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반도와 주변 4강대국
강성현 지음 | 가람기획
1장 주변 4국과의 역사적 관계 조감영국의 사가인 프리먼(Edward A. Freeman)은 "역사란 과거의 정치요, 정치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했다. 역사는 현재에 입각하여 과거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따라서 파란의 한민족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현재를 안겨주는 일이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향해 역사왜곡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를 자국의 땅이라 주장한다. 또한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합병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국책사업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역사의식 고취와 주체성 확립은 시급한 시대적 요청이 되었다.
『강대국의 흥망』저자로도 널리 알려진 폴 케네디 예일 대학 교수는, '제5회 세계지식 포럼'(2004. 10. 12)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한국을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라는 네 마리 코끼리 사이에 앉아있는 작은 동물'에 비유하였다. 한국의 체모를 손상시키는 발언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구한말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이들 네 나라들의 각축의 실상을 되새겨볼 때, '소귀에 경 읽기' 식으로 무시하기에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더구나 앞으로도 이들 주변 4강과는 갈등과 협력을 반복할 관계라는 점에서 이들과의 역사적 관계를 통찰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략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일이다.
현재 중국은 대중화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우리 사회ㆍ문화 전반에 끼친 긍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에 못지않게 많은 폐해와 유독을 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과거제도와 신황화(新黃禍)현상이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우수한 인재 발탁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고시제도로 이어져, 무수한 젊은이들이 고시에 청춘을 허비하는 폐해를 낳고 있다. 또한 신황화 현상이 한국에 끼치는 유ㆍ무형의 피해는 황사현상, 중국산 저질제품, 한국기업 진출로 인한 자본과 인력의 유출 등 그 피해가 심각하다. 감상적인 한류 열풍이나 모화사상을 불식시키고, 냉철한 자세로 국익을 헤아려 중국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요구된다.
한ㆍ일 관계사는 갈등과 반목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7년 참화를 겪은 임진왜란에서부터 국토를 유린한 청ㆍ일 전쟁, 명성황후 시해사건, 일제 강점 하의 민족말살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가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독도영유권 주장 등 반역사적인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여 후손들에게 군국주의 역사관을 주입시키며 침략이나 착취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말처럼 장차 일본이 초래할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의 최초 접촉은 미국의 함포에 대응하여 일전을 치른 제너럴셔먼 호 사건과 신미양요로 시작되었다. 이후 통상조약을 맺은 1884년 수교 초기에 고종은 미국에 경제적ㆍ군사적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은 오히려 일본의 눈치를 살피며 비밀협정(가쓰라-태프트밀약)을 맺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였다. 그러나 광복과 동시에 3년 가까이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친일부역자 등을 그대로 활용한 점 등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정착시켰다. 그동안의 미국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일은 한국의 안보역량 구축을 위해서도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외교ㆍ안보 역사를 살펴보면 고립과 개입의 원칙이 국익을 전제로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러시아는 구한말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여 우리 땅에서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렸다. 러시아 연해주에 근거한 많은 한인 독립 운동가들을 필요에 따라 우대하고 이용하는 한편 일제의 요구에 의해 집단 학살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 땅에 공산주의 씨를 뿌리고 해방 후에는 극심한 좌우 대립을 야기하여 오늘날까지도 이념 간 갈등을 지속하게 했다. 러시아는 한국을 직접 점령한 적이 없었지만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으리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1998년도에 외교관 맞추방이라는 최악의 국면 이후,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선언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변화이지만 이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러시아를 우방국가로 삼아야 할 것이다.
