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
가와타케 도시오 지음 | 창해
제1장 자유자재로운 연극 공간독자적인 극장기구일본 전통연극의 특색은, 연극의 종류에 따라 극장의 양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극이 사각형 무대 위에서 상연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전통연극은 무대기구도 포함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시작된다. 예를 들면 무대에는 극의 동적인 변화를 주는 회전무대가 있고, 무대 마루 밑에는 나락(奈落)이 있어 이곳에 배우가 대기한다. 또한 하나미치(假花道)라고 하는 보조무대가 있는데, 이것은 외국은 물론 일본의 다른 연극에도 없는 가부키의 본질, 특질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미치는 무대의 정면 왼쪽에서부터 객석 옆으로 길게 연결된 복도와 같은 무대이다. 폭은 1.5미터 정도이고 무대와 같은 높이이므로 객석에서는 올려다보도록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지 통로가 아니라 중요한 연기공간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극이 절정에 이를 무렵 주인공 등이 배경음악에 맞춰 이곳에 등장한다.
하나미치에서 배우의 등장은 슷폰이라는 출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미치 무대 밑에 대기 중인 배우가 극적인 순간에 슷폰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미치의 등장장면이나 연기를 '데하(出端)'라고 하는데 가부키 극의 성공여부가 '데하'의 한순간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미국 사람들을 감동시킨 <주신구라> 공연에서는 주인공이 4막이 진행될 때에서야 하나미치에 처음 등장했다. 하나미치의 존재 가치는 무대공간을 객석 속으로 펼침으로써 극장 전체를 하나의 '연극 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극이 진행되는 도중 극적인 순간에 주인공이 하나미치에 등장하면 객석에서는 "맛테마시타(기다렸습니다!)" 하고 일제히 소리친다. 객석에서 자발적으로 환영의 추임새를 넣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연극에는 없는 가부키만의 독특한 생동감이다.
가부키 연극의 또 다른 특징은 대사를 포함한 연기가 항상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수직으로 꽂힌다는 점이다. 과거에 하나미치에는 객석 쪽으로 뛰어 나온 나노리다이(名乘)이라는 받침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배우는 자기소개나 사물의 취지와 유래 등을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후에 나노리다이는 폐지되었지만 오늘날에도 가부키 극에서는 상대배우에게 말할 대사를 객석을 향해서 말한다. 서양연극에서 셰익스피어가 이러한 수직형이지만, 서양의 주류를 이루는 리얼리즘 연극에서는 배우가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극 속의 인물로서 행동한다. 즉 연기공간이 무대 안으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에 일본의 전통연극은 음악을 포함한 연기 연출과 무대, 극장의 구조기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전체가 하나의 극을 이룬다.
가부키는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이 공감하고 서로 접하는 Theatricality의 연극이다. 시어트리컬러티(Theatricality)는 극장 전체가 연극 공간으로 바뀌어버리는 성질, 즉 극장성이다. 이는 본래 서커스 등도 포함된 광의의 의미인데, 말하자면 대사에 의한 드라마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외견상의 아름다움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음감 등, 풍부하고 다채로움으로 극장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공감의 장소가 되어버리는 -연극 본래의 성질- 것을 말한다.
하나미치의 성립가부키는 1603년, 오쿠미라는 여성이 창시한 '염불춤'을 공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염불춤은 신사(神社)의 경내나 강변 혹은 노천의 조잡한 가설무대에서 주로 흥행했는데, 그것은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의 무대를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能)와 가부키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노(能)는 주로 가면을 쓰는데, 가부키는 맨 얼굴에 분장을 한다. 또한 노(能)의 가면은 신, 귀, 망령 등 모두 이차원의 존재를 표상하지만, 가부키의 등장인물은 인간으로 등장한다. 노(能)의 무대에도 하나미치의 기원이 되는 긴 통로가 있었는데 이를 하시가카리라고 한다. 그러나 노(能)의 하시가카리는 연기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천상 무한의 저편에서 건너오는 다리, 즉 저세상과 연결하는 다리로서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 증거로 하시가카리를 비롯한 노(能) 무대 전체에는 흰모래와 자갈을 깔아 무대와 객석을 천상계와 지상계로 구분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能)는 천상적이고, 가부키는 지상적이다.
