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손한 탐구가 좋다
임산 지음 | 루비박스
책머리에이미지라는 낯익은 단어가 언제부터인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순수한' 유아기 때 시선은 더 이상 순수한 채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지식이, 때로는 정보나 교양에 대한 욕구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시선은 우리의 서로 '다른'감각과 사고의 불온한 외도를 저지하기도 합니다. 포르노그라피든, 지하철 광고든, 화장실 표지판이든 그렇게 현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혹은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수많은 이미지들은 너무나 세련된 형태로 탄생과 변용과 복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함을, 그들과 함께 숨쉬어야 함을 알기에 그 '다른' 눈의 정체를 알고 싶었습니다.
원시인들이 동굴 벽에 남긴 실루엣의 영혼은 동네 개구쟁이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남긴 낙서의 그것과 다르고, 유럽의 성당에 남겨진 성화의 기운은 선술집의 야시시한 달력 그림의 그것과 다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는 제사상에 모셔진 할아버지 사진의 미소와 다릅니다. 왜 다르고, 무엇이 다른가요. 인류가 경험한 시간과 공간은 그렇게 '다른' 의미의 망으로 촘촘히 엮여 있나 봅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같음'을 강요했던 시대의 '추상'을 비집고 그 싹을 돋우는 질긴 무언가가 우리 주변에서 살아 움직여왔습니다. 자유롭지 않은 자유주의가 생산한 편의의 소통이라는 햇살 뒤에 소외와 억압의 그림자가 존재하듯, 문화의 속내에는 변화의 움직임과 길항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이지요. 이미지는 그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끊임없는 역사의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문화는 그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1장 이미지가 키우는 의혹의 재능
이미지라는 마술의 자취 때로는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여줄 때 의미가 더 잘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현대인은 이미지의 잠재력을 별로 신뢰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가끔은 이미지에 적대적이다. 이미지 적대주의는 알파벳이 발전한 이후 그리스에서 나타난다. 플라톤은 화가를 "마술사이자 모방자"라고 폄하했다.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도 이미지는 적대적 대상이었다. 무하메드는 이렇게 공포하기도 했다. "천사는 이미지가 존재하는 사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른바 '말(음성과 문자)공격대'는 그런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이미지(쉽게 이해되고 보기에도 즐거운)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지는 신성한 저서나 철학 담론을 진지하게 대하는 민중의 사색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이미지 내부에 마치 잠복해 있는 듯 보이는 마술적 공포에는 '말 공격대'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미지는 유사함을 훔치기 때문이다. 오직 신들만 할 수 있는 것을 해내기도 하고, 살아 있는 것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창조하고 죽은 것들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는 때론 악惡의 마술이라고 불린다. 그뿐인가.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관점, 외부의 관점, 종종 왜곡된 관점을 통해 우리와 친근한 것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미지라는 마술의 자취이다.
그런데 이미지는 '리얼리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지는 현실을 보게 하지만, 이미지 자체는 가짜다. 료타르(Jean Paul Lyotard)의 지적대로, 이미지의 구조들이 형성한 커뮤니케이션의 코드 때문에 리얼리티라는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의 환상을 선호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스스로를 증식하고 있다. 이미지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초상화는 말이 없다. 죽은 것이 사람을 대신한다.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우상이 있다. '파인 아트(fine arts)'라는 우상이 있고, 돈이라는 우상이 있다. 원시적이면서도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신神도 있다. 그런 우상들은 매력적이며,쉽게 눈에 띈다. 신은 또 하나의 우상처럼 지각된다. 텔레비전에서는 그와 유사한 마술을 볼 수 있다. 그 마술은 외양을 갈무리한다. 그것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죄를, 어린아이와 바보를 속인 죄를 진 피의자 신분이다. 텔레비전에는 부어스틴(Daniel J.Boorstin)이 자주 반복한 용어인 '가짜 사건들(Pseudo Events)'로 가득하다. "그림자가 실체가 되어 간다." 그림자, 그것은 이미지의 기원 아니던가?
깨어 있는 시선 사진은 문화적 역사를 만들어내는 창안물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회학'이라 할 수 있다. 영상 사진학은 인류학의 영상 민족지학과 다큐멘터리 사진 등의 도움으로 시작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민족지학과 기호학, 다큐멘터리 표현, 과학 그 자체의 새로운 방법론들은 영상사회학의 잠재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즉 영상사회학의 한쪽 발은 옛 전통에, 다른 한쪽 발은 현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발견되는 실험적 사고에 담그고 있다.
