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론
존 로크 지음 | -
서론나는 정치권력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그것은 사형 및 그 이하의 모든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는 권리이며, 또한 재산(property)을 규제하고 보전할 목적으로 그러한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국가(commonwealth)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무력을 사용하는 권리이며, 이 모든 것을 오직 공공선을 위해서만 행사하는 권리이다.
자연상태에 관하여자연상태란 사람들이 타인의 허락을 구하거나 그의 의지(will)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人身, person)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다. 그것은 또한 평등의 상태이기도 한데, 거기서 모든 권력과 권한(jurisdiction)은 호혜적이며 무릇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상태는 '자유의 상태(state of liberty)'이지, '방종의 상태(state of licence)'는 아니다.
자연상태에서는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법이 있으며 그 법은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 그리고 그 법인 이성은 조언을 구하는 모든 인류에게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자연상태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모든 범죄는 가급적 국가에서 처벌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자연상태에서도 처벌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비록 여기서 자연법의 구체적 내용 또는 그 처벌의 척도를 논하는 것이 현재의 목적을 넘어서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법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법 역시 합리적인 피조물이나 그 법의 연구자에게는 국가의 실정법만큼이나 이해하기 쉽고 명백하다는 점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더 명백할 수도 있다. 상반된 그리고 숨겨진 이해관계를 법구절에 규정하는 인간의 교묘한 재주나 정교한 논쟁보다 이성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대부분의 국내법들이 실로 그러한데, 그 법들은 자연법에 기초한 한도에서만 올바르며, 마땅히 자연법에 따라 규제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전쟁상태에 관하여나를 살해하려고 위협하는 자를 살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합당하고도 정당하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자연법에 의해 가급적 최대한 인간이 보존되어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보존될 수 없을 때는 무고한 자의 안전이 선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늑대나 사자를 죽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자신에게 싸움을 걸어오거나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가하는 자를 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인간을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 하에 놓고자 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과 전쟁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동의 없이 나를 자신의 권력 하에 장악하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나를 장악했을 때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사용하고자 할 것이며, 또 마음만 먹으면 나를 살해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목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를 선언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절대권력이 나의 자유권에 반하는 것을 내게 강제하고자 하는 힘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나의 보존에 대한 유일한 안전책이며 이성은 나의 보존의 울타리인 그 자유를 박탈하고자 하는 자를 나의 보존에 대한 적으로 볼 것을 명한다. 그러므로 나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나와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상태와 전쟁상태 간의 명백한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들간의 분쟁에 대해서 재판할 공통된 우월자를 지상에 가지지 못한 채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은 당연히 자연상태이다. 그러나 구제를 호소할 공통된 우월자를 지상에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인신을 해치고자 힘을 사용하거나 그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전쟁상태이다. 이러한 전쟁상태를 피하려는 것이 사람들이 사회를 결성하고 자연상태를 떠나는 커다란 이유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호소를 통해 구제를 기대할 수 있는 권위, 곧 지상의 권력자가 있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의 지속이 배제되고 분쟁이 그 권력에 의해 해결되기 때문이다.
노예상태에 관하여자유란, 로버트 필머 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기분 내키는 대로 살며, 어떠한 법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가 아니다. 정부 하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자유란 일정한 법률, 곧 그 사회에서 설립된 입법권이 제정하고 그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공통된 법률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협정이나 자신의 동의에 의해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될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이 기분 내키는 대로 그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자의적인 권력 하에 그 자신을 내맡길 수 없다. 실제로 과오에 의해서, 곧 죽어 마땅한 어떤 행위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을 몰수당하게 된 경우에, 그의 생명을 몰수할 권한을 가지게 된 자는 그 목숨을 취하는 것을 연기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노무를 제공하게 할 수 있는데, 그럼으로써 그는 그 상대방에게 어떤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노예로서의 고통이 생명의 가치보다 큰 경우에는 언제나, 주인의 의지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죽음에 이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예상태의 전형적인 조건이다.
소유권에 관하여비록 대지와 모든 열등한 피조물은 만인의 공유물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신(person)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그 사람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의 신체의 노동과 손의 작업 또한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자연이 제공하고 그 안에 놓아 둔 것을 그 상태에서 꺼내어 거기에 자신의 노동을 섞고 무언가 그 자신의 것을 보태면, 그럼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것은 그에 의해서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이 부가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며, 그 부가된 것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타인의 공통된 권리가 배제된다. 왜냐하면 그 노동은 노동을 한 자의 소유물임이 분명하므로, 타인이 아닌 오직 그만이, 적어도 그것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들이 충분히 남아 있는 한, 노동이 첨가된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만약 대지의 도토리나 다른 과실 등을 주워모으는 것이 그것들에 대한 권리를 준다면, 누구든지 그가 원하는 만큼 많은 양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법하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에게 즐길 수 있는 만큼, 어느 누구든지 그것이 썩기 전에 삶에 이득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주셨기에, 한 인간이 자신의 근면으로 그 풍성함의 일부분을 차지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될 정도로 그것을 독점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특히 이성에 의해서, 그의 사용에 이바지하는 정도로 정해진 한계를 지킨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그렇게 설정된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나 다툼이 일어날 여지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대지에 대한 소유권도 전자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획득되는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개간하고, 파종하고, 개량하고, 재배하고, 그 산물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토지가 그의 소유이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말하자면 그것을 공유지로부터 떼어내어 울타리를 친 셈이다. 이런 식으로 토지를 개량함으로써 그 일부를 수취하는 것 역시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토지가 남아 있고, 아직 토지를 가지지 못한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토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권(父權)에 관하여실상 어린애들은, 비록 성인이 되면 평등해지겠지만 처음부터 완전한 평등의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한동안 그들에 대해서 일종의 지배권(rule)과 재판권(jurisdiction)을 가진다.
