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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배기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제 1장 코리아의 흥망에 대한 보고서



21세기의 문턱을 넘은 우리 민족은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이 지난 4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코리아 전체가 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만 북한의 비참한 현실은 여전히 망국의 길이 열려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제 우리는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창조해야 한다. 앞으로 20년 내에 코리아가 새로운 운명, 새로운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결정 난다. 지난 2천 년간 반복된 흥망의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코리아의 흥망에 대한 다섯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첫째, 문명과 무력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다. 문명은 인류 역사에 새로운 질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최초의 인류문명은 4천 년 전 중국에서 발생했다. 3백 년 전에는 영국에서 산업문명이 출현했고, 오늘날 미국은 정보통신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명임을 자부한다.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무력을 낳고, 이 둘이 결합되어 세계패권국가가 등장한다. 따라서 문명과 무력의 중심인 패권국가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민족 흥망에 아주 중요하다. 역사에서 융성했던 시대는 문명과 무력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시대였다.



둘째, 진취적인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진취적인 비전은 문명과 무력의 핵심을 파악하고,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결집할 때 생겨난다. 운명을 바꿀 정도의 큰 힘은 오직 진취적 비전을 널리 공유할 때만 생긴다. 우리 민족사의 황금기인 세종시대는 진취적 비전에 매진한 시대였다. 반면 민족사의 망국기인 고종 시대는 진취적 비전을 갖지도, 공유하지도 못했다.



셋째, 통합으로 구심력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문명의 핵심에 부합하는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코리아의 현실에 확고히 발을 딛고 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질성을 용인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패권력을 가진 4대국이 있고, 이들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목적의식적으로 통합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분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합의 리더십이 민족의 흥망을 결정한다.



넷째, 학습과 창조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 앞선 시대, 앞선 나라를 배우고 익히지 않고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 지난 2천 년의 역사에서 세계를 이끄는 대국의 등장은 항상 학습과 창조의 결과였다. 역사상 패권 국가들은 모두 엄청난 학습열을 보였고 창조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도 세종시대에 학습과 창조로써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다. 지난 40년간 한국의 성공도 미국과 일본을 열심히 배우고 익힌 결과이다. 그러나 학습만 있고 창조력이 없다면 선진국으로의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없다.

다섯째, 힘의 근원인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다.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고 코리아의 운명을 개척하는 힘의 근원은 국민이다. 주변 4대국은 막강하나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다. 우리가 외세를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력한 외세는 항상 그 이상의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따라서 국민에게서 나오는 힘이 진짜 힘이다. 국민에게서 나온 힘은 국민을 더욱 더 강화시키지만, 외세에의 의존은 국민을 점점 더 약화시킨다. 비록 초라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국민과 함께 해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축적된다.



세계는 동등한 국가들의 외교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힘센 나라가 있고 힘이 약한 나라가 있다. 질서를 만드는 나라가 있고, 만들어진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이것이 역사법칙이자 자연법칙인 것이다. 세계 패권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태양의 형성과정과 유사하다. 태양은 우주 대폭발로 우주 공간에 널려진 수많은 물질들이 중력으로 결집되어 만들어진다. 이것이 거대해져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다. 중국,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역대 패권국도 예외 없이 형성 초기에는 주변에 있는 각종 세력과 선진지식들을 포용하고 결합했다. 그리고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빛'을 발했다.

세계패권체제에서 패권국의 힘은 '국제체제에 질서를 부여하고, 유지하며, 재생산하는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군사, 경제, 정치, 문화, 이데올로기 등에서 종합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패권국이 된다. 태양이 태양계를 만들 듯 패권국은 세계체제를 만든다. 태양의 중력권과 유사하게 패권국이 문명과 무력을 통해 만든 세력권을 '세계'라고 부른다. 이 세계 체제는 기본적으로 패권국이 자신의 가치에 따라, 자신의 힘과 의지 그리고 지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세계는 모두 패권국을 닮게 되는 것이다. 패권국은 세계가 자신을 닮도록 만들기 위해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사용하고, 무력과 정치력을 동원한다.



패권국이 창조한 국제질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나라를 '패권 도전국'이라 한다. 패권국과 도전국 간의 격차가 급속히 좁혀질 때는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한 도전국이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패권국에 도전하면 '미숙한 전쟁'이 일어난다. 또한 패권국이 도전국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제압하려는 '예방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도전국이 패권체제에 순응하면서 태양이 폭발할 때까지 인내한다면 새로운 태양을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근대에 등장했던 러시아제국, 독일제국과 일본제국, 공산주의 소련과 중국은 패권 도전국이었지만 시대 요구에 따른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지 못했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인류사의 새로운 단계에 필요한 문명의 빛을 비추지 못한 것이다.



