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헌장
권용철 외 지음 | 샘터
만방의 50대여, 이제는 골짜기에서 빠져나올 때다이 책은 우연히 손에 든 어떤 수필집에서 만난 한 줄의 글에서 발상되었다. 한 가난한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새해다. 내 나이 오십이다. 이제 더 이상 삼등열차를 타지 않으리라"는 말이 그 말이다. 그 말이 왜 그리도 쓸쓸한지, 그 순간 눈가에 이슬이 맺힐 뻔했다. 막 50줄에 들어선 필자에게 그 말이 당최 남의 말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이런저런 결심들을 나열해 필자가 일하고 있는 풀꽃평화연구소 게시판에 올렸다. 그리고 그 목록들 앞에 '50헌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는 "이제 50이다, 50은 적잖은 나이다. 남은 시간이 보낸 시간보다 많지 않다. 이젠 더 이상 타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삶을 되찾자." 운운 하는 유치하지만 선언적인 앞글을 붙였던 것 같다. 연구소 안에 있는 '빠왕 독서회'는 한 달에 한 권, 잘 안 팔리는 책을 골라 읽고, 책이야기보다는 사는 얘기들을 더 많이 노닥거리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독서회다. 회원들은 '50 헌장'에 환호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회원들은 독서회 게시판에 다양한 목록들을 쏟아냈다. 그 뒤, 연구소 사이트 속에 회원전용의 비밀판을 만들어 8개월 동안 헌장의 내용을 정하고, 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원고가 쌓이면 같이 읽고 유쾌한 어조로 댓글이나 답변글을 통해 토론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께 정말 '거짓말처럼' 책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쌓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므로 인터넷 글쓰기가 활자로 묶인 것이다.
50은 어떤 나이일까. 그들은 공교롭게도 전쟁이 끝난 50년대 언저리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기 곤란한 나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데 대해 아무런 책임 없다고 뺄 나이도 아니다. 태어나 보니, 온 세상에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학교 숙제는 멸골, 반공, 승공 포스터 그리기였다. '올해는 일하는 해', '올해는 더 일하는 해'라는 구호가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국민핵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사람이 이 산하를 지배했고,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간 얻어 터지기만 했던 세대다. 전후의 궁핍에서 해방시켰다고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모와 이 세상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 애들 틈바구니에서 이 세대들은 음지의 비탈 의식을 가지고 움츠리고 살았다. 글판에서는 이 세대를 '골짜기 세대'라고도 부르는 모양이 '골이 깊으면 물도 깊다'는 말로 위안도 해보지만, 짬뽕도 아니고 짜장면도 아닌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기도 하다. 모셔야 할 '전근대'의 부모는 있지만, 한 둘밖에 안 낳은 자식들이 우리를 모시리라는 생각은 언감생심이다.
강물은 속절없이 흘러 좋은 몸의 시절은 확실히 지나갔건만 아직 마음의 뜨거움은 식을 수 없는 나이, 그럼에도 이제 남은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자각이 깊어지는 시간대에 어느덧 당도한 것이다. 개인적인 회한도 있고, 그와 더불어 뜬금없는 호기도 부릴 수 있고, 조금 이르긴 하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도 남몰래 하게 되는 나이가 바로 이 나이다. 쓰라렸든 즐거웠든 50까지 무사히 오면서 겪어낸 경험과 그나마 허락되는 체력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진짜 모험'을 할 기회가 주어진 나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골짜기에 끼어 삼등열차나 타고 남은 생을 보낼 수야 없잖겠는가. 더러 비장하고, 더러는 어처구니 없고, 더러는 쓸쓸한 이 책의 다짐들은 그런 배경을 깔고 탄생했다.
만방의 50대여…. 이제는 나만을 위한 내 인생을 가꾸고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재자도 분명 사라졌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도 어느 정도 컸다. 이제는 이런저런 거친 봉우리 사이에 끼어 숨 죽이고 살던 우울증이나 열패감일랑 벗어제끼자. 우리도 마땅히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나를 더욱 사랑하자 콩가루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나는 여자가 좋다. 여자가 없으면 이 세상 무슨 맛으로 살까? 어머니, 아내, 애인, 누나, 딸…,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여자들의 호칭인가!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자들 때문에 인생살이가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지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난 비교적 여자가 많은 집안에서 자란 탓으로 제법 여자를 이해하는 편인데 그런 나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여자들의 처신과 언동에 대해서는 정말로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아집과 자기 합리화, 그리고 유치한 아전인수란…. 그러면 남자는 좀 낫느냐? 슬프게도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남자가 앞뒤 모르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할 땐 정말 주먹으로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그 여자들과 관계되어서 일어나는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얘기다. 가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인 것이다. 결혼해 부모 슬하를 떠나 일가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되고 가슴벅찬 일이다. 남편으로, 아내로서, 가장으로서 희망의 미래를 시작하는 때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래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는 일을 '필혼'이라고 하여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마지막 절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식들 필혼시켰으니 이젠 죽어도 된다'라고….
