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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Red, 우연과 필연



주사위를 던지고, 체스 말을 옮기고, 카드를 돌린다. 주사위는 우연의 세계, 체스는 필연의 왕국, 카드 판에서 우연과 필연은 하나가 된다. 고대인은 '운명'의 주사위를 던지며 살았다. 근대인은 거꾸로 우주에서 우연을 추방하려 했다. 신도 놀이를 한다. 이 우주가 실은 신의 놀이판이다. 그가 하는 놀이는 어떤 것일까? 신도 주사위 던지기를 하는가? 아니면 그의 우주는 거대한 체스 판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 주사위

서구에서 주사위 놀이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사위 놀이가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은 로마 시대부터이다. 카이사르(고대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가 남긴 말을 생각해 보라.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 이는 로마인들 사이에 주사위 놀이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카이사르는 주사위를 던져 운명과 놀이를 했고, 놀이에서 이겨 로마의 황제가 된다. '운명'과 더불어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삶은 이렇게 놀이, 때로는 목숨을 건 위험한 놀이였다. 그리고 중세 이후에 서구에서 주사위 놀이는 악덕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를 못 박은 십자가 밑에서 로마 병정들이 예수의 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뽑기를 한다. 정작 성서에 주사위 얘기는 나오지 않으나, 중세인들은 즐겨 주사위로 묘사하곤 했다. 이로써 주사위는 예수를 못 박은 인간의 '죄악'의 표상이 된다.

'주사위' 하면 생각나는 얘기가 있다. 옛날 인도에 한 임금이 있어, 세 명의 현자(賢者)에게 삶에서 운과 이성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물었다. 한 현자는 운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현자는 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세 번째 현자는 운과 이성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했다. 왕은 이들에게 각자 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 오라고 명했다. 삶에서 운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현자는 주사위를 증거물로 내놓았다. 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현자는 체스판을 내놓았다. 운과 이성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했던 현자는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백개먼(backgammon)을 내놓았다. 이 전설은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0세가 펴낸 『다양한 놀이들』(1283)에 수록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아주 오래된 철학적 물음이 담겨 있다. "세계는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우연에 따라 진행하는가?"



예부터 철학자들은 우연을 싫어했다. 그들은 우연하게 보이는 현상들 속에서 필연적인 법칙을 발견하려 했다. 하지만 철학의 이단아들은 달랐다. 디오게네스는 우연을 갖고 놀았다. "우연에는 용기를!"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현존재의 거대한 주사위 놀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다시 우연을 사고하기 시작했다. 철학도 주사위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신학의 영역에서 벌어져 철학으로 옮겨진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의 대립. 오늘날 이 논쟁의 주요한 장은 다시 물리학의 영역으로 옮겨졌다. 닐스 보어와 벌인 그 유명한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부터 이 인식론적 낙관주의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우주에는 우리에게 '우연'으로 봐야 할 사건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관찰에는 우연이 개입된다. 하이젠베르크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 우주는 무엇보다도 우연이 지배하는 혼돈의 세계다. 이런 시대에는 예술도 주사위 놀이를 닮아간다.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은 1미터 길이의 실 세 개를 떨어뜨려 그대로 작품을 삼았다. 초현실주의자 장 아르포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찢어서 떨어뜨려 얻어지는 낱말의 우연한 조합으로 시를 지었다.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는 샘플을 무작위로 배열해 작곡을 했다.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는 케이지보다 200년 앞서 이미 주사위 두 개로 작곡을 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완전히 우연적인 예술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연히 발생한 여러 경우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은 어차피 예술가의 과제로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카오스(혼돈)+코스모스(조화)=카오스모스(chaosmos)'라 할 수 있다. 고대의 신화적 카오스에서 근대의 신학적 코스모스로, 거기서 현대의 예술적 카오스모스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세계다. 혼돈 속에도 질서는 숨어 있다.



체스 판 위의 엘리스 - 체스

체스는 이성적인 게임이다. 아랍인들은 체스와 수학의 접점을 탐구하고, 오일러나 가우스 같은 서구의 수학자도 체스의 수학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성의 놀이도 극에 달하면 광기와 접한다. 체스를 다룬 소설은 종종 이 접점을 다룬다. 가령 루이스 캐럴(Lewis Crro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거울을 통해 체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서 흰색 폰이 된 앨리스는 열한 칸 움직인 끝에 여왕이 되어 게임에서 이긴다. 체스 규칙을 활용한 스토리 설정이다. 체스는 문학만이 아니라 조형의 원천이기도 한다. 마르셀 뒤샹은 청동과 대리석을 이용하여 숙고하는 체스 플레이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리고 체스는 그 자체가 조형 예술이다. 흑과 백 64칸으로 이루어진 체스 판은 현대 예술의 구성을 닮았다. 파울 클레(paul Klee)는 체스 판을 그대로 작품으로 옮기기도 했다.



