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어떤 음식을 좋아했을까
가토 치히로 지음 | 창해
봄春다채로운 버섯, 포장마차에서 조리중국을 일컬어 땅이 넓어 물산(物産)이 풍부한 나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식 재료도 동서남북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먼저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변경지역으로 음식기행을 떠나 보자. 남쪽의 윈난성(雲南省)은 중국에서 유명한 윈난커피 특산지이다. 바나나와 파인애플, 망고 등의 과일과 야채, 특히 버섯류가 풍부하다. 포장마차에는 팽나무버섯의 야생종이나 느타리버섯 같은 것, 미끈미끈한 대형 맛버섯 등 버섯 종류가 많았고, 이것저것 주문하면, 돼지고기와 소고기, 두부 등과 볶아서 준다. 평지에서는 벼농사가 활발하여 주식은 쌀이다. 레스토랑에서는 찰밥이 나온다. 노천시(露天市)에서는 바나나 잎에 싸서 찐 떡도 볼 수 있다. 시솽반나를 가로질러 흐르는 대하의 풍부한 어류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차이나반도를 관통하며 흐르는 메콩강의 상류에 해당한다. 중국 영내에서는 란창강이라고 부른다.
한가로운 티베트의 순례음식신중국이 건국된 후, 각 민족의 '평등과 단결'을 국시로 삼아왔지만, 한족에게는 여전히 소수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이 남아 있다. 중국요리책에서도 소수민족의 '음식'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중국요리, 하면 어디까지나 한족 중심의 개념인 것이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지방요리전문점이 점차 생겨나고 있지만, 티베트요리전문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들어본 일이 없다.
몇 년 전 케사란체라는 40대 중반의 티베트인 농민 일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부엌을 보여줬다. 치즈를 만드는 교반기와 버터차를 담는 여러 개의 보온병에서 민족색을 엿볼 수 있었다. 연료로는 장작과 단단하게 건조시킨 소나 야크의 똥을 쓴다. 거실에 금빛이 나는 제단이 떡하니 놓여 있는 걸 보니 이 가정의 깊은 신앙심을 알 수 있었다. 주로 경작하는 쌀보리가루는 주식인 참파(보리를 볶아서 돌절구에 찧어 가루로 만든 티베트 사람의 주식량)의 원료이다. 가루를 그릇에 담고 버터차나 소금차를 부어 손으로 반죽해서 그대로 먹는다. 라싸(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 주변에서는 채소 재배도 성행해서 감자와 무, 푸성귀들을 자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후래자 삼배 투족의 잔치칭하이성의 투족은 전국에 약 20만 명밖에 안 되는 민족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후주현에 속하는 따좡촌은 주민 1,600명 모두가 투족이다. 그 중 한 농가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탁자 위에는 향토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치러지는 투족의 환영의식이 난관이었다. 알코올 도수가 48도나 되는 토속주인 쌀보리 소주(증류를 한 후 아무런 잡물을 섞지 않은 진한 술)를 석 잔이나 단숨에 마셔야 했다. 술을 간신히 마신 다음 사발에 담긴 소금 맛이 나는 버터차를 들이켜 알코올을 중화시켰다. 접시에는 잘게 썬 무, 오이, 배추와 고추, 양배추와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것과 수북이 담아놓은 양고기가 담겨 나왔다. 그리고 황어라는, 근처 강에서 사는 비늘 없는 담수어요리도 있었다. 주식은 콘고모라는 밀가루 빵과 볶은 우동이었다.
식사 후 마을 광장에서 신기한 구경을 했다. 마을 주민들이 한 번에 네댓 명이 매달리는 회전그네를 타는데, 최대한 위태롭게 타면 주위에서 춤추는 20여 명의 관중으로부터 갈채가 쏟아진다. '안소무'라는 민속무용으로, 축하행사 등에 마을 여자들이 총출동해 춤추는 것이라고 한다. 연회가 끝나고 나는 조금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있었는데, 어디선가 "자, 그럼 이별주로 다시 석 잔"이라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고기, 기도로 마무리후이족은 베이징에만도 30여만 명을 헤아리는데, 총인구 900만 명 중 200만 명이 집중해 모여 사는 곳이 닝샤후이족자치구이다. 후이족은 실크로드 상인의 후손이어선지 상재(商才)에 밝아 전국에 후이족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후이족은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마약을 광둥 지방을 경유해 홍콩으로 밀수하는 위험한 장사에도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후이족은 순박하고, 청결함을 매우 좋아하며,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사람들이다.
