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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규칙

우쓰 지음 | 황매
1장 관리와 백성의 관계



중국 역사상 황제 통치 시대에는 관료집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집단은 힘을 독점하고 법률을 장악하였으며 거대한 인력과 자금을 통제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가 그 사회의 운명에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집단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인의(仁義)나 청렴(淸廉) 따위의 원칙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손익계산서이다. 이러한 계산의 결과 손실을 피하고 이득을 취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러한 결정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되풀이되는 가운데 하나의 잠재적인 규범이 뚜렷해지면서, 수많은 관료집단의 내부와 그리고 집단 간의 관계 형성 시에 항상 지켜지는 숨겨진 규칙을 형성하였다. 이 규칙은 결코 성문화되지 않았지만 구속력이 매우 강한 규칙이다. 나는 이에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해, 할 수 없이 '숨겨진 규칙'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합법적 상해권'의 규칙

『죽엽정잡기(竹葉亭雜記, 청나라 학자 요원지의 수필집)』에 따르면, 청나라 때 사천(四川) 지방에 광범위하게 행해지던 숨겨진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도둑 엮기'이다. 민간에 절도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신고를 접수한 관아에서는 조사도 없이 무조건, 도둑맞은 집 근처의 부잣집에 도둑을 숨겨주었다고 지목한다. 어쨌든 혐의자를 지목하는 것도, 혐의자를 압송하는 것도 그들의 합법적인 권력이었으므로 리스크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지목당한 집들에는 집안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없거나 그들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아에서는 안심하고 그들을 잡아들여 돈을 갈취할 수 있었다. 절도사건 하나당 대부분 여러 집이 연루되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이를 '도둑 엮기'라고 불렀다. 돈을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되면 관리는 그제서야 부자들을 풀어주며, 조사해보니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용어로 당시 이를 '죄명 씻기 洗賊名'라고 했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능력(합법적 상해권), 이것이 바로 하급 관리들이 손에 쥔 '전가의 보도'였다. 이 능력은 수많은 자원과 재부(財富)를 재분배하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중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몸에 보도를 지니면 저절로 살심(殺心)이 생긴다.' 싸움 상대와 실력 차이가 워낙 현격해서 싸움을 벌이면 자신은 기껏해야 생채기 정도나 날 뿐이지만 싸움의 대가로 금은보화를 얻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한번 붙어보고 싶은 법이다. 관리라면 보통의 인내심만으로는 이런 싸움을 자주 걸고 싶은 유혹을 억제하기 어렵다.



공식적인 규칙은 어찌됐든 합법적 상해권을 가진 사람은 극도로 거만해진다. 그의 눈에 백성은 맛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합법적 상해권은 꽤 돈이 된다. 이러한 권력을 일단 가지면 저절로 돈이 들어오고, 규정에도 없는 돈을 거두어들이는 방법이 생겨난다. 권력이 생기면 숨겨진 규칙이 절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 규칙이 법에 저촉된다 할지라도, 빙빙 둘러가며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 보면 결국 합법적인 허울을 뒤집어쓸 수 있다.



이런 합법적 상해권은 감옥에서 가장 훌륭하게 발휘된다. 산서 지역 한 고을에 사는 황승이라는 자가 아무 죄 없이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등을 켤 때쯤 포졸대장인 사상천이 나와서 황승과 흥정을 시작했다. "네가 좀 편하게 지내고 싶다면 그건 아주 쉬운 일이야. 일단 50전을 내면 특실에 들어가게 해주지. 30전을 더 내면 쇠사슬을 풀어주고, 다시 20전을 내면 방바닥에 요를 깔아주지. 만약 아편을 피우고 싶다면 한 대 필 때마다 5전이야." 공교롭게도 황승에게 마침 몸에 지닌 돈이 없자, 사상천은 화를 내며 그를 한 철창문으로 밀어 넣었다. 감옥 안의 수인들도 그에게 신참이니까 돈을 내라고 했지만, 가진 돈이 없다고 하자 에워싸고 초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팬 후 밤새도록 벌을 세웠다. 감옥과 구치소는 합법적 상해권이 집약된 곳이기에, 탐관오리의 보물창고였다. 극단적으로 말해 수인이 감옥에서 얼어죽거나 굶어죽거나 병들어죽어도 그냥 '옥사'일 뿐 관부에서는 아무 책임도 질 필요가 없었다.



