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 칸 기
라시드 앗 딘 지음 | 사계절
제1편 열조기투르크인에 관해 믿을 만한 역사가들이 진술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몽골 종족들은 에르게네 쿤으로 갔던 두 사람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거기서 밖으로 나온 무리들 가운데 중요한 수령이 부르테 치나였고, 알란 코아의 남편인 도분 바얀과 일부 종족들이 그에게서 나왔다. 앞에서 말한 도분 바얀은 알란 코아라는 매우 정결한 부인을 얻었는데, 그녀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하나는 벨구누트였고 또 하나는 부구누트였으며, 몽골의 두 종족이 그들의 후손에서 나왔다. 이제, 칭기스 칸과 그의 친족들의 지파에 관한 일화와 역사와 계보에 대한 설명을 도분 바얀과 알란 코아에서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알란 코아의 후손들에게서 수많은 지파와 종족들이 나왔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백만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조상들의 계보를 잘 보전하고 있고, 그 무리에 속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자식이 태어나면 그에게 계보를 가르쳐 주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계보를 분명하고 명료하게 알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알란 코아의 남편인 도분 바얀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고 한다. 알란 코아가 과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천막 틈 새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출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남편의 형제와 친족들이 모여 왔으나, "당신들이 나에 대해서 품는 어떠한 의심도 옳지 못하다. 내가 밴 이 자식들은 특별한 부류에 속한다. 그들이 장성하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군주와 칸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게 생긴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당신들과 평민 종족들에게 확실해질 것이다."라는 설명을 마치자 그들은 더 이상 그녀를 비난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알란 코아에게서 세 아들이 태어났다. 큰아들은 부쿤 카타키였고, 가운데 아들은 부스킨 살지였고, 막내의 이름은 보돈차르 카안으로, 칭기스 칸의 계보는 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세 아들에게서 생겨 나와 모두 '니르운'이라고 불리는 - 즉, 순결한 허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 수많은 지파와 부족들은 극도의 존경을 받았다. 보돈차르는 수많은 몽골 종족들의 지휘자이자 군주로, 매우 용맹하며 출중했다. 보돈차르에게 있던 두 아들 중 큰아들 부카는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부카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두툼 메넨은 칭기스 칸의 지파가 그에게로 소급된다. 그리고 두툼 메넨에게는 아홉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여덟 명이 살해되었고 생존한 한 사람이 카이두 칸이었다. 카이두 칸은 칭기스 칸의 6대조였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칭기스 칸의 조상들의 계보는 그 세 아들 중 바이 싱코르에게로 연결되어 있다. 툼비나 카안은 바이 싱코르의 아들이고, 칭기스 칸의 4대조이다. 툼비나 칸에게 있던 아홉 아들 중 여섯째 아들 카불 칸의 명성은 몽골 종족들 사이에서 매우 높았고, 자기 휘하에 있던 종족과 추종자들의 지도자요, 군주였다. 카불 칸은 칭기스 칸의 3대조이다. 또한, 카불 칸에겐 여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쿠툴라 카안이 군주가 되어 얼마 동안 칸의 지위에 있었으나 쿠툴라 칸이 죽은 뒤 그의 조카이자 바르탄 바하두르(칭기스 칸의 조부)의 셋째 아들인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군주가 되어 다스렸다. 이수게이 바하두르는 칭기스 칸의 아버지로 몽골의 여러 종족들의 군주였고, 그의 형과 아우들, 즉 그의 숙부와 사촌들 모두가 그에게 복속했으며, 합의에 의해 그를 자기들의 군주로 지명했다.
제2편 칭기스 칸 기
제1장 칭기스 칸의 계보앞서 나왔던 기(紀)들과 일화들 가운데에서 설명했듯이, 칭기스 칸은 알란 코아에게서 나온 모든 니르운 종족들의 정화였다. 그가 등장한 뒤, 세상 사람들은 그가 하늘의 갖가지 도움으로 특별한 인물로 선택되어 그의 탁월한 위력과 용맹으로 투르크와 몽골의 종족들, 그리고 기타 여러 집단들을 복속시키고 예속민으로 만든 것을 목격했다. 그는 마치 여러 보석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 같아서, 그의 고귀한 본성과 정결한 품성은 여러 족속들 사이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그는 세상의 여러 왕국들을 장악했고, 그의 위대한 자손들과 유명한 일족들은 지상의 일곱 강역 가운데 여섯 군데에서 왕관과 보좌를 차지하고 행운의 군주가 되었다.
