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심리학
배리 슈워츠 지음 | 웅진닷컴
[Prologue 청바지를 사러 가다]6년 전쯤에 청바지를 사러 옷가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젊고 예쁜 점원이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청바지를 사려구요. 사이즈는 32-28입니다." "어떤 것을 원하세요? 꼭 끼는 것, 무난한 것, 편안한 것, 헐렁한 것, 아주 헐렁한 것?" 계속해서 그녀가 물었다. "세척 방식은요? 돌세척인가요, 산세척인가요? 단추형인가요, 지퍼형인가요? 탈색형인가요, 표준형인가요?"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다소 촌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그냥 평범한 청바지를 원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지만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날 청바지 하나를 사는데 하루를 소비했다. 그 옷가게는 이 모든 선택의 기회를 제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다양한 취향과 사이즈로 봉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 속에 나는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결국 시간과 정력, 그리고 꽤 심각한 자기의심, 걱정, 그리고 피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선택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날 때, 그와 같은 다양성이 제공하는 자율, 통제, 그리고 해방은 강력하고 긍정적이다. 하지만 선택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다수의 대안에 따른 부정적 측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선택의 수가 한층 더 늘어나면 부정적인 측면들은 점점 더 커지고, 우리는 과부하(over-load)를 안게 된다. 이 시점이 되면 선택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시킨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선택의 과부하에는 비용이 따른다. 내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은 덜한 것 같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하려고 한다. 우리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좋은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을 줄이고 짐을 덜어냄으로써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선택에 지배당하는 사람들]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 - 손실혐오자당신은 100달러를 확실하게 받고 싶은가, 아니면 내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실하게 100달러를 받는 쪽을 선호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위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당신은 확실하게 100달러를 잃겠는가, 아니면 내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달러를 잃고 뒷면이 나오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으로 하겠는가? 여기서는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들은 잠재적 손실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는 위험을 기꺼이 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효과보다 적어도 2배는 크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잃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데, 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것을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얘기한다.
당신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영화를 보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이나 음악이나 영화가 그 순간에 당신에게 주는 느낌은 '경험 효용'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기 전에 그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당신은 식당이나 CD나 영화를 골라야 하며, 그런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 '기대하는' 방식에 근거해 그와 같은 선택을 한다. 그래서 선택은 '기대 효용'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특정한 식당, CD, 혹은 영화에서 경험을 하고 나면 그와 같은 경험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의 선택을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의 미래 선택은 '기억 효용'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세 가지 효용이 서로 작용하면서 기대 효용이 경험 효용과 상응하고, 경험 효용이 기억 효용에 충실히 반영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효용이 멋지게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가령 당신은 일부 멋진 순간들이 있었지만 끝은 별로였던 3주일의 휴가보다, 일부 멋진 순간들이 있었고 더 멋지게 끝난 일주일의 휴가를 더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햇빛 속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보냈던 나머지 2주일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일주일의 멋진 휴가와, 멋진 일주일 후에 그럭저럭 좋은 2주일이 이어지는 3주간의 휴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주일의 멋진 휴가를 더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논리와 기억의 차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늘 알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어떤 경험을 하고 난 후에 어떤 기분일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나 그런 경험을 할 때 느꼈던 기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런 경험이 일어나는 동안에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기분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선택을 한다. 점점 더 커지고, 혼란스럽고, 상충하는 선택들의 세상에서 우리는 (현명한 결정의 첫 번째 단계인) 정확한 목표 설정과 관련된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내리는 선택들에서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좋은 정보를 찾아낸다 해도, 그렇게 많은 정보들 속에서 그것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걸러내고 평가해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늘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새 차를 사기 위해 시장에 있고 당신의 관심은 안전성과 신뢰성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성실하게 「소비자 보고서」를 확인하였고, 이 잡지는 안전성과 신뢰성에서 볼보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그래서 볼보를 사기로 결심한다. 그날 저녁, 당신은 칵테일파티에서 친구에게 당신의 결정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데 그녀는 "볼보를 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라고 얘기한다. 당신은 이런 얘기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할까? 이 얘기를 듣고,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 보고서」의 평가를 믿지 말아야할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친구의 얘기는 당신의 결정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종류의 개인적 평가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때로는 거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소비자 보고서」의 긍정적 평가를 뒤집기도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자세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직접 듣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개인적 경험의 다양성은 잘못 선택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만, 과연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경험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직면하는 선택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의 양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개인적 경험보다 간접적 정보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통신이 갈수록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각각의 개인은 어디에 있건 '같은' 간접적 정보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CNN이나 USA 투데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이 잘못 이해하고 있더라도 친구들과 이웃들이 교정해줄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들은 같은 뉴스를 보고 들었기 때문에 똑같이 잘못된 이해를 공유하게 된다. 당신이 어디에서나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더 자주 반복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정확한 정보는 부화뇌동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그 결과 빠르게 폭넓은, 하지만 잘못된 합의를 초래할 수 있다. 선택의 대안과 기회의 증가는 세 가지 부정적 효과를 초래한다. 첫째, 결정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 더 많은 실수를 유발한다. 셋째, 실수의 심리적 결과를 더 심각한 것으로 만든다.