남을 상하게 하는 보도를 휘두르려면 보도를 쥔 자의 마음에 악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양심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청탁'은 이러한 귀찮은 걸 대신 해결해준다. 수중에 권력만 있으면 알아서 찾아와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으니, 모른 척하고 그 품에 안겨들면 그들과 한 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유혹을 거절하는데 악의가 필요하며 또한 호의를 뿌리치고 외면하는 용기와 힘까지 요구된다. 대부분의 경우 친지나 친구를 통해서 찾아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는 데 드는 코스트가 더 한층 낮아지며, 반대로 회유를 거절하는데 드는 코스트는 그만큼 커진다. 이 지점에서 응당 지켜야 할 것을 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또 한 명의 청백리가 사라진다.

백성의 규칙

청나라 미산현 호방(지금으로 치면 재정국쯤 된다)은 비리가 심하여 정해진 세금 외에도 준조세 명목으로 집집마다 지금 돈으로 6,000원을 더 할당했다. 아무리 푼돈이라지만, 비옥한 땅이라 가구가 4,5만 남짓이나 되었으므로 20년을 착복하니 약 600억 원이 넘는 거액이 된다. 이 미산현에 이수라는 이름의 정의감이 넘치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겨우 약 6,000원의 준조세 문제 때문에 의분에 차서 '전 재산을 털어 5천 리가 되는 길을 마다 않고' 상급기관에 진정서를 올렸다. 결국 강력한 반격으로 인해 그는 부정축재로 모함을 받아 생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장기간 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하는 중에도 그는 여러 차례 암살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12년이 지난 후에야 이수는 감옥에서 석방되고 준조세도 폐지되었지만 이로 인해 처벌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는 백성에게 현실은 우선, 그까짓 세금 좀 더 걷어간다고 몇 달이라는 시간과 몇 천 리를 걷는 수고를 들여 고발할 가치가 없음을 가르쳐준다. 고발하는 데 든 돈으로 평생 동안 좀 더 세금을 내도 남는다. 두 번째로 탐관오리에게 현실은 이들 중뿔난 놈들을 때려잡기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일단 자신들의 규칙이 무너지면 그들의 손실이 장차 막대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크나큰 대가를 치른다 해도 고발자가 성공을 거둘 확률은 천 분의 일도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결론은 자명하다. 백성은 더 이상 관리와 싸우지 않게 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이제는 원통해 죽는 한이 있어도 고발하려고 나서지 않게 된다.



이는 늑대와 양이 함께 사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어쨌든 늑대는 양을 잡아먹고 산다. 양이 반항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먹힐 차례를 넘기고 며칠 더 살수는 있다. 반항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적어 감히 반항하는 양은 뼈도 추스르지 못한다. 이처럼 온순한 핫바지들이 있기에, 탐관오리의 리스크는 매우 낮으며 귀찮은 일도 거의 없다. 반면 수익은 매우 높으니 이 사업에 끼어 들려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세력은 급격히 커진다. 하지만 결국은 한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마치 늑대무리가 양떼들을 먹고 갑자기 늘어났을 때처럼, 어느 한계에 이르면 양떼의 번성 속도로는 먹이가 모자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양떼는 급격히 줄어 결국 멸종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늑대의 종말도 멀지 않다. 이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의 결말이다.



