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상생
이근식 지음 | 기파랑
1장 전환기의 한국사회현재 한국사회의 어려움과 동요현재 우리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경제 침체와 공동체의 동요일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위기란 말로 표현하는 것은 다소 과장되긴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경제, 정치, 교육, 의식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의하면, IMF 환란 이후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11.47%로 급증했다. 특히 가구원 수가 1인인 단독 가구나 취업자가 없는 실직 가구의 빈곤율은 거의 30%에 가깝다. 실업자가 아니더라도 장기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단기고용자, 즉 비정규직이 48.8%에 이른다.
실업과 빈곤이 증가하면서 이혼과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이혼율이 상승함으로써 가정이라는 기초공동체가 약화되고 있고, 범죄가 증가함으로써 국가 공동체를 동요시키고 있다. 직장이라는 공동체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IMF 환란 이후 조기 정리해고가 확대되면서 직장은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단순한 영리추구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졌는가는 자살률의 급증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동요의 원인은 정보통신 혁명과 결부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풍미라는 외적요인과 개발독재의 종언이라는 내적요인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세계화는 자본주의의 한 속성이다. 16세기 구미에서 원료와 노예의 공급, 상품과 자본의 시장 획득을 위한 침략으로 국가를 팽창하면서 시작된 세계화는, 18세기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공장제 생산과 자본축적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각지로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포를 앞세운 열강들의 세계화 정책으로 세계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의 참화를 겪은 다음 일단락되었으나, 1980년대부터 세 번째의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와 기술 혁명이 결합된 세계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현재의 세계화는 기술혁명과 정보통신 등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갈등과 위험도 크게 증대시키고 있다.
세계화가 위험과 갈등을 증대시키는 주된 요인이 된 것은 그에 내포된 신자유주의라는 요소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정부 역할의 축소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와 결합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정부의 통제에서 해방시켰다. 기업과 자본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경제에 대한 개입이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미국의 거대 자본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후진국들에게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무리하게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을 개방하여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아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현재의 세계화는 시장의 실패, 즉 빈부격차, 불황과 대량실업, 독과점, 환경파괴 등의 자본주의 본연의 구조적 폐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개발독재체제의 청산과 자유주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대외적 요인과 함께 개발독재체제의 종결이라는 대내적 요인도 현재 우리 사회를 동요시키는 요인이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독재체제는 대략 1980년대 중반까지 효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구조적으로 복잡해지면서 그 체제는 발전추진력으로서의 힘을 상실하였다. 이제는 시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가난한 나라는 먹고 사는 것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자유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그때는 다른 것들을 희생하더라도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국민 다수가 동의하였다. 그러나 빈곤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국민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자유, 인권, 사회복지, 환경, 문화 같은 가치가 함께 추구되는 성장을 원한다.
지난 40년간의 개발독재체제에 대해서는 양극단의 평가가 있지만, 이 기간 동안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경제발전은 어디서나 항상 모든 부문을 발전시키는 토대다. 우리사회가 이만큼 전반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은 개발독재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개발정책 과정에서 여러 측면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다보니 분배개선이나 복지제도 확충과 환경보호, 그리고 민주화나 인권보호, 문화 창달 등을 제쳐 놓았다.
또한 관치경제(官治經濟)로 인해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정부가 보유하게 되어 정경유착이 만연했다. 특히 재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다보니 기업들은 재벌이 되고자 사업을 방만하게 확장했고, 이로 인해 재벌기업들이 파산에 이르게 되면 정부는 국민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 결과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까지 초래했고 이는 경제 전체의 부실을 낳게 했다. 모든 사회현상은 결국 인간의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 개발독재는 우리 국민의식에 사회정의감 고취라는 긍정적 영향을 준 반면에 준법정신 결여와 관존민비의 풍토, 그리고 정부에 대한 의타심이라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 과거 군사독재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과제는 개발독재의 유물인 후진적 요소를 탈피하고 선진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관치경제를 청산한 효율적인 시장경제, 그리고 윤리를 함양한 의식개혁일 것이다. 이 세 가지 개혁이 상호 보완되게 하려면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상생적 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세 가지 질서를 건설한 사상이 바로 서양의 자유주의다. 그러나 자유주의만으로는 공동체의 동요와 같은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상생의 원리로 보완되는 자유주의, 곧 상생적 자유주의가 우리나라의 새 패러다임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2장 자본주의 경제의 이해자본주의와 사회주의자본주의에서는 인간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시장에서 매매된다. 식료품이나 집과 같은 유형의 물자만이 아니라, 교육, 운송, 금융과 같은 서비스도, 그리고 노동력이나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도 모두 돈을 받고 매매된다. 그리고 집, 토지, 공장, 돈 등 모든 재산들이 사유재산으로 보유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capitalism)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도로 운영되는 경제를 말한다. 반면에 사회주의(socialism)는 계획경제와 재산공유제도로 운영되는 경제이다. 국가가 모든 물자와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에 관한 계획을 세워 운영되며, 집, 토지, 농장 등 생산과 소비에 사용되는 모든 재산을 국가가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시장경제는 대부분 사유재산제도와 결합하고, 계획경제는 재산공유제도와 결합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과 실패는 능력에도 달려 있지만 운에도 크게 좌우된다. 기업들은 자신이 만들어서 팔 물건이 얼마나, 어떤 값에 팔릴지를 사전에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좀 과장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투자는 패를 모른 채 돈을 거는 도박과 비슷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계획경제하의 사회주의보다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사회주의에서는 계획당국이 사전에 수립한 계획에 의거하여 모든 생산과 처분이 결정된다. 따라서 수요부족을 걱정할 필요 없이 당국이 지시하는 대로 생산해서, 지시하는 곳에 납품하면 된다. 그런데도 시장경제가 자유주의와 잘 부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이 해체되기 전, 소련 수상이 이태리 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련 수상은 자국의 노동자들과 달리 이태리 공장의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그 회사의 사장에게 '왜 이태리 노동자는 소련 노동자들과 달리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장의 사장이 되물었다. "사냥개가 왜 토끼를 잡을 수 없는지 아십니까?" 이에 소련 수상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사장이 말했다. "토끼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뛰지만, 사냥개는 주인을 위해 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경제가 사회주의 경제보다 생산성이 더 높은 기본 이유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과학의 발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발전, 교육의 보급, 근대언론매체의 발달 등, 근대적 문물들이 모두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을 토대로 등장하고 발전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완벽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장점과 함께 폐단이 있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여러 가지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빈부 격차와 빈곤, 불황과 대량실업, 독점화 경향, 외부 효과(공해) 등과 같은 시장의 실패를 낳고 있다. 시장의 실패는 모두 경제적 문제지만, 이에 더하여 지나친 이기주의와 물신숭배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화, 공동체의 약화 등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불황, 실업, 불공정 분배, 인간소외 등 자본주의의 문제가 모두 없어지고 낙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권,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제로 나타난 것은 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빈곤, 불공정한 분배, 독재, 자유의 실종 등 새로운 갈등과 병폐였다. 사회주의 경제는 계획경제이기 때문에 생산수단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집중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낳고 권력의 집중은 비판적 자유를 추방하고, 비판의 부재는 사회전체의 정체와 부패를 가져왔다. 그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와해되었다.