그런데 그 축복받은 일이 가족간의 새로운 갈등의 시발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형제들이 하나둘씩 출가를 하면서 다른 집으로 가고 또 새 식구가 들어오면서 집안엔 전에 없던 묘한 기운이 일어나게 된다. "나밖에 모르던 형이 저럴 수가?" , "어, 저게 내 동생이란 말이야?" , "그래도 누나는 믿었는데."
각자의 마음 속에 이런 섭섭한 감정이 하나 둘 쌓이면서 갈등이 깊어간다. 이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서로의 갈등이 충돌하게 되면 드디어 한 판의 전쟁이 치러진다. 어렸을 적 싸움은 그래도 최소한 한솥밥을 먹는 동지적 유대가 있었고 부모님도 해결의 중재자로서 절대권능을 유지하고 계셨으므로 싸움은 초동진압 되어 전면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각자 짝을 만나 일가를 이룬 후의 싸움은 막가파 식으로 번지기 십상이고 부모님의 중재 또한 오히려 싸움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있어 화해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가족 간에는 피아의 구분이 생기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이 땅의 콩가루 역사는 장엄하게 시작된다. 콩가루 집안의 갈등구조는 다단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제일 흔한 고부간 갈등, 그리고 형제 - 남매 - 자매간의 갈등, 동서간의 갈등, 그리고 마침내 발발하는 부부간의 갈등!! 갈등의 구조를 보라! 거의 대부분 여자와의 갈등이지 않은가? 형제간의 갈등도 그 원초는 여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자이기에 그런가? 견해의 차이인가?
고부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어머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자가 아니던가? 그러면 그녀도 옛날엔 며느리 아니었던가? 지금의 며느리는 또 누구인가? 역시 여자가 아니던가? 그녀 또한 미래의 시어머니요, 친정에 가면 시누이요, 시집에 오면 올케가 되지 않던가? 바로 서면 '갑'이요, 돌아서면 '을'인 이 천혜의 균등관계를, 여자면 누구나 운명적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 상관관계를 여자들은 왜 멋지게 유지하지 못하는가? 시어머니가, 내 며느리는 내 아들에게 매사에 순종하고 가사일은 당연히 모두 여자의 몫이고,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기를 바라면서 시집간 내 딸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가사일은 남편과 당당히 나눠서 하고, 가급적이면 힘센 남자가 좀 더하고, 여자가 모든 면에서 대우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갈등은 시작된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천하의 바보 쪼다'고 사위가 부엌에 들어가면 '이상적인 현대식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의 모순에서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올케가 내 친정엄마한테 말대꾸하는 것은 성격 못 되고 싸가지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한테 대꾸하는 것은 경우 있는 논리로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이 땅의 콩가루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모든 갈등의 종합축소판이 바로 명절 때이다. 객지로 흩어져 '행복하게 살던'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집안에 모이게 되면 고부간, 형제간, 동서간 갈등이 한꺼번에 표출된다. 시어머니의 며느리들에 대한 은근한 책망, 형님과 아우간에 어색한 덕담, 동서간의 꽈배기 대화가 만남에서부터 솔솔 싹트다가 결국 저녁상 술자리에서 갈등이 폭발하면 시댁에 있는 기간 내내 식구들 모두가 살얼음처럼 몸조심 말조심하다가 예정보다 하루빨리 거짓말을 둘러대고 서둘러 귀경하는 길, 남편은 아내로부터 귀가 따갑게 불평을 들어야 되고 식구들 또한 도마 위의 생선 신세가 된다. 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다음해 또 명절이 오면 남편은 당연히 당직근무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게 어디 또 명절 때뿐이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지 않는가? 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게 돈 문제 아니던가? 어쩌다 부모님이 입원이라도 하시게 되면 입원비를 둘러싼 갈등은 또 어떻던가? 각자의 입장만을 생각한 불만이 속으로 쏟아진다. '모시는 사람은 빼 줘야지, 모시는 데도 돈이 드는데 이런 데는 빠져야지', '장남이 달리 장남인가? 그런 거 안 하면 그게 무슨 장남이야?',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 맨날 나누자니 참, 조용히 한번 내는 거 못 봤네.' 생신이나 회갑연 등 부모님과 관련된 행사라도 치루게 되면 처음에는 비용 때문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다가 나중에는 부조금 분배문제로 또 곤욕을 치르지 않던가? 부모님 모시는 장남은 장남대로, 돈 더 낸 형제는 더 낸 대로, 부조 많이 들어온 형제는 그 형제대로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설전을 벌이게 된다. 아, 듣고 보면 모두가 맞는 말이고 구구절절 멋진 논리로다!!
