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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반란

김진경 지음 | 푸른숲
제1장 당신의 아이들이 전혀 다른 인종 같아 보인다구요?

나이키 운동화,그리고 코와 입술에 낀 링,색색깔로 염색한 머리, 문신 등으로 대표되는 아이들의 변화된 의식 구조를, 문신의 역사와 신화,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조명한 뒤 그 근원을 추적해 본다.

우리, 그냥 표현하게 해 주세요!

아이들이 머리칼에 물을 들이기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에는 교사들이 곧잘 머리칼을 자르거나 체벌을 가하는 식의 생활 지도를 했습니다. 그런 식의 생활 지도에는 머리칼에 물을 들이는 아이나 그 행위에 대한 일정한 판단이 깔려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교사들이 머리칼에 물을 들이거나, 코나 입술에 링을 다는 행위에 대해 제재 일변도의 생활 지도를 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못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교사들의 생활 지도 방식이 왜 이렇게 변한 걸까요? 그건 교사들이 게으르거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덜해져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무서워서도 아니고요. 아이들의 그러한 행위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변화가 예전의 학교 체제에서 통용되던 생활 지도를 통해 쉽게 무마될 만큼 표피적이고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다는 얘깁니다. 아이들의 의식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뜻이지요.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학교 교육에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만은 이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몸의 정체성

요즘의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더 분명하게 내세울 줄 알거든요. 몸을 통해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나와 집사람은 나이키 정품 운동화를 신든 유사 상품인 나이스 운동화를 신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자기 정체성의 주된 근거가 머릿속에 든 진보적 이념, 즉 지적 소양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자기 정체성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까짓것 몸에야 좀더 나은걸 걸치든 좀 덜한 걸 걸치든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다릅니다. 딸아이의 의식구조에서는 몸의 지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의 주된 근거가 몸에 있습니다. 딸아이의 자기 정체성이 여기에 있기에, 나이키 정품 운동화를 신느냐 나이스 운동화와 같은 유사품을 신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나이스 운동화와 같은 유사품을 신고 아이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나는 가짜야."하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때문이지요. 그러니 나이스 운동화를 신고 가느니 맨발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가짜야."라고 선언하는 것보다야 "재수없게 신발을 잃어버렸어."라고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인간의 의식 구조에서 어느 시대에는 몸의 지위가 높고, 또 어느 시대에는 몸의 지위가 낮은 것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시대별로 사람들이 가졌던 의식 구조의 특성을 정리해 보도록 합시다.



- 선사시대 : 종교적 행위 혹은 신성성의 표현으로서, 매우 긍정적.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지 않으며, 의식 구조 속에서 몸의 지위가 대단히 높다.

- 고대 국가부터 중세까지 : 노예나 범죄자의 표시로서, 극히 부정적. 개인적 차원에서는 몸과 정신을 분리해 보지 않으나, 사회적 차원에선 몸과 정신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바라본다. 여기서 몸의 지위는 대단히 낮다.

- 근대 산업 사회 : 사회로부터 일탈한 집단의 자기 표시로서, 부정적.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며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 몸의 지위가 낮고 정신, 즉 이상의 지위가 대단히 높다.

- 지식 기반 사회 : 적극적인 자기 표현의 매체로서, 긍정적.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보기는 하지만, 심각하게 대립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고 정신, 즉 이상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과정?

