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취급설명서
로버트 쓰치가네 지음 | 북스넛
제1장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는 일본 - 일본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다한심한 관료주의의 나라일본은 '관존민비(官尊民卑)'의 국가다. 관료는 위대하고 일반 국민은 그 아래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평등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았을 때 세계 어느 나라에 가보더라도 일본보다 더한 관료주의 국가는 없을 정도로 일본에는 아직껏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국에서 볼 때는 황당하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와 친구와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 차는 30분도 채 달리지 못하고 교통체증으로 멈춰서야 했다. 자동차 행렬의 앞쪽을 살펴보자 경찰관이 자동차를 세우고 뭔가 체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 차례가 되자 경찰관이 다가와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며 불쑥 운전석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느 나라 면허증을 보여드릴까요?" 나는 비즈니스로 외국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필리핀, 그리고 미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관은 "일본 면허증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몹시 기분이 언짢다는 듯이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교통위반을 하셨습니다. 벌금으로 5천 엔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경찰관의 말은 정중했지만 고압적이었다. 그저 일본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지난 8년간 JICA(일본 외무성의 외곽 조직인 국제협력사업단)를 통해 국제 협력에 관한 업무를 해온 증거도 보여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관의 면허증 조사는 요코하마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경찰관은 미국 면허증을 보여주자 그나마 정중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시골 현懸의 경찰관들은 흐름에 뒤쳐진 사람들로서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도 오로지 일본의 면허증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시대착오라고나 할까. 나는 이러한 일로 벌금을 낸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찰서장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한 번 만들어 놓은 규칙일지라도 언제든지 시대에 맞추어 대응하고 검토하면서 바꿔야 할 것은 바꾸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러한 대응력과 융통성의 부재는 비단 일본의 경찰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교육 기관 등 모든 조직에 뿌리깊이 배어 있다.
서장과의 약속을 확인하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시간이 꽤 걸렸다. 첫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먼저 나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일본에서 운전을 할 때 일본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교통법규위반이라는 사실을 딱지를 끊고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 무면허운전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른 나라의 운전면허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룰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죠." 나는 역설했다. 그러자 서장은 말했다. "물론 룰입니다. 저는 그 룰에 따라 당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한 번 만들어진 교과서는 버릴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U에서는 국가간에 사람이나 물건, 돈,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운전면허증으로 스페인에서 드라이브를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런 마당인데 일본은 글로벌화에 뒤떨어진 외톨이가 아닐까요?" 그러나 서장은 도무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무조건 NO라고 맞서면 꼬리를 내린다나는 문득 일본이 과도한 '관료국가'라는 점을 떠올렸다. 내가 외무성을 거론하자 서장은 룰을 들먹이던 이제까지의 주장을 굽히고 결국 나에게 사과까지 했다. 일본사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피라미드형 종적 권력구조를 엿보는 듯 했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개혁 의식으로 체제를 변화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져 그들은 일본인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종종 상부기관의 위세를 내세우며 일본인에게 협상을 강요해 온다. 그런 면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터득했다. '일본인은 고압적으로 나가면 꼬리를 내린다'라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만큼 다루기 쉬운 상대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 돌아가서 마이클이라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마이클은 여러 나라 사람들과 통상을 벌이는 바이어로서의 입장에서 일본인이 가장 다루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고압적인 태도를 일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 무조건 NO!라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러자 나도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어떤 무역 교섭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이클이 오직 NO라고 말하는 모습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일본의 어느 상사商社와의 협상에서였다. 마이클은 조건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 쪽에서 제시한 조건은 이전 조건들 보다 마이클에게 유리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래는 결국 성립되었는데, 조건은 마이클이 원하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는 나라일본에서는 피해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에서는 피해자의 인권도 보호되지 않는다.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미군 범죄에 대한 조사는 미·일지위협정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본 측 조사권의 한계를 미군도 알고 있기 때문에 입건될 때까지는 일본 측에 신병이 인도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미국측에서 먼저 손을 쓰기도 한다. 오히려 가해자들의 가족이 미군의 상층부에 일본 측의 조사가 너무 심하지 않도록 진정서를 넣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시간을 벌면서 부당한 조사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매스컴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일본에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권리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일까.
