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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광기

비비안 그린 지음 | 말글빛냄
황폐한 마음



광기란 무엇인가? 광기는 질병이라기보다는 보수적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대한 저항이다. 정신이상자들은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문제들을 바라보기로 결심하여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본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광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해 온 하나의 상황이다. 중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상이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체적인 치료법보다는 심리적, 정신적 치료법에 더 많이 의지했다. 예를 들어 미사를 올리거나 성인(聖人)의 유골을 정신질환자의 약으로 쓰거나, 악령을 몰아내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새로운 견해는 19세기 말 정신의학이 출현한 이후로, 조울증과 그보다 심각하고 회복이 불가능한 정신 장애를 구별함으로써 처음으로 정신질환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왕들의 광기는 이처럼 시대적인 배경에 비추어 살펴야 한다. 그러나 먼 과거의 증거들은 빈약하거나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왕들이 정신병을 앓았다는 증거는 불명확한 경우가 많고, 사료(史料)는 편향적이며 정보도 불충분하다. 따라서 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베일을 걷어내는 과정에는 추측과 짐작이라는 요소가 도입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광기를 보인 왕과 여왕들은 일반적으로 정신병이 진행될 때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정신질환은 태어날 때부터 뇌가 손상되었거나 상처에 의한 뇌 기능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와 뇌염, 측두엽 간질, 매독 등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 정신적 질병을 촉진시킨 경우 등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외에도 과연 무엇이 '왕들의 광기'를 유발했는가,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왕들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았는가가 앞으로 살펴 볼 주제다. 그 중에서도 의심과 음모가 가득한 왕실 분위기가 통치자, 특히 어리고 감수성 예민한 통치자에게 어떻게 정신적 장애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한 국가나 사회를 통솔하는 군주의 '인격'은 지금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비밀 주연



로마의 황제들은 브리튼섬과 라인강과 다뉴브강 국경지방에서부터 북아프리카 지방, 근동의 사막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그들이 아무리 소위 입헌 정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황제의 말이 곧 법이었다. 황제는 신성한 위치에 있었으며 많은 왕들이 사후에 신으로 모셔졌고 일부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반신(半神)의 지위를 주장했다. 따라서 불안정한 군주가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하고도 중대했다. 제국은 권력을 추구하는 장군들의 희생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행히도 로마 시대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황제들은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1세기 전반과 2세기 말 로마 제국은 정신병질자(精神病質者, 정신병질이란 비정상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건전한 사회적응에 곤란을 일으키는 성격을 말한다)들의 손에 좌우되었고 사실상 이들은 정신이상자라 할 만한 인물들이었다. 네로를 마지막으로 하는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 황제들은 기질과 건강 모두에서 유전적인 흔적을 지녔으며, 이는 그들이 행사하는 절대 권력에 수반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한층 강화되었다.



티베리우스 Tiberius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의 시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종손 아우구스투스는 이렇다할 비정상적인 면들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들이자 후계자인 티베리우스는 정신병질자였거나 최소한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 가운데 칼리굴라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가이우스는 심각한 병을 앓은 후 얼마동안 정신질환을 겪었고 네로 역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징후들을 많이 보였다. 나이가 어리고 정치적인 경험이 부족하고 정치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할 만한 재능을 갖추지 못한 채 황제가 된 이들은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제멋대로의 행동과 방탕한 생활을 택했으며, 그들을 광기의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극단적인 결말을 불러올 수 있는 우울한 감정에 빠지곤 했다. 이 황제들의 통치를 살펴보면 정신적인 불안정을 촉진하는 특성들이 집중될 경우 백성들에게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빈틈없고 철저한 정치가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천성적으로 호색적인 기질을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애정 어린 남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인 리비아는 아름답고 무정하여 '야심은 그칠 줄 모르고 성적으로는 냉담하고 완강하여 고양이나 표범에게나 어울릴 만한 여인'이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기 가족의 재산을 늘리고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베리우스가 반드시 남편의 뒤를 이어 다음 황제가 되도록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런 강력하고 위압적인 어머니와의 관계는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의 성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티베리우스는 차가운 자기중심주의자로 마음이 따뜻하지도 자애롭지도 않았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한 어머니의 계획대로 사랑도 없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해야 했고 56세에 황제가 되기까지 정치적 계략의 대상으로 살면서 그의 인격에는 점점 더 광기가 더해졌다.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얼굴에 난 흉터를 감추려 애써야 했으며 어둠 속에서 더 잘 보는 주맹증이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검소하고 입맛도 금욕적이라 할 만큼 수수했지만, 다른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술에 너무 빠져 있는 면도 있었다.



