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기적
T.T.문다켈 지음 | 위즈덤하우스
성장의 길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 아드리아 해변의 스코플례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녜스 브약스히야라는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아녜스(거룩한) 곤하이(장미꽃봉오리) 브약스히야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더 테레사는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로 태어난 그날, 즉 세례 받은 날을 세속 생일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여권 등 여러 기록에는 생일이 1910년 8월 27일로 되어 있다.
아녜스의 첫 번째 학교는 어머니의 다정한 무릎이었다. 어머니는 아녜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녜스는 기도하기,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복음이나 교회와 관련된 영적 활동과 교육 등 종교교육에서 언제나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덕을 많이 입었다는 사실을 항상 인정했다. 아녜스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면서 활동했는데, 이를 통해 많은 체험과 영감을 얻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녜스는 성가대에서 솔로 파트를 맡았는데, 이로 인해 예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1916년 11월 16일, 아녜스는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은총으로 시련에 용감하게 맞서고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함께 머문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진 것을 곤경에 처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 힘든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함께 나눌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모범을 보여주었다. 알콜중독 여성을 돌봐주기도 하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노파를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여 음식을 전해주고 집안 청소도 해주었다. 자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어머니는 말했다. "얘들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때는 말없이 하여라. 바닷물 속에 돌을 던지듯 말이다." 아녜스에게 성소(하느님이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려고 부름)의 길을 닦아 놓은 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다정한 말씀과 모범적인 행동이었다.
아녜스는 열두 살 나이에 '너의 온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고 거룩한 수녀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녜스는 육 년 동안 자기 성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자신이 '하느님께 온전히 속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확신했고, 열여덟 살이 되면 집을 떠나 선교사가 되어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 성소라고 확신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아녜스는 가시관을 쓴 예수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을 이 세상에 묶고 있는 족쇄들이 모두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힘과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마침내 성모님은 아녜스가 할 일을 가르쳐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라. 그 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수녀원에 들어가 벵골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라."
마더 테레사는 1928년 9월 26일 스코플례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던 일을 결코 잊지 못했다. 아녜스는 어머니 앞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녜스는 마음이 몹시 산란했지만,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침내 아녜스는 기차여행을 떠나면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1928년 10월 12일, 아녜스는 더블린 라트파남에 있는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6주를 보냈고, 1929년 1월 6일 콜카타의 로레토 수녀원 옆에 있는 성 토머스 성당에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자신을 바쳤다. 1월 10일, 아녜스는 수련기를 시작하기 위해 다르질링으로 떠났고 1929년 5월 23일, 아녜스는 정식 수련 수녀가 되었다. 수련기는 준비와 시험의 시기다. 수련기 동안 아녜스는 마리 테레사 수녀라고 불렸다. 1937년 5월 24일, 테레사 수녀는 17세기 메리워드가 창설한 로레토 성모 수녀원에서 종신서원을 했다. 그때부터 테레사 수녀는 로레토 수녀원의 관습에 따라 마더 테레사로 불리기 시작한다.
1944년 마더 테레사는 성 마리아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됐다. 그 시기에 하느님은 마더 테레사에게 훌륭한 영적 스승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벨기에 출신인 첼레스트 판 엑셈 신부로, 콜카타의 바이타카나에 살면서 회교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판 엑셈 신부의 도움으로 마더 테레사의 영적 생활은 한층 성장했다. 판 엑셈 신부는 마더 테레사가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시기적절하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두려움 없이 시련을 겪어내도록 격려해 주었다. 1946년 9월 10일 -이 날은 마더 테레사의 영감의 날이다 - 이후로, 판 엑셈 신부는 마더 테레사가 시련과 고통을 겪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내면에서 울리는 기적의 소리1946년 9월 10일은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 날 마더 테레사는 피정을 위해 콜카타의 로레타 수녀원을 떠나 다르질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잠시 후 마더 테레사는 성서를 집어 들고 마태복음 25장을 펼쳤다. 그녀는 31절부터 읽기 시작했다. 기차가 속력을 내어 달리면서 기적 소리를 울리는 동안 마더 테레사는 그 성서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었다. 마더 테레사는 성서를 덮고 기도 속에 잠겨 들었다. 그러자 주님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콜카타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무척 산란했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이 마음 깊이 새겨졌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비참하게 숨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쓰레기더미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길거리 개들과 싸우는 사람들! 온갖 형태의 박탈과 타락 그리고 병 때문에 짐승처럼 길거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더러운 옷 뭉치처럼 길가에 누워 개미와 구더기 그리고 쥐들에게 물리면서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가슴 찢어지는 광경들이 떠올랐고 마더 테레사의 양심은 기적소리처럼 울부짖었다.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살고 계신 너의 사랑하는 임이 보이지 않느냐?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내 사랑아, 너는 이렇게 비참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너의 사랑하는 예수를 보아야 한다. 그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그 예수님을 돌봐드려야 한다.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다"라고 그 분이 말씀하실 때 그 목소리를 잊지 마라.' 마더 테레사는 그 목소리가 기차 여행을 하는 내내 들려왔다고 하면서 이를 '내면의 부르심' -두 번째 성소- 이라고 불렀다.
다르질링에서 피정을 하면서 마침내 내면의 목소리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로레토 수녀원을 떠나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 속에 살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도행전의 한 구절을 읽게 되었다.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데, 성령이 말씀하셨다. '바르나바와 사울은 내가 그들을 부른 그 일을 하도록 나를 위해 헤어져라'". 이 말씀을 읽자 마음의 문이 열려 전에 없던 용기를 갖게 되었다.
