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000년
마이클 하트 지음 | 해바라기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내 이름은 아르투로 쿠케니. 서기 2801년에 태어나서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근무한 후 20년 전에 은퇴하였다. 전부터 고대 골동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퇴직 후에는 역사연구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다. 몇 년 전 버려진 뉴 덴버 시의 한 낡은 도서관을 뒤지다가 누렇게 바랜 아주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작가인 마이클 하트가 천 년 전 위대한 인물들을 기록한 『세계를 움직인 100인』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 책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후 1000년을 살았던 수십 억의 사람들도 포함시킨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이 책이 하트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포함된 개정판 형식의『역사상으로 가장 영향을 미친 100명의 인물』인 것이다.
Rank001 창 포 야오 (2213~현재)이 책의 목록에서 가장 먼저 창 포 야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가장 위대한 은인이며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나이가 들수록 퇴화되고 결국 신체작용이 완전히 멈추는 때가 오는데 그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노화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인공 신체기관의 개발과 환자의 신체 일부에서 얻는 세포조직으로 퇴화 기관의 일부를 대체하는 방법으로 2100년에 이르러서는 한 부분만 빼고는 어떠한 신체부위도 대체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예외가 되는 신체부위는 뇌조직이었다. 인간의 성격과 기억은 바로 뇌 안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다른 뇌조직으로 대체된다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창 포 야오는 뇌조직 일부에 저장해 놓은 정보를 업로드하고 해당 뇌 일부를 대체 후 다시 정보를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반복함으로써 뇌 전체를 대체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처음에는 그 비용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에 소수의 부유층만이 이용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진행된 기술상의 개선으로 그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장점으로는 뇌 속 저장공간을 늘일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창의 뇌 이식 방법을 따르면 일반적으로 모든 옛 정보를 3분의 1가량 되는 조직에 담을 수 있고, 남은 공간에는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Rank002 미클로스 스자보 (2216~2283)스자보가 죽은 지 700년이 지났지만 그가 과연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은인인지 아니면 아주 해롭고 위험한 인물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그가 인간에게 아주 강력한 도구를 선물했다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개개인의 태도와 인성을 바꾸는 기술, 즉 인간의 뇌 속에 직접 정보를 입력해 뇌를 세뇌하는 것이다. 그의 발명이 사회에 가져다준 이점은 무궁무진했다. 스자보의 발명으로 인류는 공격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쟁은 크게 줄어 스자보가 살아 있는 동안 간단한 전쟁이 한 차례 발생했을 뿐 그 이후로 450년 동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덜 공격적으로 만드는 정책으로 인해 강력범죄의 발생률은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익이 큰 만큼 위험도 컸다. 역사상 이만큼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협하는 발명은 없었다. 인간의 의식을 조정하는 스자보의 방법은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독재정부를 세우는 데 이용될 수도 있었다. 스자보의 기술을 오용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잠재적 피해는 아주 엄청난 것이므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위험을 내포한 그 기술이 발명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스자보는 항상 정치적 혹은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극구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또한 신문기자나 다른 미디어 매체와 단 한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스자보는 2283년 정신이상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Rank003 프리디 타나라트 (2358~2540)사실 타나라트는 그저 귀족 출신 정치가 중 한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2549년에 세계가 영원한 독재정치의 도래라는 위협을 받게 되자 타나라트는 자신의 운명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독재자를 몰아내려는 반란을 선동했다. 때문에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유라는 존재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인물이다. 사건의 계기는 바로 2262년에 미클로스 스자보가 발명한 효과적인 세뇌방법이었다. 2485년 단일세계연맹(UWF)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타보라 마중가는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불식시키고 상부의 지시에 불만을 갖는 공무원들을 바꿔놓기 위해 은밀히 스자보의 기술을 도입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린 최초의 인물이 당시 UWF의 상공장관이었던 프리디 타나라트였다.
