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2018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 나무생각
<우리의 미래>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우리 모두가 예측할 수 없는 모험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들만 늙어 가는 게 아니다. 모든 민족들이 늙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늙은 유럽의 주민들은 특별한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의 유럽인들은 전보다 더 오래 살고, 더 적은 자녀를 낳는다. 인구의 원동력은 이제 출산이 아닌 사망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사회와 문화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 뒤처럼 흔들리고 있다. UN의 예상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독일 인구가 현재보다 1,200만 명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전 세계인보다 많은 숫자다. 동물의 왕국이라면 이 정도의 번식률은 곧 멸종으로 가는 선고다. 인류학에서는 그런 종을 두고 '살아 있는 죽은 자들'이라 부른다. 즉 이러한 전망은 21세기가 '고령화의 시대(era of population aging)'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출산율 감소 및 평균 수명 연장으로 유년 인구는 감소세, 고령 인구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12세 아동들이 60대가 되는 약 2050년도에는 평균 연령이 남녀 모두 80세가 넘는 83.3세이며, 국민의 중위(Median) 연령이 56.2세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예전 같으면 한국에서 3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노후를 비교적 편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 지금의 고령화 사회에서는 젊어서 일한 시간보다 은퇴 후의 시간이 길어질 상황이다. 그러므로 점점 더 빨라지는 조기 퇴직 바람에 맞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가 주목된다.
사실 변화는 문명사회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연금은 빠듯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정치가들이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지만, 사실 문제는 하나다. 많은 자녀에게 지불될 교육비냐, 많은 노인에게 지불할 연금이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리고 적은 수의 젊은이들과 많은 수의 노인들, 이 두 계층이 분열하는 시간이 탄생할 것이다. 문제는 정치의 계산 착오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계산 착오가 문제다. 즉 우리 생명의 총계를 잘못 계산하는 것이다. 평균 수명은 우리 시대의 핵심 개념이 될 것이다. 기술적 시대가 시작된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현대의 진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전쟁과 내전을 치렀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과 노인이 된 미래의 우리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평균 수명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사회의 다수가 노인이라면 미래 자원은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정신적 위기는 삶과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건강, 가족, 사회복지 부문들은 과도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젊음에 미치던 반反권위주의적이었던 몇 십 년의 가르침을 잊어버려야 한다. 아이들을 조금 더 일찍 학교에 보내고, 노인들을 조금 더 늦게, 전혀 다른 기준에 따라 퇴직시켜야 한다. 지금껏 직선이 지배하던 곳에서 공시성을 만들어 내면서 인생행로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에는 노인의 자의식만큼 필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 앞의 세대는 불안과 공포, 가난과 전쟁의 세계에서 걸어나와 안전과 풍요의 세상에 도달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 시절은 복지와 행복의 시대였지만, 우리가 늙어 가는 지금은 엄청난 불안과 공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인구 통계학적 문화 전쟁으로 기진맥진 탈진하거나 소심해지지 않았다면 우선 노인 차별을 향해 전쟁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1부 고령화 사회의 대두인구학자 피터 심마니는 이렇게 말한다. "2050년에 노인 그룹에 속하게 될 모든 사람들은 이미 태어났기 때문에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확정할 수 있다. 이 계산에 따르면 2000년 6억 6백만명이던 노인의 숫자가 2050년에는 19억 7천만 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연령그룹은, 같은 시기 동안 불과 50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인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의 고령화 현상은 지구촌 어느 국가에서든지 경험하고 있는 21세기의 당면 과제이다. 특히, 선진국형 인구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가 인구의 고령화이다."
