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문국진 지음 | 예담
제1부 병의 의미, 그림의 의미



고대 영웅의 현대적 말로, 혈전증 환자

병이란 신체의 생활 기능 이상으로 장애가 생겨 정상적인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모든 병에는 반드시 발병 이유가 있으며, 그 가운데는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기도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혈액이 응고되기 쉬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혈관에는 혈액이 굳어서 형성되는 혈전(血栓)이 만들어지기 쉽다. 사인 통계상 1위는 암이며 2위는 심질환(心疾患)으로, 그 대부분은 심경색증(心梗塞症)이다. 3위는 뇌졸중(腦卒中)인데, 그 대부분이 뇌출혈과 뇌경색이다. 2위의 심경색이나 3위의 뇌경색은 혈액이 혈관 내에서 응고된 혈전에 의해 유발되므로 이 두 질환을 합치면 암을 훨씬 웃돌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고대인의 경우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1798~1863)가 그린「사자 사냥」(1861)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고대인들은 야생동물을 사냥하여 먹을거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수렵에 생사를 걸었다. 특히 맹수를 사냥할 때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만일 사냥 중에 부상을 입어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 체력의 급격한 저하로 오히려 야수들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많아진다.그래서 부상을 당했을 때 빨리 지혈되는 것은 그 당시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체질이었다.



지혈이 용이한가 여부는 비단 수렵 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도 중요시됐다.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 체질이라면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었을 때 전사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에 출전했을 때 승리를 호언장담할 수 있는 영웅의 최고 자질은 가장 빨리 지혈되는 체질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에게는 자연히 여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녀들과 자유로이 관계를 맺어 슬하에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응고되기 쉬운 혈액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자식들은 또다시 전쟁 영웅으로 대를 이어 생존해 왔다. 과거에는 응고되기 쉬운 유전자를 지닌 체질이 이른바 영웅 체질로 군림했던 것이다. 혈전이 만들어지기 쉬운 유전자는 구미인의 유전자 속에서 약 5퍼센트 가량 발견됐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이 수렵 민족이었으며, 그들은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호전적인 민족의 후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민족에게는 그런 유전 인자를 지닌 사람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낙농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확고한 근거다.



예술의 모태가 된 불안신경증

사람은 위험을 느끼면 우선 경계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의 위험인지 어느 정도로 경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뇌와 신경이 담당한다. 그리고 위험에 대항할 것인지, 아니면 피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그에 알맞은 반응이 나타난다. 이때 그 경계가 지나치면 불안이 생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지나치게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이에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를 불안신경증이라고 한다. 그중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 이상할 정도로 공포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의외로 유명한 예술가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Pablo Casals, 1876~1973)는 단순히 첼로 연주에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명곡을 발굴하여 그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도 재능을 발휘한 위대한 음악가였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무반주 첼로 소나타」와 카살스의 인연은 아주 유명하다.「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오래 전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곡이었다. 그런데 카살스가 그 곡을 발굴하여 연주하면서 고금에 드문 명곡이라는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한 번은 UN 총회 때 각국의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간청에 못 이겨 첼로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때 카살스는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인「새의 노래」를 연주하면서, 그 지방의 새는 "피스(peace), 피스"하고 운다며 새소리를 첼로 음에 맞추어 입으로 흉내내어 청중을 감동시켰다.

그렇게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며 천재적인 첼로 연주자인 그에게 사회공포증이 있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이것은 그런 불안이 재능이나 지위, 업적 등과 같은 현실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코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며 교양이 모자라거나 줏대가 약해서도 아니다. 천재적인 사람에게도 사회 공포는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위험 감지의 예민한 감성이 예술에 대한 높은 감성으로 이어지는 지도 모른다. 즉 불안신경증은 결코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 몸과 마음에 옛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의 표현 양상이 지나치게 드러난 것에 불과하므로 이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를 무시하고 더 중요한 일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울병과 예술, 예리한 감성과 높은 도덕성의 양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울병(melancholia)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울병이란 기분이 상해서 생기는 감정의 손상이며 정신 장애의 일종이다. 그래서 울병에 걸리면 성격이 어두워지고 의욕을 상실하며 희망이 없는 고독감, 피로감, 모든 일에 대한 자책감 등에 사로잡혀 고민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것을 보면, 어떤 조직 사회에서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을 위협할 만한 능력의 소유자는 쉽게 울병에 빠져든다고 한다. 상위자를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하위자라면 언제든지 상위자로부터 반격당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야심 따위는 없는 듯 행동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울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위장하고 은폐함으로써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내심으로는 자기의 양심이나 의식과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끝내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울병에 걸리는 사람은 향상심에 불타고 자신의 처세에 과도하게 마음을 쓰는 사람으로, 실제로도 그런 노력을 계속해 온 사람이다. 또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울병에 걸리기 쉽다. 원래 도덕심이 강한 사람이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지 못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함으로써 쉽게 울병에 빠져든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울병을 살펴보자. 울병인 사람은 감정적으로 매우 예민하여 타인의 마음속 움직임을 민감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기분에 휩쓸리기 쉽고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에 있다. 그것은 감정이 메마르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한 그런 사람은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면밀히 분석하여 장래의 가능성이나 희망을 계속 타진해 보고는, 보통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내고 혼자 괴로워한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사람들 중에도 울병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정신 상태와 창작 활동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는 월별 창작 활동(1881~90)에서, 태양 광선의 조사량照射量이 많은 6월이나 7월에 창작 의욕이 높아져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양이 적은 1월이나 2월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 사실은 고흐의 뇌 속 세로토닌의 양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사람의 정신은 태양 광선에도 영향을 받는다. 햇빛의 조사량이 적어지는 겨울이면 뇌 속 세로토닌의 양이 감소되어 우울한 상태로 되기 쉬운데, 이것을 계절 울병이라고 한다.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1810~56)의 경우도 그의 병력과 창작 활동의 상관관계가 조사된 적이 있다. 그는 심한 울(鬱)상태에서는 창작 활동이 저조했지만, 경한 조(躁) 상태에서는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했다. 슈만에게 나타난 조울병(躁鬱病)은 울 상태와 조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는데, 조 상태일 때 재능이 발휘된다. 울 상태에서 형성된 감성이 조 상태에 예술작품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울병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먼 조상도 현재 자신과 같은 감성과 도덕성으로 고민했으며, 그것으로 생존을 보장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울병은 지성이 낮고 감성이 무디며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울병으로 인한 고민이 곧 자신의 본질이며 특징이라고 자위한다면 호전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폐부를 찌르는 슬픔의 고통



