 불행한 모습과 우리를 대면하게 만들기밖에 더하겠는가? 이 거대한 서구 문명이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기적을 낳기는 했으나, 부작용이 안 생기도록 만드는 데는 분명히 성공하지 못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기계문명이라는 덫에 걸려든 불쌍한 노획물인 아마존 삼림 속의 야만인들이여, 부드러우면서 무력한 희생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라지게 한 운명을 이해하는 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탐욕스런 대중 앞에서 사라진 그대들의 모습을 대신하는 총천연색 사진첩을 자랑스레 흔들어대는 요술, 당신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요술을 부리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제2부 여로에서미지의 이국이란 내게는 우리나라와 반대되는 것으로만 여겨졌으며, 대척지(對蹠地:지구의 반대쪽)라는 말은 내 마음속에서 글자가 품고 있는 내용 이상의 보다 더 풍부하고 더욱 소박한 의미를 지닌 채 자리 잡고 있었다. 동물이나 식물의 어느 한 종류가 지구의 양 끝에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나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동물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 풀 한 포기까지 근본적으로 다르고 틀림없이 한눈에 열대산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철학교수 자격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철학에 대한 어떤 진정한 소명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까지 손대어보았던 다른 공부들과의 접촉에서 생긴 혐오감 때문이었다. 철학교수 자격시험 합격 후, 몽드마르상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강의 준비도 해야 했던 즐거운 1년을 보내고 난 뒤, 새 임지인 랑에서 새 학기를 맞자마자 곧 나의 남은 인생이 이렇게 반복되다가 끝날 것인가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정신이 틀림없이 결점이라 해야 옳을 특수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는데, 즉 동일한 주제에 대해 두 번씩 집중을 하는 것이 내게는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날 나는 가끔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민족학의 연구대상인 문화의 구조와 나 자신의 사고구조의 유사성 때문에 내가 민족학에 마음을 두게 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해마다 수확을 거둘 일정한 토지를 온순하게 경작하고 있을 자질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다. 나의 지능은 신석기 시대의 인간 지능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개척지 숲 속에서 경작지를 만들려고 내는 불처럼, 나의 지능은 때로 개간되지 않은 토지에다 불을 지른다. 아마도 그 땅에서 급히 수확을 얻어내려고 비옥하게 하는 것일 텐데, 다시 황폐해진 토지를 뒤에 남겨놓고는 가버리는 것이다.
민족학은 나에게 지적 만족을 가져다준다.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라는 양극을 결합시켜, 인류와 나 사이에 공통되는 근거를 동시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민족학은 나로 하여금 인간을 연구하도록 함으로써 나의 회의를 덜어주었다. 어떤 한 문명에만 적합하여서 만일 그 문명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자기 붕괴를 일으키고 말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에게 관련되는 변화와 차이를 민족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족학은 풍속과 습관과 제도의 다양성을 갖춘, 실질적으로 무한한 자료를 나의 사고에 확보시켜주면서, 나의 불안과 파괴적인 갈망을 가라앉혀준다. 민족학은 나의 성격과 생활을 융화시켜주는 것이다.
제3부 신세계 여행자는 전혀 다른 문명과 직면하게 될 순간도 있다. 여행자를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문명의 생소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회를 얻는 것도 오래 전부터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인도에 가든 아메리카에 가든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익숙한 사물들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개척하는 목적과 일정이라는 것은, 어느 날짜에 계획했던 사회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기계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들을 압도하고 있으나, 적어도 우리는 기계문명의 정복의 속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다른 나라를 탐사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로 하여금 똑같은 결론을 갖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 사회의 발달에 있어 초기나 혹은 최근의 단계를 선택할 수가 있다. 따라서 여행자는 물건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원시예술품 화랑을 그만두고 고물시장으로부터 진부한 기념품 따위를 구해서 파는 것으로 만족하는 골동품 상인이 되어버린다.