1990년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판결문을 발표했다. "범죄 조사 또는 검찰의 공소권 행사는 사회질서를 바로하기 위한 것으로, 범죄 피해자의 이익에 대한 손해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의 권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0여 년 전까지는 피해자나 그 가족이 단순한 '증거품' 정도로 취급당하던 때가 있었다. 재판에도 참가할 수 없는 그들은 억울해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일본의 에도시대(1603~1867)에 사무라이가 자신에게 거슬리는 양민을 베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사정은 다르다. 철저하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2000년 5월, 늦은 감은 있으나 일본에서도 범죄 피해자보호 관련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권리가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현재 사법제도개혁추진본부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다지 진전은 없어 보인다.
평화에 대한 망상2차대전에서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있었던 독일은 전쟁으로 자신들이 상처를 입힌 주변국과 유태인에게 철저한 보상과 응분의 대책을 세워 왔다. 일본은 어떤가. 다분히 이중적인 평화에 대한 표현과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다시 군사력을 키우면서 세계는 평화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망상에 가까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의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망상에 가까운 것인지 당사자인 일본정부와 국민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냉전이 끝난 것은 미국과 소련이 50년에 걸친 싸움을 겨우 끝내고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군사력의 대치를 마침내 끝내고 찾아온 평화에 일본은 무임승차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주도했던 국가가 냉전 시에는 주변국의 안보라인으로 상대적인 덕을 보고, 이제는 다시 군대를 키우며 유엔에서 평화 운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다수의 국민과 정부가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위험성만 부각시켰지, 그들을 기꺼이 평화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편협한 섬나라 근성이라고 자인하는 이 딜레마에서 일본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진정한 공영의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정확한 역사의식과 진정한 평화를 쟁취해낼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말로는 평화를 외치고 안에서는 국방비를 올리는 행위는 결코 주변국의 이해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국기게양을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경시하는 풍조가 있다. 이는 과거 일본이 자행한 소행들에 대한 의식 있는 사람들의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이 비판을 하는 이유를 내정간섭이라고 맞서지 말고 분명하게 반성하고 처신해야 한다. 백 마디 말로 하는 반성보다 한 번의 제대로 된 평화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인의 말은 그야말로 말에 그치는 것이다. 이를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히스테리 환자처럼 보인다.
이웃 나라들에게 할 말과 배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본을 우리는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일본 행적에 대한 뚜렷하고도 분명한 반성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터였고, 그러한 실천 없이 하는 말은 어느 나라도 귀담아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특기인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상대가 문제로 삼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허구적 사죄를 한다. 그러한 말을 항상 들어온 상대방은 '일본인이 그렇게 심한 짓을 했으니 지금의 사죄는 진심이겠지'라며 그 태도를 믿게 된다.
일본은 과연 정신적 독립국인가?중국 심양에서 일본대사관으로 망명을 요구하며 진입해 들어온 탈북자를 중국 경찰관들이 강제로 끌어내는 사건이 있었다. 빈 조약에 의하면 대사관은 치외법권의 장소로서 어떤 이유에서건 해당국의 경찰관이 그곳에 온 방문자를 허가없이 강제로 퇴거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중국이 그 불문율을 깨트린 것이다. 중국은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던 일본인 가토 히로시도 체포했다. 가토는 일주일에 걸쳐 중국 공안의 심문을 받고 겨우 석방될 수 있었다. 일본의 외무성은 이에 대해 항의했지만 무시당했다.
일본에는 외무장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거나 외무 관료에 걸맞은 능력자의 부재라고 생각 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실언만 반복할 줄 알지 진정한 의미에서 주변국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끼친 일본의 해악에 대해 올바른 반성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한 일본은 영원히 아시아의 정신적 속국이 될 것이다.