고대 국가부터 중세까지는 농경 사회였습니다. 농경 사회는 자연 재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부와 권력의 형성에 인간의 육체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근대 산업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노동력이 사회적인 부와 권력의 형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인간의 몸을 어떤 식으로 통제하여 순응하게 만드는지가 아주 중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감옥이나 군대, 학교 등은 그 전형적인 제도들이죠. 학교를 예로 들어볼까요? 근대 학교 교육에서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교육과 관련된 이성적 권리(교육권)를 위임받은 이성의 대표자입니다. 국가는 이 교육과 관련된 이성적 권리를 학교에 위임하고, 교사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과 관련된 이성적 권리(교권)를 구체적으로 행사합니다. 말하자면 근대 학교에서 교사는 통제하는 이성이고, 학생은 통제받는 몸인 셈이죠. 이성적 권위에 순응적인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근대 학교 교육의 숨겨진 중요한 목표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근대 학교에서는 지식의 전수와 같이 눈에 보이는 교육 과정 못지 않게, 엄격하게 반복되는 시험이나 시간표처럼 규율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성세대의 의식은 근대 사회와 근대 학교 교육의 산물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 구조에서 몸의 지위가 대단히 낮고 이성의 지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의 욕구를 그렇게 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제당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아마 지식 기반 사회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지식 기반 사회에는 사회·경제적인 부와 권력 형성에 지식 노동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몸을 순응적으로 만들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요성의 감소에 따라,이성에 의한 몸의 통제를 제도화해 온 근대적 시스템들이 약화·이완되고 있습니다. 소비 사회의 도래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합니다. 몸의 욕구를 억제하면 소비 사회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인간의 의식 구조에서 몸의 지위가 높은 시대에는, 인간의 육체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수렵이나 채취를 하면서 살았던 선사 시대가 가장 그렇지요. 그 때는 인간의 생존과 물질적 풍요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이 자연 환경이었습니다. 인간의 노동력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지요. 여기까지 살펴보면 아이들의 의식 구조 변화는, 사회변화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변화란 멀리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아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배달된 판도라의 상자

부모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나와 전혀 다른 인종 같아 보일 때가 많아요."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지금 1년 동안의 변화는 우리가 살아왔던 산업 시대의 10년 동안의 변화에 해당하고, 전통 시대 100년 동안의 변화에 해당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의 가속도가 우리 사회에서 구체화 된 것은 1980년대 말엽에서 1990년 초엽 사이일 것입니다. 희망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할 만큼 빠른 속도입니다. 그렇다고 변화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변화는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을 통해서 가장 먼저 오니까요.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은 새로운 문명의 도래와 함께, 어느 날 문득 우리에게 배달돼 온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전반을 사로잡고 있는 감정은 바로 이 급격히 변화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교육 부문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모두들 눈을 꼭 감은 채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눈을 크게 뜨는 것뿐입니다. 좀 끔찍하게 여겨지는 게 있더라도 눈을 크게 뜨고 끝까지 보아야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2장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은 왜 학교 화장실에서 일어날까?

얼짱과 몸짱, 마니아 문화, 학급 회장 세우기, 왕따 현상, 폭력 써클 문제 등을 분석함으로써 공식적 통로를 마련하지 못해 음지로 찾아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얼짱과 몸짱, 그리고 마니아 문화

얼짱이나 몸짱의 문화에는 외모를 중요시한다는 뜻이 분명하게 담겨 잇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의 의식 구조에서 몸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뿐이라면,얼짱이나 몸짱의 문화를 굳이 요즘 아이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꼽을 필요가 없겠지요. 얼짱이나 몸짱이란 말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세대에도 그런 문화가 없었던 건 아니니까요. 신성일이나 노주현, 백윤식, 엄앵란, 윤정희, 유지인 같은 배우들이 모두 얼짱 아니었나요? 노골적으로 드러내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우리 세대도 나름대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면 얼짱이나 몸짱의 문화가 요즘 아이들의 문화로서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 세대의 얼짱과 요즘 아이들의 얼짱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기성 세대의 얼짱 : 배우 신성일이나 노주현, 백윤식, 엄앵란, 윤정희, 유지인 등과 같이 유명한 인물들로,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경우에 설득력을 가진다.

- 요즘 아이들의 얼짱 :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들 가운데서 얼짱을 찾는다. 얼짱으로 정하는 기준이 다양하므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얼짱으로 등극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기 취향과 느낌에 따라 특정한 사람을 얼짱으로 선택하고 그 지지자가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얼짱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숫자의 지지자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성 세대의 얼짱과 요즘 아이들의 얼짱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금방 드러나지요? 차이가 뭡니까? 기성 세대의 얼짱은 거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요즘 아이들의 얼짱은 개개인의 취향과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됩니다. 그러므로 얼짱이나 몸짱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은 무수한 얼짱을 핵으로 하는 소집단, 즉 마니아 문화가 성립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마니아 문화는 인터넷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루어지기 어렵지요. 인터넷을 통한 양 방향의 의사 소통이 없다면, 그 이름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얼짱이나 몸짱으로 알려질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마니아 문화는 요즘 아이들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갈기갈기 찢긴 채 버려지는 교과서들

