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의 나라
이성주 지음 | 바다출판사
황우석의 언론 2005년 연말의 대한민국황우석 사건의 분수령이 된 노성일 이사장의 폭로는 KBS가 가장 먼저 취재하고, 한국일보가 먼저 언저리에 접근했으며, 한겨레신문이 먼저 보도하면서 이뤄졌다. PD수첩에 대한 융단폭격으로 계속되던 언론의 흐름은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다. 이날 폭로가 있자 조선, 중앙, 동아 세 메이저 신문은 충격에 휩싸였다. 조선, 중앙은 일주일 전부터 서울대와 브릭(BRIC)의 흐름을 보고 '황 사기극 가능성'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지만, 문제는 동아일보였다. 편집국장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숙고에 들어갔다. 평소 일선 기자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일관성 있게 황 교수를 지지해 왔기 때문에 충격의 강도가 더했으리라. KBS는 낙종은 면했지만 MBC의 시련을 즐기던 측면이 강해 흐린 날씨가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반면, MBC는 PD수첩 보도 이후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소생했다. MBC 9시 뉴스는 무려 40여 분을 줄기세포 관련 뉴스로 채웠다. 그때까지 구국의 방송으로 각광받던 YTN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편집국의 패배자적 분위기는 앵커의 표정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그날 밤, 국민들은 혼란 속에서 불안한 잠을 청해야 했다.
황 교수의 신화에 금이 간 것은 2005년 11월 12일 미국 피츠버그대의 섀튼 교수가 황 교수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난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황 교수 연구의 난자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과학자나 기자들은 난자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주류 언론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정의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앞장서고 동아일보가 호응을 했다. 연합뉴스와 YTN의 역할도 컸다. 여론 주도층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현혹됐다면 연합뉴스와 YTN은 각 신문사와 포털 사이트에서 젊은이들의 여론을 주도했다.
11월 21일 미즈메디 노 이사장이 난자 매매를 시인했을 때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황 교수를 향한 일편단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날 한겨레신문이 연구원의 난자가 쓰였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고, 같은 날 밤 PD 수첩은 '황우석 신화의 난자 매매 의혹'편을 방송한다. 이때부터 황 교수 지지자들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언론은 국익 우선론을 내세우며 황 교수 지키기에 나섰다. 연합뉴스와 YTN은 황 교수 지지자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전하며 집단행동을 부추겼고 마침내 PD 수첩 광고가 모두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세에 몰린 PD수첩 팀은 기자회견을 갖고 줄기세포 재검증을 요청했다. 난자 제공의 윤리 문제에서 논문의 진위 문제로 핵심이 바뀐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 언론, 대중의 반격은 거셌다. 주류 언론은 재검증은 있을 수 없다는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특히 조선일보는 PD수첩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에 차질이 있다는 '국익손상론'의 진원 역할을 했다.
드디어 12월 4일 YTN이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에서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고 MBC의 강압 취재를 맹공격한 것이다. 조선과 동아는 다음 날 신문을 살의에 넘치는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 '황 교수 죽이러 여기 왔다'는 섬뜩한 제목을 달았다. MBC는 항복하는 듯했다. PD수첩 관계자들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고, 임원회의에서 PD수첩의 잠정 중단이 결정됐다. 진실은 이제 내상을 입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과학을 아는 지식인들은 이것이 나치 치하의 독일 정서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분개했지만 대중의 힘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진실을 묻는 젊은 과학도들MBC가 사실상의 항복 절차에 들어간 12월 5일 밤 젊은 과학자들은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DC인사이드의 과학갤러리, 과학기술인연합(SCIENCE) 사이트에서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5일 새벽 브릭의 게시판에 2005년 황 교수 논문에서 달라야 할 두 사진이 같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른바 조각 그림 맞추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2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이들은 DC인사이드의 과학갤러리에 사진을 올리고 토론을 했다. 6일에는 "실제 실험에서 발생하기 어려운 확률의 정확도로 DNA지문이 일치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순식간에 400여 건의 댓글이 달렸다. 젊은 과학자들은 밤을 새워 실험기법 등에 대해 토론했고, 이 과정에서 논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결국 황 교수의 논문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황 교수는 12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지만, 오염 사고로 모두 잃어버린 다음 새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논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미즈메디 노 이사장은 곧바로 "우리 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갖고 체세포줄기세포라고 우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과학자들은 황 교수의 이날 인터뷰 내용을 보고 완전 조작극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의 행동에 분개했다. 하지만 다음 날 주류 신문의 보도는 '노성일과 황우석의 진실게임'이었다. 주류언론은 이후에도 황 교수가 만든 의제에 따라 '줄기세포 바꿔치기'의 주인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틀에서 보면 상황은 명료했다. 황 교수가 논문 조작이라는 사기극을 펼쳤다. 당연히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 황 교수의 그룹 내에서 누군가가 사기극에 동참했다. 그러나 언론은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 이후에도 '황-노 진실게임' 판도를 유지했다. 언론은 이후에도 섀튼의 의혹과 피츠버그대의 봐주기, 김선종 연구원의 바꿔치기 주도, 서울대 조사위 조사 결과 뒤집기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양산했다. 그때까지도 국민들은 황교수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헷갈려했고, 이 같은 보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황 교수였다.
