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영화를 유혹하다
이보아 지음 | 미래의창
1. 영화를 통해 보는 박물관의 기원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부활그리스 역사상 그리스 신화에 심취하면서 모든 지혜와 학문을 접한 그리스 왕으로는 단연 알렉산더 대왕을 꼽을 수 있다. 영화 <알렉산더>는 알렉산더 대왕이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평생을 바쳐 동방 정벌에 나섰는지, 그의 정복욕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등 관객들이 궁금해 할 모든 내용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영화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인간적 모습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나아가고자 했던 세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영화 <알렉산더>에서 올림피아스는 마치 '도플갱어'처럼 자신과 아들을 동일시하며, 아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차 알렉산더라는 위대한 영웅을 나약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동시에 그가 지닌 세계사적 의미조차 가족이란 1차원적 세계에 묻히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알렉산더는 어머니의 대리 만족을 위해 옹립한 왕으로, 새로운 영토를 정복할수록 허기를 채워야 하는 굶주린 인간으로 묘사된다.
알렉산더가 주도한 제국의 건설은 그리스 역사, 특히 문화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며, 이 시대의 미술을 그리스 미술이라 부르지 않고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부른 것은 제국의 건설과 함께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역의 조형 언어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티칸의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의 <라오콘 군상>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밀로의 비너스> 등이 이러한 헬레니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지금까지도 '지중해의 진주'로 불리고 있다. 고대 역사가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전설적인 도시라 불렀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세기 무렵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당시 그리스의 통치령이었던 이집트의 수도이자, 수세기 동안 서양 문명의 중심지였다. 아울러 이 거대 도시는 모든 문화적 차이를 녹이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다.
당시 세계 최대의 규모였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약 70만 부의 파피루스를 소장하고 있었다. 소장품의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방대한 장서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기 위한 방법도 개발되었는데, 도서관장 칼리마쿠스는 주제와 색인을 정리한 세계 최초의 도서목록인 <피나키스>를 만들어 도서관 운영의 질을 한층 높였다. 이와 더불어 많은 서적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출판 및 번역되었다.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 등을 통해 그리스의 비극 등 많은 문학 서적들이 출판된 것은 물론이고, 70명의 이스라엘 랍비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면서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인도에서 불교 경전들을 들여와 그리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전 세계의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화된 도시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거의 같은 시대에 공존했던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와는 대조적으로 강력한 문화보호정책을 시행했다.
톨레미 1세는 생전에 아들인 필라델푸스 왕에게 특별한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 왕궁 안에 뮤즈 여신의 신전인 뮤제이옹을 만들어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서적과 예술품 등을 모아서 보관하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박물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원전 284년에 만들어진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를 박물관의 효시로 본다.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는 신전으로도 사용되었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함께 학자들의 학술 교류의 전당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는 도서관 외에도 천체관측소, 연구와 교육시설, 동물원과 식물원도 함께 조성되었다.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2년에 로마인의 침입으로 도서관과 함께 불태워졌고, 270년경 팔미라의 여왕 셉티미아 제노비아에 의해 건물까지 파괴되어 수백 년 동안 내려오던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2. 발굴과 기증 그리고 경매잃어버린 것을 찾아서1971년 7월 8일 밤, 충남 공주 능산리 백제무덤 근처의 배수로를 파다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 묘실 발굴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당시 군중들은 마치 서커스 구경꾼처럼 발굴현장을 빙 둘러쌌고, 기자들은 발굴팀을 밀치고 무덤 속 유물들을 짓밟으며 연방 사진기 플래시를 터트렸다. 심지어 경찰조차 무덤을 먼저 보겠다며 기자들 틈에 고개를 내 밀었다. 하룻밤 새 무덤 속 유물을 쓰레기 훑듯 퍼낸 치명적 실수는 마치 미당 서정주의 친일 논란처럼 고고학계를 짓누르는 '원죄'였으며, 최악의 졸속 발굴이었다. 