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사람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이명박 vs 박찬욱 - 백미러 없는 '불도저'의 자신감, 상향등 없는 '크레인'의 자존감'컴퓨터를 장착한 고속 불도저' - 이명박은 여우다. 매사에 치밀하고 꼼꼼하다. 그리고 놀랄만큼민첩하다. '이명박 시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추진력,현대,불도저,청계천' 등이다. 그 이미지들을 다시 축약한다면 '불도저'라는 상징어로 표현이 될듯하다. 하지만 이명박은 '불도저'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강한 소신과 자신감은 이명박의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다. 굳이 이명박에게 불도저라는 닉네임을 붙여야 한다면 '컴퓨터를 장착한 고속 불도저'가 가장 근접한 표현일 듯싶다.
그는 속도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행정이나 경영에서 무엇보다 스피드를 우선한다. 서울시장 취임 후 청계천 복원공사의 착공까지 4년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는 직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업은 1년 만에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실제로 그는 시장 취임 후 1년 만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시장이 워낙 빠르게 나가 따라잡기에 애를 먹고 있다는 서울시 직원들의 반응에 대해 이명박은 "저는 지금 속도를 반쯤 내고 있습니다. 완전 속도는 아니고, 기업 경영하는 속도의 반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강북을 개발하겠다는 시장이 강남에 살고 있으면 어쩌느냐는 한 지지자 할머니의 말을 듣고 사흘만에 강북에 있는 시장공관으로 이사할 만큼 이명박은 결정과 행동이 빠르다.
'과도한' 자신감의 부작용 - 이명박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인간 의지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명박의 성실과 강철 같은 의지는 실로 놀랍다. 그의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을 넘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타고난 체질이 아니라 반복된 노력의 결과란다. 자신의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밤새워 불도저를 분해했다가 조립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명박은 너무 많이 이루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수십년 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이름을 드높였고, 두 번의 국회의원을 거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장이 되었으며, 시장 월급을 전액 시민단체에 기부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200억 원대의 재력가가 되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현재의 정치적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 이루고도 자신감이 넘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 안다"? - 그가 어떤 사안에 접근하거나 비판세력을 논박할 때 관습처럼 내뱉는 수식어는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 안다"이다. 밥을 굶기도 해봤고,달동네에도 살아봤고,고학도 경험했고, 데모하다 감옥에도 다녀왔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역임했고, 국회의원도 해봤고, 종교적 봉사활동에조차 적극적이었다. 게다가 그의 생활신조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그 속에서 뭔가를 얻고 그 귀한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개별성에 관한 대목에 이르면 그의 디테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술해진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 가장에게 '나도 사글세방에 살아 보아서 잘 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겪은 가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이라도 주고 있지 않니.용기를 잃지 말거라'라는 식의 위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소녀 가장이 이명박의 어린 시절보다 덜 가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소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허구 헌 날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물리적 궁핍함보다 정서적 황폐함이 더 문제가 된다. 배를 곯지는 않지만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처지가 부끄러워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겹다면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가난의 정도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한 사람의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배부른 투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관용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당당한 '자뻑'의 권위주의 - '복지예산 현실화'를 요구하는 글귀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여성 사회복지사를 본 이명박은 "이런 옷 사 입을 돈이 있으면 운영비를 100% 지원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또 "사회복지사들이 사비를 모아 마련한 것"이라는 답변에 "돈을 내서 그런 옷을 사 입을 정도면 월급이 많은 것 아니냐. 1인 시위나 유인물 배포활동을 하지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복지에나 힘쓰라"고 충고했다. 당당함은 이명박의 전매특허이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조용히 살아야 하나?
30여 년 전 이명박은 간염에 걸렸었다. 무조건 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바로 그 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한 이명박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의사가 진료를 포기할 만큼 고집불통으로 일에 매달린 환자였지만 10년이 지나 이명박의 간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간염바이러스 항체마저 새로 생겨나서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은 간염이 완치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이명박 자신의 해석은 이렇다. "의학적으로 특수체질이기 때문에 간염을 물리친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되겠지만 나는 그렇게만 이해되지 않는다. 일에 몰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통제불능의 자신감, 그리고 착각 - 이명박은 자신이 현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명박은 해낸다는 인식을 기업주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정주영 회장의 가신이라는 평을 안 듣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명분을 유지하면서 일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현대라는 기업에서 이룩한 탁월한 업적과 독특한 위상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한 말이다.
