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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예술1>

존 라이트 지음 | 이지북
Part 1 음악



서양 고전음악의 역사



1. 고대 음악(기원전 4000 ~ 기원후 400)

가장 오래된 악기로 알려진 것은 현을 매달아 만든 하프와 루트로,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에서 연주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3500년경 리라와 더블 클라리넷이 나왔고, 기원전 2000년경에는 타악기들이 이집트 관현악단에 영입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에는 히타이트 족이 탬버린을 기타, 리라, 트럼펫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사회는 음악을 신들의 선물로 여겼다. 음악이 종교적인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옛 악기들의 모양과 소리는 이집트 문화에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카디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칼데아, 수메리아를 포함한 모든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도 음악은 종교적 제전이나 축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의 음악은 화성 반주 없이 단선율로 이루어진 '단성음악(monophony)'이 기본이었다.



2. 중세시대(500 ~ 약1400)

기독교가 모든 예술 분야를 지배했으므로 대부분의 전문 음악가는 교회에 고용되어 있었고, 거의 모든 중세 음악이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다시피 했다. 교회는 그리스, 로마와 관련된 것들을 이교도라 하여 반대했기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 음악은 쇠퇴하고, 교회선법에 기초한 새로운 종교 음악이 대두되었다.



투르바도르와 그 밖의 세속 음악

기원후 1000년경, 민속음악의 형성은 종교음악 형식들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다. 시적인 형태를 취한 이 민속음악은 현악기들만으로 단순하게 연주되었다. 11세기 직전, 남 프랑스에서 한 세속 음악 형식이 출현했다. 바로 투르바도르(troubadour)라는 음유시인들의 음악이다. 투르바도르의 음악은 여전히 단성음악이었고, 같은 시기의 교회음악보다 더 단순했다. 14세기가 밝아오자 보다 광범위한 노래 형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론도(rondeau), 비를레(virelai)와 같은 이들 형식은 대부분 농부들의 춤을 기초로 한 것이다.



다성음악의 출현

중세 후반에 이르러 다성음악(polylhony)이 출현하여 원래의 선율과 첨가된 선율 선이 동시에 불려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다성음악 형식의 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에 다른 성부를 병행시킨 오르가눔(organum)으로 알려져 있다. 남 프랑스에서는 오르가눔과는 또 다른 작곡형태가 이루어졌다. 콘둑투스(conductus)는 오르가눔과 비슷하지만 세속적인 가사가 많았고 오르가눔의 느릿한 속도와는 대조되게 콘독투스에서는 가사를 급히 외치는 듯한 빠른 속도를 사용했다. 콘둑투스는 나중에 모텟(motet, 반주가 없는 짧은 합창곡)으로 발전하였다.



아르스 노바 양식

14세기에는 양식상의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르스 노바(Ars Nova,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라 명명된 이 양식은 새로운 리듬이 복잡하게 얽힌 보다 세련된 음악이다. 아르스 노바 작곡가들은 12개 혹은 그 이상의 음들로 리듬 패턴을 만들고, 이 리듬 패턴을 다성부 안에서 반복했다.



천주교 미사

중세 초기에는 미사의 고유문(proper)에만 전례음악이 사용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작곡가들은 미사의 통상문들이 서로 음악적으로 연결되도록 구성하여 작곡하기 시작했다. 전체 미사 통상문의 주제로 동일한 플레인찬트(플레인송. 단성부의 성악곡으로 작곡된 성가로 반주 없이 자유로운 리듬으로 연주)로 이루어진 정선율을 사용했다. 중세 말에 이르러서 이들 영국 미사는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사용되었고, 이들의 영향으로 다성음악으로 쓰인 미사가 17세기말까지 가장 중요한 음악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음악 기보법

중세 후반 다성음악의 출현은 음악 기보법의 새로운 체계 형성에 기여했다. 동시에 여러 성부를 확인하며 연주해야 했으므로, 음정과 리듬을 기록하는 정확한 체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1세기에는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사 아레초의 귀도(Guido d Arezszo)가 각 줄과 칸이 특정한 음정을 나타내는 4선보를 고안했다.



3. 르네상스 시대(1420 ~1600)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음악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음악은 각 성부가 독립적인 1400년대 초반의 대위법에서 진화하여 '선율과 반주'라는 좀더 화성적인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다성음악은 동기와 프레이즈의 주고받음에 있어서 각 성부 간의 관계가 동등한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의 대위법 음악은 성부들이 주제 선율을 계속하여 반복하는 '주제와 모방'이라는 형태에 매우 의존하였다. 한 성부가 다른 성부를 계속하여 모방하는, 두 개의 성부로 된 형식을 카논(cannon)이라고 한다.



