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정체성
아민 말루프 지음 | 이론과실천
Ⅰ 나의 정체성 나의 소속들 1나는 문필가로서의 삶을 통해 '말'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가장 명쾌하게 보이는 말들이 종종 가장 배반적인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 중의 하나가 바로 '정체성'이란 단어이다. 우리 모두는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을 다시 정의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도 당치 않은 일이다. 다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정체성'을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ㆍ인종적ㆍ민족적 혹은 기타의 정체성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신분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성(姓), 이름, 출생지와 출생 일자, 사진, 서명 혹은 지문(指紋) 등의 정보가 실려 있다. 이 모든 정보는 신분증의 소유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혼동할 수 있는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란 바로, 내가 나 이외의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수많은 요소의 정보로 이루어진다. 그 요소는 종교, 국적, 인종, 언어, 학문, 직업, 제도 등과 같은 소속이다. 그 소속이 다른 개인의 소속과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이며 결코 누구에 의해서도 대치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아랍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안은 수세기 동안 레바논 산간 지역에 정착해 살아온 기독교도였다. 나는 멜키트 종파(중동지역에 산재해 있는 초기 기독교의 정교회파)의 공동체 속에서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의 언어인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나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역설적인 요인이다. 내가 아랍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내가 이슬람교도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실은 전 세계 약 20억 명쯤 되는 다른 기독교도들과 중요한 연관을 만들어 놓는다. 레바논은 강력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쟁이 지속되어 왔다. 나는 그 전쟁에 끼어드는 것을 거부해왔다. 나의 그러한 행위는 내 정신세계와도 관계가 있지만, 내가 소수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나라에서 나처럼 소수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무기를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아랍인이면서 동시에 기독교도라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또한 우리 집안에는 두 가지 종교적 전통이 이어져 왔는데, 나는 어린 시절 내내 그 두 가지 전통 사이의 불화를 경험하였다. 예를 들어 나는 예수회 신부들이 운영하는 프랑스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 이유는 나의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반면, 아버지는 개신교도였다. 따라서 어머니는 전통적으로 미국 학교나 영국 학교로 보내는 개신교적 영향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하려고 하셨다. 이런 갈등 때문에 나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레바논 내전 동안에 파리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내 정체성을 구성하고, 내 인생에서 커다란 이력(履歷)을 형성했던 여러 개의 소속을 분리해볼 때, 나는 동포들 중 많은 사람과 어떤 유사성을 지닌다. 반면에 내 속성들을 통째로 취급할 때에 나는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른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다.
2정체성이란 단 한 번에 완전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정체성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에 걸쳐서 형성된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정체성의 구성 요소는, 성별, 피부색, 신체적 특징 등 그리 많지 않다. 정체성의 의미를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는 사회적 환경이다. 피부색이라는 정체성의 요소에 관해서 말하더라도 그 요소는 사회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국의 뉴욕에서,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서 흑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즉,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정체성에 흑인이라는 요소는 매우 결정적이지만,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아이의 정체성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어떤 종족에 속하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양한 소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체성이란 유일한 것이며, 그 하나의 정체성이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다. 게다가 종종 공격을 가장 많이 받는 소속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공격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소속, 즉 피부색, 종교, 사회적 계급 같은 요소가 정체성 전체를 점령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떠한 요소에 함께 속해있는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형성하고, 자발적으로 모이고 동원되면서 '그들에게 적대적인 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정당하고 자신들을 해방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 내부에는 그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격노한 사람들이거나 치밀하게 계산하는 사람들로서 공동체의 상처위에 진통의 향료를 바르고야 만다. 그리고 승리나 복수를 약속하면서 사람들의 정신에 불을 지른다. 그러면 공동체는 참고 견디게 만든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기억을 안게 되며, 타인(적)에 대한 공격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나는 전쟁 중인 나라에서 살았고, 이웃에서 폭탄이 날아오는 구역에서 살았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라도 적이 곧 공격해오는 상황에서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누구라도 자신이 사는 구역에서 학살이 일어난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냉정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사람들이 손에 쥐어주는 무기를 잡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타인이 하는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약간이라도 모욕을 받거나 위협을 받으면 얼마든지 살인자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런 행동은 당연한 권리이자 하늘의 뜻이라고 여긴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하이드씨(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악마적인 이중성)가 존재한다. 극단적인 행위를 권리라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정체성은 바로 정체성의 '부족(部族)적인 개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개념은 전세계에서 무엇보다도 앞서는 가치로 간주되면서 원하지도 않는 비극의 탄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일은 그러한 악마적 본성을 출현시킬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3나는 지금까지 '살인적인(사람 잡는)' 정체성에 대해서 말해왔다. 내가 이 표현으로 고발하는 개념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단 하나의 소속으로 환원시키는 데서 편파적이고 불관용적이고 때로는 자살적이기도 한 태도를 낳기 때문이다. 그 개념이 살인자를 만들고, 살인자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기까지 한다. 세계는 오늘날까지도 박해받고 있거나 옛날의 고통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복수할 것을 꿈꾸는 상처받은 공동체들로 가득 차 있다. 희생자들은 언제나 '우리'이고, 범죄자들은 항상 '그들'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쪽의 범죄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런 형태의 친절한 배려가 또 다른 불행을 낳는 것이다. 만일 우리 동시대인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소속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유혈을 즐기는 미친 집단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내가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상호성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담겨 있다. 그것은 내 문화와 다른 문화 상호간의 도덕적 계약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 문화의 특수성과 더불어 다른 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문화에 소속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 문화에 대해 비판할 권리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아랍 - 이슬람 세계의 역사와 그곳 여성들이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오랜 세월 투쟁해 온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면서 내 주장을 길게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문제는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각 민족들의 역사 속에서 왜 현대성이 이따금 거부되며, 그것이 진보나 발전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가를 아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아랍 세계의 예는 그 어느 예보다 시사적이다.