이명박의 왕팬이라는 한 여성은 그가 박력이 있어서 좋다며 좀 잘난 척하는 것 같긴 해도 대통령이건 누구건 무서워하지 않고 소신 있게 말하는 것이 근사해 보인다고 말한다. 나도 이명박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나는 나를 내리 누르는 어떠한 힘 앞에서도 굴복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이명박 같은 인물은 흔하지 않다. 쿨한 정도가 지나쳐 매사 쉽게 포기하고 타협해버리는 풍토에서 이명박처럼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당당한 사람을 보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성향이 그 사람이 가진 거대한 사회적 권력과 맞물려 '통제 불가능한 파워'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면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전진을 위해서도 필요한 '백미러" - 만일 이 글이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효용성이 있다면 그 효용성이 온전히 이명박 자신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현재의 이명박에게서 이명박 스스로 수정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듯한 부적절한 당당함, 통제불가능의 자신감을 느낀다. 만일 세간의 평가처럼 이명박이 대권을 향한 야망이 있다면 대중들에게 '통제불가능의 이미지'로 비쳐진다는 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진하기 위해 그동안 접어놓았던 백미러 버튼을 눌러 날개를 펴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기 바란다. 잠시 멈추라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조금만 늦추라는 것뿐이다.
"영화의 크레디트로만 존재"하고픈 스타 감독? - 박찬욱만큼 스타성을 지닌 영화감독은 흔치 않다. 하지만 그의 스타성에는 의아한 대목이 없지 않다. 92년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제 겨우"5편의 장편영화를 선보였고, 그 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단 2편에 불과하다. 자신에겐 흥행감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박찬욱의 말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찬욱의 스타성은 웬만한 배우 뺨친다. 평론가 정성일은 요즘 단편영화를 심사하고 영화아카데미 입학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박찬욱의 영향력을 느낀단다. 많은 차세대 영화 지망생들이 박찬욱의 자장권 안에서 장면을 카피하고 영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탁월하고 독특한 영화적 능력이 그 첫 번째 이유겠지만 그것만으로 박찬욱의 스타 파워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박찬욱은 자신의 영화뿐 아니라 박찬욱이라는 인간 그 자체로 상품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자신은 "오로지 영화의 크레디트로만 존재하는 감독"이 되고 싶으며 그게 자신의 목표라고까지 말한다. 그 말은 박찬욱이란 사람이 영화의 크레디트로만 존재하는 감독이 아니란 사실을 반증한다.
'부감식 사고'가 준 겸손, 그 아래 - 박찬욱은 휘몰아치거나 내세우지 않는다. 스스로가 쑥스러워서 그렇게 못한다.'외면의 자기'가 인정받는 것에 비해 '내면의 자기'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겸손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일반적인 사람의 평균치보다 더 'low self-esteem'쪽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제3자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의 안정감, 자신이 서 있을 지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다. 세 번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전국 관객 583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을 때 박찬욱은 "흥행 면에서 나에게는 앞으로 내리막길만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으며, 다섯 번째 영화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직후엔 "이제 내 인생에는 내리막길밖에 없는 셈이다. 그만큼 정점에 서 있다는 말이다"라고 말한다.
박찬욱은 92년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 이래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를 선보일 때까지 거의 9년 만에 영화감독으로서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후 박찬욱 자신이 가진 모든 영화적 역량을 유감 없이 쏟아 부은 <복수는 나의 것>의 처절한 흥행 실패는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재앙이었을 것이다. 박찬욱의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내 관심사는 투자자한테 본전 지켜주는 거 하고, 안 놀고 다음 작품 찍는 거 오직 두 가지뿐이다." 영화계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초A급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박찬욱의 말치고는 초라하다.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실패에 대한 공포심이 예사 수준은 아니다. CF에 출연한 것도 그런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미지'와 '진면목' 사이의 균형 - 사람들에게 '자신의 첫 이미지와 진면목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10명 중 7명 이상이 '겉모습보다는 진면목이 낫다'고 대답했단다. 하지만 정반대로 약간의 낮은 자존감이 인간의 보편적 현실인 것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 둘 사이 어느 지점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서울시장 이명박과 영화감독 박찬욱은 똑같이 위풍당당하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제3자가 평가하는 '자기'와 본인들이 생각하는 '자기'사이에서 그 둘의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인식하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형성된 이명박과 박찬욱의 고유한 색깔이다. 만일 박찬욱 감독이 이명박 시장의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같은 책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내용의 영화가 등장할까. 갑자기 그게 살짝 궁금하다.