칭기스 칸은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통치할 때 모여들어 그에게 복속했던 수많은 종족들은 칭기스 칸이 어렸기 때문에 그에게서 떠나갔다. 그의 어머니 우엘룬 에케는 매우 유능하고 현명했기 때문에 그녀의 힘이 닿는 데까지 그를 보호하고,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남기고 간 재산과 속민과 군대와 추종자들을 지키고 간수했다. 칭기스 칸은 어려운 처지와 수많은 곤경과 갖가지 고통에도 불구하고 매우 용맹하고 대담했으며, 대단히 지혜롭고 능란했고 이지적이었다. 그의 아량과 호의는 그의 명성을 주변에 널리 퍼지게 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다. 여러 종족들은 그에게 기울어 같은 편이 되려 했고, 결국 그는 강력한 힘을 갖추어 친구들을 승리자로, 적들을 패배자로 만들었다. 칭기스 칸은 먼저 그에게 적개심을 품었던 그의 친족과 사촌들과 부형들과 싸워서 그 종족의 대부분을 격살하고 예속민으로 편입했다. 또한 알탄 칸(주르체 종족 출신이며, 다이킴 완얀 아쿠다의 후손들 가운데 군주였던 사람들을 모두 알탄 칸이라고 불렀다)에 대한 전쟁에 나서 키타이 지방 대부분을 정복했고, 티베트와 탕구스 왕국, 키타이, 카라장 지방, 투르키스탄 지방과 이란을 정복했다. 그는 조카들과 함께 키랄, 바쉬기르드, 불라르, 킵착 초원, 러시아, 체르케스, 아스를 비롯하여 북쪽 끝까지, 또 남쪽으로는 아비시니아에 이르기까지 점령했다. 솔랑카 지방도 마찬가지로 점령했다. 그의 동생인 쿠빌라이 칸은 키타이의 나머지 지방을 장악했고, 형제인 훌레구 칸은 바그다드, 시리아, 이란의 나머지 지방을 비롯하여 룸 지방의 가장 먼 곳까지 모두 점령했다.
칭기스 칸에게는 거의 500명에 이르는 부인과 후궁들이 있었는데, 각 종족에게서 취한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몽골식으로 혼인했지만, 대부분은 여러 나라와 지방을 정복했을 때 전리품으로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큰 부인들은, 첫째 명망 높은 네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들의 어머니인 부르테 푸진, 둘째 쿨란 카툰, 셋째 이수겐, 넷째 알탄 칸의 딸 공주 카툰, 다섯째 이수겐의 자매 이술룬이다. 부르테 푸진에겐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주치, 둘째 차가타이, 칭기스 칸이 사망한 후에 카안이 되어 13년간 카안의 자리에 있었던 셋째 우구데이, 넷째 톨루이였다. 칭기스 칸의 이 네 아들들은 모두 총명하고 유능하며 완벽하고 용맹하며, 아버지와 군대와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칭기스 칸의 국가에 네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제2장 칭기스 칸 일대기
제1절(1155 ∼1166년)칭기스 칸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믿을 만한 점성사들은 그가 워낙 위대한 통치자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 연도를 기록했고, 돼지해의 가을 보름날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몽골의 여러 왕자들과 아미르(군 사령관 ·총독 ·황태자 등을 뜻하는 아라비아어)와 귀족들에게는 그의 생애가 만 72년이었고, 일흔 세 살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칭기스 칸의 아버지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행운의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그는 자신의 부배(父輩)들과 백숙(伯叔)들에게 속해 있던 모든 종족들의 통치자요 수령이었고, 모두 그에게 복속했다. 그러나 타타르를 비롯한 다른 종족들은 그와 적대했고, 그들 사이에는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그의 부인 우엘룬 에케가 칭기스 칸을 임신했을 때도 그가 타타르 원정에 나섰을 때이다.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타타르의 군주인 테무진 우게, 코리 부카와 전투를 벌여 그들을 패배시키고 절멸한 뒤 승리하고 돌아와 그들의 재산과 가축을 약탈하고, 델리운 볼닥이라고 부르는 곳에 진영을 친 후 얼마가 지난 뒤 칭기스 칸은 돼지해(1155년) 행운의 시각에 태어났다. 