일본의 교육 붕괴일본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지금까지 이른바 인허가권을 활용하여 해외 대학이 일본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으로 해외의 어떠한 대학에도 접속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대응방법으로는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대학은 제3자에 의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또한 학생들에 의한 교수평가와 강의평가조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쟁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학생이 현재 어떤 강의를 원하는지, 실제 취업현장에 투입되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평가할 길이 없는 것이다. 대학의 형편에 맞춰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지금의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5년 전에는 세계 2위, 지금은 세계 최하위일본에서는 지금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학점호환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점, 학위구축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IMD(국제경영연구소)는 해마다 49개국의 국제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 평가에 의하면 1990년, 일본의 국제경쟁력은 49개국 가운데 톱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2000년에는 순위가 급격히 떨어져서 17위로 하락했다. 이 국제경쟁력 평가와 함께 교육제도가 얼마나 그 나라의 국제경쟁력에 공헌하고 있는지 순위를 매기는 대학교육평가도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1990년에는 순위가 2위였으나 47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47위였다. 평가기준은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이 어떤 식으로 공헌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짊어질 일본 젊은이들의 대학교육은 이제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현재 일본인에 대한 평가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대학은 커리어로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제2장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옛말 - 모든 분야에서 추월당하고 있다
기술 대국에서 기술 퇴국으로한때 일본은 세계 최고의 철강 대국에 오르기 위해 고품질의 저렴한 철광석과 석탄을 수입하여 임해(臨海) 철강단지를 건설했다. 당시의 영국은 자신들의 방식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던 나머지, 19세기 방식만을 고집하여 효율 면에서 일본에 크게 뒤쳐지고 말았다. '기술 대국'이었던 영국이 '기술 퇴국'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이 당시의 영국처럼 기술 퇴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의 일본은 예전의 기술과 제도에 얽매여 있을 뿐, 스스로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국가가 되었다.
호리카와는 일본의 어느 제철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미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런데 호리카와가 회사를 그만두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대형 자동차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사가 미국의 크라이슬러 사와 합병하기 전, 크라이슬러 사는 호리카와가 다니던 회사에 강판 수입을 의뢰해 왔다. 조건에는 강판에 바코드를 붙여달라는 요청이 붙어 있었지만, 그 회사에는 바코드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정보담당실장이었던 호리카와는 즉시 미국에 조사단을 보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그런 무모한 요구는 상대에게 계획을 철회하게 만드는 행위라며 진지하게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회사는 결국 구매 의뢰가 취소되고 말았다.
바코드는 현재 슈퍼마켓이나 대부분의 소매업에 도입되어 있다. 이를 통해 상품별 매출과 재고정보가 컴퓨터로 관리된다. 미국에서는 바코드가 트레이서빌러티Traceability, 즉 추적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강판의 바코드화로 자동차의 강판이 언제 사용되었는지 그 이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제품관리가 필요할까. 바로 사고가 일어날 경우에 대한 대책이다. 사고가 나면 당연히 그 제품의 이력이 문제되어 책임추궁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 빠르게 정보내용이 화면에 표시되지 않으면 관리 시스템의 허술함이 노출된다. 최근 미국의 식품업계는 BSE(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쇠고기의 관리가 소비자들 사이에 커다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 때 추적가능성이 문제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 바코드는 단순한 재고관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일본의 회사가 경쟁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호기심을 잃어버린 일본 기업배송으로 유명한 미국의 페덱스(FedEx)는 화물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작은 서류에서 대형 상품까지 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배송이 가능하다. 일단 의뢰받은 서류(물품)에는 독자적인 코드가 붙여져 현재 그 서류가 어느 지점까지 운반되었는지 배송이력이 컴퓨터를 통해 읽힌다. 배송시기가 몇 시가 될 것인지에 관한 정보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제 제조업과 유통업,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다. 고객의 문제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소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