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스트라우스
박성래 지음 | 김영사
1장 네오콘이 말해도 한국은 못 알아듣는다
한국은 미국을 모른다한국과 미국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은 지 올해로 60년이다. 1945년에 맺은 한미동맹이 환갑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미관계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미국에 대한 독립성을 주장하는 정부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가 아무리 미국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끔씩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반면에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개입을 추구한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보다 훨씬 자주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서로 부딪칠 일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난제들이 놓여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사건건 부딪치기 십상이다. 미국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을 모른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도 한국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니까 공평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자는 약자를 몰라도 별 문제가 없지만 약자는 강자를 알아야 한다.
스트라우스의 첫 번째 암호, '레짐'네오콘들은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에 따라 한반도가 재앙을 맞을지도 모르는데도, 한국은 네오콘의 핵심 개념인 '레짐regime'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한반도의 관심은 부시 2기 행정부가 '대북한 정책기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집중돼 있었다. 여야 국회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해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전보좌관과 마이클 그린 국장을 만났다. 귀국 후 한 국회의원에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어떤 기조에서 움직일 것인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북한에 대한 미국의 생각은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아닌 체제전환 regime transformation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레짐'이란 단어가 한 문장 안에서 '정권'도 됐다가 '체제'도 됐다가 하는가? 그러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해석은 무엇인가?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대북정권변형 추진발언에 대해 '리더십의 변화를 가져오는 레짐 체인지와는 구분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즉, regime을 정권으로 보고 'regime change'를 '정권교체'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우리정부도 마찬가지 해석을 한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 쓰는 용어를 못 알아들은 것이다. 레짐 체인지는 정권교체가 아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후에 이 책의 주인공 '레오 스트라우스'가 숨어 있다.
도대체 '레짐'은 무엇인가?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의 아들이자 네오콘의 대표적 주간지 『위클리 스탠퍼드』의 편집인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여러 언론에 네오콘의 입장을 자주 전파하는 네오콘의 전도사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What Was Strauss up to?」(스트라우스는 무엇을 하려 했나?)라는 논문에서 "부시 대통령이 사용하는 '레짐'이라는 용어는 사실 스트라우스의 용어이며, 그의 제자들인 우리가 가르쳐줬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사용되는 '레짐'은 정권이나 체제로서의 레짐이 아니고, 레오스트라우스가 사용하는 고대어(라틴어) 레짐인 것이다. 그러면 레오 스트라우스가 말하는 '레짐'은 무엇인가?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레짐 체인지'를 통해 '레짐'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단지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라크에 소위 미국식 민주정부를 이식하려 했다. 또한 이라크의 정치 영역만 바꾸려는데 그치지 않고 이라크인들의 경제ㆍ문화ㆍ도덕 등 삶의 영역 전체를 바꾸려 했다. 미국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며,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 정치인인 부시 대통령이 이미 수렁에 빠진 이라크에 그렇게까지 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스트라우스의 '레짐'의 개념은 그런 것이다. 레짐은 정권이라기보다 체제와 비슷하지만 '정치 밖의 다른 영역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체제'인 것이다.
레짐말고도 우리를 헛갈리게 하는 용어가 또 있다. 요즘 '폭정'으로 번역되는 'tyranny'다. 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 취임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tyranny의 종식'이었다. 이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인준 청문회에서 'tyranny의 전초기지'라는 말을 썼다. 요즘 들어 미국 정부 수뇌부들이 앞 다투어 사용하는 'tyranny'는 무슨 뜻일까? 이 말의 배후에도 '레오 스트라우스'가 버티고 있다. 원래의 뜻은 '참주정'이다. 참주(독재자)가 어리석은 대중들을 선동해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레짐이 '참주정tyranny'이다.