리우데자네이루로부터 산투스까지의 해안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우리가 꿈꾸어온 열대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2천 미터가 넘는 해안의 산맥들이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었고, 바다에는 작은 섬과 암초가 무수하였다. 남아메리카든 북아메리카든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메리카에서는 오직 두 개의 선택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다. 첫 번째 선택은 너무나 무자비하게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 사용된 결과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치 야외의 공장과 같이 돼버린 자연이다(지금 나는 서인도 제도의 사탕 재배지와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 재배지의 풍경을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다). 두 번째 것은 인간이 매우 오랫동안 점거한 결과 파괴되어버렸으나, 어떤 점진적이고도 계속적인 적응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풍경'의 수준으로 재상승된 자연이다. 이곳의 자연은 야성적이라기보다는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독설가가 미국을 정의하기를 "야만에서 문명을 거치지 않고 퇴폐로 옮아간 나라"라고 하였다. 이 정의는 오히려 신세계의 도시에 더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른다. 신세계의 도시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중간적인 단계를 거침이 없이 첫 생성기로부터 바로 노쇠기로 접어들었다. 유럽의 어떤 도시들은 천천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쇠퇴하고 있으나, 신세계의 도시들은 영원한 청춘을 간직할 수 없는 하나의 고질과도 같은 계속적인 고열(高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상파울루시의 건축에 나타난 즉흥성은 건축학적인 타락이며, 모든 것이 도시 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을 위해서 급조된 외관만을 위한 건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파울루는 단 한 번도 내게 추하다는 느낌을 준 적이 없다.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도시들같이 야생의 도시였다. 근대 문명에 의해 주어진 모든 직업, 모든 취미, 모든 종류의 호기심이 상파울루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그대들의 원시적 시절을 언급함은 절대로 빈정대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그것이 내게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부여받는 이로움이 덧없음을 알게 해준다. 그 시절의 유럽과 오늘날의 유럽을 생각해봄으로써, 또 몇 세대를 걸쳐서야 얻어질 걸로 기대해야 할 지적 발달을 그대들이 지나간 30년 동안에 이루어놓은 것을 보고서 한 사회가 어떻게 사라지고 태어나는지를 나는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책에서 보면 암흑상태 한가운데에서 작용하는 익명의 힘들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듯 보이는 저 거대한 역사의 변혁들도,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난 소수의 젊은이들의 남성적인 결단력을 통해 순식간에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제4부 대지와 인간도시는 자주 교향곡과 시에 비유되어왔으며, 내게는 그러한 비교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사실 그것들은 같은 종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마 도시는 자연과 인공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소중한 것으로 평가될지는 모른다. 도시란 그 생물학적 역사를 도시의 경계 안에 가두고 있는 동물의 협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피조물의 입장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에 의해 도시는 빚어지고 있다. 도시는 그것의 유래와 형태에 의함과 동시에 생물학적 출산, 유기적 진화 및 미적 창조의 요소를 소유하게 된다. 도시는 자연의 대상인 동시에 문화적 주제이니 개인임과 동시에 단체, 체험된 것임과 동시에 꿈꾸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
(이곳 남아메리카에서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인간관계라는 개념의 끊임없는 부인인 듯이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무엇이든 쉽게 제안하고, 무엇이든 쉽게 약속하며,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걸인 천지라는 사실 또한 문젯거리가 된다. 여기서는 사람을 대할 때 벌써부터, 단순히 한 인간과 접촉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상대방 눈을 쳐다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잠시만 멈칫하는 기미를 보여도 그것은 곧 하나의 약점으로 잡혀버려, 상대방의 애원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는, 우리들이 서양문명을 규정하고 있다고 즐겨 생각하는(대개의 경우 착각이지만) 인간관계와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 인간관계라는 것이, 우리들 생각으로는 마치 어린애들의 행동 세계에서 우리들이 관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때로는 비인간적이고 또 때로는 인간 이하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적어도 그들의 눈길과 미소의 부드러움, 복장과 장소에 대한 놀라운 무관심, 순진하고 쾌활한 행동, 증명서나 면허장의 마술적 위력을 믿는 일, 어떤 조건이라도 오케이라는 공통된 생각 등의 면에서는 이들 비극적 인간들은 우리에게 어린애같이 보인다.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하다. 약간의 공간과 음식과 오락과 기구와 연장. 이것은 '손수건 안의 인생(좁은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삶)'이다. 하지만 영혼만은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부산한 거리에서도, 생생한 눈빛에서도, 토론의 격렬함에서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메리카에서 우선 고찰한 것은 자연이나 도시의 경관이었다. 이 두 경관의 경우는 모두 각각의 형식·색·독자적 구조를 통해서 정의되는, 그곳에 있는 인간과는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객체가 관찰대상이었다. 파란 전원과, 초가집들이 언덕에 정렬해 있는 평화스러운 운하, 이런 경치 속에서 마치 투명 그림처럼 공장의 흉측스러운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역사와 경제의 진화가 가장 비극적인 과정들, 즉 중세의 빈곤과 전염병들, 산업 시대 초기에 있었던 것 같은 광폭한 착취, 현대 자본주의가 몰고 온 실업과 투기 따위를 이 불쌍한 희생자들 위에 포개어 고정시켜놓고 그 무게로 이들을 짓누르는 데 성공하기라도 했듯이……. 14세기와 18세기와 그리고 20세기가 열대의 자연이 아직 배경장치 구실을 해주고 있는 전원시를 조롱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셈이다. 아메리카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메리카가 미리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제5부 카두베오족포르투 에스페란사의 사막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농경지가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카두베오족 탐색의 출발지로 선택하였다. 사람들의 거주지역을 통과하는 정거장은 '과이쿠루스'라 불렀는데, 이 명칭은 그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던 호전적인 대부족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브라질의 영토에서는 카두베오족이 이들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부족이었다. 카두베오족은 파라과의 강 좌측의 낮은 지역에 대부분 살고 있었는데, 이곳은 보도케나 산맥의 구릉지대를 경계로 하여 파젠다 프란세자와 분리되어 있었다.
