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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통일정책연구팀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뭉치면 죽는다



통일은 감정이 아닌 생존의 문제



독일 통일은 실패했다 /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니다!


독일이 신음하고 있다. 지금 독일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동서독 지역 간의 반목과 갈등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독일 통일'이라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독일이 동독을 돌보느라 경기부양 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개선될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독일인들은 놀랍게도 다음처럼 절규하고 있다. "독일 통일은 실패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가? 혹자는 근본적인 잘못으로 졸속이었던 동서독 화폐의 1:1 교환과 임금 균등화, 동독의 사회보장 시스템의 무분별한 인수 같은 경제적인 실책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서 간의 심각한 사회적ㆍ문화적 갈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실 현재 독일의 모든 갈등의 기원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했다는 데에 있다.

통일 이후 새로이 가혹한 분열을 경험하면서, 독일인들은 동독인들의 인성과 서독인들의 인성이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독일인들은 14년간 1조 2,500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동독 지역에 쏟아 부었다. 이것은 조세와 자금 지원의 형태로 서독 지역에서 동독 지역으로 이전된 결과이다. 그러나 동독인들에게서 돌아온 것은 독일 정부에 대한 더 많은 복지 요구와 폭증하는 불평불만이었다. 독일인들은 곧 여기서 자신들이 그렇게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이고, 이상적인 제도를 시행하고서도, 통합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볼프강 엥글러(Wolfgang Engler)는 '노동자적 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평등', '공동체 지향적'이라는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현실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동독이라는 사회주의 국가는 이념적으로는 원래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사회(Arbeiter Geselschaft)였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독일인들은 이 말의 현실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동독은 실상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적 사회(Arbeiterliche Geselschaft)였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회에서의 노동자는 실생활에서 노동의 유인이나 성취동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의 불평등한 현실을 만회하기 위해 수입 좋은 여자나 찾아다니는 한량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이들이 평등에 민감하고 공동체 지향적 존재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주는 또 한 사람은 동독 출신의 정신과 의사였던 마츠(Hans Joachim Maaz)이다. 마츠는 공산주의 사회 같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공포를 먼저 학습하며, 주위로부터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진실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환경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학습해 나간다고 했다. 결국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동독의 주민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평등, 즉 나와 남이 다른 것(예를 들어 시장에서 서독인이 동독인보다 우월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외부의 인간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겪고 난 후 이제는 동독인들만이 아니라, 서독 지역의 사람들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왜 독일인가

독일을 통해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을 상당부분 엿볼 수 있다. 1945년 독일 제3제국이 패망했을 때, 비로소 전승국에 의해서 서독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이식되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도 전승국에 의해 두 제도가 이식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에도 양국은 상당히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분단의 상대방인 동독과 북한의 경우도, 양국 모두 소련의 점령으로 사회주의가 강제로 이식됨으로써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양국 모두 모범적 사회주의 국가로서 존재해 왔다.



우리는 독일에서 통일 한반도의 우울한 미래를 본다. 독일의 실패는 우리가 직면해야만 하는 통일의 장애물들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고 뿌리 깊은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서로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독일 통일은 현재 독일에서 사회불안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참고로 '기능론적 통일전략'은 양국 간의 교역과 교류가 상호 의존도를 높여 전쟁과 갈등을 서로 회피하고 이것이 자동적으로 통일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는데, 이것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러한 순진한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내고 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일까

독일 통일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분단 이후에 남한과 북한이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한반도 통일 이후 남한에서 한 것처럼만 하면 북한에서도 '한강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엥글러가 말하는 그 한량 같은 노동자상과 마츠가 말하는 자신의 적응 실패의 책임을 사회와 국가에 돌리는 감정정체적인 북한인의 모습을, 극단적인 예로 탈북자 지원정책의 실패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다는 것만은 아니다. 이 말은 역사적ㆍ사회적ㆍ문화적으로 공감대를 이룬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간에는 통일 이후에 가장 큰 공감대를 이루어야 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마저도 결여되어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상징만이 존재할 뿐, 가치관과 체험 등에서 어떠한 공감대도 없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이 남한 사람들을 만날 때, 둘 사이에는 어떠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민족으로서 어서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론만을 되뇌일 뿐이다. 또 현재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북한의 광신적인 주체사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도대체 북한과 남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가 몇 가지나 될까? 남북한 사람들의 정신을 해부해 보면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남한과 북한이 과거에 한 국가를 이루었던 한 민족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민족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다른 가치와 문화, 사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언어와 외모를 빼고 나면, 나머지에선 같은 점이 거의 없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만이 우리를 묶고 있을 뿐이다.



통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한반도 전쟁의 위협을 상당 부분 감소시켰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일 플랜은 '3단계 통일 방안 - 햇볕정책을 통해 확인되고 증진된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연합단계를 거쳐서, 연방국가를 이루고, 최후로는 1국가 1체제의 통일한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이렇게 교류와 협력을 진행시키다 보면 자동적으로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식의 접근은 더 이상은 용인되지 않게 되었다. 독일 통일의 예를 통해 한국은 북한이 붕괴한다고 해도 북한을 접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통일 후 북한 재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우리는 독일의 예에 따라 매년 GNP의 4퍼센트 정도를 몇 십 년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후발 산업국인 한국 입장에선 자원의 전략적인 집중과 선택을 통해 선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개발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을 개발시키기 위해 자원을 분산하면 남한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잠식되고, 그 결과 남북한 경제가 동반 붕괴할 가능성이 짙어진다. 세계화 시대에서 답보는 곧 시장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기에는 더 깊은 차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이 북한을 지원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사회주의적 인성이 그 모든 것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없는가