자본주의 실패도 있고 사회주의 실패도 있으니 두 체제 모두 불완전하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으로 된 순수한 경제는 하나도 없다. 모든 나라의 경제는 이 두 가지 경제 형태가 섞여 있는 혼합경제(mixed economy)다. 이미 붕괴된 소련 등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 현존하는 북한과 쿠바와 같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일부는 상품이 매매되는 시장경제가 존재한다. 또한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사회주의 경제가 존재한다. 정부가 바로 사회주의 경제에 해당하는 부문이다. 정부는 국영기업이나 국유지와 같은 공유재산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산이라는 사전 계획에 의하여 국민소득의 일부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국가경제는 정부라는 사회주의 경제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것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복지지출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 국가와 복지국가는 경제정책이나 경제체제 면에서는 서로 큰 차이가 없다. 차이라면, 집권 가능한 노동당의 존재 유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강력한 노동자당이 없는 미국이나 일본은 복지국가이기는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으며, 집권 가능한 강력한 노동자정당이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라고도, 복지국가라고도 불린다. 현실에 자본주의 요소가 더 많으면 자본주의 경제, 사회주의 요소가 더 많으면 사회주의 경제라고 부를 뿐, 100% 자본주의 경제도, 100% 사회주의 경제도 없다.
3장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역사적 변천중상주의(mercantilism)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최초의 자본주의 경제를 상업자본주의(commercial-capitalism)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는 근대국가 건설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근대국가란 중세에 여러 영주 국가들로 분할되어 있던 땅들과 제도들을 통합하고, 새로운 제도들을 새로 만들고 정비해서 통일된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한 것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국가 간의 전쟁도 빈번하였다. 그래서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에 필요한 경제발전을 위해, 그리고 국가재정확보를 위해 각국 정부는 경제에 적극 개입하였다. 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취하고 주요기간산업을 특정기업들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독점적 영업권을 부여했다. 그래서 정부와 대기업 간의 정경유착이 필연적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정부의 특혜를 얻은 소수 대상공인만이 영업을 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독과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유방임주의)중상주의의 경제개입 정책은 대상공인들에게는 유리하고 중소상공인들에게는 불리했다. 그래서 중소상공인(부르주아)들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지원을 모두 철폐하자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규칙도 없는 완전한 자유방임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는 공정한 규칙만 남기고 정부의 경제 개입은 철폐하자는 주장이었다. 이 무렵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국부론』(1776)을 발표하여 자본주의의 두 기둥인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도의 필요성을 최초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스미스는, 사유재산 제도가 경제발전의 전제라고 보았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재투자할 수 있게 되어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스미스의 국부론은 큰 지지를 얻게 되어, 19세기 중엽 서양 전반에 걸쳐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사회적 자유주의스미스의 낙관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발달은 빈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국회입법을 통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노동문제와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를 뒷받침한 사상이 바로 사회적 자유주의다.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소득 재분배정책을 통해 빈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토지의 상속과 고소득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공교육을 제공하여 기회의 균등을 마련하며, 강력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노동조합을 보호하여 노동자의 빈곤을 해결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는 스미스가 주장한 고전적 자유주의와 대조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장 경제에 정부간섭을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했던 것에 반하여, 사회적 자유주의는 시장을 불완전하다고 보고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질서자유주의자본주의 경제에서 나타난 시장의 실패는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주기적 불황과 독점화로 나타났다. 1873∼1896년까지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세계적 규모의 대불황이 계속되었다. 이에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무력을 이용한 대외팽창정책이 결합하여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초래했다. 이 대불황기에 독점화가 크게 진행되었다.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대기업들에 의해 중소기업들이 시장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였고 이는 대기업의 독점화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독일에서는 은행의 주도하에 대부분의 중화학공업에서 독점화가 심하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후에 독일 나치정권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엄격한 통화관리를 통해 물가안정을 기하고, 강력한 독점규제 정책을 폈으며, 노동자의 부분적인 경영참여를 인정했다.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한 경제 이론이 질서자유주의였다. 질서자유주의 이론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학파에 의해서 주장되었는데, 그 대표자가 오위켄(Walter Eucken, 1891∼1950)이었다. 오위켄은 "국가는 경쟁질서(규제철폐, 독점금지, 물가안정)의 확립만 책임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