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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터 F. 오스왈드 지음 | 을유문화사
1. 글렌 굴드와 만나다



연주회

1957년 2월 28일, 스물아홉 살의 진지한 성격의 정신과 의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나는 캘리포니아의 한 무대에서 스물네 살의 세계적인 괴짜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무대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 그는 자신의 덩치에 비해 너무 큰 연미복을 입은 것이 편치 않은 듯 매우 어색해 보였고, 청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주저하듯 초점을 잃은 데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표정이었다.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의 세 다리 밑에는 나무 발판이 놓여 있어서 피아노가 조금 올라와 있는데다 그 유명한 굴드의 흔들거리는 접이의자는 보통의 피아노 의자보다 낮아서, 굴드가 앉았을 때 피아노 건반과 그의 몸이 이루는 각도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보통 피아노 연주자의 팔은 건반보다 약간 높게 위치하는데 굴드의 팔은 건반과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상한 자세로 앉은 굴드 자신은 편안해 보였다.



미소를 띠고 피아노 건반에 거의 맞닿을 듯 얼굴을 댄 그가 바흐의 바단조 협주곡을 시작하였고, 곧 몸을 박자에 따라 움직이면서 모든 음을 입으로 따라하고 있었다. 때로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입체적인 삼차원 조각처럼 모든 소절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의 연주는 한마디로 놀라웠다. 넋을 잃은 듯한 표정, 감겨 있는 눈, 그의 손은 마치 피아노와 사랑을 나누듯 건반을 애무하고 있었다. 굴드가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연주가 내뿜는 신비한 기운은 어느새 청중에게 전달되어 이제 청중도 넋을 잃고 그의 연주에 빨려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연주였다! 음악을 극히 지적으로 이해하면서 그토록 멋지고 당당하게 몸으로 녹여 보여주는 마술과도 같은 솜씨를 지닌 피아니스트를 나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해준 굴드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무대 뒤로 찾아갔다. 독주자 대기실의 잠겨 있는 문을 두드리자, 글렌 굴드가 정중한 태도로 나를 맞아들였다. 그는 혼자였고, 방문자가 찾아와서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마틴 캐닌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로 내 자신을 소개한 다음 연주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노라고, 바흐의 작품이 그렇게 훌륭하게 연주된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는 점점 긴장을 풀더니 강한 목소리로 즐겁게 자신이 협연했던 관현악단, 좋아하는 지휘자들, 선호하는 작곡가들에 대해 화려하게 독백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그의 도발적인 유머 솜씨를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굴드의 활기찬 독백이 자신의 건강 문제로 돌아가더니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감기로 몸져눕지 않을까 큰 걱정을 했다. 숨이 막힐 만큼 덥고 습기 차서 마치 사우나탕 같은 방안의 높은 온도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는 자신의 증상을 누그러 뜨리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도 사용했고, 특히 등과 팔, 어깨가 쑤시는 데에 좋다는 지압치료와 초음파치료도 받는다고 하였다. 그의 주 목표는 팔 위쪽으로 가는 힘을 손과 손가락으로 옮기는 것이었고, 초음파치료와 낮은 접이식 의자를 사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했다. 나에게는 큰 근육조직을 없애기 위해 초음파 진동을 이용하는 것이 비록 위험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리 믿을 만해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방금 굉장히 까다로운 작품을 힘들게 연주했어요. 당연히 과로하고 탈진한 상태일 거예요. 이 숨 막히는 방에서 나가 신선한 공기를 좀 쐬도록 합시다." 이 말에 굴드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몸을 돌려 짐을 싸기 시작했고, 곧 무거운 외투, 모자, 양모 목도리, 양모 장갑을 착용한 다음 접이식 의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교우 관계는 향후 20년 동안 여러 차례 굴곡을 거치면서 지속 되었고, 1982년 글렌이 쉰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야 끝을 맺었다.



천재의 어린 시절

글렌의 어머니 플로렌스 그레이그는 음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러셀 허버트라는 이름 대신 버트 골드(글렌 굴드의 원래 성은 'Gould'가 아닌 Gold였음)라고 불리던 글렌의 아버지가 플로라를 만난 것도 두 사람의 음악 활동을 통해서였는데, 버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인데다 타고난 가수로 가끔씩 합창 파트를 맡아 노래를 불렀고, 사고로 바이올린을 더 이상 켤 수 없기 전까지는 바이올린 연주도 즐겨했다. 1925년 두 사람은 플로라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는 날 혼인했고, 버트는 아버지의 모피상을 이어 받아 집을 장만하고 플로라는 토론토의 큰 교회에 나가 일하기도 하고, 안락한 집에서 음악 레슨도 하면서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탰다.