이러한 양친이 그 자식들에게 가지고 있는 권력은 자식들을 불완전한 유년시절 동안 돌보기 위해서 그들에게 부과된 의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성이 자리를 잡아 양친의 노고를 덜어줄 때까지 아직 무지한 미성년기 동안 마음을 단련시키고 행동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자식들이 원하는 것이고 양친이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에게 그의 행위를 인도할 이해력을 주면서 그를 지배하는 법률의 한도 내에게 그에게 의지의 자유와 행위의 자유를 의당 그에게 속하는 것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자신의 의지를 지도할 수 있는 이해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 있는 동안, 그는 준수해야 할 그 자신의 의지를 가지지 못한 셈이다. 그를 대신해서 이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그를 위해서 인도해주어야 한다. 대행자가 그의 의지에 지시를 하고 그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복종은 그의 아버지에게 일시적인 통치권(government)을 부여하지만, 그것은 자식의 미성년기가 지남에 따라 종료하게 된다. 그리고 자식이 지는 존경의 의무는 교육 중에 보여준 아버지의 배려, 비용 및 친절의 다과에 따라서, 양친에게 그에 상응하는 존경, 존중, 지원 및 복종을 받을 항구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는 미성년기와 더불어 끝나지 않고 자식의 생애의 전과정과 상황에 걸쳐서 지속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은 법을 제정하고 자산, 자유, 신체 및 생명에 미치는 형벌을 부과하면서 그 법률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과는 전적으로 거리가 멀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은 미성년기의 종료와 더불어 끝난다. 그리고 비록 그후에도 존경과 존중, 지원과 옹호, 그리고 한 인간이 자기가 본래 누릴 수 있었던 최상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응당 부담하는 것을 항상 아들은 양친에게 바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왕권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며 최고의 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산이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지배권을 가지지 못하며, 그의 의지로써 아들의 의지를 모든 상황에서 지시할 수 있는 권리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의 기원에 관하여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연법상의 모든 권리 및 특권을 간섭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다른 어떤 사람 또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타인의 침해와 공격으로부터 그의 재산, 곧 생명, 자유, 자산을 보존할 권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법을 위반한 것을 심판하고, 그 위반행위가 의당 치러야 한다고 그가 확신하는 바에 따라 다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적 사회도, 그 자체 내에 재산을 보존할 권력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 사회의 모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존재하거나 존속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구성원이 이 자연적 권력을 포기하고, 공동체가 제정한 법에 따라 모든 사건에 관해서 그 보호를 호소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중에 그 권력을 양도한 곳, 오직 그곳에서만 비로소 정치사회가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commonwealth)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저질러진, 의당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러저러한 범죄에 어떤 처벌을 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곧 법을 제정하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국가는 국가의 외부인이 그 구성원에게 가한 침해를 처벌할 수 있는 권력(곧 전쟁과 평화에 관한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사회의 전 구성원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에 가입하여 어떤 국가의 구성원이 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사적인 판단에 따라 자연법의 위반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 사람은 또한 위정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관해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입법부에 양도한 것과 더불어, 공동체가 스스로의 재판을 집행하기 위해서 그에게 요청할 때는 언제나 그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공동체에 내준 것이다.
정치사회의 기원에 관하여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사회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도는 재산을 안전하게 향유하고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좀더 많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그들 상호간에 편안하고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나 정부를 구성하기로 동의할 때, 그들은 즉시 하나의 단체로 결합되어 하나의 정치체를 결성하게 되며, 거기서는 다수(majority)가 여타 사람들을 움직이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그 이유는 그 숫자와 상관없이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각각 개별적인 동의에 의해서 공동체를 결성했을 때, 그들은 그 행위를 통해서 그 공동체를 한 단체(one body)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동체는 일체(一體, one body)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며, 그 권력은 오직 다수의 의지와 결정에 따르게 된다. 공동체를 결성한 각 개인은 동의를 통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셈이다. 그러므로 동의에 의해서 모든 개인은 다수가 결정하는 바에 구속된다.
실제로 우리는 실정법에 의해서 활동할 권한[의결권]을 부여받은 회의기구에서 그 실정법이 특별한 수[의결 정족수]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다수의 결의가 전체의 결의로서 통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즉 다수가 자연법과 이성의 법에 의해서 전체의 권력을 가지고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의 정치체(body politick)를 결성하여 하나의 정부하에 있는 데에 동의함으로써, 다수의 결정에 승복하고 구속될 의무를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부담하게 된다.
정치사회와 정부의 목적에 관하여만약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토록 자유롭다고 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고 가장 위대한 사람과도 평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체 그는 왜 그러한 자유와 결별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자연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침해할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비록 자유롭지만 두려움과 지속적인 위험으로 가득 찬 상황을 기꺼이 떠나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결합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 또는 그럴 생각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생명, 자유, 자산(estate) -내가 '재산(property)'이라는 일반적 명칭으로 부르는 것- 의 상호보존을 위해서 사회를 결성할 것을 추구하거나 기꺼이 사회에 가입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정부의 지배 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크고 주된 목적은 그들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사회에 들어갈 때 그들이 자연상태에서 가졌던 평등, 자유 및 집행권을 사회의 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입법부가 처리할 수 있도록 사회의 수중에 양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모든 사람이 그 자신, 그의 자유 및 그의 재산을 더욱 잘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행하는 것이다(왜냐하면 어떠한 이성적 피조물도 현재보다 더 나쁘게 만들 의도로 그의 상태를 변화시키고자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