카두베오족의 수도인 날리케(Nalike)는 과이쿠루스로부터 약 15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으며, 말을 타고 가면 사흘이 걸린다. 카두베오(caduveo)라는 말(실제로는 '카듀에오'라고 발음된다)은 원주민 자신들에 대한 명칭인 '카디게고디'(Cadiguegodi)의 속음(俗音)이다. 밀짚을 엮거나 남자들이 두르는 무명의 허리띠 끈을 짜거나, 주화(은으로 된 것보다는 주로 니켈로 된 것)를 두드려서 목걸이에 매다는 관이나 둥근 물건을 만드는 일을 제외하고는, 도기를 만드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주요한 활동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에 다른 오두막에 살고 있던 어떤 소녀의 사춘기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가 열렸다. 그 축제는 소녀에게 옛날 식으로 옷을 입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소녀의 치장은 고대의 전통적인 관례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지불한 돈의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나타났던 것이라 하겠다. 젊은 민족학자들은 원주민들이 사진기를 무서워하고, 그들의 이같은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미리 현금이나 이와 비슷한 선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카두베오족은 이같은 체계를 완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히기 전에 보상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보상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사진을 찍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필름을 절약하기 위해서 단지 찍는 시늉만을 하고 난 뒤에도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잔꾀를 거절하거나, 인디언들이 타락했다거나 또는 돈에 눈이 어두워졌다고 간주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런 방식은 고귀한 신분의 여자들이 지닌 자주성과 권위, 이방인과 대면했을 때 취하는 과시 등 그들 부족이 가진 어떤 독특한 특징이 다만 변형된 것일 뿐이다.
이곳의 인디언들은 일부일처제였다. 이 사회에서는 우리들이 자연적이라고 여기는 감정에 대해 강한 적의를 나타내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출산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낀다. 낙태와 영아살해가 거의 정상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실시되고 있으며, 실제로 집단의 존속은 출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사들이 원정을 통해 얻는 양자(養子)에 의해 이루어진다.
카두베오족에 있어서 남자는 조각가이고 여자는 화가이다. 남자들은 단단하고 푸르스름한 가이악나무(유창목)로 채색된 인형을 만든다. 그들은 또한 찻잔으로 사용되는 흑소의 뿔에 사람이나 타조, 또는 말의 머리를 양각으로 장식한다. 간혹 그들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항상 나뭇잎이나 사람 또는 짐승들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여자들에게는 도자기와 피부의 장식만을 하도록 제한되어 있는데, 살갗에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몇몇 여자들은 비할 데 없는 대가들이다. 그들의 얼굴, 때로는 몸 전체가 정묘한 기하학적 주제들이 교대로 나타나는 비대칭적인 아리비아 문양의 그물 모양의 그림으로 뒤덮여있다. 그들은 흰 종이에 결코 당황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은 그들의 예술이 사람 얼굴에 대한 자연적인 구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잘 나타내준다.
오늘날 카두베오족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서로 상대방에게 그림을 그려준다. 그러나 이같은 습속은 한층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산체스 라브라도르의 보고에 의하면, 귀족들은 다만 그들의 이마에만 도식(塗飾)을 행하고, 얼굴 전체에 그림을 그린 사람은 평민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림 그리기란 인간 속성의 한 부분이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상태의 금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카두베오족의 도안양식을 주의깊게 연구해보면 그것이 지닌 독창성은, 차용된 것이라기보다는 창안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