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불사른 사람들 - 명인열전
이수광 지음 | 시아출판사
제1부. 이향里鄕을 노래한 예인藝人들
신분을 넘어선 소리의 명인 - 가중호걸歌中豪傑 권삼득權三得양반이 광대로 전락하다: 권삼득(權三得)은 조선조 정조때 태어난 사람으로 본명은 사인이다. 삼득은 훗날 그가 세 가지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별호처럼 붙여진 이름이다. 권삼득은 처음에 사람의 소리를 얻었고, 두 번째는 쇠의 소리를, 세 번째는 짐승의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높이 받드는 사람들 중에는 '삼득'이 처음은 사람, 두 번째는 귀신, 세 번째는 하늘의 소리라고 하여 그가 도달한 소리의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권삼득은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권래언(權來彦)이라는 몰락한 양반으로 안동 권씨였다. 양반이기는 했으나 몰락했기 때문에 권삼득의 집안은 중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권삼득은 어릴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소리에 빠져 있었다. 그는 마을에 소리꾼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귀를 기울이고 밤중에 몰래 들은 소리를 기억하여 따라 부르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남도의 유명한 소리꾼이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을에 행세께나 한다는 양반의 회갑연이 벌어져 근동의 양반들이 모두 초대됐다는 것이었다. 회갑을 맞은 양반의 집에서는 잔치가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대청에는 당상관의 벼슬을 지내 옥관자(玉貫子)를 늘어뜨린 양반들이 앉아 있고 차일을 친 마당에는 향반(鄕班)들이 술상을 앞에 놓고 앉아서 흥겹게 술을 마시면서 파안대소하고 있었다. 소리꾼은 마당에서 한창 소리를 뽑고 있었다.
권삼득은 초라한 옷차림으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담장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리꾼은 신명이 지펴서 온갖 몸태를 섞어 흥겹게 소리를 뽑고 있었다. 좌중에는 웃음기가 번지고 여인네들은 얼굴을 붉혔다. 춘향이 이몽룡을 업고 사랑에 넘쳐 부르는 노래였다. 소리꾼은 마치 제가 춘향이라도 된 듯이 간살스러운 목소리로 열창을 하여 사람들의 혼을 빼내고 있었다. 고수가 북을 치면서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을 때마다 권삼득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소리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리꾼은 절창을 뽑아대고 있었다. 권삼득은 소리꾼의 유장한 소리에 감동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들어온 어떤 소리와도 달랐다. 권삼득은 소리꾼의 연희가 모두 끝나자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제법 소리를 한다고 자부했으나 양반의 집에서 절창을 하고 있는 소리꾼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권삼득은 사람들에게 불려 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왔었다. 그러나 그의 소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 권삼득은 마치 새로운 소리의 세계에 접어든 듯했다. 권삼득은 다시 소리꾼이 있는 양반의 집으로 향했다. 그 자신도 몰락한 양반이었으나 소리를 배우고 싶었다. 소리꾼은 고수와 함께 나귀를 타고 가고 있었다. 권삼득은 무엇에 홀린 듯이 그를 따라갔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가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는 양반인 것 같은데 어찌 소리 하는 사람을 따라오는 게요?" "어르신, 소인은 소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소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엄연히 반상이 다른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양반이 소리를 배우겠다는 말씀이오? 양반은 소리를 배울 수 없소." 소리꾼은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권삼득은 멀어져가는 소리꾼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권삼득은 소리꾼이 박정하게 거절하자 실망했으나 계속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몇 개의 재를 넘은 소리꾼은 날이 밝아서야 완주읍성의 수구문 쪽에 있는 허름한 초가에 들어갔다. '오늘은 집을 알았으니 내일 다시 오자.' 권삼득은 삼고초려하는 기분으로 매일 같이 소리꾼을 찾아갔다. 소리꾼은 권삼득을 쫓지는 않았으나 소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권삼득은 소리꾼에 대해서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그의 가족이 어찌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객 최 선달이라고만 불렀다. 권삼득은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도 소리꾼의 집 앞에 가서 기다렸다. 그때 소리꾼이 목청을 뽑는 소리가 요란하게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 들려왔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듯이 장쾌한 소리였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수의 기상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그 신비한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그의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권삼득은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권삼득은 자신도 모르게 최 선달을 따라서 소리를 뽑았다. "소리가 배에서 나와야지 목에서 나오는가?" 그때 최 선달의 소리가 뚝 끊기고 벼락을 치는 듯한 호통이 들려왔다. 권삼득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서 소리를 뽑기 시작했다. 그는 최 선달이 자신에게 소리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최 선달은 때때로 대나무 숲 사이로 난 내를 따라 올라가 폭포 아래서 소리를 뽑기도 했다. 그의 소리는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소리를 뚫고 온 산골짜기를 울렸다. 권삼득은 매일같이 최선달의 집을 찾아가 최 선달의 소리를 흉내내면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문에 먹칠을 하다: 최 선달은 득음의 경지에 이른 소리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양반인 권삼득에게 노래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소리의 기본은 알게 되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오. 소리는 양반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양반인 그대에게 소리를 가르쳤다가는 내가 그대의 일가에게 매를 맞아 죽을 것이오." 권삼득은 비로소 최 선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권삼득은 명문세가인 안동 권씨 일족이었다. 그가 소리를 배운다고 하면 완고한 집안에서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권삼득은 최 선달이 소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긴긴 밤을 뒤척이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 미친 듯이 소리를 뽑고 기루(妓樓)와 주막에 가서 술을 퍼마셨다. 권삼득이 매일같이 기루에서 노래나 부르고 술을 마시자 아버지 권래언이 노발대발했다. 사대부의 자식으로 학문을 하여 과거를 볼 생각을 하지 않자 안동 권씨 가문에서도 비루하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권삼득은 부친에게 용서를 구하고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한번 소리의 세계에 빠진 그의 눈에 서책이 들어올 리 없었다. 권삼득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고 소리를 하러 돌아다녔다.
