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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미쳐봐

임요환 지음 | 북로드
게임에 미친 아이



황제의 탄생


난 지금 경기석에 앉아 있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조명이 나를 비추고, 카메라는 내게 고정되어 있다. "와~ 아~!" 함성이 들린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팬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목소리다. 그보다 더 많은 팬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여기에 앉아 있는가? 대답은 오직 하나, '승리'를 위해서다. '슬레이어즈_박서(SLayerS_BoxeR)' 게임 아이디를 입력하고 상대의 등장을 기다린다. 조명도 카메라도 멀리 사라지고 팬들의 함성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순간 완전한 고요 속에 나만이 남는다. 이제 곧 무대의 막이 오를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승자이며 나만이 끝낼 수 있는 게임의 무대가 열릴 것이다. 잠시 어두워졌던 모니터가 이내 내 위치를 알려준다. 게임이 시작됐다. 심장의 박동이 점점 빨라지면서 내 손과 내 눈과 내 온몸이 오직 하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상대가 내 패를 파악하기 전에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나 동시에 내 자신을 다독거린다. 승리를 움켜잡으려는 욕망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왔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던 순간도 있다. 또다시 뼈아픈 기억을 추가할 수는 없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는 루트를 이용하여 상대가 상상할 수 없는 순간에 꽁꽁 숨겨두었던 드랍쉽이 상대의 진영에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가 예측했다 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전략이다. 승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에게 피해를 준 만큼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건 전략의 실패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내 시선은 언제나 내 본진을 관찰하고 있다. 결국 난 드랍쉽이 출발한 그 순간에 또다시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상대가 숨쉴 수 있는 시간조차 뺏어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적은 다시 살아난다. 적은 내가 이겼다고 방심하는 순간을 노릴 것이다. 상대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 추호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망설임, 내 선택에 대한 망설임, 미래에 대한 망설임... 내가 망설이는 순간 상대는 나의 허점을 찾아낼 것이다. 상대는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냉정하게 그 희망마저 꺾어야 한다. 모든 희망의 끈이 잘린 뒤 상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GG를 선언한다. 나는 천천히 모니터에서 눈을 들어 팬들을 바라본다. 헤드세트를 벗어 팬들의 함성을 듣는다. 난 오늘도 경기석에 앉아 있다. 내일도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 내 자신에게 GG를 치는 그 날까지 난 계속 게임의 무대에 설 것이다.

오락실과 축구

어릴 때 나와 친구들에게 오락실은 신나는 별천지였다. 어두운 오락실 한 구석에 앉아 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게임에 빠져 있었다. 동전이 다 떨어지면 나는 잘하는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보면서 눈으로 게임을 했다. 한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쫓아 낼 때까지, 부모님이 나를 찾아낼 때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내가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뭘 해도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도 한 동네를 접수(?)할 정도의 수준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이 그때 오락실에서부터 쌓은 실력 때문일까? 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축구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축구하고 게임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축구는 엄청난 지구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경기다. 난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뛰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 체력이 좋았다. 또한 축구 경기는 몸싸움이 심한 경기이다. 웬만한 승부욕이 없다면 좋아할 수 없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지만 난 한 번도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것은 부모님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겐 학생을 공부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방과후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 대회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우리 반은 특별히 축구를 잘하는 반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승 후보인 반과 떡 하니 맞붙게 된 것이었다. 나는 평소 축구를 할 때도 그냥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게 좋았을 뿐 승패 자체에 연연하거나 내기를 걸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가 있다. 상대가 우승 후보이니 당연히 우리 반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승부는 심판의 휘슬이 울려야 아는 것. 우리 팀이 골을 먹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닌가. 나는 골키퍼였다. 실력이 비슷비슷한 동네 축구에서는 골키퍼의 활약이 중요한 변수이다. 난 골문으로 날아오는 공을 모두 막아냈다. 공부든 축구든 게임이든 가장 큰 변수는 승부에 대한 집착과 얼마나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골키퍼의 임무인 우리 팀 골대에 공이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과는 1:0, 우리 반의 승리였다. 난 친구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축구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승부욕 뿐만이 아니다. 공을 빼앗겼다 해도 죽을힘을 다해 쫓아가 다시 뺏어올 수 있는 승부 근성. 난 축구를 통해서 바로 그것을 배웠다. 골대를 향해서 돌진하듯 내 길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듯 내 인생의 승자가 될 때까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그 마법에 사로잡히다