가부키의 진화와 더불어 하시가카리도 오늘날의 하나미치로 변화하게 되었다. 1629년, 오쿠니를 비롯한 여성가부키는 풍기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탄원 끝에 1653년, 두 개의 조건 하에 재개 허락을 받았다. 그 하나는, 미소년 배우의 전발(前髮, 결혼 전의 사내아이가 이마 위로 땋아 얹는 머리)을 자를 것, 또 하나는 호색성이 강한 춤이 아닌 '흉내 내기(어떤 인물로 분장하여 재현하는 일)'를 주로 한다는 조건이었다. 강제적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로써 가부키는 본격연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664년부터 막이 설치되고, 무대장치 등, 극을 위한 도구의 발달이 진행되면서 하시가카리의 폭을 넓혀 본무대로 흡수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나미치가 비로소 연기장소가 된 것은 1684~1704년, 즉 17세기 말이었던 것 같다. 1687년에 그려진 <나카무라 극장의 두 배우>라는 그림을 보면 하시가카리의 위치에 반주자들이 나란히 앉아 있고, 무대높이에서 객석 쪽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통로 위에 가마와 두 배우가 그려져 있다. 즉 하나미치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해외 공연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미치 설치를 위한 필요성을 납득시키는데 무척 고생을 했다. 예를 들면 러시아 초연에서는, 객석이 줄어들면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극장 측이 하나미치를 설치해 놓지 않았다. 다행히도 통역이 가부키 연구가였던 덕에 겨우 납득시킬 수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소방법 때문에 객석을 통과하는 가설물 허가가 나오지 않아 지금도 무대에 가까운 출입구 쪽으로 하나미치를 사선으로 가설할 수밖에 없다.
회전무대의 다이너미즘하나미치가 확립된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1711~1736년 경), 에도의 가부키 작가 나카무라 덴시치가 회전무대를 설치했다. 그는 사각으로 짠 목재 틀 안에 원형 나무틀을 끼워 겹치고, 여기에 수레를 연결시켜 돌렸다. 이를 개발하여 지금의 회전무대 원형을 만들어낸 사람이 가부키 작가인 나미키 쇼조(1730~1773)다. 쇼조는 많은 가부키 작품을 저술한데다가 공작에 재능이 많았다. 그는 덴시치가 개발한 원판을 개량하고, 배우들이 대기하는 무대 밑의 나락으로 연결하는 도르레를 설치하여 물레식 회전무대를 개발했다. 또한 무대 밑으로부터 배우를 등장시키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장치인 '세리'와 무대의 정경을 바꾸는데 바퀴를 달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등, 가부키의 다이내믹한 연출에 공헌했다.
