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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에바 일루즈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여자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이 남다르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유명한 영화에 출연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그녀의 성공은 대중 앞에서 잔혹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팔아서 얻은 성공이다. 오프라는 토크쇼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장해서 상품화 시켰고, 이런 방식으로 게스트의 삶까지도 포장했다. 따라서 오프라의 전기는 두 가지 점에서 그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는 그녀가 자신의 방대한 문화적 행위에 불어넣은 의미를 파악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텍스트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대중 소비용으로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문화적 산물이란 점이다.



오프라의 전기를 구체화시키는데 관계한 수많은 사회력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그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남부의 흑인 교회에서 성장한 오프라의 몸에 밴 흑인문화는 무척 종교적이었다. 흑인교회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흑인을 고통에서 구하겠다는 도덕적 행위로서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감성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강조하는 독특한 문화의 장이다. 그래서 오프라의 토크쇼에는 '흑인 설교자의 수사적 화법이 배인 언어를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소명의식이 보인다. 오프라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보다 문화와 윤리에 집중함으로써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때문에 오프라는 스타와 영적 리더의 경계선상에 있다. 이런 복합적인 면이 그녀가 다른 토크쇼 사회자와 다른 점이며, 그녀만의 페르소나를 규정짓는 특징이 된다.



오프라가 다른 스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과시하는 '비주얼 아이콘'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프라에게는 삶이 곧 브랜드이다. 그녀는 텔레비전 사회자라는 역할을 벗어나 개인적인 삶까지 허물없이 공개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법이 동원된다. 하나는 스튜디오를 개인적 삶과 진정한 자아를 연장시킨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삶과 게스트의 삶이 갖는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식으로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그녀의 삶이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그녀가 자수성가한 남성들의 신화를 여자의 몸으로 이뤄낸 사람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비밀'을 틈나는 대로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성공이야기는 유명한 남성들의 것과 무척 다르다. 오프라는 성폭행을 당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했고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공개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그녀의 성공은 문젯거리로 점철된 힘겨운 삶을 이겨낸 치유의 승리로 비춰진다. 따라서 오프라의 경우 스타로서 자아를 만들어간 과정이 스타로서 자아를 해체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오프라의 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들은 텔레비전과 철저히 뒤얽혀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처음으로 방영된 1986년 그녀는 학대받는 여성을 다룬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오프라는 광고방송을 요구하고 그 여인을 팔로 꼭 껴안았다. 그리고 자신도 아홉 살에 사촌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오프라가 자신의 비밀(다이어트의 어려움, 성폭행, 유산, 자긍심의 결여)을 폭로할 때마다 시청률이 몰라보게 올라갔고 '오프라 윈프리 쇼'는 게스트와 사회자가 서로 비밀을 털어놓는 토크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고백이 있은 뒤 실제로 오프라의 삶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날씬해졌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매력적으로 변했고, 성공적인 삶을 누렸다. 그녀는 텔레비전이 삶을 바꿀 수 있고 실제로 바꾼다는 사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토크쇼에서 가장 이상적인 게스트가 되었다.





고통으로 승화된 오프라 윈프리의 매력



오프라가 토크쇼라는 흔한 장르의 코드를 어떻게 조작해서 문화와 윤리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는지 살펴보자. 오프라 윈프리 쇼는 우리를 도덕적 의문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명확한 스타일을 띤다. 달리 말하면 좋은 삶과 좋은 자아를 규정하는데 관계된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고 이 스타일이 오프라의 스타일이라고 등식화 할 수 없다. 이것은 필 도너휴가 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프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전략을 구사해서 자신의 토크쇼를 현재와 같은 문화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필 도너휴 쇼와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교하면 오프라의 장르가 갖는 흥미로운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두 토크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너휴가 이슈를 강조한 반면 오프라는 이야기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토크쇼는 스토리텔링이란 전통적인 장르에 속하며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조절된다. 두 쇼에서 소개되는 분위기도 달랐다. 도너휴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겪는 문제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반면에 오프라는 공공의 장에서 논의되기에는 사소한 주제를 선택했다. 도너휴에 비해 오프라는 여성의 일상적 삶을 괴롭히는 사소한 문제들을 더 잘 알았고, 정체성이 형성되고 왜곡되는 무수한 방법들에 초점을 맞춰 그 문제들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오프라의 차별성은 모든 토크쇼의 사회자들 중에서 게스트와 가장 유사하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즉 그녀의 삶이 게스트들의 불행과 닮았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자신의 삶을 상품화함으로써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 다르다. 평범함과 남다른 카리스마가 복합된 모습은 오프라를 도너휴와 구분 짓는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비친 영적인 리더십에 스타라는 허울을 벗어버린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복합되면서 오프라는 식역(의식과 잠재의식의 경계선)적인 지위를 갖는다.