완주는 예향(藝鄕)이다. 당시는 신분사회라 소리를 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겼으나 완주의 양반들은 소리를 좋아했다. 그들은 잔치가 벌어지면 으레 소리꾼을 불렀다. 권삼득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소리를 하자 그의 일가들이 양반의 체통을 잃었다면서 그의 부친을 비난했다. 게다가 중인 집안의 잔치까지 찾아가서 소리를 하자 더욱 분개했다. 권래언은 권삼득을 잡아다가 마당에서 멍석말이를 하여 죽이려고 했다. 일가친척들이 횃불을 밝힌 채, 몽둥이를 들고 삼엄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비로서 차마 못할 일이다마는 가문을 욕되게 하는 일만은 용납할 수 없다. 저놈을 묶어서 몽둥이로 때려죽여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권래언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호통을 쳤다. 권래언의 명령에 일가의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권삼득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잠깐만요. 기왕에 저를 때려죽이시려면 소원이나 하나 들어주십시오. 저는 가문에 먹칠을 하고 불효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린 자식이고 기왕에 죽이실 바에야 소리나 한 자락 뽑고 죽게 해주십시오. 지금까지 저는 가문이 두렵고 아버지께 불효하는 것이 송구스러워 마음껏 소리를 뽑지 못했습니다. 이제 죽는 마당이니 소리나 한곡 원대로 뽑고 죽겠습니다."
권래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소리를 뽑겠다는 권삼득을 보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래언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들의 마지막 소원까지 매정하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권삼득은 탁주를 한 잔 청하여 마신 뒤에 단정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소리를 뽑기 시작했다. 권삼득이 죽음을 앞에 두고 뽑는 가조일곡은 비절(悲絶)하면서도 창저(彰著)했다. 그의 소리가 어찌나 처량하고 슬픈지 몽둥이를 들고 있던 일가의 장정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권래언마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네 목숨을 차마 내 손으로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부자의 연을 끊고 안동 권문에서도 축출한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권래언이 한숨을 내쉰 뒤에 돌아서서 호통을 쳤다. 권삼득은 죽음은 모면했으나 가문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목에서 피를 토하고 명창이 되다: 권삼득은 본격적으로 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명창인 하은담을 찾아가 문하생이 되기를 청했다. 하은담은 최선달과 함께 전설적인 소리꾼이었다. 소리를 공부하는 것은 몇 단계의 과정이 있다. 먼저 소리에 입문을 하는 단계로 우연하게 소리를 듣는 일이다. 소리를 들어 감동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리의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된다. 이 때 소리꾼으로부터 전승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구전심수(口傳心授)라고 한다. 권삼득은 하은담에게서 구전심수를 받아서 소리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권삼득은 산속 깊은 곳의 폭포 앞에서 소리를 독공하기 시작했다. 독공은 하루 15, 6시간씩 소리를 뽑으면서 백 일 동안 피나는 연습을 한다. 폭포에서 장쾌하게 쏟아지는 소리를 능가할 뿐 아니라 갖가지 사물의 소리를 내어야 하기 때문에 백 일을 수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독공을 하는 일은 목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앉아서 소리를 뽑아야 했기 때문에 팔다리가 저리고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소리에는 한이 담겨 있어야 한다.' 스승 하은담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독공은 인내와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권삼득은 독공을 멈추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권삼득은 마침내 무아의 경지에 이르면서 소리를 뽑을 수 있었다. 허상과 집착의 세계에서 벗어나자 그의 소리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권삼득은 피나는 독공 끝에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함부로 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 권삼득은 남도 일대를 유랑하면서 소리를 계속했다. 여러 해가 지나자 권삼득의 소리는 남도 일대에 소년 명창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권삼득은 점점 소리의 달인이 되어갔다. 권삼득도 나이가 들자 어여쁜 규수와 혼례를 올렸으나 소리에 미쳐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아 그의 아내는 베를 짜거나 삯바느질로 연명을 했다. 권삼득은 소리를 하기 위해 한 번 집을 떠나면 몇 달씩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모처럼 집에 돌아와도 아내가 본척만척하자 권삼득은 잠시 무연히 하늘을 쳐다보다가「베틀가」한 자락을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노래가 어찌나 신명이 있는지 권삼득의 아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권삼득은 '권마성(勸馬聲)' 소리제를 응용하여 높은 소리를 길게 질러내는 '판소리 설령제'라는 소리제를 개발했다. 