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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Flow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 한울림
1. 행복, 다시 생각해 보기



행복은 외부에 있는 사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이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 인생의 순간 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을 때만이 행복은 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외적 조건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내 운명은 내가 주인인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최적 경험(optimal experience)이라고 한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도까지 스스로의 마음과 육체를 바쳐 자발적으로 전력 투구할 때에 일어난다. 따라서 최적 경험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가장 즐기는 순간에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진술 내용을 분석해서 최적 경험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 이론은 플로우(flow)라고 하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플로우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의 경험 결정하기 : 현대의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즐거움과 삶의 목적을 발견해 나가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경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에 관하여 자기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사회화의 목적은 그 구성원을 잘 통제할 수 있고, 사회에서 주는 당근과 채찍에 따라서 예측 가능한 반응을 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사회가 처벌만으로 잘 통제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쾌락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본성(성적인 요구·공격 본능·안정에 대한 요구·변화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 등)은 정치인들·종교 단체·기업·광고주들이 선호하는 공략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필(feel)'을 느끼는 것만이 본질적인 것이라는 최근의 시대적 흐름이다. 그것은 곧 자기의 의식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의 '실재론'은 과거 시절 '운명론'의 변화된 형태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완전히 사회화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 보상을 받고 만족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제공하는 보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를 위해서 어떻게 사회적 보상들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보상으로 대체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목표를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을 통제하고, 외부의 꼬임과 협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2. 의식에 관해서 알아보기



자기 의식을 감수하며 조절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다. 의식은 신경계라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서 존재하며, 우리의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의식은 유전적 지시를 뛰어넘어 독립성을 갖도록 발전되어 왔다. 의식의 주요한 역할은 우리 주위에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 표상(表象)하게 하는 것인데, 의식을 통해서만 우리는 여러 감각들이 전해 주는 정보들의 우선 순위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다. 의식의 정보들을 순서화하는 힘을 의도라고 부르는데, 의도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라거나 성취하기를 원할 때 발생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내면의 주관적 세계를 통제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의식의 질서 상태 : 플로우(flow) : 우리의 의식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심리적 무질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미 마음먹었던 의도나 이를 실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상태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는데, 바로 고통·공포·불안·분노·질투와 같은 것들이다. 정보가 우리의 의식을 방해할 때마다 우리는 심리적 엔트로피라고 불리는 내적 무질서 상태, 즉 자아 기능의 효율성을 손상시키는 상태를 맞게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의 자아는 주의를 집중하여 목표를 수행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심리적 엔트로피의 반대 상태는 최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 정보가 우리의 목표들과 일치하게되면 심리적 에너지가 무리 없이 작용한다.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의 자아를 강화시킨다. 최적 경험이란,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협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사용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상태를 바로 플로우 경험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우리가 인터뷰했던 많은 사람들이 최적 경험을 묘사할 때,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느낌' 또는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플로우는 심리적 엔트로피의 정반대 개념인데, 이런 까닭으로 네겐트로피(negentropy : neg(반대의)+엔트로피)라고 불리기도 한다.



복합성과 자아의 성장 : 복합성이라는 것은 두 가지 심리적 과정을 거친 결과인데, 이 두 가지 과정은 각각 분화와 통합을 말한다. 분화라는 것은 자신이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고, 또한 본인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한편 통합이라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아이디어들과 합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복합적 자아란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자아를 일컫는다. 우리는 플로우를 경험함으로써 복합적인 자아를 갖게 된다. 플로우가 중요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지금 현재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우리 개개인의 자신감을 향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류 전체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즐거움을 통해 삶의 질 향상하기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우리의 연구는 즐거움이라는 현상은 여덟 가지의 주요 구성 요소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첫째, 즐거움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완성시킬 가능성이 있는 과제에 직면했을 때 일어난다. 둘째, 본인이 하고 있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와 넷째, 수행하는 과제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일상에 대한 걱정이나 좌절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깊은 몰입 상태로 행동할 때이다. 여섯째, 즐거운 경험은 사람들에게 본인의 행동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일곱째,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플로우 경험이 끝나면 자아감이 더욱 강해진다. 마지막 여덟째, 시간의 개념이 왜곡된다. 즉 몇 시간이 몇 분인 것처럼 느껴지고,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명확한 목적과 피드백 : 플로우를 경험할 때 그토록 완전한 몰입이 가능한 까닭은 목표가 명확하고 피드백이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피드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활동의 종류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외과 의사는 정신과 의사를 경시한다. 정신과 의사는 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환자와 십 년 동안을 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 사이의 차이점은 외과 의사는 피와 절개 과정이 의미 있는 유일한 피드백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신호들이 의미 있는 정보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피드백일지라도 그것이 심리 에너지를 쏟았던 목표와 논리적으로 연관이 된다면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일에 집중하기 : 가장 자주 언급되는 플로우 경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지속하는 동안 인생의 불쾌한 모습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우의 이러한 특징은, 즐거운 활동은 현재의 작업에 주의를 완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산물이다. 일상적인 마음의 상태는 원활한 심리 에너지를 간섭하는 엔트로피의 요소를 포함한다. 바로 이 점이 플로우가 경험의 질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는 한 가지 이유이다. 플로우를 경험할 때의 집중은―명확한 목표와 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의식에 질서를 제공하여 즐거운 마음 상태인 네겐트로피를 제공한다.



