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욕망
마거릿 크로스랜드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제1장. 운명의 예언 -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1730년의 어느 날, 파리의 한 모퉁이에서 아홉 살 난 여자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마담 르봉이라는 점성가를 찾아갔다. 점성가는 놀라운 예언을 했다. "잔-앙투아네트는 왕의 애첩이 될 것이다!" 잔-앙투아네트는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이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루이즈-마들랭은 자신의 좌절된 야망을 딸을 통해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부류의 어머니였던 것 같다. 예언이 맞든 틀리든 간에 잔의 어머니는 이미 앞날에 대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시대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그녀도 딸의 행복보다는 경제적 안정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었다. 잔-앙투아네트는 신부로서의 미모와 매력을 두루 겸비하고 있었으며, 왕의 여자가 될 거라는 예언이 가족들 사이에서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푸아송 가문의 희망' 혹은 '어린 왕비'라는 별명으로 불렀으며,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로 여겼다.
푸아송 가문의 희망, '어린 왕비'야심가였던 프랑수아 푸아송은 정부 각료들과 한때 동료였던 패리스 형제(당시 권력을 장악했던 네 명의 금융가)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일하던 장 드 라 모트는 그를 아름답지만 행실이 바르지 못한 딸 루이즈-마들랭의 남편감으로 선택했다. 푸아송은 라 모트 가족이 요구한 지참금을 지불한 후 루이즈-마들랭과 1718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당시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했던 섭정관인 필리프 드 오를레앙 공(Phiippe d'Orléans, 루이 14세의 조카)을 비롯해서 여러 귀족들과 고관 대작들이 참석했다. 신혼부부는 파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이곳에서 1721년 첫 아이인 잔-앙투아네트를 낳았다. 그러나 당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잔의 아버지는 성공한 징세권자인 샤를-프랑수아 폴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일 가능성이 컸다. 전기작가들이나 역사가들도 이 소문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했다.
그는 남편과 별거 중인 여인과 두 아이의 뒤를 보살펴주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잔-앙투아네트는 아버지일지도 모를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자랐다. 그는 어린 '조카'가 푸아송 가문에 큰 덕이 될 것임을 예견했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기꺼이 투자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잔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위해서는 지참금은 물론이고, 적절한 교육과 교양을 갖추어야 했다. 잔이 사교계 진출을 위해 다녔던 교양학교에 막대한 학비를 지불한 것은 '삼촌'인 투르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를레앙 공과 그의 방탕한 동료들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불안정한 시대에 태어난 잔-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의 공주들이나 받음직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적절한 남편을 찾다잔은 사춘기를 거쳐 어엿한 아가씨로 자랐다. 1736년 푸아송은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자태를 겸비한 잔이 좋은 남편을 만날 자격이 있다는 걸 알고, 훌륭한 가문의 부유한 남편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아무리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라고 해도 가장 필요한 급선무는 적절한 남편을 만드는 일이었다. 3세기가 지난 현대인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겠지만 당시 모든 아가씨들이 결혼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사랑이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18세기의 사회적 분위기는 남편이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고, 도리어 가십이나 스캔들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이나 혹시 태어날지도 모를 사생아를 정당화시켜 주는 존재였다. 사랑을 위한 결혼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했으며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잔의 절대적 후원자인 투르넴이 선택한 남편감은 자신의 조카인 기욤 르 노르망이었다. 아름다운 푸아송 아가씨는 자신이 국왕의 애첩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운명적으로 정해진 그 '경력'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투르넴 영지 주변의 세나르 숲은 국왕과 그의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사냥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투르넴은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신혼부부는 물론 신부의 부모까지 자기 집에서 함께 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신랑, 신부는 물론 푸아송 집안이나 라 모트 집안 모두에게 매우 흡족한 결혼이었다. 결혼서약이 있은 지 닷새 후 잔-앙투아네트는 생-외스타슈 성당에서 마담 드 에티올르로 변신했다.
제2장. 유혹의 시간 - 내가 먼저 왕에게 접근하리라아름다운 마담 드 에티올르는 백옥 같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다갈색 머리카락은 물론 '환상적인 눈동자'로 알려진 청록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빛에 따라 때로는 갈색으로, 때로는 청색으로 변하면서 잘 치장된 그녀의 모습과 어울려 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녀는 적당한 키에 완벽한 몸매를 갖췄을 뿐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춤과 연기 또한 뒤지지 않았다. 그녀는 멋지게 말을 탔으며, 동물을 사랑했고, 풀과 나무와 꽃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입은 모든 의상에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말재주도 뛰어나서 어떤 이야기나 일화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마담 드 에티올르가 놀라울 정도로 모든 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새로 획득한 지위를 더욱 사랑했으며, 왕의 여자가 되리라는 막연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최소한 의무적으로 섹스를 허락했을 것이며, 실제로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12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이후 그녀는 유산을 되풀이했다.