체스의 말들은 조그만 조각 작품이다. 고전적인 체스에서는 말들이 실물을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체스의 말은 실물을 닮지 않고 점점 구체, 원주, 원뿔과 같은 추상적 형태에 가까워진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체스 말의 역할은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놀이의 규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낱말이 세상의 대상을 닮지 않아도 언어를 가지고 세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스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를 닮았다. 고전 예술이 주로 구상(具象)이라면, 현대 예술의 주류는 추상(抽象)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Orange, 빛과 그림자



자연의 자화상 - 카메라 옵스쿠라

내가 아는 한, 서구에서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 즉 암실 효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고대 철학자는 어느 날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일식(日蝕)을 관찰하던 중 우연히 땅바닥에 반달 모양의 해가 수백 개씩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달에 반쯤 가려진 해가 광원(光源)이 되고, 머리 위의 나뭇잎들 사이로 난 틈들이 구멍이 되고, 일식과 나무 그늘로 어두워진 공간이 자연스레 암실의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고대 철학자는 이 현상을 관찰하고도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에 앞서 암실 효과를 알고 있었다. 11세기의 학자 심괄(沈括)의 『몽계필담』에 나오는 구절이다. "새가 하늘을 날 때 새의 그림자는 땅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창문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그 모습을 모아서 보면 그림자는 새의 운동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에서 다시 카메라 옵스쿠라 현상에 관한 언급이 나타나려면 1천 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13세기에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일식을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 옵스쿠라를 활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암실의 원리를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해낸 최초의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유력자들은 카메라 옵스쿠라를 일종의 놀이로 즐겼다. 먼저 커다란 암실을 짓고 그 안에 객석을 마련한다. 암실 밖에 자연 환경과 비슷한 세트를 꾸며, 거기에 들짐승들을 풀어놓는다. 사냥이 시작되면 작은 구멍을 통해 이 장면이 암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늘날의 영화관 체험과 뭐가 다른가? 아니, 촬영과 영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심지어 오늘날의 생중계에 가깝다.



'카메라(옵스쿠라)'는 원래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카메라'에서 커다란 방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나,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카메라 옵스쿠라'는 글자 그대로 커다란 방이었다.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가 있었다. 그 후 카메라 옵스쿠라는 점점 작아져 17세기에 이르면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상자가 된다. 19세기에 이르러 감광 물질을 이용해 영상을 정착시킬 수 있게 되자, 카메라 옵스쿠라는 오늘날의 사진기로 변모한다.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되자 자연의 영상을 평면에 고정시키는 데에 더 이상 화가의 손이 필요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 위기에서 현대의 추상회화가 탄생했음을 알고 있다. 다른 길로 간 화가들도 있다. 사진을 거부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작품 속에 끌어안는 것이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에 속하는 화가들은 물감을 이용해 아예 사진과 똑같아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 중에는 캔버스에 감광 물질을 발라 그것을 거대한 인화지로 활용하는 작가도 있다. 자연은 자기 자신을 그린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빛으로 그린 자연의 자화상이다.

실루엣의 파노라마 -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는 거의 모든 문명에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한(漢)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1년, 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 서구에서는 그림자극을 '중국 그림자(les ombres chinoises)'라 부른다. 이는 서구의 것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뤼미에르 형제는 이 중국 그림자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발명했다. 영화 자체가 실은 그림자극이 아닌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림자극의 영향은 계속 되었다. 독일의 감독 로테 라이니거(Lotte Reiniger)는 중국 그림자를 곧바로 영화화한 실루엣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이미 영회극(影繪劇)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석가탄신일에 행해지던 이 만석중놀이는 불교음악을 배경으로 한 종교적 내용의 무언극이었다고 한다. 그림자의 속성 자체가 덧없음이 아닌가. 그러니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불교적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는 그림자극이 적격이었을 게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현실을 '표상의 세계', 즉 무상한 이미지의 세계로 보았다. 다시 그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 니체는 "모든 위대한 사상가는 이 세상이 한갓 가상에 불과하다는 위대한 영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자는 예부터 철학의 주제이기도 했다.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저 천상에 있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라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인간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동굴에 갇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놀이를 참된 실재로 알고 살아가는 죄수와 같은 존재다. 동굴의 비유에서 우리는 외려 영화관을 떠올린다. 생생함을 가지고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관도 실은 영사기 위에서 돌아가는 필름의 그림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자기가 직접 본 이미지가 아니라, 점점 더 타인이 본 것의 복제 영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현실은 사라지고, 세계는 점점 더 가상에 가까워진다. 발자크의 말대로 현실 자체가 혹시 그림자극이 아닐까? 종교적 바니타스(vanitas: 인생의 덧없음, 허무함)의 감정은 오늘날 이렇게 세속적인 덧없음으로 바뀌었다.