방송국을 장악한 반란군은 마중가의 음모를 폭로하고 자신의 반란에 참여해 줄 것을 대중들에게 호소했다. 정부군과 반란군의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 군데의 도시에서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 위기를 느낀 정부군은 전술 핵무기를 발사했고, 타나라트는 심한 부상을 당해 8시간 후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이 핵공격으로 인해 전세계는 분노했고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도 또한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중가는 반란 9일째 되는 날, 재래식 미사일이 그가 거주하는 건물로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했고, 핵폭탄 투하를 명령했던 카나디우스 장군은 체포되기 전에 자살했다. 전쟁이 끝난 후 타나라트는 점차적으로 명예와 존경을 얻게 되었으며 현재는 전설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독재를 방지하는 추가 안정장치가 마련된 UWF헌법수정안이 채택된 후 우리는 4세기 동안 평화를 누리고 있다.
Rank013 미구엘 카란짜 (2274~2413)오랜 옛날에는 세계 지배를 꿈꾸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UWF의 사무총장이며 기구 창설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던 미구엘 카란짜는 독재자 유형은 아니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긴 경험이 한 번도 없으며 장군이나 제독은 고사하고 군에서 복무한 경험도 없었다. 그는 무자비하거나 잔인하지도 않았고, 훌륭한 연설가이기는 했지만 선동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인내력과 결단력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룬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인류는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 전쟁이 사라지는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 간의 적대감과 반목 그리고 주권 상실의 두려움으로 인해 그러한 계획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란짜는 세계연맹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그 필요성을 알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직하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어떠한 전문 정치가도 따라갈 수 없는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세계연맹이라는 개념에 대한 지지는 계속해서 높아졌고 2382년에는 '세계헌법총회'가 개최되어 기초헌법이 승인, 2388년 모든 국가들이 헌법비준에 동의함으로써 세계헌법은 마침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카란짜는 단일세계연맹UWF의 사무총장 자리를 원하지 않았지만 초대 사무총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5차례나 재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2407년에 재출마를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2413년, 그가 광신적인 티베트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몇 주 동안 애도의 물결은 계속되었다. 카란짜의 사후에도 UWF는 별 탈 없이 잘 운영되었다. 한때 마중가의 야심으로 UWF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2568년 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400년 이상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Rank015 데이비드 카젠바움 (2042~2095)데이비드 카젠바움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발견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물리학의 기본 법칙과 다른 법칙에서 파생되어 나온 기본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리고 900년 전에 그가 만든 법칙은 아직까지도 견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기, 자기, 중력, 핵력, 양자역학, 상대성 그리고 기본물질이 지니고 있는 특성 모두가 그의 5가지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이것은 그의 방정식을 설명하는 <만능이론 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제목을 따서 TOE방정식으로 불린다. '만능이론'은 한 과학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한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그 공식은 인류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지적 결과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은 과학자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뉴턴 역시 그런 시도를 한 인물 중 하나였다. 1687년 뉴턴이 발표한 중력의 법칙과 운동의 법칙은 사회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뉴턴의 운동법칙은 단순한 근사치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확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뉴턴의 이론이 있던 자리를 이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차지하긴 했지만 동일한 단일 이론으로 합쳐질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수많은 과학적 발견들이 생겨났고 이는 더욱 더 복잡한 문제점들을 양산해 냈다. 결국 카젠바움이 아주 여러 측면에서 들어맞는 종합적 이론을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논리적 모순이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카젠바움의 법칙을 사용하고 있다.
Rank018 리우 메이 후아 (2063~2145), 왕 메이 린 (2069~현재)만약 20세기에 사는 사람을 현재 시대로 데려온다면 어떤 것에 가장 먼저 놀랄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아마도 그는 우리 중 늙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가장 놀랄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나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나이 든 상태이지만 그 나이만큼 늙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노화는 정복하기 힘든 질병이다. 노화가 되는 원인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신체기관이 '마모'되어 결국 이상이 생기는 데 있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마모'를 피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중국의 생물학자인 리우 메이 후아와 왕 메이 린이 노화를 정복하게 되었다.