이념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아이들의 냉담한 태도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에 대한 태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경우의 하나가 바로 교실의 쓰레기통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평상시에도 교실 쓰레기통에는 한두 권의 교과서가 찢긴 채 버려져 있습니다. 집어 들어 보면, 대개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벌을 섰던 아이의 것입니다.아이들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학급의 반 이상이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물어 보면 교과서를 잃어버렸다고 하지요. 학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더 심해져서, 수업시간에 교과서 없이 멀뚱멀뚱 앉아 있는 아이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쓰레기통은 갈기갈기 찢긴 교과서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지요. 우리 세대로서는 참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근대 학교 교육 체계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인류 문화의 정수를 압축한 것이고, 그 지식을 담아 놓은 것이 교과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러한 학교 지식의 이성적 권위를 받아들였고, 그 때문에 교과서를 마치 경전인 양 소중히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학교 지식의 이성적 권위를 받아들이고 나면, 그 학교 지식을 얼마나 잘 암기하고 습득했느냐를 가지고 일류·이류 · 삼류 대학으로의 진학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되는 학력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 세대에게 배움의 목적은 주로 그런 식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인류 문화의 정수'라는 학교 지식의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학교 지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응은 한마디로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하는 것입니다. 학교 지식이 인류 문화의 정수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지요. 학교 지식에 대한 이런 태도는 아이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지식 정보량이 날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사이버 세계에서 살아가잖아요.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 순식간에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는데, 교과서가 뭐 그리 대단하게 보이겠습니까? 이유야 어쨌든 요즘 아이들이 학교 지식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의 학교 체제에는 대단한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 지식의 권위가 부정되면 아이들에겐 배움의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배움의 목적이 사라지고 나면 학교의 지식 전수 기능은 마비되고 맙니다. 최근 들어, 학교는 매우 빠르게 그러한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지금의 학교 교육은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을 죽이는 체제나 다름없습니다. 왜 우리의 학교 교육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일까요? 우리 세대의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는 학교 교육에서의 성공을 통해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직업도 대개는 판·검사나 고위 관료,경영인 등과 같이 사회·경제적 권력과 관계되는 것들이었지요. 학교 교육도 우리 세대의 이러한 기대에 맞게 짜여져 있었습니다. 학교는 전국의 아이들을 일등에서 꼴찌까지 한 줄로 세우는 신분 상승의 외줄 사다리였으니까요. 그 서열을 매기는 기준은 교과서 속의 지식을 얼마나 많이 습득하고 있느냐였지요. 말하자면 교과서는 인류 문화의 정수를 압축해 놓은 정답집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정말 곤란한 것은 아이들은 엄청나게 변화해서 그러한 사고의 틀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학교는 아직도 우리 세대가 다녔던 모습 그대로이지요. 요즘 아이들이 학교 교육에 대해 바라는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도록 학교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생각보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한식 요리사, 남성 전문 헤어 디자이너, 애완동물 관리사, 장애인을 위한 발명가, 또 무슨무슨 일을 하는 변호사 등으로 말입니다. 직업에 대한 관심과 학교 교육에 대한 요구에 아이들의 마니아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요. 위와 같은 변화 때문에 우리 세대에겐 맞았던 학교 교육이 요즘의 아이들에겐 엄청난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들의 변화된 직업관과 요구, 학습관 등이 북돋워지기는커녕 학교와 지식 전수 활동으로부터 억압당하다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중요한 일은 화장실에서 일어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은 바로 화장실입니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은 거의 모두 화장실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화장실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장소가 되었을까요? 그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근대 학교의 건물 구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몸의 통제'를 제도화한 학교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학교의 건물 형태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교 건물을 보면, 기다란 복도를 따라 교실들이 배치되어 있지요. 교실에는 복도 쪽 또는 운동장 쪽으로 많은 창문이 달려 있습니다. 복도의 가운데쯤에는 대개 교무실이 있지요. 교무실 문을 열고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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