교회음악

라틴미사 : 다섯 개의 미사 통상문을 일관하여 작곡한 라틴 미사는 아마도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 형식일 것이다. 르네상스의 많은 작곡가는 샹송이나 다른 세속 음악 선율에서 따온 정선율을 사용해서 다섯 개의 통상문을 만들었다. 작곡가들이 더 많은 성부와 악기를 동원하고, 점점 더 꾸밈음을 많이 사용했으므로 르네상스 시대의 미사는 더욱 복잡해져 급기야 19세기의 교향곡에 비견될 만큼 웅장해졌다.



모텟 : 15세기와 16세기에 미사 형식이 개발되면서 작곡가들은 모텟을 실험의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이들 후기 모텟에서는 강한 대비가 특징이어서 전체가 부르는 구절과 두세 명이 부르는 구절이 하나의 짝을 이루거나, 두 박자의 구절에서 세 박자의 구절로 옮겨가곤 했다.



코랄 : 마르틴 루터는 전통을 깨고 싶어했으며 성가대뿐 아니라 전체 신도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원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종교 음악은 -코랄(Chorale)이라고 명명된- 루터교 찬송가의 기본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작곡한 정교한 코랄의 모태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 음악

샹송 : 종교음악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된 중세 후기의 아르느 노바 운동은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세속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13세기의 트루바도르들이 불렀던 화음이 없는 선율은 14세기 초반에 이르러 두세 성부로 이루어진 샹송(chanson, 프랑스어로 '노래'를 뜻함)으로 발전하였다. 구절의반복 형태에 따라 전체 형식이 결정되었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구성은 론도, 비를(viralai),카치아(caccia), 발라타(ballata)이다. 단순하게 시작된 샹송은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기교적인 대위법적 선율이 사용되었다.



마드리갈 : 4~6개 성부의 다성음악에 세속적이고 시적인 가사를 넣은 마드리갈(madribal)은 아르스 노바 운동의 영향을 받은 노래 형식이다. 13세기 말엽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마드리갈이 불려진 후, 16세기에 이르러 이 형식은 다성음악 안에서 더욱 복잡해졌고 유럽대륙을 건너 영국에까지 뻗쳐 나갔다.



4. 바로크 시대(1600 ~ 1750)

바로크 시대는 극적이고 장식적인 시대였다. 단순한 선율은 각종 트릴과 꾸밈음 등의 장식으로 인해 화려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복잡한 선율 위에는 또 다른 선율이 겹쳐지고, 선율 밑으로 세 개 이상의 음이 한꺼번에 연주되는 코드 반주가 애용됐다. 바로크 작곡가들은 소프라노나 베이스 성부에 집중하고 화음으로 내성을 채웠고, 많은 작곡가는 코드의 정확한 음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흔히 건반악기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를 마음대로 창작하여 연주할 수 있었는데, 이는 최초의 즉흥연주의 예로 기록된다. 바로크 시대 초기에는 12개의 조성과 화음이 종교적 성가의 제한된 양식을 대체했고, 반음계주의(자연적인 음계 외의 음들을 포함시킴) 및 불협화음(조화되지 않는 두 음)과 같은 새로운 음악기법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다. 1600년대 중반에는 이런 새로운 기법은 음악적인 토대로 완전히 굳어졌고, 바로크 시대 후반의 작곡가들은 한 작품의 전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정서적인 성격을 확립함으로써 복잡한 조성을 빈틈없이 조절하였다.



작곡가들

바로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는 이 시대 후반의 작곡가들이다. 유명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 Sebastian Bach)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이 둘은 숙달된 화성과 조성 안에서 거장의 음악을 창조해 냈다. 바로크 시대에는 패트런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당시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부유한 지배 계급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이들 후원자는 작곡가의 작품에 값을 지불했고, 작곡가가 어떤 종류의 곡을 작곡할지 결정했다.



오페라

17세기의 유럽에는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문학에서가 아니라 극과 음악이 합쳐진 좀더 새로운 형태의 음악, 오페라로 나타났다. 초기 오페라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인 극에서 쓰인 상상 속의 신화를 줄거리로 삼았으나 나중에는 흔히 역사적 인물이 오페라 소재로 쓰였다. 이들 초기 오페라에서는 음악과 극이 아직은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레치타티보(recitativo)라는 반쯤 노래하는 구절이나 오케스트라의 간주곡과 합창이 번갈아 가며 극을 전개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오페라는 가장 양성화된 음악 형식이 되어, 대부분의 작곡가가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 시기의 유명한 오페라로는 리날도(Rinaldo), 오를란도(Orlando)와 같은 50개에 육박하는 헨델의 오페라가 있다.



성악음악과 교회음악

바로크 시대에는 또 다른 장르의 성악음악이 개발되었으며, 대부분의 이 성악양식은 사실상 종교음악이었다.