회전무대 발명의 동기는 가부키에 다막, 다장면이 많아졌기 때문에 장면 전환을 빨리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회전무대는 기능 이상의 예술적 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회전무대는 복수 장면 등을 영화나 텔레비전의 동시동작 수법처럼 관객의 눈앞에서 전개해 보일 수 있다. 회전무대 외에 극 연출의 묘미를 더해준 것이 '공중타기(추노리)'이다. <요시쓰네 벚꽃 천 그루>라는 극에서처럼 인간이 여우로 변신하는 등의 장면에 공중타기가 이용되는데, 이는 무대에서 3층석 안쪽까지 쳐놓은 와이어를 통해서 연출된다. 가부키는 이처럼 하나미치, 회전무대, 세리, 공중타기 등 다양한 극적 장치로 연극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서민을 위한 환락의 장가부키는 배우의 매력을 제일로 치는 관능적인 극이었기에 가부키 극장은 환락의 장소로 불려 유학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8세기 중엽에 그려진 '나카무라 극장'의 그림을 보면, 1층 대중석에 승려와 여성, 직공풍의 젊은이, 밀짚모자를 눌러쓴 무사 등, 관람 층이 다양하다. 이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차이가 확실했던 시대였는데 이 그림은 가부키극장의 사민(士民)평등한 자유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그만큼 환락의 장이었음도 잘 묘사하고 있다. 관객 속을 누비는 안내원이 과자나 도시락을 팔고 있고, 객석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곰방대를 피우면서 수다를 떠는 여성이 있다. 또한 2층에는 반나체의 남자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이렇게 예의 없는 관객을 상대로 연극을 하려면 배우의 목소리와 동작이 크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고, 연기력도 뛰어나야 객석을 집중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가부키의 과장된 양식은, 이렇게 무례한 관객에 의해 단련되고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가부키의 또 다른 맛인 음식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가베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자와 도시락과 초밥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지금은 스모 경기장 주변에만 겨우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가부키 공연장 근처에 찻집이 있어서 돈 많은 관객들은 이곳의 좌석을 예약해놓고 가부키 공연을 보았다. 즉 여기서 차와 술을 마시고 가베스를 먹고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본다. 그리고 긴 막간 시간을 이용하여 찻집에 다시 돌아와 정식 요리를 먹고 또 연극이 끝나면 여기서 야식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 가베스의 즐거움은 가부키 극장이 의자석이 되고 나서 찻집과 함께 소멸했는데 지금도 식사휴게가 가부키 관람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는 것은 당시의 잔재일 것이다.
환락의 장이었던 가부키 극장도 메이지 시대가 되자 문명개화의 물결 속에서 변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72년, 메이지 신정부는 여러 가지 권고와 통달을 내놓았다. 예를 들면 상류의 귀족이나 외국인이 구경 오는 것을 의식하여 고상한 연극을 권장하고, 교육에 도움이 되는 사실본위의 극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리얼리즘은 관객의 동화(同化)를 너무 진행시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즉 극에 대한 동화가 너무 진행되면 관객이 배우를 죽이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1909년 시카고의 한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명작 <오셀로 Othello>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때 윌리엄 바트라는 명배우가 악당 이아고 역할을 하였다. 극이 진행되고 이아고가 오셀로 장군의 부인을 죽이려고 결심했을 때, 갑자기 객석에서 정의에 투철한 청년 장교가 이아고를 향해 총을 쏘았다. 곧 윌리엄 바트는 무대에 쓰러졌고 그대로 절명했다. 대혼란이 일자 제정신을 차린 청년 장교는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쏘아 자결하였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사쿠라이라는 무사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이를 걱정한 부모는 바깥 활동을 권유하였고 사쿠라이는 친구들과 함께 <덴지쿠 도쿠베>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극에서는 주인공이 늙은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효자인 사쿠라이는 이 장면을 보고 얼굴색이 변하였다. 그리고 곧 출입구에 맡겨놓은 칼을 되찾아 "괘씸한 놈!"이라고 소리치며 무대로 뛰어갔다. 그때 그를 제지하러 뛰어나온 남자 스텝의 어깨에 칼이 내리꽂히면서 결국 즉사하였다. 도쿠베를 연기하던 배우는 도망쳐서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사쿠라이는 죽이지 못하여 억울하다며 할복자살하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지하여 목숨을 건졌다.