고르고 또 골라도 만족할 수 없다 - 극대화자현명한 선택은 우리의 목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선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와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하는 목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극대화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구매나 결정이 반드시 최고이기를 고집한다. 그러나 무엇이 최고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대안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극대화자는 모든 스웨터를 보아야만 자신이 가장 좋은 스웨터를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모든 가격을 확인해야만 가장 좋은 가격으로 구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결정 전략으로서 극대화는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며, 대안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 부담은 한층 더 커진다. 극대화자의 대안은 '만족자'이다. 무언가에 만족한다는 것은 충분히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선택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만족자보다 극대화자에게 훨씬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만족자라면 결정을 할 때 수많은 대안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하나의 대안이 당신의 기준에 충분히 맞기만 하면 더 이상 탐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다른 대안들은 당신과 무관해진다. 하지만 당신이 극대화자라면 수많은 대안들은 당신을 끝없는 걱정과 후회 그리고 자기의심의 덫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극대화자는 만족자보다 덜 행복한가? 우리는 이런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여러 해 동안 '잘 사는 것'의 지표라고 여겨졌던 것에 관한 다양한 설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즉, 극대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삶에 덜 만족했고, 덜 행복했고, 덜 낙천적이었고, 더 우울증을 경험했다. 극대화 수준이 아주 높은 사람들 -91점 가운데 65점 이상을 기록한 사람들- 의 우울증은 병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극대화자는 온갖 종류의 후회, 특히 소위 '구매자의 후회'에 만족자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 당신이 만족자라면 당신의 기준에 맞는 충분히 좋은 것을 선택할 때, 바로 길모퉁이에 더 좋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덜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극대화자라면, 그와 같은 발견은 극심한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 가게를 한 군데만 더 갔더라면…", "아, 소비자 보고서를 읽었더라면…", "잭의 충고를 받아들였더라면…" 당신은 이와 같은 후회를 무한대로 할 수 있고, 매번 후회를 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덜 만족하게 된다. 매번 결정을 내릴 때마다 후회를 하는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후회를 하는 사람들은 좋은 결정에서 비롯되는 만족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적어도 일부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후회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더 좋은 대안을 발견할 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한다. 이렇게 불필요한 상상은 그들을 삶의 모든 결정의 불확실성과 나아가 비참함의 덫에 빠지게 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극대화자들이 개인적인 삶의 질에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완벽추구는 적어도 더 좋은 결정으로 이어지는가? 그 답은 복합적이다. 극대화자는 만족자보다 '객관적으로'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관적으로' 더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결정의 질을 평가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자문해야 한다. '객관적 결과'인가, 아니면 '주관적 경험'인가? 내가 볼 때,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행동에 관한 이론을 전개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호 또는 만족을 극대화시키려 한다고 가정한다. 현실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만족' 또는 '선호'는 분명히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다. 가장 좋은 객관적 결과라 할지라도 우리가 거기에 실망한다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선택을 좌우하는 심리 법칙]
선택의 패러독스선택에는 분명하고 강력한 도구적 가치가 있다. 즉, 사람들이 삶에서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선택은 각자가 자신의 금전적 능력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물건을 구매하고 활동을 추구하도록 해준다. 당신은 채식을 좋아할 수 있고, 나는 육식을 좋아할 수 있다. 당신은 힙합을 들을 수 있고, 나는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 당신은 독신으로 살 수 있고, 나는 결혼을 할 수 있다. 언제든지 어떤 방식으로 선택이 제한될 때마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선택의 도구적 가치도 중요할 수 있지만, 선택은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가치를 반영한다. 선택의 자유에는 일종의 '표현적 가치'가 있다. 선택은 세상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처럼 피상적인 것에 적용된다. 우리가 선택하는 옷은 취향의 의도적 표현으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혹은 "나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혹은 "나는 부자다." 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입으며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을 표현하려면 적절한 선택의 수가 있어야만 한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앨버트 허시먼은 『퇴장, 목소리, 그리고 충성심』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느낄 때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퇴장하거나, 상황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선택이 갖는 한 가지 미덕은 퇴장을 선택함으로써 불만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우리는 식당, 시리얼, 혹은 휴가지를 버리듯이 연인, 친구, 혹은 공동체를 버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거나 비난 받을 일이다. 대신에 우리는 대개 불만족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연인, 친구, 혹은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력이 실패할 경우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애를 써야만 한다고 느낀다. 퇴장이나 포기는 최후의 수단으로 취할 반응이다.
사회 기관들은 나름의 제약을 부과해 개인들이 선택으로 인해 지게 되는 짐을 덜어줄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약들은 물론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개인들은 그것을 마음대로 위반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에 보다 분명한 '게임의 규칙' -삶의 어느 정도를 우리를 위해 살고 가족, 친구,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의무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제약- 이 있는 상태에서, 그와 같은 결정들에 따르는 고민은 상당 부분 없앨 수 있다.
선택의 자유가 부과하는 짐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언제 결정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캐스 선스타인과 에드나 울먼-마갈릿은 이것을 '2순위 결정'이라고 부른다. 2순위 결정의 한 가지 종류는 '규칙'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규칙이라면, 당신은 늘 안전벨트를 맬 것이고, 가까운 시장에 가는 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파트너를 절대로 속이지 않겠다는 규칙을 택한다면, 당신은 나중에 당신을 괴롭힐 수도 있는 수많은 고민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규칙, 예정, 기준, 그리고 반복화를 사용해 스스로에게 제약을 부과하고 직면하는 결정들을 제한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더 쉽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