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비결
세바스티안 라이트너 지음 | 들녘
1. 배운 것은 배운 것이다10년 배워도 외국어를 못하는 이유: 생선이 머리부터 썩듯이, 사람들도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그 책임은 학문을 스스로 공부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무능력한 교육학에 있다. 학교에서 10년 동안 외국어를 힘들여 배우지만, 외국에 나가면 거의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교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제도의 맨 위에 계신 분들, '가르치고 기른다'는 뜻의 교육학을 가르치고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있다. 그래도 오늘날 상당수의 교사들이 어느 정도 참을 만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교육학이 수백 년 동안 성실하게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이들은 분명하고 알아듣기 쉽게, 확실하고 이해가 잘 되게 이성적으로 설명을 한다. 영화나 사진을 활용할 줄도 알고, 수업을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구성하며 종종 농담을 섞을 줄도 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학이 그 선에서 만족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하기: 미래에는 죽는 날까지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강등'된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힘들어하며 자신을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그들이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40대, 50대에도 공부는 생존의 절대 필요조건이 될 터이다. 교육학자들은 연설을 할 때마다 '평생교육'을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학자들이 성인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50세까지 교육의 의무를 지우게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무지한 환상이다. 그러려면 성인의 반은 교사가 되어서 나머지 성인과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거기에 필요한 교사를 양성해야 할 텐데, 그럴 경우 공장과 사무실은 사라지고 학교만 남는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교사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면 된다. 자아학대라고 여겨지는 그런 공부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면 된다.
망각되는 것은 없다: 진화의 단계가 높은 동물일수록 본능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개체 학습과정의 결과인 적응이 차지한다. DNA에 유전된 기록말고도 개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한, 그러니까 학습한 정보가 기록된다는 가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장기기억에 무엇인가 저장될 때 뇌세포에 화학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이 변화는 (외적인 자극에 대해) 유전정보만큼이나 (아니면 거의 그만큼) 저항력이 강하다는 증거도 있다. 그곳에 한번 기록된 것은 뇌세포가 살아 있는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사소하게 보이지만 학습의 본질을 이해할 때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 학습을 좌지우지하는 우연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습은 우연히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배우기로 작정한 것을 배울 수 있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의지에 달려 있다. 의지란 또 무엇일까? 의지가 굳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런 표현을 보면 의지 역시 특별한 종류의 지식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의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때에, 그리고 충분한 강도로 기억하는 능력이다.
2. 망각의 저주망각과의 전쟁: 공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수고스러운 일은 배울 내용을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망각과의 끊임없는 전투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 망각은 파블로프의 개에게도 찾아왔다. 조건화가 끝난 다음, 즉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며 환영하는 학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다음 그 후 몇 번 반복해서 종만 치고 고기를 주지 않자 개는 침 흘리기를 그만두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소멸' 또는'소거'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망각', '잊어버림'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한번 학습된 것이 완전히 잊혀지는 경우는 없다. 과학은 망각이라는 현상, 소멸의 법칙을 수많은 동물실험에서 연구했고 그 결과 완전히 소멸한 경우는 없었다. 몇 달, 몇 년 동안 종소리를 듣고도 침을 안 흘리던 개가 이따금씩 별 이유도 없는데 종소리에 침을 흘렸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자발적인 회복'이라고 하는데, 기억의 완전한 삭제나 진정한 소멸은 불가능하다는 확실한 증거다.
'벼락' 공부와 '나누어서 하는' 공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공부를 많이 하면 나중에 외운 것이 앞에 공부한 내용을 '간섭하기' 때문에(역행억제) 하루에 한 시간, 많아도 두 시간 이상을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이 그를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학습의 법칙을 공부하다 보면 처음에는 무엇이 나쁜지에 관한 것만 배운다. 모든 학습은 학습을 가로막는 방해요소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해야 공부가 가장 잘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가장 큰 골칫거리인 '망각'을 막을 수 있느냐이다. 우리의 실제 경험을 보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다.