이등급 공평성의 규칙

청나라시절 지방행정장관인 신계현이 안북 일대로 시찰을 나오게 되었는데, 그 지역의 촌장과 장로들이 그의 가마를 막고 진정서를 올렸다. 그 내용은 역참에서 가가호호마다 걷는 사료풀 문제였다. 고관대작의 가마를 막는 것은 반감을 일으키기 쉬운 행동이었다. 고발한 내용에 추호라도 거짓이 있을 경우 규정에 따라 곤장 80대를 맞아야 하는데, 이는 연세가 지긋한 그들로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벌이었다. 청나라 때의 역참은 지금의 우체국과 비슷하며, 사료풀은 역참의 말들이 먹는 사료이다. 말 사료는 그 마을의 백성들이 나누어서 내게 된다. 고발내용은 저울이 부정확하다는 것과, 수고비를 주지 않으면 거둬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사를 해보니 아무 대가도 없이 순순히 바치면서도 이중으로 괴롭힘까지 당하고 있는 사료풀이 사실은 놀랍게도 정부에서 백성들로부터 수매하도록 정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한 마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사건에서 나타나는 공평성의 세 가지 기준이다. 먼저 백성들은 정부의 속임수 저울에 의해서 더 뺏기지 않아야 하며, 거마비를 내서도 안 되고, 오히려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기준은 물론 일등급의 공평성이지만,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게다가 백성들이 기대하지도 않는다. '백성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기준은 대가 없이 사료풀을 바치되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공식적인 규칙보다 한 등급 낮은 기준이다. 관리들은 백성들이 이등급의 기준을 받아들였는데도 한술 더 떠 삼등급의 기준까지 강요한 것이다. 삼등급을 감내하지 못한 촌장이 그제야 길을 막고 호소하러 나섰다.



사실 사료풀 지출에 관한 <대청회전>의 규정은 일등급의 공평성을 구현한 공식적인 규칙으로 우리는 이러한 기준이 매우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진시황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독단적이었던 진시황은 백성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되는 핫바지쯤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게 바칠 궁전과 분묘를 짓고 제국의 성벽을 수리하기 위하여 수만 명의 백성을 징발했으며, 그 결과 그가 설계한 만세에 이어져야 할 제국은 겨우 2대로 끝장나고 말았다. 이러한 교훈은 필연적으로 한나라 황제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진나라가 폭정으로 인해 단명했다는 교훈이 없었다면, 한나라의 '유교적 통치'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진나라라는 타산지석이 있었기에 유가(儒家)의 위협이 먹혀들었다. 바로 어진 정치와 왕도(王道)라는 대표적인 유가 사상을 황제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왕도라는 물건은 진시황이 아무런 장식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패도(覇道)보다는 한단계 나은 것으로, 이것조차 많은 희생이 있은 후에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는 일등급 공평성이 전혀 실현되지 않았으며, 이등급 공평성조차 보편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루쉰이 말한 '노예가 되고자 해도 그조차 여의치 않은 시대'를 기준으로 삼아, 일등급 공평성을 백성 수준의 공평성으로, 이등급 공평성을 노예 수준의 공평성으로 본다면 노예급 공평성조차 보편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바로 태평천국의 난이다. 그들이 내건 깃발에 쓰인 글자는 '태평(太平)', 즉 극히 공평하다는 의미가 담긴 글귀였다.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매우 위험한 폭발물이다. 몇 명의 사나이들이 공평이 극히 드문 세상에서 몇 발의 폭죽을 터트리자, 중국 전역에서 이 불씨는 화염으로 타올랐다.