정몽준 vs 이창동 - '내 현실'로만 소통하는 에고이스트, '네 현실'과도 소통하는 리얼리스트"엽기적인" 그 남자 -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정몽준도 행복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월드컵 한국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그 행복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정몽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몽준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월드컵 당시 정몽준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들의 오감을 신선하게 자극했다. 훤칠한 키에 세련된 매너로 국제적인 명사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미소짓는 모습은 더할 수 없이 근사해 보였다. 그 해 8월초 정몽준은 단숨에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현재의 정몽준을 평가할 때 지난 대선과 관련한 여러 해프닝(?)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건 마치 97년 대선때 경선 불복을 하기 전의 정치인 이인제와 그 후의 이인제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달라진 것과 비슷하다.
정몽준에 대한 평가는 2002년 9월 17일 그가 대권 도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12월 18일 노 후보지지 철회를 선언하기까지 3개월 간을 기점으로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 3개월 동안 정몽준은 20여 년 가까운 공인 시절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현실감각과 의사소통 방식을 아주 적나라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정몽준류 현실감각의 백미는 투표일을 불과 1시간 앞두고 노 후보지지 철회를 공식 선언한 '엽기적 사건'이다. 그 엽기적 사건을 섣부른 정치적 해석을 걷어내고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정몽준의 현실감각과 느닷없고 독선적이며 감정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그대로 엿보인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 하나의 사건만으로 정몽준이란 인물 전부를 평가하는 건 부적절하다.
애매모호 + 두루뭉술 = ? - 정몽준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가 현실과 전혀 관계없이 자기 말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활동은 보는 사람에게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는'당신들 알다시피 나 돈 많다, 세비가 탐나서 국회의원 하는 거 아니다', 그러는 것으로 끝이다. 선출직으로서의 개념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정 의원은 국비유학생이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지만 정몽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치관련 현직, 외교관련 현직, 축구관련 현직, 교육관련 현직, 경제관련 현직 등 동시에 20여 개의 현직을 맡고 있는 그의 자리 욕심에 비해 보면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말로 '졸라 개념 없어' 보인다.
김경재 전 의원의 지적처럼 정몽준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저 사람이 지금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지난 대선 기간 중 TV토론을 통해 정몽준의 주요 캐릭터로 부상했던 '동문서답식' 답변은 그의 의사소통 방식과 현실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질문을 하면 정몽준은 그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가치판단을 탈색한 채 애초의 질문과 무관하게 대답하곤 했다. 한 패널이 '권력과 부를 동시에 가지려 한다'는 질문을 하자 정몽준은 "빌 게이츠가 부럽다. 나도 그처럼 돈이 많아 자선단체에 기부했으면 한다"고 대답한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에 대해 '연체동물 정치'라는 비판이 일자 정몽준의 부드러운(?) 대답은 이렇다. "미래 지향적으로 정치를 하려면 유연해야 하는데, 내가 유연하다는 점을 말한 것 같아요."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아전인수의 결정판이다.
'100미터 미인'의 이미지 정치 - 그는 대부분 사람들의 현실과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쌍방향 소통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세상과 예민하게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의 얘기는 총론 위주이고 그의 정치 스타일의 알파와 오메가는 이미지 정치다. 그의 이미지 정치는 월드컵이 끝난 직후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 정몽준은 한 기자의 표현처럼 '이미지로 살고 이미지로 죽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막연히 정몽준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국민들의 정서에 기대어 '이미지 정치'를 밀어붙였다. 이런 이미지 정치는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의 소통방식을 선호하는 그의 아전인수식 현실감각에서 비롯한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100미터 미인'이란 100미터 원거리에서 보면 누구나 좋아할 타입이지만 근거리에 같이 있으면 곧 실망하게 된다는 뜻이란다.
정몽준이 이미지 정치를 선호하는 건 92년 대선 때 아버지 정주영의 1급 브레인으로 활동하면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