2장 스트라우스의 진면목 : 니체, '진리는 없다'
스트라우스는 니체를 믿었다우리가 니체에 대해 알고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신은 죽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어법이다. 신의 특징은 죽지 않는 것이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태초부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정해진 진리는 없다는 뜻이다. 근대적 이성이 점점 이를 폭로하면서 신의 권위는 조금씩 부정되었다. 근대적 이성에 의한 '신의 살해'가 서구문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종교권력의 기반을 위협했다. 종교권력은 이를 탄압으로 응징했지만 이성은 저항을 계속했다.
스트라우스는 '진리가 없다는 것이 진리'라는 니체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진리'가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고귀한 거짓말'의 기술을 말한다. 가혹한 진리를 견딜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는 '진리가 없다'고 말해도 되지만 멍청한 대중들에게는 '이것이 진리다'하고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맡은 것이 바로 정치철학자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으로 무장한 스트라우시언들은 '선악의 판단'을 내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너도 옳을 수 있고 나도 옳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없다. 그것은 이들에게 대중을 타락시키는 상대주의이며 회의주의다. 이런 일도양단 '선악의 이분법'이 세계 최강 미국의 외교정책에 적용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 미국은 힘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선善도 동시에 휘두르고 있다.
네오콘들의 스트라우스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은 그의 자서전 『신보수주의 : 한 관념의 자서전』에서 스트라우스를 귀족주의자라고 자주 언급한다. 반면 대중은 전통과 종교가 붙들어놓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진리는 몇몇 현명한 엘리트의 정신은 자유롭게 하지만 대중에게는 독약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여기서 귀족은 중세의 귀족the noble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귀족aristocrat이다. 고대의 귀족은 먹고 사느라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계층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교양을 쌓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현명함을 갖춘 사람들을 말한다. 스트라우스는 현명한 귀족들이 멍청한 대중을 지배하는 귀족정(aristocracy)을 민주주의보다 바람직하게 여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을 충실히 따른다. 미국의 신 보수주의로 등장한 네오콘, 즉 소수의 엘리트계층은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장 네오콘의 암호, 스트라우스 코드
밀교의 시조 플라톤플라톤『국가론』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정의는 있는가?'이다. 알려져 있기로는 플라톤은 '정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그 자체로 선하고 정당한 행동의 근거, 도덕의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트라우스의 해석은 그 반대다. '정의가 있다'는 것은 플라톤이 어리석은 대중들을 상대로 한 공개적ㆍ훈계적 가르침일 뿐이고 사실은 '정의가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밀교적 가르침, 즉 진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국가론』에는 소크라테스와 젊은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등장하여 대화술로 이론을 펼친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힘센 자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약한 자들에게 그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한 뒤 이를 '정의'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구두 만드는 장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구두를 만들고, 의사는 환자를 위해 치료하며 통치자는 통치 받는 사람들을 위해 통치하는 것이라고 반박하여 '그 자체로 정당한 정의가 있다'는 주장을 조목조목 펼쳐 이 논쟁에 승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트라우스가 해석하기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당연히 플라톤의 주장일거라는 독자의 선입견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는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공개적인 가르침을 전달하고, 트라시마코스의 입을 통해서는 똑똑한 엘리트들에게 자신의 진짜 가르침, 즉 진리를 몰래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라우스는 말한다. 구두를 만드는 장인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시마코스의 견해가 이겼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트라시마코스의 논리도 조금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스트라우스는 아무리 강자라도 개인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합치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요지는 구두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의 이익은 구두를 맞추는 손님의 이익과 합치될 때만 가능하며 치료하는 기술을 가진 의사의 이익은 환자의 이익과 합치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치의 기술을 가진 통치자도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피치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에 기초해서 통치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스트라우스의 '정의'다. 따라서 그의 정의는 나를 이롭게 하는 '친구'를 이롭게 하고, 나를 해롭게 하는 '적'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스트라우스의 교의를 따르는 스트라우시언들에게는 정전(canon:正典)이 있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는 밀교적 전통을 이어 내려온 정치철학자들의 책이 정전이다. 스트라우시언이 되기를 거부했던 펜실베니아 대학의 앤 노턴 교수에 따르면, 스트라우시언 교수들은 제자들이 정전(正典)이 아닌 다른 사상가의 책을 읽으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성행하던 이념 서클의 모습과 비슷하다. 선배들이 특정한 이념 서적으로만 구성된 커리큘럼을 후배들에게 제시해 주면 후배들은 그 서적들을 읽고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특정 이념을 주입받는다. 이런 방식은 단기간에 행동주의자들을 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들은 그들만이 공유하는 비밀과 정치적 탄압의 경험으로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386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이 과거의 어떤 세대보다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한 것도 이것에 비유할 수 있다.