최초의 영상학자들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학문적 영감을 받곤 했는데, 사진가들은 당대의 사회학적 아젠다에서 멀어져 가는 것들을 이슈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사회학과 사진은 서로 만나게 되었다. 사회학자들은 사진을 공부해야 했다. 이미 사진가들은 사회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문제들, 즉 공동체와 노동, 사회계급, 도시생활환경, 사회적 유형 혹은 양식적 개성 같은 추상적 테마까지 공부해왔다. 이에 영상사회학자들은 사진적 표상에서부터 이론의 역할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은 리얼리티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담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진 이미지들은 본질적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으로 구축된 산물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신뢰성은 사진의 본질적 성질에 관한 논쟁에 의해 형성되기보다는 상식적인 증명과 증거라는 사진 본연의 기능에 더 기반하게 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육안의 관찰 행위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이다. 때문에 사진 이미지 고유의 특성은 우리의 관찰 행위가 사회학적 분석으로 이동하는 방식에 관해 숙고하게 된다.
사진은 때로 사회 풍자로, 때로는 사실 기록의 수단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쉽게 찍을 수 있고 쉽게 구경할 수 있지만, 생각처럼 그리 간단치 않은 게 사진이다. 사진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혼합되어 있다. 인간은 시대의 복합적 본질과 모순을 반영하는 렌즈의 눈을 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지혜를 펼칠 시간을 마련한다. 그때 우리들의 지나간 삶이 담긴 앨범은 단순한 이미지 모음이 아닌 실천적 아틀라스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정신을 차려야 자연도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있다. 깨어 있는 시선의 렌즈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한다.
관찰자의 몫 우리는 이미지의 세상에 있다. 우리는 매일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컴퓨터 게임, 인터넷, 광고 간판,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이미지의 폭격을 맞는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홍수는 비판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찰하는 방법을 훈련받아야 한다. 그 훈련은 학교의 커리큘럼처럼 질서 정연한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대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보는'방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모호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말하고 글을 쓰는 행위를 배우듯 보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이미지와 그것이 지시하는 이미지는 자연적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사물과 묘사 사이에 일 대 일 대응관계가 없다. 이미지는 그 나름의 의미를 생성하고 모든 이미지에는 그만의 의미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는 관찰자에 따라 다르다.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문제는 바로 그렇게 사물의 의미를 식별하는 관찰자의 능력에 이미지의 폭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이다.
'미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미지들은 일반적으로 그 표현성과 가치가 다른 시각적 산물과 다를 수 있다. 미술가는 시각물을 통해 '특유의 다른'의미를 만드는 전문가이다. 미술사에서는 '미술'이라고 불리는 시각적 생산물에 주목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당대의 미술 관념에 의존한다. 미술사에서 '미술'은 규범적 기준 역할을 하고 가치를 지닌다. 이점에서 미술사의 연구목적은 시각문화를 다루는 다른 학제들의 그것과 다르다. 시각문화 연구 학제들은 넓은 의미에서 시각문화에, 특히 사회화된 시각의 시각성(visuality)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미술사는 이미지의 특정한 카테고리에 주목한다.
이미지 시대에 사는 우리 현대인들은 예술적인 생산물에 관심이 많다. 이는 그 생산물들이 이 시대의 시각문화 내에서 어떻게 새겨지고 있는지 무엇을 새겼는지 알기 위한 것이다. 예술도 아니고, 미술도 아닌, 막연히 이미지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혹의 재능'은 살아난다.
2장 영상의 창안 - 미디어 문화와 대중
회화와 영상, 대중 속으로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전반은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고, 텔레비전 모니터에 흐르는 영상이 현대인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그 후 현대인은 다양한 경로로 영상과 만나기 시작했다. 영상의 범람, 그것이 대중의 감성에 미치는 영향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당연히 예술의 동향에도 이런 사정이 반영되었다.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특징인 하이브리드(이종혼성) 현상은 영상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보여진다. 종래 사진기와 영화 카메라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카메라 영상'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대중의 리터리시(literacy)행동양식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해롤드 로젠버그는 복제기술에 기반한 영상의 대량생산과 대중 침투가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간격을 축소시켰다고 주장한다. 복제는 물리적 현실에서 영상을 분리해 이미지가 여러 장소에 동시에 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로젠버그는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를 대중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 중 하나라고 말한다. 실제로 <모나리자> 영상은 미술책이나 미술관 팸플릿, 주간지 상품 광고, 텔레비전 CF에서도 자주 복제되고 있다. 미술에 문외한도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 정도는 "아, 다 빈치 작품!"이라며 반가워한다. 즉 다른 예술 작품에 비하면 통속적인 공간에서 일반 대중의 눈과 마주칠 기회가 많은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은 지난 세기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수염 난 모나리자' 영상은 레오나르도의 '수염이 없는 모나리자'처럼 다량 복제되어 결국엔 아우라aura를 잃어버리는 운명을 겪는다. 즉 사물로서 권위, 그 사물의 무게가 달라졌다.