칭기스 칸은 손에 마치 간(肝)처럼 생긴 복사뼈만한 응혈을 움켜잡고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세계 정복자의 징표가 분명히 보였으며, 행운과 번영의 빛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이수게이 바하두르는 타타르와 그 군주인 테무진 우게에게 승리를 거두고 적을 눌렀기 때문에 그것을 상서로운 징표라고 생각하여 그 타타르 군주의 이름을 따서 영광스런 자식에게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제2절(1167 ∼1194년)칭기스 칸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부친 생전에 그를 미워했고 은밀히 적개심을 품었던 타이치우트 종족의 수령들, 즉 그의 친족들은 오랜 원한을 드러냈다. 타이치우트는 가장 막강한 지파였기 때문에, 이수게이에게 복속하던 다른 친족과 군대가 그의 자식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타이치우트 쪽으로 기울어 점차 그들과 연합하여 강력한 세력을 지녔다. 칭기스 칸에게 적개심을 품은 자무카 세첸도 타이치우트 종족에게로 가서 연합하고, 이키레스 종족, 코룰라스 종족이 타이치우트와 연합하여 3만 명의 기병으로 칭기스 칸을 공격해 왔다. 그들의 의도와 계략을 전해들은 칭기스 칸은 즉시 군대를 정비하고, 그를 지지하며 우호적이던 종족과 족속들 모두에게 소식을 알려 그들을 다 모여서 나누니 13쿠리엔(말의 뜻은 '고리'인데, 한 종족이 어떤 지점에 진영을 칠 때 고리 같은 모양을 이루고 그들의 지도자는 마치 그 원 안의 점처럼 위치했기 때문에 쿠리엔이라 불렀다)이었다. 양측의 전투가 벌어졌고 13쿠리엔으로 적군 3만 명의 기병을 격파했다. 적들은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고, 우두트와 부르두트 종족의 수령인 우드트와 부르두트가 그에게로 와서 복속했다.
타타르 종족이 알탄 칸의 명령을 받들지 않고 그에게 복속을 표하지 않았는데(타타르 종족들은 키타이 군주인 알탄 칸에게 복속한 예속민이었다), 그를 대적할 만한 힘이 없어 극심한 궁지에 빠지자, 부인과 아이들과 말떼와 가축과 노복들을 데리고 이동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칭기스 칸은 타타르 종족의 무진 술투와 그의 부하들의 이런 소식을 듣고는 공격하여 무진 술투를 붙잡아 죽이고 그들이 갖고 있던 모든 말떼와 가축과 물자를 노략했다. 이 같은 일이 알탄 칸과 그의 아미르들의 희망에 들어맞는 것이었기 때문에, 알탄 칸 휘하에 있던 대아미르인 칭상은 매우 기분이 좋아서 칭기스 칸을 칭찬하고 그에게 '자우우트 쿠리'(키타이 말로 대아미르라는 뜻)라는 칭호를 주었다.
칭기스 칸이 타타르에게 승리를 거두고 그의 군사와 속민들이 많은 보상을 받았을 때, 그는 유르킨 종족을 회유하기 위해 약탈물 가운데 일부를 그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생각했으나, 도중에 유르킨 종족 가운데 일부가 반도들과 연합하여, 칭기스 칸 휘하의 군인 두 명을 살해하고 50명의 말을 빼앗은 뒤 그들의 옷도 벗겨버린 일이 발생했다. 그러한 보고를 받은 칭기스 칸은 분노하며, 그들을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약탈했다. 그 후 니르운에 속하는 다른 종족들과 타타르, 메르키트 등 여러 종족들이 서서히 칭기스 칸의 어전으로 와서 그의 군대의 숫자도 많아져, 마침내 상술한 이 27년의 기간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막강한 세력을 이루었다.
제3절(1195 ∼1203년)칭기스 칸의 부친 이수게이 바하두르와 옹 칸은 서로 이웃한 곳에 살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매우 우애 있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했다. 옹 칸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뒤 쿠르차쿠스의 계승권을 두고 나라 안에서 서로 다투었던 관계로 자신의 형제와 조카들 몇 명을 살해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숙부인 구르 칸이 그를 공격했고, 옹 칸은 패배하여 한동안 떠돌이 신세가 되었는데, 그때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고, 그를 도와 출정해서 구르 칸을 공격하여 나라를 빼앗아 옹 칸에게 맡겼다. 그 같은 빚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은 의형제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의형제'라고 불렀고, "애정은 세습된다"라는 속담처럼 칭기스 칸도 우호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칭기스 칸은 메르키트 종족의 톡타이를 치기 위해 출정하여, 메르키트를 격멸하고 약탈했는데, 그 전투에서 빼앗은 것들을 모두 옹 칸과 그의 누케르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옹 칸은 강력해지고 군대와 속민(屬民)들을 지휘하게 되자 아무 상의도 없이 메르키트에 대한 원정을 감행하여 그 곳을 치고, 가축과 노복들과 함께 끌고 왔으나 그것을 가운데 어떤 것도 칭기스 칸에게는 주지 않았다.
