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발견
강영조 지음 | 효형출판
조망의 즐거움 : 이 대지 속에 산다는 것 풍경을 보는 것은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행동이다. 이를 조망(眺望)이라고 한다. 조망이라고 하면 그저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풍경의 눈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 풍경에 맞는 조망의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조망술을 배우려면 우선 산수화에 그려진 사람들을 잘 관찰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림의 산수 속에 들어가 소요하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하는 것이 그림에 그려진 인물이다. 좋은 산수화는 보는 사람이 그 속의 사람이 되어 풍경 속에 실재로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므로 인물들의 시선 방향과 경물의 관계를 유심히 살피면 풍경 조망술을 배울 수 있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에게서 내가 배운 풍경 조망술은 '멀리 바라보다/ 아래로 내려다보다/ 위로 올려다보다/ 조망의 극치, 숨어서 보다'이다. 좋은 풍경이란 보기 좋은 크기로 보기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경관과 같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는 우리가 그 풍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조망 대상에 따라 시선의 방향을 결정하고 안정된 조망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몸을 사용하여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조망술의 요체다. 멀리 바라보고,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세 종류의 조망 행동이 기본이다. 풍경의 위치와 거리에 따라 조망하기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시선의 방향과 시야의 크기를 결정하여 조망 행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으면 최고의 눈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기 몸을 숨기면서 외부를 볼 수 있는, 즉 조망과 은신의 양의적인 장소가 좋은 조망점이라 할 수 있다.
덕유산 향적봉 - 멀고 아득한 산자山紫의 풍경 덕유산 향적봉에서 본 멀고 아득한 풍경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겨우 산정에 발을 딛고 올라 몸을 돌린 그때, 눈앞에는 산들이 겹겹이 싸였고 또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산정에 오르면 벽처럼 막고 서 있던 계단이 끝나고 한순간에 시계(視界)가 열리면서 폐쇄된 공간이 일순간에 해소되고 원망(遠望)할 수 있게 된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지상에서는 지형이나 건축 구조물 혹은 수목 등이 시야를 불연속적으로 제한하고 심지어 폐쇄감마저 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시계를 막고 있는 공간이 한꺼번에 열리는 체험을 한다. 고공과는 달리 장애물이 한꺼번에 소거되어 갑자기 먼 곳의 풍경이 극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체험을 하는 것이 지상 경관의 특징이며, 이를 저시점 투시상의 특징 중 하나인 '폐쇄와 원망의 분극화' 현상이라 한다. 원망할 수 있는 장소에서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사물이 서열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멀고 깊은 공간감을 느끼며 자기가 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폐쇄의 시간이 길수록 산 정상에 섰을 때 맛보는 극적인 원망의 체험은 더욱 인상적이다.
향적봉의 앞산은 옅은 녹색의 육중한 몸으로 서 있었지만 그 산능선 뒤에 겹쳐지는 산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으며 하늘과 지평선이 이윽고 분간조차 안 되는 먼 곳까지 산능선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겹겹이 서 있는 원경의 산은 먼 바다의 해면 위에 이는 잔물결처럼 파도치며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일제히 산정으로 다가오고 멀리 가야산에서는 가야산이 물안개 자욱한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대개 이러한 공간의 깊이감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들의 배열로써 간접적으로 획득한다. 그 가운데 중첩은 지상 경관에서 원근감을 지각하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다. 그러나 향적봉의 풍경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12세기 중국의 화가 곽희가 완성한 삼원(三遠)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산 아래에서 산 위를 올려다보는 듯이 그린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굽어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 그것이다. 향적봉에서 동쪽 가야산 방면 가까운 산은 초록으로 진하고 그 산의 능선 뒤에 겹쳐지는 것은 군청색의 산이다. 멀리 서 있는 산들은 산몸이 마치 수묵화처럼 아래부터 옅어지고 있으며 능선만이 뒷산의 담색(淡色)을 배경으로 하여 어슴푸레 보인다. 멀어질수록 산몸은 둔중한 부피감을 상실하고 골짜기에서 피어오른 연하(煙霞) 위에 평면의 그림자로 떠 있다. 산색은 점점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흔히 아름다운 풍경을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고 표현한다. 산으로 겹겹이 쌓여 어둡고 흐린 심원을 그리는 향적봉의 풍경을 보니, 산자(山紫)란 중첩하는 산들이 보여주는 색의 농담과 색조의 변화를 이르는 말인 듯하다. 향적봉 정상에서 보면 부각 8~10도의 위치에 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 각도는 풍경을 편안하게 볼 때 우리의 시선과 지면이 이루는 각도라서 이런 장소를 부감하기에 절호의 장소라고 한다. 덕유산의 향적봉은 심원과 평원의 풍경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조망의 명산이다.