이 참극 이후, 시카고에서는 총을 쏜 청년과 총에 맞은 배우를 하나의 묘에 매장하여 비를 세우고 이렇게 새겼다. '이상적인 배우와 이상적인 관객을 위하여!' 한편 일본의 경우는 사쿠라이의 부모가 중재자를 통해 백 냥의 금을 내놓고 은밀히 처리하였다. 가부키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관객에게 제시하거나 사상을 고취시키는 극이 아니다. 단지 서민 누구나가 픽션의 세계에서 울고 웃으며 위안을 얻는 장인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가부키는 하나미치를 통해 배우와 관객이 교감하는, 말하자면 동화작용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가부키는 무대가 객석과는 별도의 픽션임을 인식시키는 이화(異化)의 역할도 한다. 즉 관객이 몰입할 것 같으면 머리에 찬물을 끼얹듯이, 회전무대나 음악이나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불시에 연출하여 동화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제2장 양식미의 종합예술음감미의 세계가부키는 '노래(歌)'와 '춤(舞)'과 '연기(伎)'의 3요소가 종합되어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歌舞伎'라 명명되었다. 즉, 가부키는 음감과 춤, 몸짓 연기에 바탕을 둔 종합예술이다. 그중 음감의 특색은 각종 악기로부터 음악적 대사까지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먼저 가부키에는 '탁(柝)'이라는 박자목이 있는데, 그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그 쓰임이 많다. 예를 들어 극의 시작신호부터 배우의 준비신호, 개막알림, 무대의 회전 등, 극 진행의 전 과정에 쓰인다. 박자목을 치는 악기는 '부부(夫婦)'라고 하는데 이는 잘 마른 가시나무를 잘라서 서로 등을 맞댄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부'를 탁 치면 안쪽에 볼록 튀어나온 한 점이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는데, 진동수가 같아서 공진하여 크고 아름답게 울리는 소리를 낸다. 박자목을 치는 역할은 가부키 작가가 하며, 극 연습이나 무대 진행, 그리고 배우에게 건네주는 대사 제작도 함께 맡는다.
가부키에서 샤미센(三味線)이라는 악기도 매우 중요하다. 가부키에 샤미센을 쓰지 않는 무대는 없다. 샤미센은 네 개의 판자를 합친 통에다 긴 지판을 달고 그 위에 비단실로 꼰 세 줄의 현을 단 것이다. 샤미센은 본래 일본 악기가 아니라 외래품을 개량한 것이다. 원래는 이집트가 원산지인데 1558 ~1570년경 오사카 항구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몸체에 양의 가죽을 붙였으나 이것이 서아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뱀가죽을 덮게 되었고, 일본 본토로 들어오자 큰 뱀이 없었기 때문에 고양이 가죽을 붙이게 되었다. 그때까지 현악기의 주류였던 비파보다 휴대가 용인한데다 경묘하고 섬세한 음색을 내므로 도쿠가와 시대의 서민들이 많이 애용했다.
가부키 음악은 '게자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무대 왼쪽의 구로미스(반주음악을 하는 곳)의 위치를 게자(下座, 아랫자리)라고 표현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구로미스음악(반주음악)의 종류는 2천 6백여 곡 정도 되며, 그것은 관현 타악기에 의해 연주된다. 말하자면 대소고적(크고 작은 피리와 북)을 중심으로 호궁, 쟁, 퉁소, 징, 조종, 꽹과리부터 목어, 시계, 오르골(자명금) 등 다종다양한 악기로 구성된다. 그중 샤미센과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큰북이다. 큰북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각을 알리거나, 전투시작, 씨름 개장 등을 알린다. 한편, 비, 바람, 번개, 파도소리 등 자연현상에 관한 효과음이나 분위기 조성의 의음(擬音)적 효과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오로지 큰북만을 쳐서 표현하는데 극 전개와 함께 듣고 있노라면 정말 그 소리처럼 들린다.
가부키는 효과음이나 배경음악뿐만 아니라 대사 자체도 음악적이다. 아무리 사실미가 강한 내용이라도 일상의 회화로 진행되지 않는다. 대사는 시를 읊는 것처럼 전달되는데, 그 음감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방식이 '칠오조'이다. 칠오조는 과거의 하이쿠(5·7·5·7음을 정형으로 하는 시)나 오늘날의 엔카(일본의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일본시의 기본형이다. 따라서 가부키 속의 칠오조는 하이쿠와 함께 일본 리듬의 전통을 서민문화 속에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시각미의 세계가부키를 처음 보는 외국인들은 막이 오르자마자 놀라서 환성을 지르고야 만다. 바로 색채의 화려함 때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객석에 '딱' 하고 개막을 알리는 박자목 소리가 들리면 막이 열리면서 대낮처럼 밝은 조명이 모두 켜진다. 그때 무대장치와 의상, 화장, 소품들까지 모든 요소가 색채의 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