통제의 패러독스 : 즐거움은 종종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게임·스포츠·기타 레저활동에서 발생한다. 흔히들,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동기는 병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즐거움은 위험 자체가 아닌 그 위험을 축소하고자 하는 그들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위험을 자초하는 병적인 스릴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강한 느낌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플로우 경험을 낳는 활동은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수행자들이 실패율을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치로 감소시키는 충분한 능력을 갖게 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형의 활동은 예외처럼 보인다. 바로 도박이다. 우리가 즐거운 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능력에 너무 의존하고 그 결과 다른 것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통제, 즉 의식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즐거운 활동들이 우리 마음에 질서를 가져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반면, 이들 자체가 정도 이상으로 중독이 되면 우리의 자아는 특정 활동에만 몰입하게 되고, 그 결과 삶의 다양성에 대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라지는 자의식 : 자의식의 소멸은 플로우 상태에 있는 개인이 심리 에너지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다거나 몸이나 마음에서 무엇이 발생하는가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그 반대가 성립한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일시적으로 망각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 자신만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때 실제로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확대할 수 있다. 근본주의 종교나 대중 운동 및 급진 정당 등의 체계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얻고자 열망하는 자아 초월에 대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추종자들은 자기가 믿는 신념 체계와 진정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통 자신의 심리 에너지를 체계에 흡수되도록 하는데 이러한 복종 상태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것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플로우 경험이 끝나고 자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바라보는 자기 자신은 이미 과거의 자기가 아니다. 새로운 능력과 성취에 의해서 풍요로워진 자기를 느끼게 된다.



4. 플로우의 조건들 알아보기



최적 경험이란 주어진 도전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목표가 명확하고, 분명한 규칙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플로우 경험은 때로 외적 또는 내적 조건들이 운 좋게도 서로 일치하는 경우에 우연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플로우는 구조화된 활동 속에서나 플로우를 유발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있을 때 혹은 두 요소 모두가 작용할 때 주로 일어난다.



플로우를 주는 활동 :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지구상의 모든 문화는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된 활동들을 발전시켜 왔다. 심지어 기술적 진보가 가장 더딘 사회에도 미술·음악·춤 그리고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있다. 물론 이런 활동들의 근본적인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약 3만 년 전부터 동굴을 꾸미기 시작했다. 동굴 속 그림들은 분명 종교적 의미와 실용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의 주된 존재 이유는 구석기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화가와 감상하는 사람 모두에게 예술이 플로우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플로우와 종교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인간이 가졌던 상당 부분의 최적 경험은 종교적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미술·연극·음악·춤 모두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것이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초기의 구기 운동 가운데 하나인, 마야인들이 즐겼던 일종의 농구 경기는 종교 의식의 일부였으며, 최초의 올림픽 경기들 또한 종교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의 플로우 활동들은 종교적 요소가 탈색되면서, 행위자들에게 강력한 의미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현대의 플로우 활동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쾌락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경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밟아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문화에서 아주 중요하다. 플로우 활동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고, 궁극적인 의미의 근원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과 그 사회의 특성을 좀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더 적절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자기 목적적 성격 : 모든 사람들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 똑같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의식을 쉽게 통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 간의 차이를 만드는지 살펴보자. 어느 정도는 생래적인 유전적 원인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주의력 장애와 자극의 과잉 포함 현상이 있을 경우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유동적이거나 너무 산만하기 때문에 플로우를 경험하기가 힘들다. 지나친 자의식과 자기 중심화는 그 반대 이유로, 즉 주의가 너무 고정되기 때문에 플로우를 어렵게 한다. 이와 같은 양극단의 경우 모두 주의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들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며, 자기 성장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플로우를 방해하는 요인들은 개인 내부에 있다. 한편 즐거움의 추구를 방해하는 많은 환경적 요소들도 있다. 이 요소들 가운데 일부는 자연적이며, 어떤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나 찬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땅에 사는 에스키모인들도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아름다운 물건을 조각하는 법을 배웠으며, 경험에 대한 깨달음과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정교한 신화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혹독한 자연만으로는 플로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반증해 준다. 플로우를 방해하는 사회적 조건은 극복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노예제도·억압·착취·문화적 가치의 파괴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지금은 멸종된 카리브 해 섬의 원주민들이 정복자인 스페인 사람들의 농장에서 강제 부역을 했을 때, 그들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무의미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마침내는 더 이상 자손을 만들지 않았다.



사회 병리 상태를 기술하는 두 가지 용어, 즉 '사회적 무질서(anomie)'와 '소외'는 플로우 경험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사회적 무질서란 말 그대로 '규칙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무질서 상태는 경제가 붕괴되거나 혹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에 의해서 파괴될 때 일어날 수 있다. 소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질서 상태와 반대로 해석된다. 즉 소외란, 사람들이 사회 체계에 의해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사회가 무질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어떤 것에 심리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플로우 경험이 힘들다. 반면에 이와 같은 사회에서 소외가 일어날 때의 문제는, 분명히 바람직한 것이 있는 줄 알면서도 심리적 에너지를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사회적 방해 요인은 두 가지의 개인적 병리(주의력 결핍과 자기 중심성)와 기능적으로 동질적인 것이다. 개인과 집단이라는 두 수준에서 플로우 경험을 방해하는 것은, 사회적 무질서와 주의력 장애에서처럼 주의 과정의 분열로 인해서, 또 소외와 자기 중심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나친 경직으로 인해서 문제가 된다. 개인적 수준에서 볼 때 무질서는 불안과 일치하는 것이며, 소외는 지루함에 대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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