칭기스 칸은 옹 칸과 연합하여 나이만의 부이룩 칸을 쳐서 패배시켰다. 그리고 부이룩 칸 휘하의 군사령관인 쿡세우 사브락을 치기 위해 출정하여 동이 트면 전투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옹 칸은 자기 군대가 주둔하는 자리에 불을 밝히고는 밤중에 산을 넘어서 가버렸다. 옹 칸이 그 같은 기만술을 써서 이탈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는 도중에, 메르키트의 군주인 톡타이의 동생과 톡타이의 아들이 옹 칸이 없는 틈을 타서 다시 반란을 일으키고, 자기들의 군대와 영지를 수습했다. 쿡세우 사브락은 군대를 데리고 즉시 추격하여 그곳에 있던 웅 칸을 급습하고, 그들의 모든 재산과 가축을 약탈했다. 옹 칸은 다시 곤경에 처하자 칭기스 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칭기스 칸은 네 명의 대아미르를 보내어 재산을 다시 빼앗아 옹 칸에게 돌려주었다. 칭기스 칸은 옹 칸과 함께 만나 회합을 열고 쿠릴타이(Khuriltai : 몽골인을 비롯하여 북방 유목민 사이에 옛날부터 관행(慣行)되어 온 합의제도)를 개최하고, 함께 타이치우트를 공격하여 그 종족들은 패주했다. 칭기스 칸은 타이치우트 및 그들과 연맹한 다른 종족들을 공격하여 패배시켰고, 이디 코로칸이라는 곳에서 자무카를 격파했고, 쿵크라트 종족도 거기서 복속했다.
자무카 세첸은 원래 칭기스 칸에 대해서 적개심과 악의를 품었고 속임수와 악행에 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옹 칸의 큰 아들인 셍군에게로 가서 "칭기스 칸은 당신의 적인 타양 칸과 의기 투합하여 계속 사신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하여, 칭기스 칸이 출정할 때를 이용하여 군대를 사방에서 불러 그를 치자고 합의하였다. 칭기스 칸의 숙부인 다리타이 옷치긴과 알탄, 쿠차르 등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그에게 분노했기 때문에, 그들 또한 자무카와 셍군 사이의 합의에 동참하여, 모두 연합하여 칭기스 칸을 치기로 했다. 그때 셍군은 아버지와 떨어져 엘레트라는 곳으로 이동한 뒤, "전에 그가 우리의 딸을 자기 아들인 주치를 위해서 청했으나 우리는 주지 않았다. 이제 사람을 보내 '딸을 줄 테니 와서 잔치를 벌이고 혼례 음식을 같이 먹자!'고 말하자. 그리고 그가 오면 그를 붙잡아 버리자."라고 계략했다. 칭기스 칸에게 전갈이 전달되자 그는 출발하였으나 옹 칸과 셍 군이 칭기스 칸을 향해 출정할 계획을 꾸민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옹 칸 휘하의 대아미르인 한 사람이 현재 일어난 일을 부인과 말하는 이야기를 집 밖에 서 있다가 들은 키실릭은 즉시 칭기스 칸에게 신속하게 소식을 알려주었다. 칭기스 칸은 이 말을 잘 이해하고 자신은 아랄에 머물고, 천막들은 산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옹 칸이 마우 운두르산의 전면(前面)에, 붉은 버드나무 숲이 자라는 곳으로 온 소식을 전해들은 칭기스 칸은 즉시 출정했다. 양측 군대는 대치하여 전열을 정비했다. 칭기스 칸의 군대는 적었고 옹 칸의 군대는 많았으나 칭기스 칸과 다른 아미르들도 모두 함께 공격을 개시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케레이트 종족들 가운데 하나이며 옹 칸 휘하의 최정예 군대인 지르킨 종족을 패주시켰다. 그 뒤에 케레이트 종족에 속하는 퉁카이트 종족을 격파하고, 그 다음에는 옹 칸 휘하의 아미르들 가운데 대아미르인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