닝샤에는 한방약재와 요리에 쓰이는 구기열매 등 특산품이 많지만 전국에 있는 후이족을 대상으로 매일 출하되고 있는 것은 양질의 양고기와 소고기이다. 그 고기들을 각지에 사는 후이족이 고대하는 이유는 닝샤의 시장에서는 이른 아침 경매에 붙인 고기를 식육 처리할 때, 반드시 아홍이라 불리는 이슬람 성직자를 불러 기도를 올리는 전통이 지켜지고 있어서이다. 닝샤에는 과일 생산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6월경부터 출하되는 방추형의 수박이 유명하다.
하룻밤 숙식을 부탁한 퉁신현 교외 마을의 민가에서는 저녁식사로 양고기를 푹 끓인 육수에 만 우동이 나왔다. 식후에는 안뜰에서 수박을 먹었다. 이튿날 아침 5시가 넘자 근처의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코란(이슬람교의 경전)의 낭창 소리에 눈을 떴다. 마을의 중심가를 걸으니 아침 시장이 열려 있었다. 밀가루만으로 만든 마화라는 꽈배기 모양의 튀긴 빵을 만드는 노인의 주위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 마을은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많다 싶더니 이유가 있었다. 정부의 엄격한 산아제한정책, 이른바 '하나만 낳기 정책'이 닝샤에서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으로 인해 완화되었던 것이다. 후이족은 도시에서는 2명, 농촌에서는 합법적으로 3명까지 낳을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의 교류를 보여주는 고추김씨 할머니와 만난 곳은 지린성 서부의 투먼시 교외에 있는 잉화촌이라는 농촌이다. 근방을 흐르고 있는 두만강 건너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다. "조선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지 60년이 넘었지요. 70세대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조선족이라서 일상 대화는 조선어랍니다."라고 김씨 할머니는 조금 더듬거리며 중국어로 말했다. 김씨 할머니 집을 방문한 것은 2003년 10월쯤이었다. 기와지붕과 그 지붕의 휘어진 상태만 보아도 조선식 주택임을 알 수 있다. 그 집에서는 소를 기르고 옥수수와 수수를 주로 재배하고 있었다.
집의 벽에 매달린 두 개의 자루에는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고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김장 준비 때문인지 마을 전체에서 고추를 말리거나 김장독을 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추는 중국요리, 특히 쓰촨과 후이난 요리에서도 꼭 빠지지 않는 향신료이다. 중국의 북방에서는 예전부터 배추김치를 즐겨 먹었다. 새삼스레 조선요리라 의식하지 않고 한족도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이다. 조선족 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로 명태가 있다. 맛은 일본 명태보다 짠 것 같다. 그리고 마른오징어도 있다. 그것은 북한에서 온 수입품으로, 중국과 북한 간의 활발한 교류를 엿보게 해주는 식품들이었다.
[중국차 기행기] 천년다수고전 『다경(茶經)』의 첫머리에 나오는 한 구절에 끌려 천년다수(千年茶樹)를 만나러 윈난으로 갔다. 한낮의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란창현 푸둥향 빵와이촌. 윈난성 제일 남부에 있는 가구 수 650세대, 인구 3,100명의 산속 마을이다. 벼농사와 사탕수수, 향료 등을 주로 키우고, 그 가운데 400호가 차를 재배하고 있다. 나는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차 만드는 공장을 방문했다. 함석지붕의 작은 건물로, 5명의 남자가 차를 만들고 있었다. 콘크리트바닥에 찻잎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것을 커다란 삽으로 퍼내는 거친 작업이었다. 거기서 맛 본 대엽록차는 조금 큼직한 찻잎이라서 일본의 센차 같은 섬세한 맛은 나지 않는다. 새싹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칙칙한 녹색이다. 이것이 '밀레니엄차'로구나, 하고 묘하게도 수긍할 만한 쌉쌀함이 혀에 남았다.
