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지음 | 위즈덤하우스
세 번째 할 일 은사님 찾아뵙기러시아의 유명한 과학자인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낯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무심하게 지나치던 곳이었지만 수십 년 전 그가 졸업한 초등학교였다. 건물은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일상에 쫓겨 의식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두컴컴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문득 한쪽 구석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마리아 선생님이 아직도 여기에 사신단 말인가?’초등학교 시절, 수학을 가르치시던 마리아 선생님은 당시 학교 건물에 딸린 사택에 혼자 사셨다. 그는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했다.‘어떻게 선생님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까?’ 그는 마리아 선생님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그가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그가 물리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한 데도 마리아 선생님의 격려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나무가 심어진 길을 따라 교정으로 걸어 들어갔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다.‘설마 여전히 여기 사시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직 살아 계시기는 한 걸까? 연세가 꽤 많으실 텐데….’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가 사택에 이르렀다. 노크를 하려고 보니 문이 열려 있어 고개를 살짝 들이밀고 안을 들여다봤다. 비어 있는 듯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거기 누구세요?" 그가 고개를 돌리자 키가 작고 마른 여자가 서 있었다. 마리아 선생님이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예전과 변함 없는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오래 흘렀으므로 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마리아 선생님은 그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엄숙하고 예의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들어오세요." "마리아 선생님, 정말 저를 몰라보시겠어요? 저는…."선생님은 잠시 아래위로 그를 사려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조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페이샤 스바노프…. 페이샤. 어서 들어오게. 이리 와서 앉아. 페이샤, 탁자 앞으로 와서 앉게. 자네가 오다니!"그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싶어 순간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얼른 거두어들였다. 어머니뻘 되는 분의 손을 마구 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마리아 선생님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페이샤. 우선 자네 이야기를 해봐. 일은 잘되고? 결혼은 했나?" 선생님은 이것저것 질문을 한아름 쏟아냈다. "네, 결혼했어요." "행복한가?" "아주 행복해요!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지요." "그래, 일은 어떤가? 요즘은 무슨 구상을 하고 있지?" "선생님, 우리 그냥 옛날 이야기해요. 학교 이야기요." "자네 반에 개구쟁이지만 재능이 많은 애들이 있었던 게 기억나. 자네와 친한 친구들이 특히 말썽꾸러기였지." "선생님, 제게 수학 점수를 60점 주셨던 거 기억하세요? 아마 4학년 때였을걸요." "기억나네, 자네가 숙제를 안 해와서 그랬지. 자네는 수학을 굉장히 잘했지만 가끔 너무 게으름을 피웠어.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다가 혼도 자주 났지."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미샤라고 기억나니? 그 친구, 기자가 됐어.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는데 해외로도 간다더구나." "그 친구가 왔었나요?" "아니." "아, 네… 다들 바쁘겠죠. 올가는 상트페레트부르크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선생님, 누가 선생님을 뵈러 왔었나요? 저희 반 친구들을 만난 적 없으세요? 울리아는 만나보셨어요? 그 애는 배우가 됐어요. 선생님이 걔한테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거 기억나세요?" "영화에서만 봤단다." "그 친구들도 한 번도 온 적이 없단 말씀인가요?" "그래, 안 왔단다." "그래도 편지는 자주 받으셨겠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직장 때문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모두들 선생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아니,페이샤." 선생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샤샤는 자주 온단다. 그 애는 아주 힘들게 살고 있지. 그 아이는 자주 와."
잠시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는 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책꽂이로 시선을 옮겼다. 눈에 익은 책이 보였다. 자신이 쓴 양자물리학에 관한 전문적 내용의 학술서였다. "선생님, 제가 쓴 책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 책을 선생님께 보내 드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읽어봤지. 너무 어려운 내용이더구나.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끝까지 봤단다. 난 네가 자랑스럽다. 페이샤. 훌륭한 학자가 돼주어 고맙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쓴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책에 사인을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책장에 글을 쓰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말했다. "아. 깜빡했구나. 이렇게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차도 안 내놓다니…. 내가 요즘 이렇단다. 무슨 차를 마시겠니?"