지난 2천 년간 동아시아 세계사는 패권의 역사였다. 우리 민족사는 이것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었다.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이 해체된 뒤 1천 년간 비슷한 크기의 봉건영주들이 이합집산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세계는 춘추전국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를 제외하고는 2천년의 역사가 대부분 패권에 의해 전개되었다. 따라서 서양사의 관점에서는 패권체제가 하나의 일탈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역사에서는 패권체제야말로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는 유력한 관점이 된다. 이 점에서 세계의 역사를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을 말한다. 이 혁명의 본질은 관점의 변화이다. 지구에서 태양으로 중심점을 옮기고 태양 위에 올라서서 태양계를 보는 것이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핵심이다. 우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기중심으로 세계와 역사를 본다면 마음이 편하고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들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한다. 세계가 온통 복잡하게 느껴지고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불만과 분노만 일어날 뿐이다.



세계와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불편하더라도 세력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힘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에 서서 세계를 조망해야 한다. 관점을 마음 편한 코리아의 시각에서, 불편하지만 운동의 핵심인 패권국의 시각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야말로 혁명의 동력이다. 따라서 패권국과 패권체제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부릅뜬 두 눈으로 역사와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깊고 자세하게 세계와 우리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장 중국의 대륙 패권과 코리아의 선택



기원전 2천여 년경에 탄생한 중국 고대문명은 은, 주 시대를 거쳐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지면서 활짝 꽃 피었다. 당시로서는 첨단이었던 각종 생산수단, 생산방법을 통해 대규모 잉여생산이 이루어지고 큰 도시들이 생겨났다. 청동기, 철기를 비롯한 각종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문화예술이 창조되었다. 동아시아 최초의 문자를 토대로 제자백가라는 온갖 종류의 학문이 피어나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시대가 되었다.



반면 변방에는 문명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세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이렇게 양분된 세계를 당시의 중국인들은 문명과 야만, 화와 이, 중국과 사방, 사람과 짐승으로 구별했다. 문명의 중심지와 그 밖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바로 중화사상이다. 중국 황허 유역에서 고대문명이 꽃피고 있을 무렵, 동북아 요동지방과 한반도에는 중국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문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것을 '조선문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건국신화, 청동기, 토기, 무덤양식 등에서 중국문화권과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2천 년간 유지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체제는 중국의 헤게모니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또 인정된 패권체제였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정치, 경제, 문화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문화를 '유일한 문화'로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왕조는 지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을 지배하는 '보편적 통합질서' 그 자체로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 왕조의 최고 수장은 천자로서, 중국뿐 아니라 주변 야만국까지 포함한 천하를 일원적으로 통치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천자의 지배는 곧 유일한 문화의 구현이었고, 이것에의 편입 여부는 문명과 야만의 갈림길로 인식되었다. 결국 중화사상의 핵심은 천하를 문명과 야만세계로 나누고, 도전을 불허하는 문명국가 중국이 야만국가인 사방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나아가 사방을 지배할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천자로 표현되는 황제를 중심으로 내신, 외신, 절역의 조공국, 인대국 등이 동심원적 구조를 형성한다. 내신(內臣)은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질서에 포함된 관료ㆍ왕ㆍ후를 의미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황제를 알현해야 하고, 각종 제도에서도 중국과 다른 독자성이 허용되지 않았다. 외신(外臣)은 어떤 나라의 왕이 한편으로는 황제의 신하로서 중국의 예법에 따르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나라를 독자적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조선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외신은 신하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중화체제에서 이탈할 수 없지만, 교역이나 안보상에서 이점이 있었다. 절역의 조공국(絶域朝貢國)은 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중화체제에 편입시킬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가 스스로 중화체제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정벌할 필요는 없다. 일본이 대표적 예이다. 인대국(隣對國)은 인접해 있는 적대국으로 중국 황제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한 나라 초기의 흉노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화체제를 하나의 패권체제로 인식한다면 한 무제, 당 태종, 명 영락제 시기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중화사상에 기초해 중국의 헤게모니를 군사적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패권을 확립할 때 제압의 1차적 대상은 패권에 도전하는 적대국이지만, 외신의 위치에 있던 코리아나 베트남 지역도 중시되었다. 이들의 존재양태가 황제통치의 권위와 천자로서의 정당성, 정권의 정통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코리아는 대륙세력의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접점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략적 의의는 대단히 중요했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는 조선(고조선)을 공격하는데, 한의 조선 침략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흉노를 약화시키기 위한 세계전략의 일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동북아전략'으로서, 랴오허 동쪽에서 지역패권을 장악한 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초기에는 천혜의 지세를 이용한 조선이 유리했으나, 한이 왕검성을 포위하고 농성이 장기화됨에 따라 내분이 발생하여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취약한 내부통합력이 패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조선을 비롯하여 흉노와 남월, 서역을 정벌한 한 무제는 세계패권체제를 완성했다. 사방에 한의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 식민지를 통해 전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한 제국의 힘은 군사,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부문에서도 막강했다. 문명과 야만, 무력과 정치력을 구사하면서 등장한 중국인들은 자신의 이념과 제도를 따라 세계를 변모시키기 시작한다. 당시 유일한 문자였던 한의 글자가 동아시아세계로 전파되었으며, 한문에 의해 외교문서가 작성되고 문명생활이 이루어졌다. 또한 한 제국의 국교인 유교가 세계로 퍼져나갔고 유교적 예법체제가 세계 각지에 뿌리 내렸다. 그리고 중화사상과 중화체제, 천하라는 개념들이 세계 각지에 이식되고 모방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는 두 가지 면에서 코리아의 대표적인 국가였다. 하나는 중국과의 관계이다. 고구려는 중국과의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중국의 식민기구였던 한사군을 몰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중국세력의 침입을 격퇴했고, 코리아의 원류인 조선 고토로 영토를 확장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세력 중 유일하게 코리아계열 전체에 대한 패권적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고구려는 북부여와 동부여, 옥저와 동예, 백제와 신라 등 코리아계열의 모든 나라를 복속시켜 종주권을 확보했다. 조선에 이어 고구려가 코리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구가한 것이다.