쓰마오시는 홍콩인이 즐겨마시는 보이차 등이 나는, 윈난에서도 이름난 차산지인데, 그 근교인 콩췌핑촌은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숙박 장소로서 1950년대 초까지 번영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곳을 방문했다. 나이테가 새겨진 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니, 예상대로 그곳은 예전에 객주로 쓰인 곳이었다. 현재 주인인 류찬커 씨는 상인이 대여섯 마리의 말을 끌고 마을길을 왕래하는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보이차처럼 벽돌 모양이나 원형으로 된 고형차가 대부분이고, 그밖에 소금이나 아편도 있었지요." 남서부에 교통로를 가진 중국의 차 세계는 당나라 시대에 하나의 신기원을 맞이했다. 현재 '다성', '다신'이라 부르며 우러르는 육우가 서민 사이에도 퍼져 있던 차 마시는 풍습을 정리하여 『다경』이라는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명리를 좇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간 육우의 족적을 따라 양쯔강 유역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다.
[가토 치히로의 음식 이야기] 딸을 위한 소흥주나는 자주 전근을 갔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해외를 포함해 여러 번 이사를 경험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거실 장식장 위에 소중히 놓여 있는 것은 두 개의 소흥주(紹興酒) 단지였다. 높이 20센티미터 가량의 도자기로, 사방에 경축을 나타내는 도안이 그려져 있다. 한쪽에는 '쌍희囍'라는 글자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혼례식을 치를 때 빠지지 않는 행운의 글자이다. 소흥주 단지를 산 것은 중국 유학 중이던 1981년 겨울, 사오싱을 처음 방문했을 때이다. 나는 그곳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그냥 사버렸던 것이다. "사오싱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부모는 소흥주 단지를 사서 정원 한구석에 묻는다. 이윽고 딸이 성장해 드디어 혼례를 치르기 전날 밤, 흙 속에서 단지를 꺼내 그것을 온 가족이 축하주로 마신다." 두 딸을 가진 나는 아주 감동하여 소흥주 중에서도 감칠맛이 나고 단맛이 강한 화조주 단지를 샀다.
소흥주는 맛과 저장된 시간이 다른 가반, 향설, 화조, 이렇게 세 종류가 일반적이다. 시장에 출하되는 소흥주의 90퍼센트가 가반주라고 현지 사람은 말했다. 보통 3년에서 8년산으로, 알코올 도수는 15도이다. 소흥주 제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품질 좋은 쌀과 물과 누룩이다. 쌀은 교외에서 수확한 찹쌀을 사용한다. 내게 제조 과정을 얘기해준 고참 직공은 "술 제조에서 있어 물은 혈액, 쌀은 육, 누룩은 뼈 같은 것입니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세 가지 재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함정주점'은 사오싱의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가게 앞쪽은 술을 마시는 코너다. 손님은 카운터에서 마시고 싶은 양 만큼을 사서 사발에 담아가지고 자리에 앉는다. 대표적인 술안주는 소설 『공을기』에도 등장하는 회향두(누에콩을 회향으로 맛을 내 삶은 것), 취두부(발효시킨 두부를 튀긴 것으로, 독특한 냄새가 강하다), 취해(살아 있는 게를 소흥주 속에 넣어 취사시킨 것), 오리간장찜 등이다. 가게 안은 식사를 느긋하게 즐기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상하이에서 관광 온 단체손님으로 크게 붐비기도 하는데, 그러한 급변한 모습을 가게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있다. 바로 공을기이다.
여름夏계절에 맞는 음식으로 인생을 길게2004년 8월, 톈안먼광장의 중국국가박물관에서는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다. 『덩샤오핑, 건강의 길』이라는 책에서 보면, 채소를 중심으로 여름에 외(瓜) 류를 많이 먹는 덩샤오핑 가의 식단은 중국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의식동원(사람의 몸 상태와 계절에 맞는 식물을 먹어 항상 몸의 균형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의 발상에 들어 맞는다. 무더운 여름은 몸을 차게 해 주는 '앙', '한'의 식품을 많이 섭취할 필요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식품이 외 종류이다. 덩샤오핑 가족이 재배한 외 종류 가운데, 수세미외는 중국에서 여름 야채요리로 인기가 높다. 베이징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수세미외 덩굴이 집 벽을 타고 뻗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잎들 사이로 20~30센티미터 가량의 열매가 매달려 있다.