가족간의 싸움엔 승자가 없다는 데 그 비극이 있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싸우고 나면 서로 상처받고 분하고 잠 못 이루고 하는 것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쌍방이 모두 겪게 되는 감정이다. 처음엔 모진 말을 많이 해서 상대를 아프게 하면 속이 후련하고 승리한 것 같지만 그런 경우일수록 시간이 가면 마음이 불편해져 두고두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들이여, 가족들이여, 이런 콩가루 집안이 우리 집안만 그렇던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 아니, 오히려 우리집은 양반이요, 남들은 말도 못하겠더이다. 인생 오십쯤 되고 보니 그런 사실을 알고도 남겠더이다. 산다는 게 들여다보면 모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싫어", "안해" 라는 표현에 익숙해지자참석하기 싫은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먹고, 떠들고, 시간 남으면 찜질방으로, 미용실로, 노래방으로 취향에 맞게 갈라진다. "이젠 그만 나가야지" 하면서도 모임의 회장이 "꼭 나올 거지?" 하면 "네" 하고선 가슴이 답답하다. 젊은 날의 연애도 그랬다. 내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까봐 "그만 만나자" 는 말을 못했다. 그쪽에서 지쳐 포기할 때까지 침묵하고 피하는 것이 배려인 줄 알았다. "이건 싫습니다." "못합니다" 그 분명함과 냉혹함을 늘 동경하면서도 나는 "괜찮아요", "알겠어요" 라는 대답을 더 많이 하고 살아왔다.
한 정신과 의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당신은 거절할 줄 아는가"를 먼저 묻는다고 한다. 거절 못하는 사람일수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찾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은데, 할 수 없이 가야만 할 경우 자기도 모르게 버스를 잘못 타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를 거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인 의도도 일종의 정신 병리 현상임을 프로이드는 지적했다. 참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 온 한국의 세대 중에는 외국에는 병명조차 없는 화병을 앓는 여성이 많다. 죽기보다 싫은 일을 참고 견디다가 가슴에 화가 들끓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폭력배나 깡패는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쳐 싸우며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나 인간에 맞서기보다 대충 양보하거나 피하고 못 본 척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고달파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수는 없다. 싫어도 싫은 표정 못 짓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며 인간관계다. 우리는 5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는 죽어도 하기 싫은 일 앞에서 "싫어!", "안해!" 소리치며 확실하게 거부할 때가 되었다.
'파이팅(fighting)'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소망이 응축된 세계만방의 구호다. 본래의 의미가 '싸우다'이듯 우리들 정신의 완전성은 '싸움'이라는 폭력의 쾌감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경기에 앞서, 도전할 어떤 일들에 앞서 우리가 '파이팅'을 외칠 때 가슴 가득히 신선한 자유로움을 느끼듯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억누르고 구속하는 틀이나 고정관념, 편견과 과감히 부딪치며 싸워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심적 해갈, 정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YES" 만을 원하는 가정과 사회에, 확실하고 냉정하게 "NO"라고 선언하는 순간, 양 어깨에 돋아나는 날개의 기분 좋은 통증과 함께 50대여, 자유롭게 비상하자.
남 생각도 하고 살자 나이를 벼슬이나 무기로 삼지 않는다접촉사고가 났다. 두 운전자는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잘잘못을 따지다가 고성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중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쪽이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 한다. "당신 몇 살이야?" 지금 왜 나이를 들먹이는가? 지금 누가 잘 했나 못 했나를 따지는 자리에서 갑자기 나이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덤비지 말라는 말인가? 나이를 무슨 무기나 방패로 쓰고자 한다면 그건 나이 먹은 자들의 유치한 전략이다. 그리고 착각이다. 나이 먹어 크든 작든 시비에 휘말린다는 것이 더 창피한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이 먹은 걸 내세운다고 해서 남들이 그리 대접해 주던가?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지만 현실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논리에 지면 지는 대로, 힘에서 밀리면 밀리는 대로 그렇게 살자. 그게 당연한 것이다. 그게 나이를 핑계로 개기는 것보다 훨씬 더 신사적이다.
나이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살아온 세월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나이가 주는 의미는 참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랜 경험과 세월의 추적에 따라 노련해지는 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심신이 쇠약해지고 순발력이 떨어져 옹고집이 되는 면도 있다. 그래서 나이에는 연륜의 지혜와 퇴화의 경직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나이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슬픈 일이다. 피 끓는 청춘의 시간은 순간에 지나가고 황혼의 어스름은 길게만 느껴진다. 인생 50이면 청년과 노인의 중간쯤이지만 세상의 눈은 노인 쪽에 더 가깝다고 보지 않을까? 이제 50의 관점에서 우리는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사해야 될까? 나잇값을 제대로 하기 위한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선은 나이를 무슨 벼슬이나 무기로 삼지 말자.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공경 받아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별로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나이란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이 때가 되면 저절로 쌓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나이가 무슨 벼슬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이를 앞세우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인가? 나이는 그저 지나온 세월의 햇수에 다름 아니던가? 제대로 잘 지내왔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그게 오히려 약점이고 수치스러운 일인 것이다. 흔한 말로 나이 먹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란 말은 나이를 제대로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말 아니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