1900년경 여러 심리학자들이 장기간 여러 번에 걸쳐 복습했을 때가 한 번 벼락치기로 공부했을 때보다 학습내용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반복을 해야 할까? 과잉학습, 즉 지겨울 때까지 반복하는 훈련은 오랫동안 견고한 지식을 얻기 위한 최상의 학습방법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과잉학습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같은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시간 간격을 오래 두고 공부한다면 어쨌든 좀더 암기가 잘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아무 체계도 없이 무작정 공부하다 보면 무언가는 기억에 남으리라고 믿어야 할까? 이런 체계는 학생이 시간 계획을 정확하게 지킨다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방식도 학습자에게 유익하지 않다. 내용 자체가 이미 친숙하기 때문에 학습의 가장 중요한 동기인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20퍼센트의 기억을 잡아라: 기억에 남는 비율은 겨우 20퍼센트다. 그런데 남아 있는 그 20퍼센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20퍼센트를 확실하게 모셔두고 나머지 안전하지 못한 80퍼센트를 다시 공부하면 될 테니까, 그러고는 또다시 이 80퍼센트 중 20퍼센트를 확실하게 저장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 공부할 내용을 거의 100퍼센트 정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20퍼센트를 알아내는가? 우리는 양극 사이의 타협안을 생각해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내용을 고지식하게 매번 새로 공부하며 지치게 만드는 체제와 시간은 많이 들지만 노력은 적게 드는 방법, 즉 공부할 정보 중에서 확실하게 외운 20퍼센트를 불확실한 80퍼센트에서 반년마다 골라내는 방법을 절충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첫날에도 나중에도 모든 내용을 똑같은 횟수로 반복하는 일을 피해갈 수 있다. 기억에 잘 저장되지 않는 정보만을 자주 반복하고, 다른 것들은 가끔씩 공부하거나 꼭 필요한 확인을 위해서만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묘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제안하려는 '학습카드'법이다. 이 '학습카드'는 한마디로 '모든 사람을 위한 학습기계'다.
학습카드 만들기: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 A4용지 크기의 종이 한 묶음을 준비한다. 이제 그 종이를(아예 여러 장을 한번에 하면 좋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접은 다음 자른다. 그러면 세로 7센티미터, 가로 10.5센티미터 정도의 쪽지가 생긴다. 나는 이제 이 쪽지들을 학습카드로 사용할 예정이다. 그럼 이제 이 카드가 들어갈 카드 상자를 만들자. 상자는 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에 폭이 11센티미터 정도면 좋다. 옆벽의 높이는 카드가 밖에서 보이도록 5센티미터 정도로 만든다. 상자를 다 만들었다면 같은 재료를 가지고 상자의 칸을 만든다. 첫 번째 칸은 옆에서 보면 폭이 1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칸은 폭이 2센티미터 정도, 세 번째 칸은 5센티미터, 네 번째 칸은 8센티미터 정도로 만든다. 가장 뒤의 다섯 번째 칸은 15센티미터 정도 폭이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를 배운다고 치자. 카드 한 장에는 한 단어 또는 한 문장만 적는다. 카드의 앞면에는 우리말을 적고 뒷면에는 이탈리아어를 적는다. 카드를 30개나 40개 쓴 다음에는 그 다발을 우리가 만든 상자의 가장 좁은 첫 번째 칸에 넣는다. 이때, 우리말이 쓰인 앞면이 앞으로 오게 한다. 이제 가장 앞에 들어 있는 카드들을 꺼낸다. 그러고는 우리말을 보고 거기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단어를 기억해본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미 학습과정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카드를 이용한 암기의 기술: 단어를 알면 그 카드는 두 번째 칸에 넣고, 모르는 단어는 첫 번째 칸의 뒤쪽에 넣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단어를 적는 동안 외운 단어들은 즉시 뒤로 미루어 놓을 수가 있다. 이 단어들은 두 번째 칸에 조용히 들어가 있으니 당분간 복습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의도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필요 없는 반복을 줄이는 일이다. 그러면 첫 번째 칸에는 1회 때 기억하지 못한 카드들만 남는다. 그 다음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서 같은 절차를 반복한다. 이런 절차를 30~40개의 단어 중에서 첫 번째 칸에 서너 개만 남을 때까지 계속한다. 아직 남겨진 것들은 아마 개선의 여지가 없는 단어들일 것이다.