'고령화'란 노인 인구의 상대적 증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고령화 사회(高齡化社會)'란 전체 인구에 대비한 노인 인구의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태, 즉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 중에 있는 사회를 가리키며, '고령 사회(高齡社會)'란 노인 인구가 일정 비율로 증가한 어떤 단계에 와서 그 비율이 거의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는 사회를 뜻한다. UN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퍼센트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퍼센트 이상인 사회를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규정하고 있다. 가장 고령화된 사회는 북유럽과 일본으로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5~19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한 나라의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비율이 4퍼센트 미만인 나라를 '유년인구국(幼年人口國)', 4~7퍼센트인 나라를 '성년국(成年國)', 7퍼센트 이상인 나라를 '노년인구국(老年人口國)'이라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 인구 증대의 세계적인 변화 추이와 더불어 개발도상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노인 인구 추이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은 20세기 초까지 고출산, 고사망의 전통적인 특성을 지녔으나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출생률과 사망률이 급속히 감소했고, 198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선진국 인구 구조의 형태로 근접하고 있다. 1999년 말을 기점으로 총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구성비가 7퍼센트를 넘어선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그리하여 2005년 현재 9.1퍼센트를 넘어섰고, 점차 낮아지는 출산율과 사망률을 감안하면 노인 인구의 비율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18년 14.3퍼센트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20.8퍼센트로 본격적인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경우는 고령화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 도래할 고령화 사회에 직면해 나타날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더욱 시급히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 전쟁실제 인간은 진화에게 발을 달아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진화가 너무 더디었기에 인간은 문화를 개발했다. 노인과 노인의 지식에서 독립하고 싶어 7천년 전에 문자를 개발했던 것이다. 그로써 생물학적 특징과 문화사이의 거대한 편류가 시작되었다. 문화는 우리가 조종하는 진화다. 우리 근육이 너무 약해 우리는 바퀴를 발명했고, 뇌가 너무 느려 컴퓨터를 개발했으며, 영혼이 너무 외로워 예술을 발명했다. 이제 우리는 위축되지 않는 강인한 자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문화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1993년 여름, 미국 외교 정책 전략 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한 편의 기사가 실렸다. 정치학자 헌팅턴이 쓴 이 기사는 그 사이 유행어가 되어 버린 '문명의 충돌', 즉 다른 곳보다도 이슬람 세계와 서구 세계의 경계선에서 엄청난 갈등을 불러오게 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다루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헌팅턴의 예언을 21세기 미국 외교 정책의 청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6년 후, 같은 잡지에 실린 또 한 편의 기사는 분명 헌팅턴의 주제와 관련이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사회의 고령화를 다룬 기사였다. 기사를 쓴 사람은 닉슨 시절 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고,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회장인 피터 G. 피터슨으로, 나중에 그는 그 나름의 문화 전쟁을『회색빛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우리나라에서는『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실제 '세대간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화간 전쟁'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즉, 부상하는 근본주의의 위협과 회색빛 황혼의 자체 위기는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산업 국가들의 고령화는 이슬람 국가들을 엄청난 청년물결로 뒤덮고 말 것이다. 1970년대 이란 국민 전체에서 청년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극적으로 증가해 1970년대 말에는 20퍼센트에 육박했다. 그리고 1979년 이란 혁명이 발발했다. 그 이후 다른 여러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계속 현대화 과정이 진행되었고, 동시에 일종의 경제적 시민 계급이 탄생해 새로운 이슬람 청년들을 낳았다. 이 젊은 이슬람인들의 저항 정신은 많은 점에서 1968년 학생 세대의 그것과 닮았다. 서구의 혁명분자들, 버클리, 베를린, 파리 출신의 68세대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퇴직하는 바로 이 순간,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세계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있는 이슬람 중류계층 출신 자녀들이 혁명 드라마의 부활을 외치며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문화권간의 테러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9.11은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다. 이는 또한 내일의 노인들이 다수를 빌미로 젊은층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게 되리라는 상상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투표권을 빌미로 그들을 약탈하려 들 경우 당장 우리에게 저항하려 들 것이다. 젊은층에 대한 약탈이 불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유럽의 특수 상황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대가 해결해야 할 통합과제는 아주 독특하다. 