2장 상사와의 관계



탐관오리의 규칙

명나라의 고을 현령이 한 달에 실제 받는 녹봉의 실제 가치는 한화로 146,900원(1위안은 현재 환율로 약 130원이다)에 불과하다. 한번 당신이 현령이라고 생각해 보라. 당시는 가족계획 따위도 없었으니, 한 집에 식구가 최소한 대여섯, 많으면 열 명이 넘는다. 당시는 또한 여성해방운동도 없었으니 맞벌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 고을 현령의 처지가 지금의 실업자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복지제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퇴직금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든 사람은 평생 동안 하나의 등식을 맞추려고 하기 마련이다. 바로 평생의 총수입을 평생의 총지출과 같게 만드는 것이다. 절감한 부분은 유산이 되고, 모자라는 부분은 부채가 된다. 관리들은 이 등식의 양 변을 최대한 맞추어야 했고, 절약해서 남은 것은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더 좋았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정한 녹봉으로는 이 등식의 균형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윗분에게 혹은 대소사에 서로 선물을 돌리는 것은 해마다 있는 일이고, 지방 관리가 상경하는 것은 3년에 한 차례이며, 승급까지 9년이 걸린다. 가장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서 9년 동안 20만 냥이 든다고 쳐도, 현령이 14,5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여기에는 물론 노후 준비라든가 뜻하지 않은 질병은 아예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이렇게 차이가 큰 인생의 부등식을 어떻게 등식으로 만든단 말인가? 겨우 어떻게 수지를 맞춘다고 해도, 결코 인간다운 생활은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황제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뇌물을 받은 관리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의 평생 장부를 계산해서 너무나 불공평한 게 분명한 봉급 수준을 올려준 후에 문관이 금전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게 옳다. 물론 명나라 말기는 재정적으로 위기상황이었으며, 관리의 숫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났으니, 녹봉을 대폭 올려달라는 요구는 완전히 잠꼬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리의 손익계산서에 큰 구멍을 만드는 정책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정책은 양치기가 개를 기를 때 덩치가 산만한 개에게 매일 희멀건 죽 한 그릇 먹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배를 곯리면서 양치기 개를 기르면, 언젠가 양치기 개는 들개로 변하고 결국은 개가죽을 뒤집어쓴 늑대가 된다.



결론적으로, 청백리가 되기란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당시의 공식적인 제도는 청백리를 벌하고 청백리를 도태시켰다. 그래도 청백리가 되려는 자에게는 경제적으로는 실패자의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는 수입과 지출이라는 경제적 장부만이 고려 대상이지, 도덕이나 양심을 돌아볼 여지가 없다. 도덕이나 양심은 관료집단이 시종일관 가장 자신 있게 내건 구호임에도, 그 구호는 이토록 형편없이 땅바닥에 짓밟혀 초라해졌다.



폭정의 규칙

후한시절 도읍 낙양에 큰불이 나서 궁전 네 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황제는 다시 궁전을 짓고 싶었지만, 거기에 필요한 자금이 없었다. 그때 당시 환관 장양과 조충은 28세의 영제에게 귀가 솔깃한 아이디어를 냈다. 관리들이 임지에 부임할 때마다 일정액을 받으라는 제안이었고, 황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거록 태수 사마직은 정의롭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새 임지로 발령을 받은 그 역시 부임하기 전에 그 값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청렴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그였기에 300만 냥만 내면 된다는 특혜를 받았다. 당시 시세로 그 직급을 사려면 2,000만 냥은 족히 들어야 했다. 그러나 황제가 요구한 300만 냥은 사마직의 장장 19년 치 월급이었고, 공정 가격인 2,000만 냥은 128년 치 월급이었다. 백성을 수탈하지 않고 이 거액을 도대체 어디서 구해서 손실을 메운단 말인가? 부임지인 낙양을 코앞에 두고 사마직은 직언 하는 유서를 쓰고 나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영제가 관리에게 미리 받아 둔 궁전 수리비, 후에 결국 실제 매관매직으로 발전한 이 돈은 '도급비'와 흡사하다. 정식으로 부과되는 세금 외에, 대다수 지방 관리들이 불법적인 수입원을 통해 막대한 돈을 자신의 사금고에 채워 넣고 있는 현실을 황제나 그의 측근은 잘 알고 있었다. 이 비정규 수입원에 대해 아무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그 금액은 정식 세금보다도 더 막대했다. 이걸 막자니 방법도 없었고, 지방 관리들 혼자 꿀꺽 삼키도록 그냥 놔두기에도 배가 아팠다. 그래서 황제는 '일괄 도급' 정책을 쓴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자, 본래 뇌물을 받지 않던 청백리조차 이제는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이 사마직이 처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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