Ⅱ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1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아랍 국가의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때때로 이런 질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왜 아랍국가에는 베일, 차도르(검은 베일), 턱수염, 그리고 살인적인 폭동들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논쟁이라도 거기에는 언제나 서로 다르고 상호 모순되는 해석이 있다. 사람들은 같은 책을 근거로 하여 노예제도에 만족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성화상(聖畵像)을 축복하기도 하고 그것을 불에 던지기도 하며, 포도주를 금하거나 허용하고, 민주정치를 찬양하거나 신정정치를 찬양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 사회는 지난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실천적 행동들을 정당화 할 수 있을 성스러운 인용문들을 발견할 줄 알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기독교, 이슬람교 혹은 마르크스 주의와 같은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답변을 찾는다면, 그것을 논리나 교리의 내용에서 찾을 게 아니라 그러한 사상이나 종교를 주장해온 사람들의 행위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관용적이고 자유를 존중하며 민주주의를 지향하는가? 만일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면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가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박해받고 학살되었는가. 교회의 가장 높은 당국과 압도적인 대다수의 신자들이 흑인 매매와 여성의 굴종, 종교 재판과 같은 악랄한 독재에 만족하였음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전제적이고 인종차별적이고 불관용적이라는 것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표현의 자유와 인간의 권리, 민주주의와 잘 어울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본질이 수정되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기독교는 오랫동안 불관용적이었고, 이슬람교는 관용적이었다. 내 조상들은 이슬람 군대에 의해 정복된 나라에서 살던 기독교도였다. 그럼에도 신앙을 보존하면서 그 마을에서 14세기 동안이나 살았다. 반면 스페인에서 살던 이슬람교도들, 시칠리아 섬의 이슬람교도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학살과 추방, 그리고 강제적인 기독교 세례를 받으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기독교는 열린 종교로 조금씩 변화되어 갔고, 이슬람교는 전체주의적인 행태를 향해 조금씩 표류해갔다. 이 두 종교의 여정을 비교하면서 의문이 생겨났다. 왜 기독교적인 서양의 불관용이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반면에 왜 오랫동안 공존을 실천해 왔던 이슬람 세계는 광신의 요새로 변질된 것일까?
사람들은 민중에 대한 종교의 영향을 너무 과장하는 것 같으며, 한편으로는 종교에 대한 민중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 같다. 만일 공산주의가 러시아에 대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질문한다면, 러시아가 공산주의에 대해 무엇을 했는가를 질문해봐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만일 기독교가 로마법과 그리스 철학으로 가득 찬 땅에 정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질문해봐야 한다. 서구 사회는 그들이 '필요'로 했던 종교와 교회를 만들어 냈다. 사고방식의 진화와 더불어 기독교도 진화한 것이다. 내가 종교에 대한 사회의 영향을 언급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제3세계와 이슬람교도들이 서양을 통렬히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서양에 지배받고 우롱 당하고 그로 인해 가난해졌는데, 서양은 잘 사는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슬람 전사들의 언설과 행동은 바로 우리 시대의 산물, 즉 이 시대의 긴박함, 왜곡, 절망의 산물인 것이다.
2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을 '이슬람'이라는 항목으로 분류하는 습관에 대한 거부감이다. 만약 당신이 이슬람 세계의 역사에 대해 열권의 두꺼운 책을 읽는다 해도 현재 알제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식민지화 및 탈식민화에 대해 서른 페이지만 읽는다면,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영향이란 상호적인 것이다. 어떤 부문의 습관적인 사고는 변증법의 한 국면만을 보게 하며, 이것은 전체적인 조망을 흐리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 사회의 모든 비극적인 사건을 이슬람교의 책임이라고 믿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부당한 시각이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을 나무란다.
종교 재판에 의한 화형이나 교권 군주제가 기독교와 분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회고주의, 독재, 억압 등의 광경이 이슬람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늘 수구주의의 한 요인이었다는 서구인들의 주장을 공격하고자 한다. 물론 이슬람교에는 15세기~19세기 동안 수구주의가 있었다. 서양이 매우 빨리 전진하고 있을 때, 아랍 세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사회가 종교를 근대화 시켰지만, 이슬람세계는 사회가 근대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근대화 될 수 없었다.
문명의 품속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문명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변화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체험된다. 문명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모하고 삶의 진전을 이룩하며 변화에 적응했다. 그러나 서양문명 밖에서 태어난 나머지 사람들에게 근대성에 대한 수용은 자기 자신의 일부를 끊임없이 포기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고유의 옛 상징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주의에서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문화나 종교의 속성이 아니다. 정체성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상징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변화가 당시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 변화가 상징의 수준에서도 충돌되는 것이 없어야 하며, 변화에 의해 고무된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세계화를 하나의 재앙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의 세계화라는 것을 그들은 미국화와 동의어로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그들이 존속하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타협과 자기부정이 혼재하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생산하는 것은 서양문물에 비해 아무런 가치도 없고, 전통의술은 서양의 의학에 비하면 미신에 불과하고, 그들이 숭앙하는 인물들은 다른 국가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들의 언어는 일부 전문가들에게 의해서만 겨우 연구될 뿐,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들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정한 규범에 복종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이방인, 불청객, 소외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3이슬람 세계가 소외감을 느끼고 서양과의 격차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경,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뒤였다. 당시 이집트의 부왕(副王)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나폴레옹과 싸운 뒤에 유럽을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