오프라 윈프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가정사와 일상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녀의 토크쇼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가정이란 영역을 뒤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게스트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낮에는 주부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이지만, 매일 밤 그들은 집을 나가 매춘부로 일합니다." 주제를 소개하면서 오프라는 이야기의 범위를 가정으로 좁히며 시청자들을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안내하고 게스트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평범한 공간에 불안하고 걱정스런 사건을 투영시킨다. 오프라의 기법은 정상과 일탈의 보편적인 뜻을 뒤흔들어 버리는데 있다. 일상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면을 과장하고 낯설게 변모시킴으로써 오프라는 일상적인 규범의 변덕스런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따라서 일탈이 정상으로 변하고, 일상적인 것이 낯설게 보인다.



오프라의 쇼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도덕적 범주의 근거를 뒤흔드는데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을 한 아버지와 딸의 자기변명을 듣고 난 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서 적절한 판결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처럼 그녀의 쇼는 우리에게 도덕적 상상력의 경계를 확장시켜주는 일종의 훈련이다. 규범을 파괴한 사람들이 육성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우리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도덕기준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토론과 논증을 통해서 궁극적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고 말하면서, 오프라의 쇼는 모든 규범과 규정, 구분은 임의적인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개인적 관점에서 그 규범들의 근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패와 고통으로 승화된 카타르시스의 미학



오프라의 쇼가 이질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뒤에는 하나의 기본적인 의도가 감춰져 있다. 문화적 행위를 해석할 때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의도이다. 나는 '고통 받는 자아'라는 주제가 오프라의 미로 같은 텍스트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의 쇼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다양한 이유로 곤경을 겪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푸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패와 고통은 오프라의 신상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이며, 그녀가 청중과 대화하는 주된 상징적 도구인 셈이다.



오프라의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의 합리적이고 규격화된 전문적 언어로 고통을 보여주는 대신에, 특정한 이야기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전문가들의 조언과 진료가 필요한 사례들이다. 이런 이야기들로 다루어진 주제로는 실패한 자아(예: 식욕부진증, 외모에 대한 열등감), 폭행당한 자아 (예: 가정폭력, 성폭력), 파경에 이른 관계(예: 여성이 남성에게 버림받는 이유, 이중의 삶을 사는 남편), 막다른 운명에서 비롯되는 불행 (예: 에이즈), 사회문제(예: 아이와 총, 10대 미혼모) 등이 있다.



틀짜기(framing)는 어떤 이야기의 주제가 갖는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청중에게 부여하는 문화적 도구이다. 예를 들어 생존을 위한 이야기로 틀이 짜인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는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적 문제로 틀이 짜이면 분노를 끌어낸다. 그럼 오프라가 요구해서 만들어 가는 신상 이야기의 구조는 어떤 걸까? 예를 들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관계를 가진 딸을 둔 어머니가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딸과 어머니를 맺어주는 의무에 관한 도덕률의 위반,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자아를 위협하는 위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는 도덕적 코드(딸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와 치유적 코드(이 사건이 어머니의 심리적 건강을 위협한다)가 뒤엉켜 있다. 규범적 행위에 속한 것과 자아에 관련된 것이 뒤엉키는 형식은 오프라의 쇼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의 차별적 특성이다. 규범의 위반으로 자아가 타인이나 자신에 의해 상처받게 될 때, 도덕률은 치유적 코드를 만들어낸다. 오프라는 자아가 그런 상처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이야기의 소급구조를 미래지향적 구조로 전환시킨다.