차갑고 감정이 없는 티베리우스는 로마인들의 애정을 얻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대중이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원하는 것들을 제공하지 않아 반감을 샀다. 초기에는 아우구스투스의 법과 질서를 지지하려 애쓰는 등 성실하고 효율적인 정치를 했으나 점점 정도가 심해지는 불안정감과 편집증 뿐 아니라 기이한 행동, 감정의 결여, 신뢰할 수 없는 태도, 적과 친구의 구분을 두지 않는 복수심 등 정신병질적인 특성들이 나타났다. 그는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봉사한 사람을 주저 없이 희생시키기도 하였다. 또 70대가 되어 정치에서 손을 떼고 카프리섬에서 은신하면서 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음모와 암살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된 기분에 도취된 나머지 지나칠 정도로 그릇된 성적 쾌락에 빠져 지내면서 그나마 쌓아온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그는 온갖 고문과 가학적 만행을 저지르면서 이를 자신의 만족으로 삼았으며 노년에는 편집증 환자가 되어 실제이든 가상이든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면 즉시 제거할 태세를 취하였다.



티베리우스가 '정신이 이상했다'는 원로원의 결정에 대해 역사가들은 후계자들이 꾸민 정치적 계획이라고 결론짓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말년에 보인 정신 상태가 과연 정상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의붓아버지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싫어했고, 자라면서는 지배욕 강한 어머니를 원망하였으며, 가까운 친구와 일족을 가차 없이 죽였고 그가 신임했던 이는 그를 배신했다. 그가 현실 세계의 치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프리섬에서 비뚤어진 관음증에 빠져 일시적인 해방감을 찾았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다. 인간관계에서 그는 온정이 결여된 괴롭고 불행한 인간이었다. 그가 비정상 영역의 가장자리에서 보인 증상은 '경계선 증후군'이라 설명할 수 있다. 티베리우스를 명확히 정신병질자라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그가 기질적으로 정신병질자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칼리굴라 Caligula

열광적인 환대를 받으며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은 가이우스 황제는 칼리굴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창백한 얼굴에 길고 가는 다리를 가졌으며 너무 일찍 머리가 벗겨졌고 반면에 몸에는 털이 많은 등 신체적으로는 별로 매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자란 사람들에게는 머리카락을 깎으라고 명령하기도 했고, 대화 도중 누군가 '털북숭이 염소'라는 말만 꺼내도 무시무시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칼리굴라 황제는 통치권을 잡은 후 티베리우스 치세에 평판이 좋지 않았던 규정들을 다소 완화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고, 그 후에도 그가 전개한 정책들과 정치 활동은 여러 면에서 합리적이었고 훌륭한 정치적 판단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칼리굴라가 죽고 얼마 후에 기록을 남긴 로마 역사가들은 그가 악한 사람이었거나 미친 사람이었거나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칼리쿨라의 성격은 조증(躁症) 환자로 보이기에 충분했는데, 성적으로 양성애자였으며 방탕한 호색가였다는 사실은 그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했음을 암시하며,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자신의 신성함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기괴한 태도를 보이며 환상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가 보였던 광기의 근원은 바로 이 환상의 세계에서 저지른 제멋대로의 행동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성하다고 믿었으며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신을 신이라 여겨 신처럼 행동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처벌을 내렸다. 그는 단지 '어리석은' 사람이었지만 그 어리석음은 권위적이고 위험했다. 신처럼 행동하기 위한 사치스런 소비로 황실 금고는 금세 바닥났으며 스스로를 위한 신전을 세우고 사제들과 제물을 엄선하였다. 일부의 아첨꾼들을 빼면 칼리굴라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 그를 환대하던 박수소리는 이미 가라앉은지 오래였으며, 황제 자리에 오른지 4년째 통치는 이미 티베리우스의 압제만큼이나 포악해져 있었다. 칼리굴라는 결국 그의 근위대장을 위시로 한 공모자들에 의해 찔려 죽음을 당했다.



칼리굴라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재능을 보이며 정상 상태를 유지할 때도 있었지만 정신이 늘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정신적인 문제는 즉위 직후 앓았던 심각한 병의 결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병이 뇌염이었다면 그의 생활방식이 그처럼 기괴해지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아버지인 게르마니쿠스로부터 물려받은 간질병의 기질이라는 가정이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그는 불면증과 갑작스런 기절 증상을 겪으며 자랐던 것이다. 또 즉위 직후의 발병 전에도 정신분열증이나 뇌염 후 증후군와 증상이 비슷한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보이며 만성 뇌 증후군 때문에 정신적 손상이 초래되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현존하는 근거로 칼리굴라의 광기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그의 정신적 혼란이 기질성 질환에서 비롯되었다는 추측은 상당히 타당하다.