학습카드의 장점: 이 학습카드는 외국어의 정확한 발음과 억양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단어의 발음은 사전에 음성부호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카드 뒷장의 외국어 옆에 적어놓을 수도 있다. 이 카드 상자는 단어만 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 글로 쓴 질문에 글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공부할 수 있다. 화학이나 수학 공식, 질병의 증상, 전쟁이나 군주 살해가 일어난 연도, 교통규칙이나 달로 가는 우주선, 무당벌레 다리의 개수와 종류, 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문법 규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문법 규칙을 지나치게 공부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다. 문법 규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규칙의 도움으로 올바른 단어와 문장을 쉽고 빠르게 찾아낼 때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법은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에는 대단히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목적이라도 되는 듯이 이러한 권위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다.
이 카드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 공부할 내용을 작은 부분들로 나눌 수 있다.
* 좋은 교재가 있다면, 공부할 작은 단위 하나하나를(학습기계에서는 '프레임'이라고 불린다) 내용에 따라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
* 학습 속도와 반복 획수를 학생의 지능과 노력에 맞출 수 있다.
* 누구나 자신의 카드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학습카드 역시 학습기계가 받았던 공격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학습기계가 너무 기계적인데다 이해를 도외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암기에 대한 선입견: 많은 보수적인 교사들은 암기를 세상의 유일한 학습방법인 양 중시해왔다. 그밖에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역시 그들만큼이나 교조적으로 이해와 통찰을 통한 학습법을 추종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암기를 혐오한다. 여기서 문제는 학생이 '통찰하며' 배우느냐, '외우면서' 배우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생이 그 내용을 배우는가, 배운다면 어떻게 배우는가, 그리고 나중에도 그 내용을 정말로 기억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암기를 하는 것, 결과적으로는 외워서 잘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암기를 반대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그 방법인데, 암기를 위한 훈련은 영혼을 죽이는 야만적인 폭력이라고들 떠든다. 사실 그들이 흥분하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암기를 반대하는 태도는 엉뚱한 데에 분풀이를 하는 꼴이다.
두 번째 반대 이유는 암기가 통찰이나 깊이 있는 이해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통찰과 이해야말로 학습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암기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교사들의 생생한 수업을 받아도 단순히 암기하는 것만큼의 통찰을 얻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진보적인 교육학자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통찰이라는 것도 정보다. 특별히 중요한 이 정보는 다른 정보들보다 수명이 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생은 언젠가 무엇인가를 이해했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통찰의 내용은 살아 있는 교사의 입이 아닌 다른 매체, 예를 들어 학습카드나 학습기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학습기계보다 교사가 더 낫다는 주장은 대개 학습기계가 잘못 설계되었을 때 나오는 말이다.
이제 정리를 해보자.
* 비록 사람들이 나쁜 방식으로 암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암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암기와 다른 방식과의 차이는 우선 그 성과, 즉 무엇인가를 외워서 할 수 있다는 차이다. 이 목적에 도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지나친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방법이 나쁠 뿐이다.
* 암기가 이해를 방해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억해야 이해할 수 있다.* 통찰한 내용도 연도나 수치와 마찬가지로 공부하고 기억해야 한다. 즉, 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학습에는 반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고, 필요한 복습을 경제적으로 조직할 수 있으므로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3. 성공이라는 연료성공의 경험이 공부를 즐겁게 한다: 성공하려는 시도,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 어려운 일을 해낸 뒤의 기쁨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이 타고난 동기인 '일차적 욕구'인지, 아니면 학습된 '이차적 동기'인지는 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시도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학습을 강화시키는 성취감은 학습 자체에서, 그것도 학습과정의 매순간마다 새로 주어져야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줄 수가 없다. 매순간 학생 옆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의 학습을 장려하는 성공이라면 어떤 성격을 띠어야 할지는 자명해졌다. 언제나 반복되는 작은 만족이 성취되어야 수많은 작은 학습단계들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학습은 짧은 간격을 두고 매번 성공을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부에 대한 흥미와 노동의 매력이 창출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재능, 소질, 나아가서는 천재성까지 만들어내게 된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시간을 결정하라: 공부를 할 이유가 있고, 하겠다는 의지가 굳은데도, 거기에 드는 시간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외국어 공부하기. 결심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하는 능력은 배우고 연습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치지 않고 견딜 만한 학습시간은 보통 15분 정도다. 물론 이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자신에게 알맞은 공부시간을 스스로 측정해보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시계를 15분 후에 올리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