선생님이 차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가신 사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빠끔히 열린 방문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문틈으로 선생님의 방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는 너무 놀라 숨이 멎는 듯했다. 선생님의 방은 사방 벽면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제자들의 사진이었다. 그 밑에는 최근 근황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이 붙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마리아 선생님의 방은, 선생님의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내다주신 차를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체 무슨 말이 오갔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뒷목에 강력한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서둘러 마치고 방을 나섰다. 선생님이 학교 밖까지 배웅해주었지만, 그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그때, 마리아 선생님이 걸음을 멈추더니 조심스레 물어왔다. "페이샤, 솔직하게 말해주렴, 네 책에 내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었니?"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오늘날 전…." 선생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서운해한다고 생각하니? 아니란다. 내일 학생들한테 말해줘야겠다. 자랑스러운 선배가 학교에 다녀갔다고 해야지. 페이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길 바란다. 부디 행복하고…."
선생님과 헤어진 그는 힘없이 거리를 걸어갔다. 한참 걷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마리아 선생님은 아직도 교문 옆에 서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그 생각마저 부끄러웠다. 오래 전에도 편지를 쓰겠다고 결심했다가 유야무야 넘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우체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우체국에 들어가 마리아 선생님께 전보를 보냈다. 마리아 선생님이 받은 전보에는 단 한 줄의 글만이 씌어 있었다. "선생님, 저희를 용서하세요."
『그 시절, 기억 속의 선생님이 떠오르나요. 머뭇거리지 마세요. 그 분을 찾아보세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보세요.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여드리세요. 그것만으로도 선생님은 흡족해하실 겁니다. 지금의 당신은 선생님 인생의 작품이니까요. 선생님께 당신이란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드리세요.』
다섯 번째 할 일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1999년 7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 비행사 세 명이‘새뮤얼 랭글리’훈장을 받았다. 항공 분야의 선구자인 새뮤얼P. 랭글리(1896년 무인 비행기시험 비행에 성공, 항공기 개발에 단초를 제공한 인물)의 이름을 딴 이 훈장은 금으로 만든 메달로 1909년 월버와 오빌 라이트 형제가 처음 받았던 영예의 상징이었다. 1969년 아폴로 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지 30년 만에, 우주 비행사들은 영예로운 이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닐 암스트롱과 에디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등 세 명의 우주 비행사를 태운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20일, 달 착륙에 성공하여 우주 시대를 열었다. 이들이 달에 머문 시간은 21시간 37분, 그 중 암스트롱은 달에 발자국을 남긴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올드린이었다. 달 착륙 성공 기자 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올드린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올드린 씨, 암스트롱 선장이 먼저 달에 내렸는데요, 그가 달에 착륙한 첫번째 사람이 된 것이 유감스럽지 않습니까?" 이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하지만 올드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 가지 깜박 잊으신 게 있군요. 지구에 돌아왔을 때는 제가 먼저 내렸어요. 다른 별에서 지구로 온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접니다."잔뜩 긴장한 얼굴로 올드린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달 착륙하면 가장 먼저 암스트롱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들은‘선장이었던 암스트롱이 명예를 독차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에 내렸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가 달에 인류의 깃발을 꽂고 손을 흔드는 사진, 암스트롱일 것이라고 모두 지레짐작하는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올드린이라는 사실 말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선 최초 인류사진의 모델 역할을 올드린에게 기꺼이 양보했다. 올드린은 텔레비전을 통해 달 착륙을 지켜본 시청자들을 향해 우주에서 손을 흔든 최초의 사람이었다.
또 다른 한 사람, 콜린스는 모선(母線)을 제어하며 우주인을 다른 행성에 착륙시킨 숨은 공로자였다. 그는 아폴로 11호를 성공적으로 귀환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착륙선 이글 호와 본부의 통신 두절로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우주 미아가 될 뻔하기도 했다. 착륙선이 모선으로 귀환했을 때, 연료는 30초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콜린스가 침착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폴로 11호 계획은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올드린과 콜린스는 이런 사실을 기자들 앞에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암스트롱 뒤에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지을 뿐이었다.