그랜드 모텟(Grand Motet) : 프랑스에서는 모텟이 그랜드 모텟으로 진화했다. 그랜드 모텟은 성가대의 규모가 커지고 대조되는 독창 성부(베이스 비올, 합시코드와 같은 통주저음 악기로 반주되는)를 가졌다. 독일의 그랜드 모텟은 성가대와 악기가 답창식으로 서로 번갈아 가며 노래를 주고받는 것이 특징이다.



오라토리오(Oratorio) : 오라토리오 양식은 17세기 유럽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다. 본래 오라토리오는 상연되지 않은 종교 가사로 된 오페라로서, 성악 독창자는 오케스트라나 기악 합주의 반주로 레치타티보나 아리아를 부른다.



칸타타(Cantata) : '노래하다'는 뜻의 라틴어 cantate에서 나온 칸타타는 마드리갈이 진화한 것이다. 원래는 한두 성부에 통주저음이 붙는 짧은 작품이었는데, 오케스트라로 반주되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이루어진 좀더 내용 있는 형식으로 발달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던 시절에 매주 일요일마다 새로운 칸타타를 발표하여 모두 300개에 가까운 칸타타를 남겼다.



기악 작품

바로크 후기에는 유럽의 수많은 도시에서 각종 음악회가 점점 증가하였고, 이들 음악회를 통해 관현악 음악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나온 관악기로는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트럼펫, 프렌치 호른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비롯한 모든 현악기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기악 음악의 출현은 종교음악 형식의 중요성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1600년 이후에는 교회의 음악에 대한 영향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소나타, 협주곡과 같은 세속 음악 형식이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바이올린과 같은 특정한 악기를 위한 곡을 쓰는 작곡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소나타(Sonsta) : 소나타라는 이름 난 형식은 대조되는 단락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악곡이다. 바로크 시대의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4악장(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으로 이루어졌으며, 3악장과 4악장에는 사라방드(Sarabandes. 3박자의 춤곡), 지그(jig, 6/8박자 춤곡)와 같은 대중적인 춤곡형식을 사용했다.



모음곡(Suite) : 바로크 시대에는 대조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대조되는 구획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보다 긴 기악곡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모음곡이다. 모음곡은 같은 조의, 독립적인 춤곡으로 구성되었다. 초기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은 핵심적인 4개의 악장(알르망드(Allemande, 4/4혹은 2박자의 독일 춤곡), 쿠랑트(Courante. 빠른 박자의 프랑스 춤곡), 사라방드, 지그)으로 구성되었고, 후기 바로크 작곡가들은 이들 4개의 춤곡에 다른 춤곡을 자유로이 첨가시켰다.

협주곡(Concerto) : 18세기 초반에는 독주의 묘기를 강조하는 협주곡 형식이 나왔다. 협주곡은 비발디, 바흐와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협주곡에서는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 반주 아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독주 악기가 흥미의 중심이 된다. 최초의 선구자는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로, 그는 처음으로 세 악장으로 된 협주곡을 남긴 사람이다. 바로크 시대의 많은 유명한 작곡가는 뛰어난 악기연주자여서 자신의 악기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협주곡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흐는 건반악기 연주의 달인이었고 비발디는 바이올린 연주의 거장이었다.



5. 고전시대(1750 ~ 1820)

고전시대의 음악적인 혁명은 18세기 후반부에 이루어진 문화적, 정치적 혁명을 반영한 것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패트런 제도가 사라지고 대중 음악회로 대체되어서 작곡하고자 하는 영감에 따라 마음대로 형식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다성음악은 화성에, 대위법은 선율에, 장식음은 담백함에, 그리고 감정적인 절제는 더욱 자연스럽고 감정적인 음악 표현에 자리를 내어 줬다.



비엔나 고전파

18세기 후반, 비엔나 고전파라고 알려진 한 무리의 음악가들에 의해 이 시대의 음악은 그 정점에 달했다. 1700년대 중엽, 온 유럽의 음악가들이 비엔나라는 도시에 몰려들었는데, 이곳에 부유한 후원자들이 많았다는 점도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새로운 양식은 이 시기 비엔나에 거주한 프란츠 조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등 3명의 위대한 작곡가에 의해 다듬어졌다.

기악 작품들

고전주의 시대에 기악음악은 드디어 성악음악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피아노와 고전주의 오케스트라 : 이들 새로운 악기 중의 대표격이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이탈리아 말로 '여리게-세게'라는 뜻), 줄여서 피아노라 불리는 악기이다. 피아노는 합씨코드, 클라비코드와 같은 이전의 건반 악기들 자리를 대신 차지했는데, 이전의 건반악기들과 비교할 때 표현할 수 있는 악상의 범위가 훨씬 넓었다. 고전시대에는 또한 오케스트라가 현대적으로 개조되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이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팀파니와 함께 하도록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을 표준화하는 데 공헌했다. 고전시대 오케스트라에서는 현악기군과 관악기군이 분리되어 선율적으로나 화성적으로 서로 독립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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