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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왜 갔어

안은주 지음 | 사군자
1. 생활인의 지옥, 인도에서 살아봐



도 닦는 게 뭐 별 건가

인도에서는 사는 것 자체가 도를 닦는 일이다. 뱅갈로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시간 개념이 없고, 약속을 안 지키는 그곳 사람들의 문화였다. 그리고 인도는 외국인으로 살기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번거롭고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이 외국인 거주 신고다. 외국인 거주 등록은 보름 안에 해야 했지만, 나는 몇 달만에야 서류를 접수했다. 그 때문에 벌금을 내야 했는데, 반드시 특정 은행에 내야 했다. 은행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벌금을 내는데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시스템이 복잡해서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행정 체계이다. 게다가 한없이 느긋한 성격 때문에 은행이나 관공서 등이 일을 더디게 처리한다. 인도 거주 한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 "인도에서는 하루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 한다"이다. 이런 일들을 한두 번, 아니 서너 번 참아내다 보면 도는 저절로 닦이게 마련이다.



실망스런 첫 대면

뭄바이(봄베이) 공항에 내린 것은 한밤중이었다. 뭄바이 공항은 시설이나 시스템이 형편없었다. 입국절차를 밟고 짐을 찾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공항 밖으로 빠져 나왔다. 후텁지근한 공항 밖에는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 입에서 튀어나오는 영어 발음이 우리를 경악케 했다.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 온 영주는 인도식 발음에 벌써부터 겁을 먹은 눈치였다. "아줌마, 저게 인도 발음이에요? 한마디로 발음이 무지 후졌다. 우리가 인도에서 저런 영어를 배우는 거예요?" 인도에 도착한 지 두 시간이 채 안돼서 아이들 입에서는 '후졌다'는 소리가 열 번도 넘게 나왔다.



포장도 안 된 시골길을 세 시간을 달려, 푸네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푸네는 인도에서 알아주는 교육 도시이자 IT 도시이다. 그래서 물가가 좀 비싼 편이나, 비교적 선선한 기온 때문에 인도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영어 연수와 IT 연수를 겸해서 온 한국 유학생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10개월 짜리 연수를 받을 경우, 교육비와 숙식비를 합해 7백만 원 가량이 든다고 한다. 용돈은 별도다. 7백만 원에 영어와 IT 기술을 배울 수 있다니, 솔깃할 만하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찾아간 학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학원 강사들은 친절했고, 무엇보다 우리가 쓰는 '콩글리쉬'를 척척 알아들었다. 더 반가웠던 것은 강사들의 발음이었다. 그들의 발음은 미국식에 가까웠다. 아이들과 나는 영어 문법과 회화 강의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인도 생활에 돌입했다.

'짠순이 아줌마'의 삼백원 실갱이

인도에서는 어떤 생활수준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생활비가 큰 폭으로 달라진다.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뱅갈로르 외곽의 아파트형 빌라(50평정도)에서 생활했는데, 집세를 포함해서 매달 평균 110만원~120만 원 가량을 썼다. 이 빌라는 단지 안에 수영장, 헬스클럽, 탁구장, 놀이터 같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나는 외국인이어서 좀 비싸게 세를 낸 편인데, 보증금 3백만 원에 30만 원 가량이었다. 인도는 수도세는 안 걷고 전기세만 받는다. 전화요금은 한국보다 싼 편이다.



인도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교통비였다. 시내버스 요금은 130원 정도밖에 안 했지만,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와 콜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교통비만 월 20만 원 이상 들었다. 다행히 물가가 싸서 식비는 적게 드는 편이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물건들은 모두가 비쌌다. 게다가 외국인들은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불필요한 돈을 쓸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오토릭샤는 툭하면 1.5배정도 되는 요금을 요구해서 실랑이를 벌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0루피 때문에 실갱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간 영주 아빠는 "은주가 인도 가더니 짠순이 아줌마가 다 됐다"고 놀려대곤 했다.



인도에는 카레가 많다

인도에서는 카레 요리를 '커리'라고 부르는데, 종류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여러 가지 향신료를 혼합한 아주 맵고 자극적인 '마살라'라는 양념이 있는데, 인도인들이 가장 맛있어 하는 양념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특히 이 마살라와 '코리안도'라는 향신료가 들어간 인도 음식에 진절머리를 낸다. 인도 음식은 크게 북인도 음식과 남인도 음식으로 나뉜다. 인도 식당에 가서 흔히 먹는 '난'이나 '탄두리' 등은 북인도 음식이고, 남인도 음식으로는 '삼바'나 '달' 같은 커리가 유명하다.