네로 Nero

네로는 율리우스-클라우디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가장 악명 높은 황제로, 원로원에서 국가의 적이라 선언한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후대 사람들은 네로에게서 사악한 인간, 나아가 반(反) 그리스도주의자의 전형을 보았다. 역사가들 중에는 네로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좀더 공정하게 편견을 버리고 접근하면 네로의 통치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며 네로라는 인물 자체도 어느 정도 인정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그는 부도덕한 성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불안정 증세도 보였다. 그는 취미가 비슷한 부랑자들과 어울려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금품을 빼앗고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이는 네로의 조언자 부루스가 죽고 현명한 세네카가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사악한 티겔리누스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한 까닭에 네로의 통치가 본질적으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이라고 추측된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열성적이고 고집이 셌으며 야심을 가득 품고 음모를 꾸미는 여인이었다. 네로는 자신의 사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그녀가 배를 타고 나폴리 만을 건너다가 가라앉도록 일을 꾸미기도 했다. 그후에도 이혼까지 감행하며 결혼하려 했던 포파이아가 죽자 그녀를 닮은 노예 출신 젊은이 스포루스를 보고 그를 거세시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는 등 점점 더 변덕과 열정의 지배를 받는 삶을 이어나갔다. 그는 통치권을 사적인 쾌락에 이용했으며 공적인 책무는 신하들에게 떠넘겼고, 연극과 전차 경주에 대한 애착은 거의 강박에 가까워 국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귀족 계층보다는 노예나 서민들에게 적합한 활동에 열을 올리는 황제의 태도는 원로원의 질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으며,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의 유별난 취미와 습관보다는 이를 있게 한 근본적인 불안정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



최근 역사가들의 주장대로라면 그가 취했던 방법은 '인기를 얻기 위한 과시벽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억압'의 혼합체였다. 네로는 여론과는 담을 쌓은 채 아첨에 빠져 더욱 더 환상의 세계에서만 살았고, 거대한 자신의 동상도 세웠다. 64년, 원형 대경기장 전차 경주에서 그를 살해하려던 음모가 밝혀지면서 황제의 편집증적인 의심은 더욱 강해졌으며 원로원의 적의는 위협적인 수준에 달하게 되며 늘어가는 세금에 대중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이러한 불만의 소리들이 제국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군사령관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원로원에서는 그를 국가의 적이라 공포하였다. 결국 그는 피신 끝에 기병대의 도움으로 자결하며 최후를 맞는다. 숨을 거두면서도 네로는 "이렇게 한 예술가가 사라지는구나"라고 중얼거리며 무덤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표했다.



네로가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불안정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그의 몰락은 정신적인 균형 상실보다는 부도덕한 삶과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네로의 악덕, 그의 변덕과 횡포는 거의 비정상에 가까운 정신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유전적 특징들은 정상에 가깝지는 않았다. 감정적인 면, 예컨대 포파이아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 보면 그는 정신병질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본질적으로 정신병질자의 특성이라 할 만한 면들이 있었다. 그가 정신분열증을 앓았을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다. 적어도 네로가 인격 장애의 영향으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분명하다. 티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미치지는 않았는지 몰라도 완전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를 비롯해 그 후에도 여러 로마 황제들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각기 다른 형태의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권력 때문에 티베리우스와 네로는 폭군 행세를 할 수 있었고 칼리굴라와 코모두스, 엘라가발루스는 신성한 지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은 마약과도 같아서 권력에 중독된 자들은 권력의 노예가 된다. 그리하여 황제들은 시야가 흐려지고 판단력이 왜곡되고 직관이 무뎌지면서 그들의 광대한 세력 범위에 속한 백성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겁에 질려 복종하고 국고는 끊임없이 약탈당하고 무고한 남녀들은 고문과 죽음에 시달리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중세의 3대 비극



영국의 중세 왕들은 종교적 전통 속에서 성장하여 관습에 따른 책임과 대관식에서의 선서로 제한된 권력을 갖고 있었다. 천부적인 역량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등 자신들이 져야 하는 책임을 대체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세 영국 왕들은 각각의 시대 환경에 따라 당대의 귀족들과 경제적, 정치적 불안 등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어느 정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내란으로 통치에 혼란을 겪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왕들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존 왕과 에드워드 2세, 리처드2세 그리고 헨리 6세이다. 이 중 리처드 2세와 헨리 6세는 미성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이 점은 그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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