주로 이슬람권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을 유럽인과 통합시켜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과도한 노인 숫자에 놀라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동시에 미래의 젊은 엄마들이 출산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유럽 사회가 파국적 연령 구조로 인해 가치 위기와 자의식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적어도 연간 20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에게 서구의 가치와 언어, 서구식 애국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친(親) 이민정책은 한국에서도 유용한 정책적 대안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구보다 빠져나가는 인구가 더 많아지는 고령화의 충격을 덜기 위한 진통제 역할의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고급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웰컴(Welcome)코리아'보다 '바이(Bye)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급상승하는 바이 코리아 열풍을 막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잔혹한 암흑만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기 불황으로 인해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 산업공동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인력 공동화 현상까지 문제로 드러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할 것이다. 선진국들처럼 외국의 노동 인력을 친이민정책과 같은 제도로 활용해 사회통합 방안을 모색해야 할 이 시점에서 보더라도 현재 한국의 고령화 사회의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방안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세대 전쟁 세대 전쟁은 여타 다른 갈등이나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역사가 가장 깊은 전쟁이며, 수천 년 전부터 심리전으로, 말과 모욕의 전쟁으로만 치러졌기에 가장 현대적인 전쟁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정체성을 파괴해 노인들을 죽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의가 언어와 이미지만 사용한다. 소포클레스의 아들은 법정에서 90세의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에게 똑같은 짓을 한 수많은 다른 자식들처럼 그 역시 그런 말로 가문의 재산을 빼앗으려 했다. 소포클레스는 정신이 온전하다는 증거로 자신이 쓴 비극의 한 구절을 읊어보겠노라 요청했지만, 그의 제의는 거절당했다. 영혼의 전쟁 배후에는 노화와 경제의 갈등이 숨어 있다. 이 갈등은 우리 인간 전체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의 원천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비난하고 살아생전 유산을, 다시 말해 재산의 양도를 노린다. 세대간 전쟁은 거의 언제나 지상의 지옥으로 묘사된다.
19세기 말 연금보험이 도입된 이후, 공격적으로 노화와 경제를 관련시키는 분위기는 점차 사라졌다. 연령 피라미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세대의 협약이 제 기능을 다하는 동안 세대 전쟁의 야비한 경제적 본질은 잊혀져버렸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반드시 경제적 순환에서 퇴출시킬 필요는 없다는 사실마저 동시에 잊혀졌다.
또한 과거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노인은 사회적으로 존경과 우대의 대상이었고,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노인층 인구가 급증하고 경제적 피부양자로서의 사회적 부담이 크게 증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노인층은 과거의 노인에게 제공되었던 충효를 바탕으로 한 공경은 기대할 수도 없는 회색지대(gray zone)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고령화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는 세대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세다.
사회가 늙어가는 고령화 지수[(65세 이상 인구/1~14세 인구) * 100]는 2005년 47.4퍼센트로, 유년 인구 100명당 고령 인구 47명 정도에 해당한다. 그에 따라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부양해야 할 유년 부양비는 출산력 감소로 계속 낮아질 전망이고, 노년 부양비는 평균 수명 증가로 크게 높아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대간 경제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한 예로, 한국에서 1954년부터 1965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후 197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 버스트(출산율이 뚝 떨어지는 현상)' 세대간 전쟁이 일어난다. 두 세대는 현재 40대와 30대로 정치·경제·사회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사회 주역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개혁에 실패한 연금이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표면화된다. 즉 노후의 마지막 보루인 연금의 '파이(크기)'와 관련된 문제이다. 미래의 고령화 사회가 야기할 실상은, 국내 정책은 물론 국제 정치에서도 우리는 집단적 노화가 몰고 올 문제들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될 것이다.
경제적 결과들노인의 비율이 100퍼센트 증가하면 연금 액수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보험료는 2배로 증가할 것이다. 경제 수요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건강 산업과 그와 관련된 서비스업은 급성장하는 반면, 주택 건축과 가구 시장은 위축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고령화 현상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사회적인 수준에서 커다란 도전이 된다. 고령화는 노동 공급 감소와 취업 인구의 노령화를 불러 기업과 국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통계청(2005)은 앞으로 5년만 지나면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 일선에서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하면서 노동력 부족과 노인 부양비용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충격이 클 것이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와 취업 인구 고령화가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첫째, 노동력 구조에서 공급이 부족해지면 기업이 적정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비용이 더 늘어난다. 앞으로는 기업이 적정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해 퇴출될 가능성도 지금보다 많아질 것이다. 둘째, 노동력 고령화는 기업의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보통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제조업 생산직은 첨단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컴퓨터나 사무용 기기, 전자부품,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생산직보다 노동력 고령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문제로 소비 침체를 들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일하는 동안 모은 돈을 소비로 돌리므로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국민 경제의 저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