나는 이웃이나 친구들과 음식을 자주 나눠먹었는데, 음식 문화가 달라서 자주 곤욕을 치렀다. 인도 사람들 가운데는 채식주의자가 많고, 또 종교에 따라 고기를 가려먹어서 미리 알지 못하면 그 기호를 맞추기가 까다롭다. 친구들 몇이 집에 놀러 와서 자장면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인도인은 검은 색깔의 음식을 가뜩이나 꺼려하는데, 한 친구가 돼지고기를 가리키며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돼지고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식탁에서 물러앉았다. 그 친구는 무슬림이라고 말했다. 무슬림은 돼지를 지저분한 동물이라며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 날 그 친구는 결국 커피만 마시고 돌아갔다. 인간관계를 다지는 데 있어서 음식 문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약보다 짜릿한 영화

인도인들은 주말만 되면 극장으로 몰려간다. 좋은 영화가 나오면 대학생들은 수업을 빼먹고 영화관으로 달려간다. 아예 교수가 허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도인들은 왜 그토록 영화를 사랑할까. 아마도 싼값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문화 상품이기 때문인 듯 싶다. 인도 사람들에게 영화는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마약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 영화의 메시지는 모두 권선징악으로 천편일률적이다. 로맨스 영화 역시 늘 그렇고 그런 스토리이다. 카스트가 서로 다른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든가, 시어머니로부터 구박받는 영화는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영화와 흡사하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아무리 할리우드 영화라도 흥행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어떤 영화든 이야기 중간에 뮤지컬이 삽입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극장에 따라, 또 좌석에 따라 관람료가 다르다.



1년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나라

인도는 축제의 나라이다. 특히 가을에 축제가 많다. 가네샤 축제, 다살라 축제, 디왈리 축제 등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옷차림과 거리 풍경이 달라진다. 나처럼 인도 축제일을 모르는 이방인도 사람과 자동차의 옷차림, 마을 곳곳에 있는 사원들의 요란한 행사 덕에 눈치 챌 수 있다. 다살라 축제는 매년 10월 인도 전역에서 벌어지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열흘 동안 긴 휴가를 즐긴다. 세상을 창조한 라마 신이 마왕을 물리치고 선을 지켜낸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라마 신의 일생을 연극으로 만든 '람릴라'가 축제 기간 동안 공연되고, 10일 째에는 신의 초상화를 불에 태우는 의식을 치른다.



디왈리 축제는 다살라가 끝난 뒤 3주 후에 열리는데 인도인들이 제일 기다리는 축제이다. 이 축제는 라마 신이 4년 동안의 방랑 끝에 아요드야로 귀환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기간 중에는 인도 전통의 진흙 램프나 작은 전등들이 집을 비추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밤새 울려 퍼진다. 불을 밝혀 부와 행운의 여신인 '락쉬미'를 부르는 것이다. 이 기간에는 락쉬미를 경배하기 위해 집을 깨끗이 단장하고 입구에 정교한 디자인 장식을 하기도 한다.



뭄바이를 기점으로 한 인도 중남부에서는 '가네샤'라는 신을 가장 좋아한다. 코끼리 얼굴을 한 신인데, 행운과 성공을 상징한다. 9월에 열리는 이 축제는 보통 열흘쯤 계속된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인도 공영 방송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버스만 한 가네샤 상을 뭄바이 앞 바다로 끌고 가서 물에 빠뜨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3월에는 홀리 축제가 유명하다. 봄이 왔다는 의미로 사람들은 색색의 가루를 뿌리면서 한바탕 흥겹게 논다. 축제 때가 되면 인도인들은 여느 때와 다른 활기를 띤다.



"엄마, 사람은 왜 죽어?"

내가 힌두교식 장례를 본 곳은 네팔이었다. 나는 사원 입구에서부터 살 타는 냄새에 코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사원 주변에서는 네댓 구의 시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원 주변은 회색 연기로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의식은 조용히 격식 있게 진행되었다. 우선 죽은 이의 가족이 시체를 개울가로 옮긴 뒤 몸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아주 화려한 색깔의 옷과 장신구로 곱게 단장시킨 뒤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사제들이 와서 주문을 외우고 몇 가지 의식을 치렀다. 꽃가루와 색색의 가루를 시체에 뿌린 뒤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장례식 내내 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나는 딸아이와 둘이 여행 중이었는데, 아이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딸아이는 돌아가자며 내 팔뚝을 잡아끌었고, 나는 전 과정을 다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구경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 사람은 왜 죽어? 사람을 저렇게 태우는 이유가 뭐야?"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 뒤 나는 바라나시를 여행하며 갠지스 강에서 힌두교식 장례를 볼 기회가 있었다. 갠지스 강의 풍경은 네팔의 힌두 사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원의 장례식은 근엄하고 침울했는데, 갠지스 강의 장례식에는 묘한 활기마저 느꼈다.