1948년 4월 12일, 교황 비오 12세는 마더 테레사가 일년 동안만 로레토 수녀원을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내렸다. 마더 테레사는 벅찬 기쁨에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1948년 8월 18일, 마더 테레사의 등 뒤에서 로레토 수녀원의 문이 영원히 닫혔다. 지원해 줄 사람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난생 처음 가진 것 없는 고아의 심정을 실감했다. 마더 테레사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주님만이 저의 지원자이십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믿나이다. 저를 내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고 나서 시편을 노래했다. "당신께 온전히 의지하나이다. 저의 모든 희망은 당신 자비에 달려 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17:20).
값진 교훈1948년 8월 18일, 마더 테레사는 의료교육을 받으러 파트나를 향해 떠났다. 마더 테레사는 거의 20년 동안 입어온 로레토의 수도복을 벗어버리고, 파란 줄무늬가 있는 하얀 사리를 입었다. 콜카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여성들이 입는 옷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그 사리가 자신과 자신이 만들 수도회 수녀들의 제복으로 아주 적합하다고 여겼다. 마더 테레사는 그 옷에서 새로운 상징과 의미를 발견했다. 사리의 흰색은 거룩함을, 파란 줄은 성모님을 상징하게 되었고, 훗날 그 옷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의 수도복이 되었다. 가난한 여성들은 사리 한쪽 끝에 자기 집 열쇠를 묶어두었는데, 마더 테레사는 그 자리에 작은 십자가를 묶었다. 마더 테레사는 인도 사람을 위해 일하려면 인도 여성의 옷만을 입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 해에 인도 시민이 되었다. 마더 테레사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나의 삶과 영혼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의료교육을 받고 돌아온 콜카타의 모티즈 힐(진주의 호수)에는 진주는커녕 더러운 구정물만 있었고, 주위에 빈민가가 있어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갖가지 질병, 가난, 무지, 버림받음, 타락이 난무했다. 벌거벗은 아이들이 목자 없는 양떼처럼 헤매고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목욕을 시켰다. 아이들은 비누라는 걸 난생 처음 보았다. 그들은 더럽고 작은 판잣집에 살고 있었는데, 기침소리, 우는소리, 탄식소리 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픈 사람이 없는 집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지라는 어둠이다' 마더 테레사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어둠을 몰아내고 지식의 등불을 켜겠다고 결심했다. 그 시기에 쓴 마더 테레사의 일기를 보면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금요일에 한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학교에 왔다. 나는 집에 갈 전차표 값을 아이에게 주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했다. 저녁에는 걸어서 집으로 왔다. 오늘 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내게 십자가의 가난을 입은 자유로운 수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가난한 사람은 너무 고달프게 산다. 집으로 올 때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는 다리가 몹시 아팠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찾아, 그리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닐 때 몸과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 안락했던 로레토 수녀원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들기 시작했다. 마더 테레사는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쳐주어야 한다. 아픈 사람을 보살펴주어야 한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도움 받고 구원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부르심 안에서의 부르심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하나도! 나는 밑 빠진 독처럼 쓸모가 없다' 그녀는 절망과 외로움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주님께 외쳤다. '주님 제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암흑 속을 헤매며 더듬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빛으로 인도하소서. 당신 원하시는 대로 인도하소서.' 마더 테레사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1949년 2월, 마더 테레사는 살 곳을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로레토 수녀원에서 끌어내 온 전능하신 분께서 적절한 거주지를 마련해줄 거라는 믿음에는 변함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판 엑셈 신부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찾아왔다. "수녀님, 고메즈 씨 집이 적합한 것 같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크리크 레인 14번지에 있는 그 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집이 너무 크고 웅장해서 가난한 수녀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이 되었든 이 순간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섭리라고 생각하시오"라고 엑셈 신부가 말했다. 작고 소박한 오두막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궁궐 같은 집이 주어졌고, 고메즈 씨는 세를 받지 않았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품을 구하러 갈 차례였다. 마더 테레사는 구걸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고메즈 씨도 함께 갔다. 커다란 약국에 도착하자, 마더 테레사는 약품 목록을 매니저에게 주면서 겸손하게 간청했다. "선생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 약품들을 주신다면 그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제게는 돈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약을 파는 데지 공짜로 주는 데가 아니오." 마더 테레사는 자신을 모욕한 매니저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약국 바깥에 앉아 조용히 묵주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매니저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마더 테레사를 바라보더니, 부드럽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부탁한 약이 있습니다. 우리 약국에서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받아주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느님께서 당신과 당신 약국을 축복해주실 겁니다." 마더 테레사는 성모님께 중재를 청하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입은 은혜가 수도 없이 많았다.
마더 테레사가 고메즈 씨 집에서 살기 전 일이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마더 테레사는 깜짝 놀랐다. 성 마리아 학교 학생이었던 수바시니 다스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그 아이가 아홉 살에 입학했을 때 담임을 맡았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맞아들였다. "수녀님과 함께 살려고 왔어요." 수바시니가 말했다. 수도회를 세운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여성이었다. 수바시니는 훌륭한 수녀가 될 자질을 다분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내 거친 손과 초라한 사리를 보아라. 그리고 네가 입은 옷과 비교해보아라. 네가 어떻게 이런 초라한 생활을 할 수 있겠니? 수녀원에 들어오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을 잊어야 한다. 너 자신을 부정하고, 포기하고, 주님과 이웃에게 온전히 바쳐야 한다. 어떤 희생이든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수녀님,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했고 이제는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 어린 친구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예수님을 위해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기도하며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 마더 테레사가 방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수바시니가 문을 두드렸다. 마더 테레사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수바시니의 차림새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장신구가 하나도 없는 데다 입고 있는 옷도 아주 초라한 것이었다. 자신을 온전히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