그녀의 사교 생활은 파리에서나 에티올르에서나 분주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불운했던 집안 내력은 최소한 당시에는 거론되지 않았다. 사교계의 내로라하는 안주인들은 앞다투어 잔을 초대하려고 경쟁이 붙을 정도였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여러 방면에서 교육이 계속되었는데, 여름이면 시골집에 머물면서 많은 책들을 섭렵했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던 사회적 지휘를 획득한 후부터 평온하고 한가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라는 생각을 되새기며 그것이 사실로 입증될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세나르 숲에서 지내는 동안 잔-앙투아네트는 이 전원적인 풍경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숲은 왕이 정기적으로 사냥을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인근 마을 주민들도 모두 나와 왕의 사냥 모습을 구경하고, 사슴 고기를 얻어가곤 했다. 그녀는 눈에 잘 띄는 분홍이나 파란색 멋진 승마복을 입고 4륜마차를 타고 사냥터 주위를 맴돌았다. 왕의 눈에 띄려는 속셈이었으며, 그 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왕이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사랑과 섹스, 왕의 스트레스 해소책루이 15세는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지내온 까닭에 힘든 일을 처리할 정신적 에너지가 충분히 길러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는 모든 에너지를 신체적인 활동 -사냥과 섹스- 에 쏟아부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는 두 살 때 부모를 여의었으며, 불과 3년 후에 증조할아버지 루이 14세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곁에는 '마마'라고 부르던 유모 마담 드 방타두르와 섭정관이던 삼촌 오를레앙 공뿐이었다. 그런데 함께 놀아주곤 하던 삼촌까지 1723년 세상을 떠나자, 그는 불과 열세 살의 나이에 국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 왕의 곁에는 그가 무척 따랐던 카디날 플뢰리(Cardinal Fleury)라는 가정교사가 있었으며, 왕의 친구로 귀족 가문에서 신중하게 선택된 여러 소년들이 있었다. 그 중 두 소년은 왕과 호모섹스로 물의를 일으켜 잠시 추방당하기도 했다. 궁중에는 항상 섹스에 관한 스캔들이 무성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소문은 심심풀이로 여겨졌으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 상황이라고 하기엔 너무 위험하고 우려되는 소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인 젊은 왕의 결혼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극적으로 대가 끊어지지 않은 왕의 혈통은 이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루이 15세 본인이 결혼을 바라고 있었다. 루이 15세는 아내를 맞이하는 일에는 열정을 보였으나 그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은 것 같다. 자기 나이가 열다섯 살인데 반해 신부인 폴란드의 전(前) 왕인 스타니수아프 1세의 막내딸 마리 레슈친스카(Maria Leczinska)의 나이가 스물두 살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1725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1726년이 지나기 전에 왕비는 딸 쌍둥이를 낳았다. 그리고 1년에 한 명씩 아기가 탄생했으며, 1729년에는 마침내 황태자가 탄생했다. 이것은 부르봉 왕가의 혈통이 안전하게 이어질 것을 보장하는 경사였다.
그러나 왕비였던 마리 레슈친스카는 결혼 생활 10년이 지나자 더 이상 임신이나 성관계를 원치 않았다. 왕비는 경건한 마음을 가진 가톨릭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카드 게임, 그리고 수예와 자선 행위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이처럼 한가롭고 조용한 생활은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왕은 친구들과 사냥을 나가는 날이 많았고, 여자를 원할 때면 신하들이 얼마든지 주선해 주었다. 그런데도 루이 왕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침내 공식적인 후궁을 간택했고, 그의 후궁은 다섯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결혼 생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루이 왕의 나이는 약관 25세였다. 그는 용모가 빼어났으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으나 왕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아내와 '정부' 사이에서루이 15세는 마키즈 드 넬의 다섯 명의 딸 중 큰딸인 마담 드 마이(Madam de Mailly)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마담 드 마이는 왕비가 남편에게 제공하지 못했던 발랄함과 쾌활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동생인 마담 드 뱅티미유(Madame de Vintimaille)가 잔인하게 언니의 자리를 가로챈 것이었다. 루이 왕은 여러 해 동안 두 자매와 함께 어울리면서 둘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가족 특유의 기질에 끌렸던 것 같다. 왕의 여성 편력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왕비는 두 자매를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으나 더 기막힌 일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왕의 세 번째 여자는 마키즈 드 넬의 또 다른 딸인 마리-안이었다. 마리-안에게는 실제로 사촌 관계지만 삼촌이라고 부르던 리슐리외 공작 같은 동지들이 많았다. 그녀는 또 최고의 음모가이자 사교계의 마당발이던 마담 드 탕생(Madam de Tencin)과 그녀의 교활한 동생 카디날 드 탕생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했다. 투르넬 후작과 결혼했던 그녀는 후에 샤토루 공작부인이 되었으며, 18세기 최고의 권모술수가로 이름이 남아 있다. 그녀는 왕을 사랑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더 사랑한 여인이었다.