고통이 오프라의 중심축이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삶은 이혼, 실업, 정치적 박해 등 위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안전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더 커진다. 그러나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경험하는 섬뜩한 삶의 역경들은 종종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지며, 현대 미국문화는 고통의 문제를 다룰만한 역량을 갖춘 문화의 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일상의 삶이 갖는 섬뜩함이 수행적 언어행위와 대중적 관례를 통해 다루어지고 완화되는 상징적 장이 무척 중요하다. 오프라는 후기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자아을 심각하게 옥죄고 있는 혼란을 남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고, 그런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모순되는 강력한 상징성을 통합시켜 강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징체계를 종교라 한다면 오프라는 종교적 상징성을 구체화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프라와 시청자 그리고 어울림



상업텔레비전에서 고통의 문제를 자주 다루자, 많은 문화 전문가들은 "토크쇼는 이익추구를 위해서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냉소적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관점에 따라 오프라 쇼에도 비난이 가해지기는 하지만 오프라는 시청자들에게 전대미문의 신뢰와 충성도를 끌어냈다. 그녀는 고통의 이미지에 덧씌워지는 의혹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와 연민을 기초로 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 그녀의 문화적 재능은 곧 도덕적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녀는 착취라는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 도덕성의 경계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오프라는 토크쇼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기꺼이 인정하며, 그런 비판을 수용해서 토크쇼의 구성을 바꾸며 도덕적 기준을 높였다. 1993년 평론가들의 비판에 도너휴는 "우리는 시청자를 끌어들이려고 봉급을 받는다."라고 반박한 반면, 오프라는 "토크쇼라는 장르가 기능장애에 따른 넋두리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그래 나도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오프라는 자신을 도덕적 인물로 비추고 청중과 더불어 도덕적 책임을 공유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목받는 스타가 되었다.



게스트들은 메시지를 널리 확산시키려는 욕구에서, 자신의 생활방식을 합리화시키려는 욕구에서, 혹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에서 토크쇼에 출연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동기, 즉 출연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실질적으로 바꾸어보려는 바람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고통과 마찬가지로 자기계발은 오프라가 자신의 토크쇼에 부여한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고통의 고백은 이야기 구조와 도덕에서 한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갖는다. 즉 이야기를 변화의 완성으로 종결지으려는 목표이다.

오프라가 이상적인 게스트로 소개했던, 홀로코스트 기간에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여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잔혹행위가 소개된 후, 거의 40년 전에 그녀가 당시 변호사(현재 남편)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되었다.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오프라는 그 피해자가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단편적인 이야기에 오프라의 쇼가 알리려는 도덕적 원칙이 집결되어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수난(발단), 불확실한 미래(귀찮은 문제), 그녀가 고통을 극복하도록 돕겠다는 장래 남편의 약속(치유), 약속이 이루어지고 목표가 성취되면서 해결(종결)에 이른다. 두 연인 사이의 사적인 대화였던 편지를 소개함으로써, 오프라는 '전쟁이야기'를 '가족이야기'로 교묘히 대체하고 집단의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대규모 재앙에 대한 개인의 승리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오프라는 스튜디오에 있는 참여자와 토크쇼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는 시청자에게도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라고 독려하기 위해 능동적 수법을 사용한다. 예컨대 성폭행 당한 여자들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다룬 토크쇼에서 오프라는 시청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프로듀서인 수잔에게 말했습니다.'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폭력적인 남자에게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합니다.'라고…." 오프라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토크쇼의 제작팀을 언급함으로써 자신과 시청자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따라서 오프라는 집에 있는 청중에게도 일상적으로 대화하듯이 말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신뢰와 배려에 기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오프라는 가족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면을 여성에게 부각시키면서, 여성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아, 즉 건강하고 자립적인 자아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은 오프라의 세계관을 이루는 중심축인 동시에, 그녀가 게스트나 시청자와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의 열쇠이기도 하다.





세상을 구하는 참모습, 고통과 자기계발



거의 10년 만에 오프라와 그녀의 토크쇼는 범세계적인 문화형태가 되었다. 또한 고백형태를 띤 토크쇼가 세계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는 일반화된 현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고통과 자기변화의 이야기가 어떻게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오프라가 토크쇼에서 방영된 신상 이야기의 공식을 끊임없이 쪼개고 개인화, 표준화시켰기 때문인 듯했다. 그녀는 개인이나 삶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능력을 통해 대규모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오프라 윈프리 자체가 범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지만 그녀는 토크쇼를 여전히 단편화, 개별화시킨다.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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