Yellow, 숨바꼭질



신은 고독하지 않았을까? 이 우주에서 혼자 내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에게는 사탄이 필요했다. 그가 만든 낙원에는 처음부터 뱀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은 매우 무료했을 것이다. 신은 사탄과 내기를 했다. 이 내기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인간들. 무엇이 참과 거짓인지 분별하기 위해 진리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진리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 저것이 참인가? 아니면 참은 늘 보이지 않는 것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인가?



왜곡의 진리 - 아나몰포시스

작년 겨울 베를린의 어느 허름한 화랑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보았다. 전시대 위에 커다란 사전처럼 보이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펼쳐진 책의 페이지에는 글자 대신 두꺼운 먹줄들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져 있다. 마치 바코드를 크게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대체 뭘까? 비밀은 시선의 각도에 있다. 실제로 눈을 페이지 아래에 바짝 붙인 채 비스듬히 올려보니, 놀랍게도 그 먹줄들이 알파벳으로 변한다. '요한계시록'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이다. 이런 것을 아나몰포시스(anamorphosis), 즉 '왜상'이라고 한다. 왜상은 누가 발명했을까? 당연히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그가 남긴 수고록(手槁錄)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는 몇 개의 거친 선으로 그려진 심하게 찌그러진 형상의 스케치가 남아 있다. 이 스케치를 오른쪽으로부터 눈이 그림과 예각을 이루도록 비스듬히 바라보면 거기서 어린 소년의 얼굴이 나타난다고 한다.



왜상은 알아보기 힘든 형체 속에 참모습을 감춘다. 덕분에 왜상은 종교적 진리를 말하거나 정치적 풍자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상이 늘 진지한 것은 아니어서, 후대에는 주로 시각적 조크를 하는 데에 사용되곤 했다. 이는 아마도 18세기에 들어와 왜상을 기계적으로 제작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인쇄술의 발달로 왜상의 대량 보급이 이루어진 사정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민층의 가벼운 오락으로 전락한 왜상은 한동안 유행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런데, 왜상이 최근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아마도 일의적(一義的) 메시지보다 중의적(重義的) 표현을 선호하는 '포스트 모던'의 철학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를 맞아 시각 매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도 왜상이 부활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거꾸로 본 세상 - 물구나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거꾸로 서라. 어차피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으니 곧 지구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만 물구나무서는 게 아니다. 가끔은 낱말이나 문장도 물구나무를 선다. 가령 '곰'이 물구나무서면 '문'이 된다. 뒤집어도 똑같은 말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다시 합창합시다.' 영어에도 이런 장난이 있다. 방금 태어난 이브에게 아담이 자기를 소개한다. 'Madam, I'm Adam." 앞뒤 어느 쪽으로 읽어도 같은 뜻이 된다. 이런 것을 영어로 '팰린드롬(palindrome)', 우리말로는 '회문(回文)'이라 부른다. 글자만이 아니라 때로는 그림도 물구나무를 선다. 하긴, 이미지를 거꾸로 세우는 게 자연의 특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카메라 옵스쿠라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물구나무선 그림들이 있다. 가령 1500년대 후반에 그려진 이탈리아의 괴짜 초상화가 아르침볼도의 작품에선 은빛 쟁반 위에 삶은 돼지와 닭으로 보이는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다. 저 요리 속에는 인간의 얼굴이 감춰져 있다. 이제 그림을 뒤집어보라. 살짝 눈을 옆으로 돌려 당신을 쳐다보는 또 다른 사내의 기괴한 얼굴이 나타날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때로 세상을 거꾸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인류의 업적 중 위대한 것들은 종종 물구나무서기의 산물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수천 년 묵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델을 거꾸로 세워 지동설을 만들어냈다. 철학자 니체도 세상을 뒤집어 이른바 '가치 전도'를 수행했다. 정신과 기술의 위대한 창조자들은 능숙한 물구나무 선수들이다. 그들은 역사가 답보한다고 느껴지는 시기에, 상투적 시각, 고정된 관념을 물구나무 세워 정신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아내곤 했다.



Green,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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