자신을 '상납'하라는 소문을 스스로 퍼뜨리다꿈 많은 소녀 잔은 이제 야심에 찬 젊은 여성으로 변했다. 왕의 정부였던 세 여인이 귀족 직위를 받았는데 그녀라고 못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왕이 찾아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의 야심은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거나 화제를 삼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무르익었다. 그녀야말로 '왕을 위해 준비된 여자'인데 왜 왕에게 상납되지 않고 있느냐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결국 모든 상황이 급격히 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메츠에서 왕이 갑자기 병에 걸린 것이었다. 루이 15세가 병에 걸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건으로 인해 마이 세 자매에 의한 섹스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된다. 즉, 왕이 베르사유로 돌아온 후 마담 드 샤토루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11일 동안 사경을 헤매하다 피를 토하며 죽은 것이다. 이제 왕의 정부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과연 누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인가? 이것은 베르사유 궁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왕의 초대장 - 절호의 기회가 오다루이 왕은 매우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데팅겐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배했다는 비보를 접한데 이어 아끼던 애첩을 잃은 슬픔까지 연이어 맛보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왕이 늘 '마마'라고 부르며 따르던 유모 방타두르 공작부인마저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루이 15세의 곁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왕비만이 남아 있었다. 마담 드 에티올르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는 걸 포착했기 때문에 다른 젊고 매력적인 여인이 먼저 왕에게 접근하기 전에 빨리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런데 1745년 봄, 황태자의 결혼식에서 성대한 파티가 치러질 예정이었다. 베르사유와 파리의 모든 사람들은 불꽃놀이와 춤, 각종 산해진미와 진귀한 술을 기대하고 있었다. 황태자는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듯이, 이제 겨우 열여섯 살로 결혼을 해서 가능한 한 빨리 왕손을 생산하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자손이 빈약한 왕실의 번창을 위해서 였다. 스페인의 마리아-테레사 라파엘 공주와의 결혼식은 1745년 2월 베르사유 궁 안에 있는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결혼식 피로연은 오순절 화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마담 드 에티올르도 다음과 같은 초대장을 받았다. "폐하의 명령으로 당신을 2월 24일 샤토의 무도회에 초대합니다. 폐하께서 당신의 참석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점성가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다무도회는 성장(盛裝)을 해야 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다. 여성들은 땅에 끌리는 긴 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묶어야만 했다. 파티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궁전 가까이 있던 오페라 극장에서는 가면무도회가 개최되었다. 루이 15세는 황태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파리 시에서 특별히 마련한 빌 호텔에서의 가면무도회에 더 마음이 쏠려 있었다. 루이 15세는 아들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늦게 무도회장에 도착했다. 무도회장에 들어선 루이 15세는 자신의 관심을 끌려는 수많은 여인들에 의해 둘러싸였다. 에밀 캉파동은 이렇게 묘사했다.
"왕은 짓궂고 재치 있는 가면으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한 여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왕은 그녀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여러 번 청했고, 결국 그녀는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고 나서 그녀는, 왕이 세나르 숲의 사냥에서 보았던 아리따운 여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알아보자마자 다른 사람들 틈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왕의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리 가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마담 드 에티올르는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일부러 떨어뜨렸다. 루이 15세는 재빨리 손수건을 주웠으나 멀리 떨어진 그녀에게 직접 건네줄 수 없자 가능한 한 정중한 태도로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그것을 던졌다. 그 순간 마담 드 에티올르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모든 여성들은 실의에 빠졌다."
루이 15세는 아이앵 공작을 동행하고 일반 마차를 불러 마담 드 에티올르와의 밀회 장소로 가곤 했다. 왕은 투르넴 영지로 직접 가서 잔-앙투아네트를 만나거나, 시종인 비네가 그녀를 베르사유 궁으로 은밀히 불러들여 머물게 했다. 이 가슴 설레는 밀회는 철저하게 비밀리에 행해졌다. 때로 궁중에서 왕의 소재가 파악이 안되는 경우도 발생했으며, 왕은 다른 사람과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 그녀를 동석하게 하거나 둘만의 식사 시간을 따로 갖기도 했다. 강력한 사랑의 힘에 사로잡힌 왕은 마담 드 에티올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마침내 1745년 4월 중순, 왕은 그녀가 베르사유 궁에 머물도록 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