30년 세월이 흐른 뒤, 암스트롱 선장은 랭글리 훈장을 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저 혼자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은 아폴로 계획에 참여했던 모든 관계자를 대신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명예는 많은 사람이 갖고자 애쓰는 가장 큰 욕망일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면서 존중받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엉겁결에라도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도 그런 걸 가지고 있어요." "나도 거기에 가봤어요." 대신에 조금만 참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보세요. "대단해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열한 번째 할 일 경쟁자에게 고마워하기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나치 세력이 창궐하던 때였다. 독일의 히틀러는 올림픽을 통해 아리안 혈통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당시 육상경기의 최고 선수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던 미국의 제시 오웬스였다. 나치는 "유대인과 흑인을 올림픽에서 쫓아내자" 고 연신 떠들어댔다. 오웬스는 나치의 이런 훼방에도 불구하고 1백 미터, 2백 미터, 4백 미터 계주와 멀리뛰기에 참가했다. 네 종목 중에서 오웬스와 견줄 만한 선수는 독일의 멀리뛰기 선수 루즈 롱뿐이었다. 그만큼 오웬스의 실력이 출중했던 것이다.
히틀러는 루즈 롱을 직접 만나 "반드시 흑인 오웬스를 이기라" 고 명령했다. 멀리뛰기 예선이 벌어지자 히틀러가 응원을 하러 왔다. 루즈 롱은 뛰어난 실력으로 순조롭게 결승에 진입했다. 드디어 오웬스의 차례가 되었다. 독일인들의 야유가 경기장을 뒤덮었고 그는 아연 긴장했다. 오웬스는 첫 시도에서 도약선을 넘는 실수를 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뜀 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뛰었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 몇 번을 뛰려다 멈칫거리며 망설이는 오웬스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던 히틀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저 흑인 선수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루즈 롱이 히틀러의 퇴장을 기다렸다는 듯, 오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저도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랬어요. 간단한 요령이 필요해요." 루스 롱은 오웬스에게 수건을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것을 뜀뛰기 발판 몇 센티미터 뒤에 놓았다. "달려올 때 이 수건을 기준으로 삼아보세요." 오웬스는 루즈 롱이 알려준 방식대로 했다. 드리고 신기록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마침내 결승전이 열렸다. 루즈 롱이 먼저 뛰었다.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다음은 오웬스 차례였다. 오웬스는 루즈 롱을 향해 미소를 짓고는 힘차게 뛰었다. 그는 도약하는 순간, 자신이 세계 최고 기록을 새로 달성했음을 직감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오웬스의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귀빈석으로 돌아와 앉아 있던 히틀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둥이는 돌아가라" 고 떠들어대던 관중들도 숨을 죽이고 조용해졌다.
이때 갑자기 루즈 롱이 오웬스의 손을 잡고 나섰다. 그리고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독일인들 앞에서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제시! 제시! 처음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사람들이 서서히 동조하기 시작하더니 잠시후 거대한 함성으로 폭발했다. "제시! 제시! 제시!" 오웬스도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관중석이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오웬스가 목청껏 외쳤다. "루즈 롱! 루즈 롱!" 관중들은 아까보다 더욱더 열띤 목소리로 호응했다. "루즈 롱! 루즈 롱!"
이 순간만큼은 터무니없는 흑색선전, 인종 차별도 사라졌다. 편견도 없어졌다. 선수와 관중들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승부의 감동에 빠져들었다. 제시 오웬스가 경신한 세계 신기록은 그 후 24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게다가 그는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 네 개를 차지해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 중 한 명으로 칭송 받고 있다.
여러 해가 지난후, 제시 오웬스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운 세계 기록은 언젠가 분명히 깨질 것이다. 하지만 루즈 롱이 내 손을 치켜들었던 그 광경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제시 오웬스와 루즈 롱은 역사에 함께 기록되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제시 오웬스의 영예가 운동장 안으로 온 것이라면 루즈 롱의 영예는 운동장 밖에서 온 것으로, 그가 보여준 인류애에 대한 표창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라이벌도 필요합니다. 친구가 감정적으로 가장 든든한 격려자라면, 라이벌은 이성적으로 가장 커다란 자극제입니다. 라이벌의 자극을 잘 이용하면 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이벌은 성장 촉진제입니다. 라이벌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해보세요. 우리를 단상 위에 올려 상을 받게 하는 것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바로 그 라이벌입니다.』
열일곱 번째 할 일 낯선 사람에게 말 걸어보기그는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겨울 경치는 전혀 멋지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뭇가지는 앙상했고, 차들은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된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버스가 공원 옆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승객들은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몇몇은 가볍게 코를 골며 잠에 취해 있었다. 버스 안은 가끔씩 바스락거리는 신문지 소리가 들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