리우 메이 후아와 왕 메이 린이 노화를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세포 내에 축적된 노폐물과 동맥 내의 지방 침전물을 제거하고,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의 생성을 돕는 알약과 '산화방지제'를 함유하고 있는 알약을 복용한다. 그리고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세포분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출간한 2127년 <노인학 저널 Journal of Gerontology>은 걸작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공로를 인정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격의 리우 메이 후아는 집단생활을 싫어해 아주 친한 친구들과 작은 그룹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2145년 그만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우의 죽음 이후 왕 메이 린은 큰 충격을 받았고 곧 은퇴해 대중에게 모습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
Rank022 해리슨 스티븐스 (1997~2088)해리슨 스티븐스는 핵융합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실용적인 시스템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다. 그의 발명으로 인해 인류는 값싼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에너지 시스템을 발명하기 이전에 전 세계는 늘 에너지 공급 부족에 시달렸고 가격 또한 상당히 비쌌다. 대부분의 전력은 석탄, 석유, 또는 천연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를 태워서 얻어냈다. 하지만 이렇게 연료 연소에 의존하는 방식은 환경오염을 초래했고, 그 매장량도 한정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세기 후반에는 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을 이용하는 발전소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로들은 위험한 핵 폐기물을 다량으로 배출했고 결국 몇 번의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원자로 사용을 꺼리게 되었다.
핵융합 반응을 통한 에너지 생성은 엄밀히 따져볼 때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공급 방식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인정되어온 사실이다. 또한 핵융합 원자로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연료인 듀테륨이 핵분열 원자로의 원료로 사용되는 우라늄보다 훨씬 더 저렴하고 풍부한 자원이기도 하다. 스티븐슨이 고안한 새로운 형태의 자기장 용기는 안전문제를 해결했으며 효율도 훨씬 높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또 다른 이점은 폐기물이 방사성을 띠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학적인 유독성분이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리슨 스티븐슨의 업적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무한한 풍요와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Rank023 칸타 루이스 알라바도 (2745~현재)홀로비전 작가이자 제작자인 칸타 루이스 알라바도는 탁월한 예술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홀로비전극은 정교한 플롯과 흥미진진한 등장인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언어 구사력과 최고의 기술력이 조화된 작품이다. 홀로비전은 2107년 추 시 리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는 3차원 영상 이미지(입체영화)와 입체 음향효과, 체감효과, 그리고 기타 감각효과를 완벽하게 결합시킨 매체이다. 홀로비전극을 보는 시청자는 마치 자신이 흥미진진한 영화 한편을 보고 듣고, 느끼는 기분에 빠져드는 동시에 자신이 그 장면 한 가운데 놓여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홀로비전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예술 형식보다 작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알라바도의 작품이 그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국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그의 플롯은 언제나 액션과 로맨스로 가득하다. 여기에 교묘한 추리와 수수께끼적 요소가 가미되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알바라도는 입체 효과 외에도 음악 선정에 있어서 세심한 손길을 늦추지 않는다. 시각적 효과 및 플롯에 맞아떨어지는 음악 선정은 늘 돋보이게 마련이다. 알라바도는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득을 자선 활동에 기부해 많은 재산을 모으진 못했다. 알라바도의 예술적 업적이 전 세계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Rank026 존 맥스웰 (2076~2163)존 맥스웰은 최초의 오닐 기지 O'Neil Colony를 건설한 장본인이며 이는 우리 태양계에 건설된 여러 기지 중 최초로 건설된 것이다. 대다수의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오닐 기지(보통 ONC로 불림)는 태양 궤도를 선회하는 인공 구조물이다. 기지의 명칭은 프린스턴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인 제럴드 오닐의 이름을 땄는데, 그는 20세기 후반에 우주기지에 대한 발상을 하고 기본 구조를 디자인 한 사람이다. 20세기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오닐 교수를 괴짜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우리들은 지구나 다른 행성에 사는 것보다 우주에서 사는 장점을 그가 올바르게 예견했음을 알 수 있다. 훨씬 넓은 일인당 생활공간을 가질 수 있고, 에너지 확보가 용이하며,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법도 없다. 마지막으로 각 오닐 기지는 완전히 독립된 자치지구로 인정되기 때문에 사회 및 정치, 경제체제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선택권을 갖게 된다.
최초의 ONC에는 테라노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거의 3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신청을 했고 1만 5천 명의 남녀가 우주기지의 첫 번째 주민으로 선발되었다. 2164년에 테라노바는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맥스웰은 소형 우주선 도킹시 일어난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160년부터 2163년까지 테라노바의 대통령 대행자로 있었다. 테라노바는 대단한 호평을 받게 되었고, 이후 약 8백 여년 동안 다른 여러 오닐기지가 건설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거의 2백만 개에 이르며, 이들을 합한 총 인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