소양호 빙원 - 한 치 얼음 아래는 열 길 호숫물 육상에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땅은 삶의 터전이고 그 삶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주는 기반이다. 지면은 지지(支持)면이지만, 물은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 지지면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물이 우리의 무게를 지탱할 만큼 단단히 결빙할 때는 대지처럼 지지면이 된다. 결빙의 경도(硬度)는 지지면으로서 수면에 대한 신뢰도와 비례한다. 걷고 달리고 구르는 등의 거침없는 행동을 지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수면을 지면의 연장으로 신뢰한다. 단단하게 언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빙어 축제의 즐거움은 대지와는 다른 지지면을 몸으로 실감하는 데 있다. 신기루처럼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봄기운에 눈 녹듯 사라지는 찰나(刹那)의 대지를 맛보는 것이다. 그 실감을 위한 방편이 낚시를 위해 얼음을 뚫는 빙어잡이라는 것은 그 얼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전략이다. 그리하여 한 치의 얼음장 아래가 차가운 물 속이고 이 지면이 허물어지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위태로움은 도리어 불변의 지지면으로서 대지의 존재를 각성하게 한다. 이 각성이 소양호의 빙원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제 만경 평야 - 지평선까지 툭 트인 넉넉한 가을 들녘 김제 만경 평야는 늘 다른 무엇의 배경이었던 하늘을 주인공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벼이삭이 익어 가는 푸른 들녘과 그 위를 평행하게 뒤덮고 있는 하늘뿐이니 앞을 바라보면 투명한 하늘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하늘과 그 아래 넓은 들판 들판만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 것이 김제 만경 평야의 광경이다. 그리고 그 사이 지평선. 그것은 절대적인 경계다. 우리는 언제나 지평선 안에 들어 있고 지평선으로 그어진 그 구역 안에서만 우리는 자유롭다. 하지만 전혀 갑갑하지 않다. 오히려 무한하고 광대한 대지를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그 대지는 우리를 지평선 너머로 다가오도록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지평선은 공간을 한정하지만 확장을 유혹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만경 평야가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아닐 수도 있지만 다만 예전에는 지평선까지 거침없이 연속되어 있던 들판이 지금은 여기저기에 새로 지은 건물들 때문에 부분적으로 단속(斷續)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그러니 이제는 김제 만경벌에서 지평선을 제대로 보려면 적절한 조망점을 찾아야 한다. 먼저 벽골제가 있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곧 만나는 아리랑문학관 부근을 추천하고 싶다. 거기서 심포항 방면의 2차로 농로에서 서쪽으로 보면 황금빛 들판이 거침없이 지평선까지 질펀하게 퍼져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심포항으로 다가가는 지방도 702번 들길을 추천한다. 너른 들을 관통하면서 차창 왼쪽으로 보이는 들판인데 이 들을 전경에 놓고 시선을 김제 시내 쪽으로 두면 가물가물한 지평선 언저리에 야트막한 언덕이 보일 뿐 그야말로 하루밤낮을 달려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이 아득한 벌판을 볼 수 있다. 702번 지방도를 따른 곳에 있는 망해사 전망대에서는 만경강 하구와 만경 너른 벌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눈앞의 광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계기로 추억을 상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곳에서 느낀 평야의 풍요로움은 아마도 그 동안 겪은 풍요의 추억이 되살아난 것일 터이다. 그것은 바로 고향의 풍경, 언제나 넉넉했던 시간이었고 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구룡령 - 길 위에서 유장한 산줄기를 보다 금강산 구룡령이라는 고개 이름은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많은 용이 뒤엉켜 있는 광경에 빗대 지은 것이다. 나는 그 길을 용의 등에 탄 것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타를 몰고 숨가쁘게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올랐다. 산이 국토의 7할을 차지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고갯길이 친숙한 길이라서 우리는 고갯마루에 오르면 시계가 탁 하고 열리면서 발아래에 인가들이 올망졸망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는 광경에 익숙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토를 종횡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터널 때문에 이런 고개를 넘는 일이 드물어졌고 고갯길에서 보는 조망의 즐거움도 근대 이후 철도에 의해 빼앗겼다. 구룡산 정상의 고갯마루에 다다르니 구룡령 휴게소가 동쪽 산비탈을 등지고 서 있었다. 차를 휴게소 주차장에 세우고 정상을 가로지르는 생태 터널을 지나 양양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고 있었고 터널의 갱도를 지나자 비로소 구룡령 고갯마루에 설 수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시계가 확 열렸다. 찬바람이 왈칵 밀려왔고 그 바람 뒤로 산릉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일어서서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구룡령 정상에 선 것이다. 양쪽의 산자락이 서로 포개지듯이 겹쳐지면서 골짜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산능선이 그리는 V자 가운데 부분은 시계가 끝도 없이 멀리 열려져 있었다. 골짜기가 유도하는 시야의 중심에 겹쳐 있는 산줄기들이 유장하게 흘렀다. 산주름은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어서 마치 산체가 잔뜩 근육을 세우고 있는 듯 보였다. 역동적으로 일어섰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산능선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까운 산들이 아침 햇살을 가리고 있는 준령(峻嶺)의 그림자로 어두웠기에 먼 산들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이 환한 햇살에 한층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산이 끝도 없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 대륙적 풍경이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경이다. 