고대의 영웅들은 아주 젊은 나이에 왕국을 세웠다. 고구려의 동명왕이 나라를 세운 것은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때. 정확하지는 않지만 온조왕은 열아홉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나라를 세웠다. 왕위를 이어받은 것이기는 하나 광개토대왕이 왕이 된 것은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 였다. 하지만 나는 열아홉 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다섯 살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다 보니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있었다. 공부가 뒷전이었으니 당연히 학교 성적은 바닥권이었다. 친구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그저 뒤에서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누군가 나를 도와줄 구원자가 필요했다. 그때 생각해낸 친구가 바로 진석이다.



진석이는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면서 뛰어 놀던 불알친구다. 진석이네 집으로 가면서 나는 '운명을 바꿔 놓을 그 무엇'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방문을 열자 진석이는 혼자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진석아, 나왔어." "어, 왔냐? 잠깐만 기다려." 사실 진석이야 아쉬울 게 없지 않은가. 목이 말라 샘을 찾으러 간 건 나였으니까. 난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렸다. 나는 먼저 책을 꺼내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만 기다리라던 진석이는 아예 깜깜 무소식이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야! 간만에 친구가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냐?" "잠깐만, 조금만 기다려봐. 이놈들 끈질기네. 이번 게임만 끝내고." "도대체 뭘 하는데 그래?" 진석이 등뒤로 다가가서 보니까 컴퓨터 게임이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인데, 이거 죽인다." "이게 컴퓨터 게임이야? 우와 그래픽이 무지 화려한데." 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유닛들의 다양한 모습과 컬러풀한 그래픽은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컴퓨터 게임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키보드를 이용해서 조종하고 있는 친구의 손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전에 오락실에서 했던 게임은 버튼 3~4개가 고작이었는데 이 게임은 키보드를 이용해서 새로운 유닛을 계속 생산해내고 그 동작 또한 엄청나게 빨랐다. 특히 전투가 벌어졌을 때의 그 박진감은 나의 심장 박동수를 한껏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그 날부터 나는 여름방학 내내 진석이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스타크래프트를 만난 이후 앉으나 서나 내 머릿속은 온통 게임으로 꽉 차 버렸다. 생전 꺼내 보지도 않던 영어사전을 들고 질럿과 같은 스타크래프트 용어들을 찾아보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심오한(?)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 혼잣말로 "미네랄이 부족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세 가지 종족 - 테란, 저그, 프로토스 - 이 있다. 진석이의 주 종족이기도 했고 초보자가 배우기 쉽다는 이유로 난 프로토스로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배웠다. 그 해 여름, 친구들이 교과서와 참고서를 붙잡고 땀 흘리고 있을 때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제까지 살아왔던 세계 - 학교 운동장, 동네 오락실 - 에 작별을 고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새로운 공간, 더 많은 친구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싶었던 컴컴한 터널의 출구였다. 난 마법에 걸렸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아주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마법에...



재수학원을 쓰러뜨린 게임의 유혹

고3 수험생. 친구들이 코피가 나도록 공부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나는 게임과 투쟁을 하면서 밤을 지샜다. 학교생활과 게임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은 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등교는 해야 하고 게임도 포기할 수 없고. 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해 학교에서는 자고 밤에는 PC방에서 지내는 기막힌 생활을 계속했다.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게임을 했던 시기는 고3 시절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였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고 있지만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로는 승부에 대한 압박 때문에 게임을 100퍼센트 즐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정말 게임을 100퍼센트 즐기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고3 겨울방학 때다. 물론 그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학능력시험 점수가 발표된 날 그 자유는 끝나고 말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게임을 뒤로하고 다시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재수학원 앞에서 만나게 됐다. "요환아! 오랜만이다." "경인아, 네가 왜 여기 있냐? 너 성적 꽤 좋았잖아!" "나도 재수하기로 했다. 옛날에 너한테 게임 배울 때가 좋았는데." "너도 이제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 임마." "예전에 네가 봤던 임요환의 제자 강경인이 아니라니까? 진짜 이길 수 있어." "네가 나를 어떻게 이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너도 빨리 가서 공부나 해." "정말 이길 수 있다니까, 정말이야! 딱 한 게임만 하자. 해보면 알 거 아냐." "그래? 그럼 좋아, 딱 한 게임이다. 제대로 뭉개주마." 그렇게 시작된 딱 한 게임! 그 딱 한 게임이 10게임, 100게임이 됐다.