몇 차례 유산 끝에 마흔 살에야 겨우 임신하여 달을 채우는데 성공한 플로라는 아이가 훌륭한 음악가,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품고 태아에게 하루 종일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1932년 9월 25일, 온 집안의 걱정과 긴장감 속에서 마침내 글렌이 태어난다. 아기 글렌의 특이한 점은 아이라면 당연히 울어야 할 상황인데도 늘 입을 다물고 노래하듯 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글렌의 부모는 아들이 음악 소리와 리듬에 특별히 반응하며 눈에 띄게 음악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음악적 재능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글렌의 아버지가 기억하고 있는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은, 아들이 위대한 음악가가 될 운명이라는 어머니의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비정상이며 사십 대였던 산모의 첫 아이라는 것, 언어 발달에서 보여준 특이한 점과 함께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마치 음계를 연습하듯 손을 휘두르는 동작은 발달장애로 의심해볼 수 있다. 글렌은 자폐증을 앓지는 않았지만, 소년 시절과 사춘기 때 어떤 물체에 대한 공포,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점, 사회적이고 사교적인 데서 물러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정형화된 행동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점 등은 아스퍼거 증상과 비슷했다. 이 질환은 지능과 언어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면서도 사회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뒤떨어져 자폐증적인 행동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이 증상을 앓는 사람들은 감각이 예민해져 곧잘 기묘한 행동을 하며, 일부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아기 글렌의 남다른 손놀림을 본 주치의는 꼬마가 의사나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우연찮게도 글렌은 이 예언의 두 가지를 다 실현시킨 셈이 되었다. 건반 위에서 이룬 그의 업적은 굉장한 것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임상적 증상이나 질환, 치료법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으며, 그것을 통해 의학전문가 뺨칠 정도가 되었다. 그는 평생 수많은 의사들과 상담을 했고, 온갖 종류의 처방을 시험해보곤 했는데, 그럼으로써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데는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신동으로 불리다

글렌이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자마자, 글렌의 어머니는 아들을 피아노로 데려가 건반 가까이 앉히고는 아들이 빨리 음악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피아노를 쳐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글렌이 세 살이 되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글렌의 부모는 글렌이 절대음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능력을 어린 글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음계 가운데 있는 어떤 음이라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 능력이 아주 특별한 것은 이런 능력을 가진 이가 그만큼 드물기 때문인데, 우선 유전적 소인이 있어야 하며,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과 접하여 유전적 능력이 계발되어야 한다. 때문에 글렌이 절대음감을 지녔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것 같다.



플로라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모든 음을 노래로 함께 부르도록 했다. 이것은 자신이 연주하는 작품을 명확히 파악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글렌은 이 습관을 평생 고수했다. 글렌은 글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악보를 읽은 데다, 음악적 기억력도 대단해서 방금 들었거나 연주했던 작품을 다 머리에 담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악보로 흘깃 본 것까지도 금세 외웠다. 모차르트와 자주 비교되던 어린 글렌은 그때까지는 명랑한 천재였다.



그러나 글렌은 꼬마였을 때부터 손가락을 다칠까 봐 무척 두려워했다. 또한 선물로 받은 불자동차 장난감의 빨간색에 기겁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등 밝은 색깔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바깥에 놀러 나가거나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 모든 일상적인 일로부터 피해 피아노라는 안전한 피난처 앞에만 있으려 했다. 그의 부모는 곧 아들에게 규칙을 가르치거나 벌을 주는 유일한 방법은 피아노 뚜껑을 닫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글렌은 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었다. 온타리오 욱스브리지 연합교회에서 열린 '사업가들의 성경반' 30주년 기념 일요일 오후 예배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인데, 글렌은 이때 '이중창곡'을 연주해 청중의 경탄을 자아냈다. 그뒤로도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더 가지게 되면서 글렌의 음악교육을 혼자서 맡아 오던 어머니는 다른 외부 전문가에게 글렌의 능력을 보이고 평가받아야 할 때가 됐음을 알게 되었다.



토론토 음악원의 테스트에서 글렌이 받은 점수는 역대 최고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글렌은 더더욱 피아노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글렌에게 모피상을 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점점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어 버린다.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자기와 함께 다른 '정상적인' 활동들을 즐겁게 하면서 가업까지 이어받을 수 있도록 키우고 싶어 했지만, 글렌은 이 모든 것을 혐오스러워했다. 아버지의 모피상에서 팔고 있는 가죽은 글렌에게 동물 학살을 떠올리게 했을 뿐이고, 나중에 글렌은 채식주의자가 되고 동물의 권리를 지키는 기수가 됨으로써 동물 학살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고야 만다. 그리고 자신의 유언장에도 재산의 많은 부분을 토론토 동물애호가협회에 기부하도록 명시해놓았다.