4장 가짜 코드, 자연권 혹은 자연적 옳음
고귀한 거짓말, 자연권미국이라는 레짐에 속한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가 주장하는 것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 '고귀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이는 '자연권'이라는 개념이다. 스트라우스는 그의 저서『자연권과 역사』에서 미국은 자연권에 기반하여 건국된 나라로 그리고 있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로부터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라우스가 말하는 자연권은 근대성의 위기, 즉 자유주의적 허무주의 확산에 따른 사회질서 붕괴를 막기 위한 '고귀한 거짓말'이다.
자연적 옳음(자연권)의 역할은 종교와 비슷하다. 대중들에게 일상의 행동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목적론'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목적론은 길을 걷다가 발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그 고유한 목적이 있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스트라우스는 목적론을 따른다. 하지만 세상에 정해진 진리는 없다고 믿는 니체의 후계자인 스트라우스가 돌멩이 하나에도 정해진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목적론은 자연권이라는 '가짜 진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적 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공통의 목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라우스의 목적론을 스트라우스의 제자들인 네오콘들은 즐겨 사용한다. 이는 공산주의자들과 비슷하다. 이라크 전쟁을 위해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허위정보를 만들어내고 퍼뜨렸던 에이브럼 셜스키의 지론은 "정보 작전의 목표는 진리가 아니라 승리"라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위해 수단이나 방법은 거짓말일지라도 정당화된다. 스트라우시언들은 서구문명이 도덕과 정의가 사라지는 심각한 근대성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근대성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고대적 자연으로의 복귀'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대중의 자유를 진정한 정치기술과 지혜를 갖춘 정치가들에게 고스란히 헌납하고 그들이 지어낸 신화를 믿으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21세기를 우리와 같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세계 최강의 권력을 쥐었다는 사실이다.
5장 정치의 본질, 적과 친구
친구가 아니면 적이다후배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목격한 일이다.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들 여러 명이 친구 한 명을 둘러싼 채 혼내고 있었다. 무슨 얘긴가 들어보니 그 아이가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자기네 단지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였다. 형편없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제에 자기들과 어울리려 했다는 것이다. 후배는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요즘 애들이 참 무섭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요즘 애들만 그런 게 아니라 예전에도 아이들은 그랬다. 모습만 좀 달라졌을 뿐 아랫동네 윗동네 패를 나누어서 서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치인들이 파당을 만들어서 누구는 수구꼴통이네, 누구는 '좌익빨갱이'네 하면서 서로 헐뜯고 욕하는 것을 흉내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들이 정치인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아이 때 하던 짓을 어른이 돼서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뿐이다. 내가 정치부 기자로서 정치인들을 취재하면서 각인된 분명한 것은 온갖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적을 따돌려서 이상한 사람, 이상한 집단으로 만들어놔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트라우시언들은 정치의 본질이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데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전쟁이나 충돌, 갈등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은 영화 <람보>가 인기를 끌자 기뻐했다고 한다. 공동의 적이라는 위협과 소멸이라는 위협이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기 때문에 크리스톨에게 전쟁은 좋은 것이었다. 9ㆍ11 이후,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면 적의 존재, 즉 전쟁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그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부시 대통평의 지지율이 한때 80%를 넘었던 사실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
어빙 크리스톨은 자유가 사람들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설득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자유를 헌납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