그밖에 여름의 베이징 거리에는 한창 성수기를 맞이한 교외의 농촌에서 수확한 수박, 참외, 그리고 서역의 신장 지방에서 가져온 합밀과 등의 과일을 포장마차나 지면에다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판다. 1972년에 후난성 창사시에서 마왕퇴한묘가 발견됐는데, 이 유적이 화제가 된 것은, 죽어서도 여전히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던 여자 미라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 미라는 지방 귀족의 부인으로 판명됐는데, 그녀는 동맥경화와 담석증을 앓고 있었고, 일본주혈흡충인 기생충도 확인됐다. 또한 해부 결과 위장에서 참외 씨가 100개 이상이나 발견되어 죽기 직전에 계절 과일을 먹었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2천 년이 훨씬 넘는 옛날에도 '여름에는 외가 좋다'는 생각이 정착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배우의 잔향에 수뇌가 매료되다2004년 1월에 문을 연 '매부가연(梅府家宴)'은 양쯔강 하류의 물산이 풍부한 강남 지방 요리 '화양채'가 대표적이다. 중국 경극계를 대표하는 명배우 메이란팡은 화양채의 본고장인 장쑤성 출신이다.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봉사했던 요리사의 기술을 계승한 3대째가, '매부가연'의 주방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매부가연은 깊숙한 구조인 한 채의 쓰허위안(중국의 전통가옥)을 개장한 것으로, 수령이 200년이나 되는 대추나무 두 그루가 집의 연륜을 보여주고 있었다. 객실 벽에는 찰리 채플린과 메이란팡의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활약했던 모습을 소개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메이란팡이 연기한 『귀비취주』 등 그의 많은 상연 작품이 고요한 음성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무대장치가 좋은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고객층이 오는지 매니저에게 물었다. 말에 따르면 외국인 외에 고소득자인 중국인 기업가나 예술가, 또 은퇴한 고급 간부도 간간이 들른다고 한다. 중국 지도자 가운데 경극 애호가로 알려진 사람들 중, 요즘의 지도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주룽지 전 수상 두 사람이다. 서민들에게 '청렴한 정치가'로 숭앙받는 주룽지는 2003년 봄에 퇴임하자 그 이튿날 바로 총리관저에서 베이징시 서부의 은거지로 이사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경극의 유명한 곡조를 마음껏 부르고 있다고 한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수상에게는 경극 애호가라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경극은 중국에서도 세대가 내려갈수록 관심이 엷어지는 것 같아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든다.
사라진 라오베이징의 애호식품'매부가연'이 있는 베이하이 공원의 북쪽 일대는 베이징에서도 전통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조용한 골목이었는데, 요즘은 베이징에서 가장 빠르게 변모하는 곳이 돼버렸다. 베이하이로 이어지는 허우하이와 치엔하이 두 호수의 주변에 세련된 구조의 오픈 카페가 연달아 생겨났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의 과도한 애정표현 때문에, 저녁때의 시원한 바람을 쐬러 나온 나이 지긋한 라오베이징(베이징 토박이)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베이징 주재시절에는 차량이 적은 호반 길이 마음에 들어 가끔 산책을 즐겼는데, 현재의 급속한 변모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레 출현한 카페 거리는 두 호수를 잇는 좁은 수로에 놓인 은정교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 주변의 혼잡을 피해서 양팡후동이라는 골목길에 있는 조그만 쓰허위안의 '려가채(厲家菜)'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곳은 청나라의 황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다. 이곳에 다니는 사람들은 조그만 접시에 나오는 전채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베이징훈육(돼지고기 훈제육)과 마두부(녹두로 만든 두부요리), 작우합(연근 튀김) 등 모든 요리가 라오베이징이 각별히 좋아하는 진짜 베이징요리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러한 소채(평범한 요리)는 요즘 들어 무슨 영문인지 시내 음식점의 메뉴에서 점점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