이번 사태로 황우석 신화의 1등 공신이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진실 규명에 역행해 신뢰성에 큰 상처를 받게 됐다. 조선일보는 12월 초까지 황 교수 구하기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는 늘 한발 늦은 보도를 하면서도 과학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보도를 했다는 평가를 언론계와 과학계로부터 받았다. 다른 신문은 초기에는 두 신문의 영향력을 따라가다가, 12월 중순에 색깔을 달리한다. 한국일보는 12월 8일자에 서울대 소장 교수들의 움직임을 소개한 뒤 과학자들의 분석을 심층적으로 소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은 <네이처>가 난자 문제를 짚었을 때에도 이를 충실히 보도했으며, 이번 사태에서도 비교적 균형 잡힌 보도를 유지했다. MBC는 진실의 힘을 입증한 방송으로 평가받게 됐으며, KBS는 경쟁사의 고통을 즐기다가 신뢰성에 손상을 입었다. SBS는 일부 보도가 오보로 밝혀졌지만 큰 무리는 없었으며 YTN은 결국 편집국장이 물러나는 상황까지 가야만 했다.
닫힌 사회, 닫힌 언론, 닫힌 언로언론사에서는 대체로 위로 올라갈수록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방송국 보도본부장은 개인 시간이 없다. 자정 전에 귀가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승진에 따라 책임도 무거워진다. 편집국 간부 역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조금이라도 좋은 지면을 만들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회사인간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런데도 왜 대한민국 신문의 품질은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 왜 언론의 신뢰도는 자꾸 추락하는 것일까. 나는 과학·정치·사회가 동일한 민주주의 틀에서 가장 잘 기능한다는,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혜안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언론 역시 동일한 틀, 즉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움직여야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렇지 못하며, 민주적 의사소통의 부재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과학과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은 여러 사람의 협력, 비판, 검증으로 오류를 제거하는 영역이다. 자유로운 토론과 검증이 중요하며 과학자는 늘 비판과 검증 요구에 겸허하게 응해야 한다. 과학자에게 억측은 있을 수 있어도 특권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과학자의 검증 요구가 싫다면 과학계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류 언론은 황 교수를 반증이 불가능한 비과학의 영역으로 옮겨버렸다. 언론 자신이 무심코 쌓아올린 황 교수에 대한 가짜 이미지에 스스로 속아버린 것이다. 이러한 언론 기능의 실패는 언론 내부의 시스템에 민주주의가 없고 언로가 막혔다는 증거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추구하는 조직인 언론 역시 "우리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으며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구성원과 독자, 취재원에게 늘 열려 있어야 한다.