기이한 손 사위, 화려한 발놀림

인도에 있는 동안 관람할만한 춤 공연을 찾고 있을 때, 아니타 라트남이라는 인도 남부의 유명 댄서 공연이 뱅갈로르에서 열렸다. 그날 공연은 인도 신 가운데 하나인 가네샤의 이야기를 극으로 엮은 춤이었다. 아니타 라트남이 주인공 겸 해설자 역을 하면서 극 전체를 이끌어 갔다. 요가에서 볼 수 있는 기이한 동작과 역동적인 손 사위와 발놀림이 압권이었다(인도의 춤은 손가락 동작을 포함해 손 사위가 4천 가지나 된다고 한다). 카탁 댄스는 본래 손 사위보다 발놀림이 화려한 춤으로 유명하다. 특히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현란한 발놀림은 탭 댄서가 울고 갈 정도다. 카탁은 무굴의 귀족들이 사원 춤을 궁정에서 즐기기 위한 춤으로 변환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발끝으로 현란하게 맴도는 동작은 아주 감각적이다.



공연 보는 내내 '춤 공연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하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지민이도 "재밌다, 야, 춤 잘 춘다"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인도를 대표하는 춤은 카탁 외에도 바랏 나트얌, 카타깔리 등이 있다. 바랏 나트얌은 무용수가 자신의 몸을 신께 바치는 의식에서 비롯한 춤이라고 한다. 춤의 연극이라 불리는 카타깔리는 케랄라 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춤인데, 천연의 재료를 사용해 과장된 분장을 하며 공연하는 전 과정이 흥미롭다. 인도의 춤은 사원에 소속된 무용수에 의해 사원에서 치러지는 의식의 일환으로 행해졌던 것이 체계화되었다고 한다.



무더운 크리스마스 때 생긴 일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느낄 수 없지만, 인도에서도 성탄절과 연말은 황금연휴 기간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유명 관광지의 기차표와 호텔을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케랄라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기 일주일 전에 표를 예약하러 갔다. 하지만 표는 1월 첫째 주까지 이미 매진이었다. 매표원이 외국인 몫이 있는데 사겠냐고 물었다. 나는 덥석 돈을 내고 표를 받아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표는 대기표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기표만 있으면 외국인 예매소에 가서 외국인 몫의 좌석을 배정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좌석을 배정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는데, 전화 받는 곳마다 'No Problem'이라고 말했다. 뒤늦게야 깨달았지만 인도에서의 '노 프러브럼'은 말하는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상대방에게는 언제든 '프러브럼'으로 바뀔 수 있는 말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역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 이름이 웨이팅 리스트에 있었지만, 표는 구할 수 없었다. 친구 파르타가 암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3백 루피를 달라고 했다. 역무원들이 종종 웃돈을 얹어 판다고 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표가 없었다. 누군가가 "기차 역무원에게 졸라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검표원도 남은 좌석이 없다면서, 화장실 옆자리라도 원하면 타라고 제안했다. 최소한 6시간을 가야 빈자리가 난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밤새 화장실 옆에 세운 채 여행을 떠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여행을 포기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헛고생만 했다. 인도에서 여행을 하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헛고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 뺨치는 인맥 사회

한국이나 중국처럼 인도에서도 인맥이 중요하다. 나는 인도 친구들의 인맥 덕을 톡톡히 보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델리에 갈 일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국내선 요금을 싸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가령 한 달 전에 표를 끊으면 50% 할인, 1주일 전이면 10%를 할인 받을 수 있다. 당시 내가 할인 티켓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학생 신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학생 할인 양식대로 기입한 뒤에 학교에서 사인을 받아 항공사에 제출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이 제한(26세 이하)에 걸렸다. 나는 영주 것이라도 할인 받기 위해 학교로 서류를 보냈다. 그러나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는 학생에게만 할인해 주는 거라고 거절당했다. 친구 파르타가 학교 담당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파르타 말이 맞았다. 내가 부탁했을 때는 규정을 들먹이며 거절하더니, 파르타가 설명하자 사인을 해주었다. 거기에 특별 편지까지 써주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자그마치 40%나 할인 혜택을 받았다. 그 외에도 친분 덕분에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많았다.

황금의 나라

인도인들이 2004년 한 해 동안 금을 사들이는 데 쓴 돈만 백억 달러가 넘는다. 인도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금귀걸이나 금목걸이 하나쯤 걸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심지어 코걸이까지도 순금으로 만들어 장식한다. 여자아이들이 태어나면 귀를 뚫어주는데, 그 작은 귀에도 순금 귀걸이를 달아준다. 남자들도 금 장신구를 좋아해서 반지는 기본이고, 금목걸이나 팔찌를 하고 다니는 이들이 매우 많다. 인도에서는 금이 곧 부의 상징이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계층도 돈이 조금만 생기면 금 장신구부터 사려고 한다. 금 장신구가 없으면 남들이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이 금을 좋아하는 뿌리는 종교적 전통에서 나왔다. 금을 부와 건강의 상징으로 여기는 힌두교적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또 인도인들은 숱한 전란과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겪으면서 믿을 만한 자산이라고는 금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여행간 사람 가운데 인도의 금값이 상대적으로 싸다며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싼 게 비지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도의 금은 순도가 떨어져 한국 시장에서는 제 값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 여행자의 천국



완벽한 아름다움

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반 가량이 걸린다. 아그라는 고층 건물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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