그렇다면 남한은 북한을 적당히 현상유지만 시켜가면서 통일을 방기해야 하는가? 물론 절대 그럴 수는 없다.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미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기초로 해야 한다. 여기에 북한이 동의하고 이를 수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세계화는 한 가지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전환에 대해 관찰함으로써 한 가지 유익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필요성을 스스로 절감하지 못하고 타력에 의해 마지못해 시장개혁에 나선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의 국가는 예외 없이 극심한 국가 위기에 봉착했지만,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적응해나간 헝가리, 폴란드 등의 국가는 몇 년간의 경기 후퇴가 지난 후 적어도 체제전환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시장개혁이 성공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교류와 협력이 아니라, 세계화 등 절박한 외부 환경에 직면하여 북한 스스로 변화해야만 한다는 위기감을 일깨우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본주의 세계 속의 일원으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것 등이다. 더군다나 현재 벌어지는 한심한 '한 건주의'식 지원과 복수 중복 지원으로 북한 정부에 이용당하는 형태는 절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에 대한 연구에서 확인한 것은 한국의 이상주의적 햇볕정책론자들에게 들려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뿐이었다. 마치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이 통일 때문에 지르는 비명처럼, 아무 대책 없이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거기에는 남북한 공멸만이 있을 뿐이다. 남북한은 한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르다. 모든 일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이 이질성을 무시하고 같은 민족이니까 무조건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남북한이 뭉치면 함께 죽는다."라는 한마디뿐이다.



북한을 보는 눈을 바꾸라



북한에는 노동자가 없다

이 장은 이 책의 핵심이다. 우리는 여기서 소개하는 엥글러(Wolfgang Engler)와 마츠(H. J. Maaz)의 이론을 통해 독자들이 북한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존의 사회주의의 보편적 개성에 대한 노동관계적 측면의 결론은, 사회주의 국가의 주민들은 평등과 공동체 지향이라는 허울 뒤에 도사린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즉 이기심의 발현과 국가의 과도한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생산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가 사라져서, 노동은 기피하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요구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요컨대 개인적 측면에서 이런 사회주의 인민들이 노동을 기피하고 과도하게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체제 비효율과 모순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츠와 엥글러는 동독 사회를 자세히 연구하면서 이에 관한 매우 새로운 차원의 이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선 마츠는 사회화 과정 속에서 동독의 국가와 사회, 단체들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개인에게 각종 시혜적 사회 보장을 제공하면서도, 주민들을 체제에 순응시키기 위해 공포와 위협을 주로 사용했다. 개인은 공포와 위협에 순응하면서 국가가 베푸는 시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이런 체제하의 인간은 '정신적 미성숙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부연 설명하면 마치 아기가 어머니에게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듯이 국가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도전정신을 전혀 키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츠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권위주의적 천진난만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엥글러는 이런 미성숙한 인간들이 모인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노동으로부터 멀어져 가는지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엥글러는 '노동자적 사회'라는 동독 사회의 개념 정의 속에서 '그저 되는 대로 소극적으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그들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그저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욱 큰 신분ㆍ경제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예증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이런 소극적 무관심이 노동 현장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 만연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91년, 이런 동독이라는 사회가 붕괴했다. 이제 이런 미성숙한 인간들이 살벌한 자율경쟁 속에서 경제개발을 이루어낸 서독인들과 하나가 된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이런 이질적인 사람들에게 닥친 통일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전혀 몰랐는데, 그런 상태에서 모든 문제는 현실화되고 말았다. 통일 독일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독인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이들의 불만이 점차 사회문제화 되었고 국가경쟁력은 나날이 급락해 갔다.



마츠는 구 동독인들이 갖는 불만과 좌절, 소수자 공격 같은 퇴행적 병리현상을 감정정체이론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생활환경에서 습득된 구 동독인들의 미성숙한 인간성이 통일 독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경제에서 낙오된 원인을 자신들의 노력과 책임 부족으로 보지 않고, 서독인들의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표현할 길이 막혀 있기에, 엉뚱하게 국가에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내는 것(결핍증후군)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통독 이후의 새로운 심리적 동서 분단 -'오시 Ossi(동독인을 부르는 말)'와 '베시 Wessi(서독인을 부르는 말)'로 대변되는- 이 이것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상 엥글러와 마츠의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동독을 배경으로 하는 것들이지만 거의 그대로 북한에 적용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두 이론은 한국 상황에 매우 절실하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탈북자들에 대한 국내 정착 지원정책의 실패이다. 정부가 의욕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의 남한 내 정착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이 정책은 실패 사례로 판명이 나게 됐다.



엥글러가 제시하는 몇 가지 착상을 북한에 적용하여 아래와 같은 노동과 노동조직, 노동과정에 관한 몇 가지의 가설적 명제를 전개할 수 있는데, 먼저 노동의욕과 노동의 질에 대해 살펴보면, 북한 노동자의 노동 의욕에 관한 평가는 상반되고 있다. "노동의욕이 강하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일하기 싫어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상당수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생산성은 전반적으로 아주 저조하여 프로젝트 추진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 기업인과 기업들(특히 건축 공사에서)은 중국 회사에 발주시키는 경향이 늘고 있다.



다음 대량생산체제와 실업 문제에 대해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이론가와 정치가들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는 '실업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 현지인을 경험해본 유럽인, 특히 독일인들은 북한에 "수많은 잠재 실업자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다. 흔히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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