중화사상은 '동아시아의 천하와 그 안에 분화된 소천하의 내부까지 모두 규제하는 원리'라는 점에서, 코리아에서도 이것이 재생산된다. 고구려는 중국이라는 대천하를 전제한 소천하로서, '고구려 천하'를 형성했다. 즉, 고구려를 중심으로 조공국인 백제, 신라, 부여 등이 위성처럼 궤도를 그리는 국제질서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는 고구려 천하의 바깥에 있었다. 이는 왜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 집단은 적을 갖는 까닭에 비로소 우리 편을 만든다'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왜의 존재는 그 세력의 강약을 떠나 고구려의 정치권, 질서권을 명확하게 해주고, 고구려의 남방원정이 고구려 고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소위 '정의의 전쟁'이 되게 만든다.



7세기 초 중국은 3국, 5호 16국, 남북조의 대분열기를 거쳐 370년 만에 수ㆍ당 제국으로 통일되었다. 패권국가가 새롭게 탄생하자 동아시아에는 비상이 걸렸다. 통일중국은 조공책봉체제와 같은 간접 지배보다 군현제와 같은 직접 지배를 기도했고, 이는 중국과 코리아의 전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이 고구려와의 전쟁을 강행했던 것은 제국의 질서 및 권위확립이 주된 원인이었다. 세계최강의 패권국가인 당,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라는 당 태종은 2차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에 실패하자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그것은 장기소모전을 통해 고구려의 국력을 피폐화 하고, 고구려의 유일한 원군인 백제를 우선 공격하고, 코리아에서 제 2의 강대국이었던 신라와의 군사동맹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전략에 따라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당은 대동강 이남을 신라에게 넘기기로 한 합의를 깨고 코리아 전체를 지배하려고 했다. 신라는 코리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중국의 정책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패권국가인 당을 상대로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을 하면서 신라는 대당 전쟁이 약속이행을 위한 명분 있는 제한전쟁임을 분명히 하고, 기존의 조공책봉관계를 이용하여 당군의 공세가 가파르면 신하의 예를 내세워 조공하면서 당 조정을 달랬다. 화전정책과 강온작전의 병행이었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친당 귀족의 이탈을 제어하고,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신라로 포섭하였다. 결국 거의 1백 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벌어진 중국과 코리아의 전쟁에서, 중국이 최종적으로 패배했다. 당은 676년 공식적으로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랴오량으로 옮김으로써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철수했다. 598년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으로 시작되어 80년 만에 신라와 당나라 간의 전쟁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불완전한 통일일지라도 욱일승천하던 세계 패권국가 중국에 맞서 코리아의 통일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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