앤디 워홀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릴린 먼로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에서, 주간지나 브로마이드에 다량 복제된 그들의 초상을 감광성의 실크 스크린을 사용해서 회화 캔버스 위에 전사했다. 그런 판화 기법으로 동일 영상 작품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계 각국에 있는 갤러리에 작품이 동시에 걸릴 수 있게 되었다. 워홀의 예술 활동은 매스미디어에 의존한 상품 광고나 판매 방법과 비슷했다. 예술의 상품화는 곧 예술의 통속화로 이어졌다.
추상표현주의가 고급예술의 위치에 있었다면 1960년대 미국 팝아트는 고급 예술과 통속 문화의 대분할을 해소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팝아트는 통속적인 영상을 차용한 반면 전위예술로 불린 고급 예술은 급격하게 통속화의 길을 걸었으며 전위예술 기반 자체가 해체되었다. 1960년대 후 텔레비전이 보편화되면서 방송국들은 서로 경쟁했고 각종 프로그램을 여러 채널을 통해 방송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상품 광고가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불연속적으로 삽입되었고, 시청자들은 채널을 바꿀 때마다 복잡한 영상의 단편에 무작위적으로 노출되고 만다.
R. 라우센버그는 복수의 사진 영상을 감광성의 실크스크린을 사용해서 회화면에 전사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 작품의 하이브리드 성질은 텔레비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했다. 이렇게 라우센버그의 회화를 위시하여 기존의 영상을 다른 미디어에서 인용하고 발췌하고 겹치게 하는 활동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 도입되면서 기존 미술관의 전시 형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사진과 영화, 비디오 같은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재매개화(remediation)하여 사용한 1960년대 이후 예술가들에게는 사진가나 영화감독, 비디오아티스트 같은 명칭 외에도 '영상예술가'라는 총칭이 붙여졌다.
회화에 사진 영상이 도입되면서 예술가와 예술적 매개체, 예술 제도 사이에는 전통 장르에 제한 받지 않는 유연한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그 관계는 대중들의 의식 속에 집단적인 표상을 출현시켰다. 우리는 영상 매체가 바라보는 시선의 지점에 우리 시선을 한정시킴으로써 때로는 이질적인 보기 방식을 형성한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가상적 실재의 시각적 물질성을 눈을 통해서 그리고 눈의 기능을 수행하는 영상 매체를 통해서 직접적이고 즉자적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서 있다. 그러므로 매체와 의식의 관계는 회화의 시대에도, 영상의 시대에도 계속 질문해야 할 문제이다.
정보와 미의 세계, '영상''영상'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장소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영상 개념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영상이 무엇이고 이미지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영상' 혹은 '영상 매체'개념의 모호함은 사회적, 기술적 변화와 예술과의 상호 관련을 탐구함으로써 다소 줄어들 것이다. 우선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원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카메라'라는 사실에 주목해보면 영상이라는 개념은 영상 매체에 한정되어 '사물의 광학적 반영상'의 매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적 화상'과 '동적 화상'으로 구분해보면, '사진 영상'의 매체는 전자에 속하고 후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영상 매체라 할 수 있다.
1920년대에는 사진이 실린 대중잡지가 등장하고 인쇄된 사진 영상이 급속하게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사진 영상의 유형화,도식화 작용에서 그 대중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 후 사진영상은 대량으로 복제되고 신속하게 인쇄되었고, 새로운 모눈 스크린 구조가 점차 개발되어 대량생산 규격품, 자동차 등의 광고에 사용되었다. 사진 영상의 구조화, 도식화의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자본과 만난 것이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양산된 규격품은 등질의 다른 제품보다 더 신뢰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상업적 광고에서는 그 목적상 사진 영상의 특이한 개별성이나 애매모호함은 당연히 배제되었다.
오늘날 텔레비전의 영상도 인쇄된 사진 영상과 마찬가지다. 화소가 질서 있게 배열된 모눈 구조가 각 가정에서 모두 균질한 영상으로 보이는 것은 영상 기술이 발달해서 영상 신호의 디지털화와 엄밀한 구조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때 원시적인 구상적 영상의 양의성은 감소한다. 그리고 모눈 구조는 도식화되고 일의적인 '그래픽'영상을 지향한다. 그러한 도식화된 영상을 일상적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균질화, 획일화된 시각적 감성이 형성된다. 바로 그렇게 형성된 감성은 근대 대중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획일화된 대중의 감성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근대 디자인이다.
우리는 지금 뉴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예술인들은 공학적 기술에 잠재해 있는 창조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려는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적 생산물 속에서 종래의 기술적 소산이 아닌 새로운 미(美)를 최초로 발굴해낸 사람들은 그 기계를 개발한 기술자들이 아니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형태들이 기계 시대에 상응하는 객관적, 보편적인 미를 창조할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