2장 중국은 우리에게 어떠한 나라인가
민족사의 영욕과 교훈한반도는 전략적 가치를 갖는 까닭에 자주적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외부 세력이 밀려들었고, 주체적 역량이 강화되었을 때는 대륙과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고조선은 한 무제와 1년여를 투쟁하는 동안 연전연승의 막강한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일부 지도층의 주체성 상실로 고조선의 주권을 한나라에 넘겨주어야만 했다. 또한 고구려 는 지도층의 권력투쟁으로 인한 붕괴로 만주지역을 민족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했다. 고려역시 내분으로 집권자가 거세당하고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은 수차례의 외침에도 주자학적 충효사상으로 무장된 의병에 의하여 500년 사직을 유지했으나 권력층의 주체성 상실로 결국 일제에게 국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통해 지적되는 교훈은 지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주체성의 상실과 상무정신의 결여가 결국 국난을 자초하고 나라를 잃게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중국과의 총성 없는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력을 기초로 한 자주국방이 이뤄질 때 국가가 더욱 번창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역사는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신황화 현상 경계중국은 다민족, 복합적 성향의 문화를 보유한 국가로서 일목요연한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을 단편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중국을 양 극단으로 평가하는 우려를 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전통적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이해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예로부터 상인(商人)을 받드는 전통이 이어져 왔으며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에게 돈벌이는 미덕이다. 다만 이들은 재산을 병원, 학교 건립 등의 형식을 통해 사회로 환원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또한 체면(미엔쯔)을 중시하고, 이른바 '꽌시(關係)'로 상징되는 인간관계와 의리를 중시하며, 높은 교육열과 특히 영재교육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ㆍ중 양국은 긴장과 갈등을 반복해오면서 현재 최대 교역대상국이 되었다. 경제면에서는 이렇듯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외교ㆍ안보ㆍ군사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소원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전통적인 순망치한의 가치관에 따라 북한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우리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거대한 역사왜곡 사업인 '동북공정'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지난 2002년 2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인 프로제트이다.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발해 등 한국 고대사에 관련된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왜곡하기 위해 이미 1990년부터 지방정부와 대학에 고구려사 전문연구소를 설립, 연구를 본격화했다. 이 연구에 투입된 예산만 해도 총 3조원(200억 위안)에 달한다.
2004년 10월 현재, 중국은 김치종주국인 한국을 제치고 일본 내 김치 수출 1위를 달성했다.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 정보통신 분야의 격차도 1~2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처럼 대두되고 있는 신황화(新黃禍)현상을 맞아 우려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사회 전체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건재한데 우리는 그 위상이 점점 추락하고 있다. 2004년 10월에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1등급이나 떨어져 29위에 이른다고 보도되었다. 중국인에게 중화사상, 일본인에게 사무라이 정신, 미국인에게 프론티어 정신이 있다면, 한국인에게는 선비정신이 존재한다. 청렴ㆍ강직ㆍ소신을 근간으로 하는 조상의 선비정신 고취는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다.
3장 영욕의 한ㆍ일 관계사 이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일본을 평가하는 한국인의 눈은 극명하게 대립된다. 하나는 군국주의 침략자로서의 일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적인 경제발전 모델로서의 일본이다. 일본은 식민지화를 통해 오히려 근대화를 앞당겼으며, 개화의 싹을 틔웠다면서 침략을 합리화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범자들은 반인륜적 행위자로서 처벌되었고, 지금까지도 시효 없이 적발하여 처단하고 있다. 독일은 통렬한 자기반성과 참회를 통해 거듭 태어났으며, 지금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침략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균형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무사의 생활윤리와 규범은 일본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마쿠라 막부의 등장으로 700여 년이나 계속된 무인정권이 뿌리내린 무사도는 무용(武勇)과 충(忠)이었다. 일본인은 '사무라이 정신', 즉 무사도 정신을 삶의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서 추구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 특공대인 '가미카제'가 미 군함에 돌격해 자폭한 행위도 사무라이 정신에 입각한 애국심의 발로로 설명되고 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봉건사회는 복잡한 계층으로 나눠지고, 각자의 신분은 세습되었다. 각 가정은 문 앞에 지위와 신분에 관한 소정의 사실을 게시해야 했다. 의복, 음식, 집의 종류도 신분에 따라 규정되었다. 일본의 계급은 황실과 귀족 밑에 무사ㆍ농민ㆍ공인ㆍ상인으로 구분되었고, 그 아래, 사회 밖으로 추방당한 천민계급이 있었다. 상인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제도가 쇠퇴한다. 