2. 굴드 사운드의 탄생과 비밀



새 스승과 도약

글렌이 음악적으로 뛰어난 분야는 단연 기막힌 피아노 연주 실력과 절대음감, 미리 연습하지 않은 음악도 악보를 보고 즉시 연주하고 외우는 신비한 능력, 그리고 열성적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이러한 글렌의 능력은 음악원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레오 스미스 교수는 그에게 음악 이론을 가르쳐주었는데 머지않아 소년의 머리는 전조(轉調)와 화음 진행 그리고 성부(聲部) 라인의 반복 진행 등에 관한 개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글렌은 화성학 기본도 빨리 습득했고, 음악적 주제가 서로 얽히고 겹치는 대위법에는 특별한 소질을 보였다. 그가 열 살때 입학한 토론토 음악원의 원장은 토론토의 뛰어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한 저명한 어니스트 맥밀런 경이었다. 그는 재능 있는 소년이 음악원에 등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음악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그를 가르쳤다. 한편 낮은 의자에 앉아 건반과 수평이 되도록 손가락을 유지하는 법, 어깨에서 팔을 통해 전달된 에너지를 사용하여 손가락의 민첩함을 강조하는 법 등 글렌 특유의 피아노 테크닉은 모두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피아노 스승인 게레로에게서 익힌 것이다.



1944년 처음으로 콩쿠르에 참가한 글렌은 그보다 나이 많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보여 장학금을 받았으며, 1945년에는 공개 무대에 일곱 차례나 등장하며 이름을 날렸다. 12월에는 글렌과 그 가족이 진정한 의미에서 공식 데뷔 무대로 중요하게 꼽는 이튼 오디토리움에서의 오르간 연주로 언론의 확실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계속 그랬지만 어린 글렌은 연주를 하는 순간 외에는 무대에서 안정되지 않은 듯 보였으며,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불편하게 여겼다.



또 그 해에 그는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느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된다. 글렌이 피아노 연습을 하는 동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피아노 가까이에서 켠 진공청소기의 소리에 그의 연주가 갑자기 파묻히게 되었는데, 그때의 느낌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마치 욕조 안에서 두 귀를 물에 담근 채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어대며 노래 부를 때 드는 느낌'으로, 진공청소기 소리는 확실히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에 끼어들어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방해하였지만, 대신 그가 그 소리를 연주해 내는 동작을 더욱 예민하게 감지하도록 해 주었다. 흔히 내성적인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글렌 역시 바깥에서 들려오는 연주보다 내면의 소리를 더욱 좋아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두 가지 영향을 주는데, 급히 외워야 할 악보가 있을 때는 텔레비전과 같이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피아노 가까이 두는 버릇이 생겼고, 또 실제 음악 소리에 만족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게 되어 완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마이크와 사랑에 빠져"

글렌은 테이프 녹음기를 사용해 자신의 연주를 점검하였다. 테이프에 녹음하여 들으면 자신이 실제로 연주할 때보다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어서 실수를 교정할 수 있고, 곡의 속도를 바꾸거나 표현 방식, 크기와 세기 등을 조정할 수 있다. "모든 스승 중에 가장 위대한 스승은 테이프 녹음기"라고 하면서 어린 나이에 테이프 녹음기 사용법을 스스로 익힌 그는 평생 녹음기에 의지하게 된다. 녹음기와 함께 글렌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라디오 작업인데, 라디오는 나중에 그의 음악 활동에서 최우선 관심사가 된다. 1950년, 처음으로 CBC(캐나다 방송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였고 그 후 라디오 방송 연주를 계속 경험하면서 글렌은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우선 연주회장에서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바로 앞에 있는 목격자들인 청중"이 요술처럼 사라져 무대공포증의 직접적인 원인 하나가 약화되었으며, "방송을 했던 행복한 순간을 희미하게나마 재생해주는 부드러운 아세테이트 음반"을 물증으로 확실히 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그는 라디오 방송 연주를 기억할 만하다고 했다.

실제로 글렌은 청중을 몹시 싫어하는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 잘못을 찾아내는 비판적인 그의 어머니상이 연주를 들으러 오는 모든 청중에게 과장된 방식으로 투사된 것 같다. 그는 연주회장의 청중이 던지는 무언가 캐는 듯한 눈초리를 항상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했다. 글렌은 이미 이십대 초반에 무대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연주회를 계속해 나갔다. 또한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끈질기게 이어져 어떻게든 현대음악에 가까워지려고 애쓰면서 캐나다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의 새롭고 대담한 작품을 청중에게 소개하여 친숙해지도록 노력을 다했다. 글렌을 이끌어주려는 매니저의 노력과 여러 공연, 라디오 방송 출연 덕분에 글렌은 캐나다에서 두드러지는 인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스스로 택한 고독 속에 빚어낸 굴드 사운드

열아홉 살이 된 글렌은 맬번 칼리지에이트 인스티튜트를 그만두었다. 학교 공부와 음악 활동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글렌은 처음으로 스스로한테 부과한 유예 기간을 갖고 부모와 교사들에게서 떨어져 지내며 전반적인 사회 활동에서 벗어나 심코 호숫가에 있는 부모의 오두막에서 혼자 지냈다. 오랜 친구였던 밥 풀포드는 "억압적인 환경에 반항하는 창조적인 개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글렌보다 먼저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는데 이 두 중퇴생은 함께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음악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회사는 그때까지 토론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음악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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