게임을 다시 시작하자 나는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3개월만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그때부터 죽어라고 게임만 했다. 나는 왜 그토록 게임에 미쳐 있었을까? 게임을 할 때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것도 내게서 게임을 빼앗아갈 수는 없었다. 게임이 전부였고 다른 것은 모두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 내가 지금 프로게이머가 안 됐다면 그 시절은 어쩌면 가장 후회스러운 시간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게임에 올인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이기석 선수가 CF에 나오고 있었다. '프로게이머 1호'라는 신주영 선수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부러웠다. 하지만 모두 꿈같은 얘기였다. 난 자신이 없었다. 연습하면서 실력이 늘고 있다고 느꼈을 때의 만족감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작지만 뚜렷한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게임만큼은 자신 있다고. 난 최고의 게이머가 될 거야." 그 누구한테도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난 내 자신에게 수없이 말하고 또 말하고 있었다.



PC방 죽돌이라고? 난 프로게이머!

나는 재수학원마저 나가지 않고 이십대 첫 해를 PC방에서 보냈다. 1999년 가을이었다. 그 날도 난 늘 연습하던 PC방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배틀넷 랭킹은 어느 정도 실력을 공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난 당시 래더 순위 2위였다. 한마디로 스타크래프트를 조금 한다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해졌다. 프로 게임단이 막 생겨나고 있던 시점이었고, 배틀넷 랭킹 상위권자들은 하나 둘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내게도 기회가 왔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시나브로 기획사의 김양중 사장님 날 찾아왔다. "슬레이어즈 박서?" "네, 전데요." "게임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혹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 없나?" 이게 꿈인가 싶었다. 누구 하나 애정 어린 관심의 눈길 한번 보내주지 않는, 그저 동네 'PC방 죽돌이'인 나에게 프로게이머라는 꿈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라면 한 번 해볼 자신이 있었다. 열심히 할 수 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소박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 이상으로 내가 내세울 것은 없었다. '그래 해보자. 하는 거야. 아자!'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전혀 모르고 계셨다.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두 분은 무척 놀라셨다. 아니 어리둥절해하셨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프로게이머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셨고 장래성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은 내가 '사기꾼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날 이후 나는 계속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내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게임을 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 평생 게임에 관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내 꿈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한때 방황으로 여겼던 게임을 아예 직업으로 삼겠다고 하자, 걱정을 완전히 떨쳐내신 것은 아니셨지만 나를 믿고 허락하셨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나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드디어 나는 프로게이머의 세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토록 소망하였던 일, 두근거리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모두 모아, 새롭게 들어선 이 길에서 무언가를 기필코 이루어 내리라.



날아라∼ 드랍쉽

1999년 당시엔 '쌈장' 이기석 선수가 게이머들의 우상이었다. 나도 물론 이기석 선수가 부러웠다. 게임을 잘한다는 것도 부러웠지만 게임을 잘하면 저렇게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고 CF도 찍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지명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 '정신 못 차리고 환상 속에 사는 사람',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기석 선수는 "아! 게임만 잘해도 저렇게 인기 스타가 될 수 있구나"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희망이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도 인정받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도 연습, 둘째도 연습밖에 없었다. 정말 죽어라고 연습했다. 사실 연습만 하고 보람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오랜 시간 그 일을 하기 힘들다. 난 하루하루 성장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갔고 내 스타일과 전략을 찾아가고 싶었다. 실제로 게임에서 좋은 성적으로 성과를 이뤄낼 때 느끼는 쾌감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첫 우승의 기회가 왔다. 1999년 12월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이었다. 참가 신청을 하고 온라인 예선을 거치면서 나는 점점 더 자신을 갖게 되었다.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은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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