그래서 도쿠가와 막부가 17세기에 가혹한 법률로 일본의 쇄국을 선포한 것은, 상인의 설자리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일본인은 세계의 여타 민족과는 다른 특유의 이중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일본 민족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용어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지적할 수 있다. 혼네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요, '다테마에'는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일본인은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위해 이 두 가지 말을 능숙하게 구별하여 사용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행동 특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일본인은 국화(평화) 가꾸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 일본이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를 위해 헌법 개정을 서두르는 것이나 독도 망언, 신사참배 강행,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중성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한반도를 안보차원에서 사활이 걸려 있는 '이익선' 지역(일본열도에 비수를 꽂는 위치)으로 인식하고 있다. 부언하면 일본은 한반도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성립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일본의 안보에 잠재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가 열강의 관심을 끌 만한 이렇다 할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세력 각축장이 되어 왔던 것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반도가 갖는 일반적 성격을 보면, 반도에 강력한 힘이 형성될 때에는 주변 세력들 간의 이질성이나 적대감을 중화시키는 균형자로 나설 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며 양측의 진출에 필수적인 관문이 된다. 한반도에서 전개된 역사상의 숱한 사례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지리적 결정론은 '반도 국가는 숙명적으로 주변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침략을 미화한 논리는 우리 지식인들까지 오염시켰고, 오늘날 일부 젊은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승려, 어부, 관리 등을 통해 한반도의 정세, 지형, 군대 현황을 파악하는 정보전을 펼쳤다. 지금도 정찰위성을 한반도 상공에 띄워놓고 한반도를 거울 들여다보듯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정보전쟁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한국이 모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용일(用日)의 지혜를 발휘하여 상호 보완적 협력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군사적 정보교환 및 유사시를 대비한 제한적인 군사훈련 및 공동연구 등의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
4장 한ㆍ미관계의 역사적 흐름
미국, 고립과 개입의 역사미국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국가이익에 따라 고립(불개입주의)과 개입(팽창주의)을 되풀이하였다. 영국식민지로부터의 독립전쟁, 멕시코 전쟁, 남북전쟁, 스페인 전쟁, 양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전 등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걸프전, 이라크전의 승리로 인해 오늘날 세계 최대의 경제적ㆍ군사적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미 군정기와 6.25전쟁 이후부터 오늘까지의 한ㆍ미관계를 정치ㆍ외교적 시각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현실을 되돌아 볼 때 미국사를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전략의 흐름을 고찰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아메리카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아메리카인들의 독립전쟁 승리로 미합중국이 탄생되었다. 연방정부는 당파간의 대립 속에서도 꾸준히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경제공황과 영토 확장에 따른 문제가 대두되었고 노예문제를 둘러싸고 연방이 분열하게 되었으나 북부의 승리로 연방이 유지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며, 공업발전을 위한 토대 및 서부 개척의 활력소가 제공되었다. 서부 개척으로 인한 인구 증가 및 국토개발로 급격한 변화를 이루었고, 대륙횡단 철도 건설 등의 영향으로 미국은 산업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와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이를 '혁신주의 운동'을 통한 사회정의 운동과 정치개혁으로 확산시켜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개한다. 세계대전 발발 초기에 미국은 중립을 고수했다. 그러나 독일의 미국 상선 공격을 계기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고, 군수분야 제조업 등의 특수로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9년 주식시장 붕괴로 인한 대공황이 다시 세계 경기 침체를 가져왔다. 이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즉 구호ㆍ복구ㆍ개혁의 정책으로 다시 경기가 회복된다. 1937년 중반부터 또다시 불황이 시작되었으나 이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미국은 1차 대전 때와 유사한 입장을 취했으나 1941년에 다시 참전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도 군수물자 지원을 위한 산업생산의 증가로 경기침체의 암운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경제부흥과 공산세력의 팽창 억제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페어딜 정책'과 마셜플랜을 추진했고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국제적 협력과 반공 강화를 위한 대외정책을 취한다. 그리고 케네디는 '뉴프런티어 정책'을 통해 내적으로는 사회정비와 경기회복을 시도했고, 대외적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과의 경쟁에서 자존심을 지키려 하였다. 또한 존슨은 빈곤추방과 교육발전에 주력했다. 이렇게 전후 20여 년간의 변화 발전을 통해 미국은 세계강국으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