고통,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고뇌하는 인간, 즉 Homo Patient이다. 영어의 patient는 '환자'를 의미하고 patience는 고통의 '인내'를 의미하지만, 엄밀히 말해 의사든 환자든 우리 인간은 모두 고뇌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제기돼 온 가장 오래된 의문점이자 고뇌이다. 문화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인생 최대의 심각한 문제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는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라는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은 탄생, 삶, 죽음이라는 불가사의하고도 광범한 문제를 내포하면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뇌와 삶의 고난에 관계되는 철학적 문제를 표현한 고갱의 최고 걸작이다. 그림의 오른쪽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아기와 세 명의 젊은 여자가 있는데 한 여인은 뒤돌아 앉아있다. 새 생명의 잉태에서 출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성의 몸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산은 신이 여성에게 준 특권이며 자랑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한 젊은이는 '경험'의 열매를 따고있다. 열매를 딴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더 많은 삶의 형태를 추구하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사명을 자각할 때 행복을 느끼며, 그대까지 없었던 용기가 불끈 솟아나 새로운 인생을 맛보게 된다. 결국 인간으로서 생애 최고의 날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자기 생명도 바칠 수 있다는 사명감을 느껴, 이를 행동에 옮기는 날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사명적 존재라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사명을 만날 때 비로소 빛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어 성숙해진다. 그림의 맨 왼쪽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죽음을 준비하는 듯 보이는 노파가 그려져 있다. 인간은 죽음과 맞닥뜨릴 때 절망을 느끼고 허무감이 들며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며 존재의 부정으로,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무로 돌아가는 순간이요,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들고 예고 없이 엄습한다. 즉 죽음은 인간이 맞게 되는 가장 최후의 상황이며 으뜸가는 한계 상황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느낄 때 가장 엄숙해지고 진지해진다. 결국 인간은 투철한 생사관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깊은 생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고뇌하는 사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생의 의미를 알게 되며 용감해진다. 그러고 보면 고뇌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간인 것이다. 이렇게 고뇌하는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한 조각 작품으로는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Francois Auguste Rene Rodin,1840~1917)의「생각하는 사람」(1880~1904)이 있다.



절규의 진정한 메시지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그림은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을 통해서 인간의 위기의식을 극대화한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절규」(1893)는 다리 난간에 홀로서 있는 해골 같은 인간이 양쪽 귀에 손을 대고 몸을 비틀면서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듯한 그림이다.



뭉크는 자신의 체험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절규」라고, 그의 일기(1892)에 쓰고 있다.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거닐고 있었다. 해가 저물었다. 나는 우울해졌다. 갑자기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나는 우뚝 서버렸다. 죽을 것처럼 피곤해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검푸른 도시의 협만에 걸린 핏빛 구름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무서움에 떨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절규」는 뭉크 자신의 상처받은 삶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그림이다. 그가 5세 때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낳은 후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1877년에는 누나인 소피에가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에는 남동생 안드레아스마저 죽었다. 또한 나중에는 여동생 로라까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뭉크도 매우 병약했는데, 그는 결핵뿐만 아니라 만성 천식성 기관지염과 심한 류머티즘을 앓았다. 그러한 가족 병력으로 미루어, 뭉크가 뭔가에 홀린 듯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기에 "나는 날마다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 가지 적을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폐병과 정신병이다. (중략)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었다"고 썼다.



그는 '무시무시하게 뒤틀린 광인의 얼굴'을「절규」에 묘사했는데, 해골처럼 보이는 그 얼굴은 잉카 문명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미라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 미라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항아리 속에 매장되어 있었다.「절규」의 얼굴은 미라의 얼굴 그대로이다. 특히 이 미라가 보관, 전시되고 있던 파리의 인류 박물관(당시 트로카데로 궁)에 뭉크나 고갱 등 당시의 젊은 화가들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뭉크가 살던 19세기 말은 많은 젊은이들이 죽음의 본질에 관해 고민했던 시대이다. 즉 생명의 신비, 예고 없이 닥치는 죽음, 사랑의 배반으로 인한 괴로움 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예민한 젊은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고민이었다. 이렇게 개인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 뭉크는 정신적인 타격을 표현하기 위해「절규」에 심리학적 상징으로서의 인간을 장승처럼 외로의 다리 위에 서 있게 했다. 목청을 높여 찢어지는 소리를 지르는 인간조차도 구름과 강물의 리듬처럼 주위 환경에 동화되어 버리고, 하늘과 다리 밑 협만의 물결도 악몽처럼 메아리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고민과 공포, 시대적인 불안과 절망이 함께 공존함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경쇠약증으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며 알코올 중독이었던 뭉크는 "나는 숨쉬고, 느끼고, 사랑하고, 고통 받는,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고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정신적인 고독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현대사회에 대한 절규이자 경고가 아닐까.



비통의 극치, 피에타

인간과 인간의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이러한 인간관계의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