영화 <툼레이더2 - 판도라의 상자, 2003>에서도 이러한 무분별한 발굴 조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문가들에게 문화재를 보전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재를 그대로 묻어두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물리적인 흔적이자 실체인 유물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핵심은 발굴 현장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발굴자의 책임과 의무이다. 이를테면 톱니 모양의 돌조각은 무의미하지만, '낫으로 썼던 돌칼'이라는 설명이 붙으면 '유물'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만약 발굴자가 낫 한 자루를 발견했을 때 출토 지역과 자루의 크기, 모양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이 무의미한 돌 조각은 유물, 더 나아가서는 국보나 보물과 같은 문화재로 그 지위가 승격된다. 발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고고학자가 모든 유물을 제 손으로 직접 땅속에서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유물의 생명력이 좌우된다. 서투른 솜씨의 아마추어들이 유물을 훼손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고고학자는 유물이 놓여 있는 위치, 그 유물과 근접해 있는 유물과의 상호관련성 등을 통해 연대 측정 및 여러 가지 증거를 얻어낼 수 있으므로 반드시 현장에서 고고학자와 학예연구원(큐레이터)이 유물을 직접 다루어야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소장품은 기증한다기증은 문화유산 또는 자연유산의 공공화라는 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는 향유의 기회를, 전문가에게는 학술연구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국가나 공공기관에게 보호 및 관리 권한을 부여해줌으로써 소장품을 원형 그대로 후대에게 전승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기증은 박물관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근대의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과 같은 공공박물관이 형성되기 이전, 고대의 뮤제이옹 알렉산드리아, 중세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보고 등은 모두 개인 소장품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오늘날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를 '메세나스'라 하고, 후원 행위를 '메세나'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의 후원을 선도한 부호와 권력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근대적 개념의 박물관은 17세기 유럽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대학 박물관은 엘리어스 에슈몰린이 자신의 소장품을 대학에 기증하면서 만들어졌고, 런던의 블룸즈버리에 있는 세계 최초의 공공박물관인 대영 박물관은 의학자였던 한스 슬론 경이 약 8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영국 정부에 기증하면서 설립되었다. 일명 현대 미술관의 'Big 3'로 불리는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은 모두 신흥 재벌의 후원과 기증으로 설립된 미술관들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에는 매해 4건 정도의 기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장품 13만여 점 중 기증 유물은 약 1만 6천여 점이며, 기증 유물이 전체 소장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퍼센트를 웃돈다. 박물관 개관 이후 문화재 기증자 수는 245명에 불과한데, 이는 해외 국가들에 비해 우리의 박물관 기증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증문화의 부재 현상은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보다는 국가 중심의 중앙집권방식으로 박물관이 형성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재의 공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매를 통한 구입보아즈 야킨 감독의 <업타운 걸, 2003>에서는 주인공 몰리(브리트니 머피)가 유명가수였던 아버지의 기타를 크리스티 경매장에 내놓는다. <업타운 걸>에서와 같이 경매를 통한 '구입'은 박물관에서도 미술품을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박물관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한다. 유물을 구입할 때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유물의 진위와 이동 경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물관은 구입하려는 유물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불법거래 및 유통과 관련되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일 박물관이 경매회사, 화랑, 고미술상을 통해 유물을 구입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이들 기관의 공신력과 유물이나 예술작품의 원출처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충분한 공신력을 갖고 있음에도 구입 이후에 위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경매회사는 약 600여 개에 달하며, 그 가운데 세계적인 경매회사로는 프랑스의 구립 드르오 경매원, 영국의 소더비, 미국의 크리스티를 꼽는다. 세계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크리스티와 소더비 중에서 '크리스티'란 이름은 '문화예술품에 관한 보기 드문 식견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고급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와 동일시된다. 그만큼 크리스티의 미술시장에서의 위치는 매우 탄탄하다. 현재 크리스티는 뉴욕을 거점으로 세계 43개국 129곳에 지사가 있으며, 18개 경매장에서 연간 756회 이상의 경매를 실시하고, 350여 명의 전문 감정사가 활동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가 경매계에서 갖고 있는 기록은 매우 다양하며, 소더비에 비해 매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크리스티는 휴관 조치를 취하지 않고 활발하게 미술품을 거래했다.