구룡령에서 보는 풍경은 심산의 산마루에서 보는 것과 시각상으로는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체험의 질에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아마도 경관학자 나카무라 요시오가 말했듯이 고개란 심산의 기운이 가득하면서도 인기척이 가능한 양가적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풍경의 표정 : 나는 풍경을 보고, 풍경은 나를 보네 정삼각형의 도형에서 창공으로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연상한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판화를 보면, 에셔는 정삼각형이라고 하는 가장 안정적이며, 따라서 가장 정제된 평면에서 새의 모습을 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풍요로운 표정을 단순한 삼각형으로 환원한 에셔의 예술적 심미안이 그렇다고 해서 유별난 것은 아니다. 삼각형의 산용에서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도 에셔에 버금가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물가로 내려서는 긴 산줄기에서 용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생한 현실을 뒤로하고 추상적인 도형의 세계로 숨어드는 인간의 심리는 생생한 현실에 비하여 인간 중심적인 세계가 더 안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 '기분 지각'은 누구에게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인류가 숲에서 나와 홀로 서기를 결심했을 무렵부터 몸에 밴 본능일 것이다. 마르틴 부버에 따르면 인간이 숲에서 나와 맨 처음 마주친 세계는 '너', 즉 2인칭이었으며 결코 자기와 무관한 '그것'이 아니었다. 부버는 다가오는 '너'로서의 사물이 이쪽을 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야말로 의인(擬人)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자기와 자기에 대면하는 타자로서 세계를 지각하는 의인 감각은 생득적인 세계 지각의 방법이다. 이 의인 지각의 원천은 아늑한 숲에서 홀로 빠져나온 인간이 절실하게 느꼈을 법한 고독감일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그 절실한 고독감이 바로 풍경 체험의 근원일 것이다. 이 절실한 심정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없는 깊은 산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는 듯한 기척, 기품 있는 나무나 거대한 폭포, 호수 저 너머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솟아 있는 장엄한 산과 마주할 때 왠지 모를 안심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는 것은 태초의 인간이 느꼈을 그 고독감의 흔적일지 모른다.
이른 봄 섬진강 - 산 그림자 드리운 맑은 물굽이 마이산과 백운산,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모여 이루는 섬진강은 곡성군 압록에서 제법 강폭이 넓어져 강다운 풍모를 지닌다. 섬진강은 빠른 여울과 깊은 소가 역동적으로 연출하는 화려한 강도 아니고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大河)의 풍모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강 건너 강둑에 서있는 사람의 표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적당한 너비의 강폭, 얕은 수심, 맑은 물과 부드러운 모래, 키 큰 수풀이 둑길 따라 무리 지어 서 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실 섬진강은 평범한 강이다. 산골짜기에서 스며 나온 물이 능선 자락을 비켜 굽이지고 또 물길 따라 아래로 흐르면서 산 깊은 곳에서 운반해 온 백옥 같은 모래를 강펄에 토해 놓은 광경은 산하의 지형적 윤회(輪回)가 보여주는 당연한 강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강을 섬진강말고 또 하나 더 찾아보려고 하면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섬진강의 아름다움이란 강으로서 지녀야 할 당연한 강 풍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섬진강은 충분히 아름답다. 평범하므로 찬란한 이 풍경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또한 이렇게 평범한 강이 잊을 수 없이 아름다운 강으로 기억되는 것은 맑은 물과 땅에 순응하여 저절로 굽이치는 물길의 모습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강 주변의 풍경 때문이다. 지리산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화엄사, 쌍계사 등의 고찰에 접근하는 하동 강변길의 풍경은 봄 벚꽃, 가을 단풍, 여름의 나무 그늘, 겨울의 이파리를 떨군 가로수길 끝에 걸려 있는 눈 덮인 지리산을 보여주는 강변길은 그 길과 교향하듯이 흐르는 섬진강을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기억하게 한다. 또 그 길을 따라 매화 마을, 산수유 마을 등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풍경의 명품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강이 아름다우려면 강물만 맑아서는 곤란하다. 그 강이 주변의 산하와 인간의 삶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산수의 맥락 위에 인경(人境)의 명풍경이 서로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데에 있다. 이 절묘한 결연(結緣)이 질박한 섬진강을 명풍경으로 꼽게 한다.
영주 부석사 - 산 물결은 누마루로 밀려오고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졸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은 새삼 더할 것이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무량수전보다는 그곳의 앞마당에서 보는 산야의 풍경이 더 좋다. 의상도 1300년 전 이곳에서 이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의상이 이 풍경을 처음 본 것은 고국의 산하를 떠돌던 때 태백산의 가풀막을 오르다가 가쁜 숨을 달래려고 돌아섰을 바로 그때였다. 숲 사이로 길을 만들면서 진행하던 그가 본 것은 소백 산릉의 물결치는 산봉우리들이었지만 그는 관음을 기다리던 낙산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바다를 연상했을 것이다. 이곳을 화엄도량의 근본처로 삼았던 것도 실은 산이 물결치는 이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상이 올랐던 그 가파른 경사를 걸어올라 일주문을 지나면 은행나무길이 나오고 이 길은 또한 가을 단풍이 일품이다. 길을 지나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 이른바 대석단이라고 하는 석축이다. 의상은 비탈면을 세 개의 대석단과 그 위로 각각 두 개씩 작은 석단을 세워 도합 아홉 개의 석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