『흥보가』에서 "제비 후리러 나간다"하는 대목과『춘향가』에서 군노사령 나가는 대목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것처럼 호탕하고 경쾌한 가조이기 때문에 신재효는 그의 설렁제를 일컬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의 소리는 천층절벽(千層絶壁) 만장폭포(萬丈瀑布)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같다." 권삼득의 소리가 가중호걸(歌中豪傑)이라고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소리를 위하여 양반이기를 포기했다. 집에서는 축출을 당했으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오로지 소리의 명인이 되기만을 원했다. 그의 소리는 인간의 원초적인 원과 한을 담는 경지를 뛰어넘어 득도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권삼득은 노년이 되어 고향 완주로 돌아와 후배 명인들에게 소리를 전수하다가 사망했다. 그는 많은 후배 명인들에게 소리의 진정한 세계를 보여주었고 그의 소리는 전도성, 송만갑 등에 의해 방창되었다. 하은담, 최 선달, 우춘대가 전설의 시대 명창이라면 권삼득은 8대 명창 시대에 선두에 있는 국창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화폭에 담다 -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조선시대 삼원(三園: 오원 장승업,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을 일컫는 말)으로 불리는 천민 출신의 천재 화가 장승업처럼 기행과 일화로 유명한 드물다. 그는 출신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신비한 인물로 불렸으나 그림만은 일절로 불릴 정도로 빼어났다. 장승업은 1843년에 출생했으나 어릴 때 부모를 잃어 고아로 떠돌았다. 그가 태어나던 시기는 양반사회가 급격하게 붕괴되고 역관과 중인, 천민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다. 장승업은 지전(紙廛)에서 환쟁이 종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지전의 주인은 그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벽지에 그리는 그림은 지전의 종들이 그렸기 때문에 조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전에 따라 명품 벽지를 팔기 위해 종들에게 필법(筆法)을 철저하게 가르친 주인들도 있어서 지전의 종들 중에 화가로 대성한 사람들도 있었다. 장승업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백단팔도」를 모필했다. 오랫동안「백단팔도」를 모필하면서 장승업은 상당히 우수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장승업은 지전에서 벽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전에서 나온 장승업은 역관 이응헌(李應憲)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했다. 이응헌은 비록 중인에 지나지 않았으나 추사 김정희와 교분을 나누고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받았을 정도로 서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 머물고 있는 화가들이 술과 밥만 축내는 것을 보고 심술이 나서 심통을 부리고는 했다. "이놈아, 뭘 그렇게 시부렁거리고 다니느냐?" 이응헌의 집사가 장승업을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저놈들은 모두 밥버러지입니다. 주인 어른께서 그림을 그리라고 불렀더니 허구 헌 날 술이나 처먹고 밥이나 축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화가라면 하루에 열장이라도 그리겠습니다." "이놈아, 그림이 그렇게 마음대로 그려지는 것이더냐?" "정말입니다요. 못믿으시겠으면 한번 그려 볼까요?"
장승업은 병풍에 있는 그림을 한 번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여덟 장을 그려냈다.「영수세이도(領水洗耳圖)」였다. 「영수세이도」는 양반가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용으로 병풍에 그려 넣는 그림이었다. "호오! 누가 너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었느냐?" 집사가 놀라서 물었다. "가르쳐 주기는 누가 가르쳐 줍니까? 이까짓 것두 배워서 그립니까?" 장승업이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네가 신동이냐? 그림을 배우지도 않고 어떻게 이렇게 그린다는 말이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그림은 조금 볼 줄 안다. 조금만 배우면 웬만한 환쟁이는 뺨치겠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서 사인(使人) 노릇을 하면서 화가들의 필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응헌의 집에는 시인묵객들이 자주 출입을 했고 그의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적지 않았다. 장승업은 이 화가들의 수발을 들면서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장승업은 눈썰미가 뛰어나 화가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면서 그들이 붓을 놀리는 법과 채색법을 배웠다.
그는 이응헌의 집에 있는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모필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가 오고 있었다. 장승업은 마땅히 할일이 없었기 때문에 방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한창 그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안채에서 심부름을 다녀오라는 전갈이 왔다. 이응헌은 장승업이 심부름을 간 뒤에 우연히 장승업의 방에 들렀다가 그가 그리던 그림을 발견했다. "이것을 네가 그렸느냐?" 이응헌은 장승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