되풀이하지만, 과학과 언론 모두 민주주의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를 무시하고 오류 불가능의 영역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언론의 본질이 훼손된다. 언론이 비판 불가능한 영역을 만들고 오류 수정시스템을 가동시키지 않으면 사이비 언론이 되기 십상이다. 신문제작 과정에서 신문기사를 발제하는 과정은 개인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편집회의는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를 통한 검증)에 해당한다. 기자가 기사를 쓰고 부차장의 데스크 과정을 거쳐 신문을 제작하는 것은 논문의 발표와 심사라고 할 수 있다. 기사는 일단 신문을 통해 나가면 반증 또는 확증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언론의 제작 시스템은 과학의 반증 시스템과 대칭의 관계이며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언론사 내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비판이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듯, 신문사 안팎의 자유로운 비판은 언론을 기름지게 한다. 권위자, 상급자라고해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좋은 기자는 내부의 비판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신문은 지면에 인쇄돼 독자들에게 배달되면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상명하복은 신속하지만 하의상달은 온갖 단계에서 삐거덕댄다. 오류 수정 장치는 관성 때문에 작동을 하지 못하며 기사의 흐름이 잘못됐다 싶어도 이를 바로잡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일쑤다. 이는 언론의 속보 경쟁 때문에 신속성,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부산물이다. 그렇다고 제작의 효율성이 언론사 내의 대화나 토론, 검증 절차를 압도하면 언론의 존재이유와 모순이 된다. 언론은 언로 소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황우석 보도에서 언론사 조직의 관료화와 보도의 왜곡은 비례하는 특징이 있었다. 황우석 보도에서 국내에서 가장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오보를 양산했다. 황 교수 측은 담당기자의 특종 욕구를 100% 이용해 비중 있는 기사는 조선일보에 흘렸다. 담당기자가 다른 신문사와의 특종 경쟁에서 계속 경쟁지를 제압하고 편집국 간부들이 이에 박수를 보내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시비를 건다는 것은 폐쇄적인 신문사 분위기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반면 중앙일보의 다소 수평적인 편집국 분위기는 황우석 사태에서 극단적인 보도를 막는 데 도움이 되었고, 한국일보는 기자들의 의지에 따라 관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신화를 만든 줄기세포 보도2004년 2월 황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고 난 뒤 한국의 신문은 최면에 걸린 듯했다. 줄기세포는 만병통치약이 되었고, 황 교수는 '줄기세포교의 교주'였다. 세계의 어느 대가도 황 교수처럼 치료를 논하지 않는다. 세계 처음으로 사람의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한 톰슨 교수도 "현 단계에서 줄기세포는 연구를 위해 사용될 단계이지 치료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PD 수첩의 보도 이전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황 교수의 연구 업적에 대해 찬양 일변도의 보도를 펼치는 언론에 거부감을 보였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공은 학문적 창의성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인 시비를 벗어나 복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난자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인 측면이 강했다. 사실 체세포 복제를 이용한 줄기세포 추출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04년 국내에서 황 교수 노벨상 만들기 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외국의 과학자와 과학전문 기자들을 대부분 의아해했다. 노벨상은 주로 새로운 학설을 만들거나 새 영역의 지식체계를 세운 과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연구에서 논란의 핵심은 생명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생명윤리에서 뜨거운 감자는 배아다. 배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수정이 이뤄지고 14일 이내의 배아는 생명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주장이 유대교 신앙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유대교 교리에서는 14일 만에 생명이 완성된다고 본다. 그래서 미국에서 과학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유대인 과학자들이 주로 배아줄기세포의 과학적 이용을 주장하고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성과는 유대인 과학자들을 곤란에 빠뜨리고 있다. 유전학의 급속한 발달로 수정 후 4시간이면 개인의 유전자가 완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배아가 생명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국내 언론에서는 이러한 내용조차 보도하지 않고 있다. 황 교수팀은 2,000여 개의 난자를 이용해 하나의 줄기세포도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줄기세포에만 초점을 맞출 뿐, 실패한 배아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복제된 배아를 유지해 생명으로 만들면 그대로 복제인간이 되고, 죽으면 생명 살해가 되는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지만 여기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적은 듯하다.
한국 언론은 2004년, 2005년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잇따라 논문을 발표하자 외국 언론을 인용해 외국 과학계가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극찬하고 열광했다고 보도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 신문이나 학술지에서 부정적인 톤으로 쓴 기사가 한국 언론에서는 업적을 대서특필하는 식으로 치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즈>의 2005년 5월 황 교수 관련 기사 제목은 '해명도 없이(복제 연구가) 더 나아갔네(Without Apology, Leaping Ahead in Cloning)'였지만 한국 언론은 외국 유명 언론이 연구 성과를 극찬했다고 보도했다.
진실을 찾는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진실을 찾기 위해 기자들은 늘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한국의 기자들은 물어야 할 것을 묻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기본이 안된 기사가 양산됐다. 미국에서 누가 황 교수의 연구를 지지하는지, 그 연구자가 황 교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언론은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황 교수가 한창 논문을 발표할 때, 한국 신문의 기사를 보면 부끄럽게도 섀튼과 같은 황 교수 동료의 말만 있지 황 교수보다 먼저 이 분야 연구를 한 선배 겸 경쟁자인 제임스 톰슨, 로버트 란자 등의 의견은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란자는 황 교수가 2004년 논문에 발표한 체세포복제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에 의한 줄기세포일 가능성이 크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언론의 과학기자들은 치열함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PD저널리즘'이라고 깎아 내린 PD수첩에 완패하고 만 것이다.
황우석의 과학반증이 사라진 박제된 과학일반인에게 황 교수가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줄기세포라 말한다. 반면 과학자 대다수는 황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로 황 교수가 배아의 복제와 조작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팀을 이끄는 수장, 한국에서 줄기세포 바람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