예술품에 대한 효과적인 투자작품의 가격은,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미술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경우에는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외부적인 환경 요인(물가 상승 비율, 국가 통화제도의 불안정성, 투자 가능한 잉여자산의 성장, 세법 등)에 의해 미술품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는 수요와 공급의 경제학적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가격은 생존 작가이건 작고 작가이건 간에 작품 유통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올라가고, 적으면 떨어진다. 작가가 작고하면 작품값이 올라가는 것을 '데드 이펙트'라고 하는데, 이는 작품의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너무 일찍 작고한 경우에는 유통물량이 없고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그대로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다. 고흐나 피카소 또는 박수근의 작품이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격이 오르고 있는 이유는 유명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통 물량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지속적인 수요 증가 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실상 투자의 일환으로 예술품 수집이 갖는 효과에 대해서는 경제학자와 미술품 수집가 및 화상(畵商) 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윌리엄 그램프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예술품 수집의 장기수익 회수율은 비교적 낮으며, 특히 현대 미술품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구매자인 컬렉터들은 예술품에 대한 투자가 다른 어떤 투자에 비해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또 하나의 요인은 경매회사가 유명 작품의 판매 가격을 매체를 통해 알림으로써, 일반인들의 구매 의욕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예술작품의 투자에 대한 효과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수집가들이 예술작품이나 문화재의 구입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작품이나 문화재와 관련된 세제상의 혜택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기타 비영리기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경우, 작품의 기증 시점을 기준으로 작품 가격을 적용해서 세제 혜택이 결정된다.
진품 명품경매에서 예술작품이나 유물 또는 표본물을 구입하는 경우,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역시 '위작' 여부이다. 이러한 위작은 조선시대의 도자기로부터 외국 작품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제작된다. 최근에 경매에 나온 이중섭 작품인 <물고기와 아이>에 대한 위작 시비는 법정 공방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중섭 화백의 둘째 아들인 이태성씨는 "마치 내가 아버지의 그림을 대량 위조한 조직과 연계되어 있는 것처럼 주장한 한국미술품감정협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1982년부터 10년 동안 감정한 이중섭 작품 중 70퍼센트인 143점이 모두 가짜 판정을 받아 이중섭 작품이 그간의 위조 작품들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설령 친족이 내놓은 작품이라고 해도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미술계의 현실인 탓이다.
경매사들은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소장 기록'을 확인할 것을 조언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 도록을 보면 작품 사진 밑에 작품에 대한 설명과 추정가가 제시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소장 기록이 기술되어 있다. 소장 기록은 언제 누구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과거에 이 작품을 누가 수집하고 소장·관리했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작품 족보'라 할 수 있다. 이는 작품의 소유권 이전에 관한 명백한 사실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때로는 작품의 출처가 작품보다 더 중요할 경우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던 고gm의 <의사 가셰의 초상>은 그림에 얽힌 내력이나 소장 기록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 그림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화재와 예술작품을 둘러싼 국제 범죄의 심각성이 심화됨에 따라 소유권 위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어, 소장 기록을 100퍼센트 믿을 수도 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3. 문화제국주의와 반달리즘승자에게 전리품을!박물관의 수집 방법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단연코 '반환'이다. '구입'이나 '발굴조사'는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박물관의 내적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반환의 경우에는 기관이나 더 나아가 국가 간의 이해와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국가 간 협상을 통해서 반환할 경우에는 유물이나 예술작품의 본질적인 중요성보다는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협상 결과가 결정되며, 이러한 협상 과정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국가 간의 갈등과 이견이 붉어지기 마련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제기된 문화재의 반환과 보상 문제는 제3세계를 비롯한 신생 독립국이 자국의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요구한 사회·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 약탈로 상처 입은 역사를 단순히 보상으로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립국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민족 및 문화 정체성과 역사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문화재 보유국들은 문화재를 원소유국으로 반환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첨단 과학적 보존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대 자국의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타국의 문화유산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오늘날에는 문화재나 예술작품도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자유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박물관의 공동화 현상'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돌려주고 나면 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고, 관광 수입이 현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