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세계
에이미 추아 지음 | 부광
머리말 - 세계화와 민족적 증오심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이유와 조건 하에서 경제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소수 집단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화교)들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수 집단이다. 1998년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3% 밖에 되지 않은 중국인들은 인도네시아 민간경제의 약 70%를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브라질, 에콰도르 등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도 소수의 백인들이, 서아프리카에서는 소수의 레바논인들이, 탈(脫)사회주의 러시아에서는 유태인들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집단들은 자유시장 민주주의의 아킬레스 건이다. 소수 집단에 의한 시장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시장과 세계화는 소수 집단의 손아귀에 부를 집중시킨다. 반면 민주주의는 경제력을 상실한 다수 집단의 정치적 힘을 증가시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동시적인 추구는 잠재적으로 재앙을 몰고 올 민족국가주의의 엔진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좌절감에 빠진 토착민 다수 집단은 기회주의적으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가들의 부추김에 쉽게 자극받아 부유한 소수 집단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대립현상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시에라리온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이래로 이러한 대립 현상은 미국에서도 역시 그 증후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전 세계에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다른 많은 소수 집단들과 동일하게 증오와 분노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통해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는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최근 20여 년 동안 미국 정부는 직접적으로 또는 세계은행, 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 세계 수십 억 인구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적 선거제도를 전파해왔다.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시장 민주주의가 후진국들의 다양한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는 이제까지 세계에 알려진 것 중 가장 효과적인 경제시스템이고, 민주주의는 가장 공명정대한 정치시스템이자 개인의 자유를 가장 존중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시장과 민주주의가 널리 확산된다면 이 세계는 전쟁 없이 번영하는 안정적인 국가들의 공동체로 변하게 될 것이고 개인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사회 복지에 관심을 갖는 성숙한 시민이자 소비자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족적 증오심 등 그 밖의 부정적인 측면들은 완전히 일소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이야말로 비서방국가들에서의 집단적 증오심과 민족적 폭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소수 집단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 도처의 사회에서 자유 시장과 민주주의의 동시적 추구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폭발 위험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다.
제1부 세계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루비와 쌀, 동남아시아에서의 중국인 소수 집단에 의한 지배미얀마에서는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중국인들이 미얀마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전 세계 티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미얀마의 삼림은 미얀마 원주민인 샨족에 의해 벌채되어 중국으로 밀수출되고 샨족이 벌어들인 돈은 소비물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와 파는 중국인들의 수중으로 모두 들어가고 있다. 결국 티크와 돈은 모두 중국인들 손으로 들어가고 토착민들에게는 가짜 나이키 신발, 콘돔, 맥주 등과 같은 슬럼가 쓰레기 통에서나 볼 수 있는 값싼 중국제품들만 남게 되었다.
티크와 아울러 미얀마는 루비, 사파이어 등과 같은 최상품 보석산지로 유명하다. 시장 개방과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조심스러운 변화과정 속에서 1990년 대 초 미얀마 정부는 보석산업 중 많은 부문을 민영화시켰다. 그리고 미얀마의 보석 채굴권은 거의 대부분 중국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소문에 의하면 한 중국인 소유의 보석회사는 100개의 보석 광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 개방과 함께 중국인 소수 집단들은 거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는데 반해 도시 지역의 토착 미얀마인들은 시장 개방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등해 기아에 가까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로 인해 대다수 미얀마 족들 사이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끓어오르고 있다.
사실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동남아시아 상권을 불균형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1950년대에 베트남에서도 인구의 단 1%를 이루고 있을 뿐인 중국인들이 소매업, 금융, 제조업, 운송 분야, 쌀의 유통과 수출 등 베트남 경제의 모든 측면들을 지배해왔다. 베트남 전쟁 동안 남베트남 정부가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자 사이공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했고 그들의 부의 축적은 극에 달했다. 1976년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통일되면서 베트남 혁명정부는 남쪽의 중국인 기업가들을 '부르주아'로 지목하고 수천 명을 체포하고 고문을 가한 뒤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가 1988년에 시장자유화, 즉 도이모이(베트남식 경제개혁정책)로 전환하자 중국인들은 빠른 속도로 이전의 경제적 세력을 회복해나갔다. 그들이 상권을 장악해가는 속도는 가히 부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현재 베트남 인구의 3%에 불과한 중국인 소수 집단은 호치민의 시장활동을 50% 이상 주도하고 있으며 경공업, 수출입, 쇼핑몰, 사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하여 토착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는 중국인 소수 집단에 대한 적개심이 또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이밖에 타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도 중국인 소수 집단들이 그 지역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물론 세계화는 분명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토착민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다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세계화로 인해 이들 국가의 모든 계층의 평균 소득이 증대되고 절대적인 빈곤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토착민들은 여전히 충격적일 정도로 빈곤하게 살고 있다. 반면 중국인 및 외국인 투자자들과 같은 소수 집단들의 부는 기형적으로 증대되었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 토착민들은 자유시장은 오직 소수 집단인 '아웃사이더들'과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부패한 정치인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역시 미국과 세계은행, IMF의 지원을 받는 대신 세계화를 지향하는 자유시장정책들을 시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외국자본이 유입되었고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한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 민간 경제의 70%를 장악했다. 그리고 소수의 파렴치한 중국인 재벌들은 부패한 수하르토 정권과 결탁하여 엄청난 부를 축척하고 있었고 인도네시아의 토착민(프리부미)들은 분노를 쌓아가고 있었다. 1998년 5월 마침내 경제위기와 함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수하르토는 사임했다. 그 후 성난 프리부미들은 중국 상인들의 상점과 집에 불을 지르고 약탈했다. 중국인들은 즉시 인도네시아를 떠났고 그들이 함께 가져간 400∼1,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도피자금은 결국 인도네시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당시 프리부미들은 "중국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만 있다면 10년간의 경제성장을 잃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메리카에서의 백인의 부볼리비아, 페루, 과테말라, 에콰도르 이 네 나라에서 토착민인 아메리카인디오들은 여전히 인구의 다수 집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나라 경제권에서는 소외된 하위계층이다. 반면 소수 집단인 백인들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칠레, 우르과이(일찍부터 토착민들이 거의 사라진 곳들)를 제외하고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근본적으로 피그멘토크라시(피부색에 따라 권리와 재산을 분배하는 사회체제) 사회이다. 즉 키가 더 크고 피부색이 흰 소수의 유럽계 최상류층들, 키가 작고 피부색이 검은 인디오계 다수 집단이 하류층을 이루고 있다.
유럽계 토지소유자들의 시장장악은 실제로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토착민인 아메리카인디오들을 너무 쉽게 정복했다. 그리고 토착민들의 땅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국가들에서 점점 더 사기가 꺾이고 땅마저 빼앗긴 농촌지역의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희생을 딛고 라티푼디오스(소수의 스페인계 가문이 소유한 대농장 토지들)는 점점 더 광대하게 넓혀져 갔다. 오늘날 볼리비아, 페루, 멕시코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그 외의 라틴아메리카 대다수의 국가에서 위와 같은 상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밝은 피부색을 가진 극소수의 시장점유집단이 항상 경제와 정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고, 다수 집단을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은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탈공산주의 러시아의 유태인 신흥부호들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러시아는 동부 폴란드의 많은 부분을 병합했고 그에 따라 영토와 함께 엄청나게 많은 수의 유태인들도 러시아에 귀속되었다. 유태인들이 나라 전역에 확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차르 정부는 유태인 제한 구역을 만들어 집단 수용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일부 유태인들은 은행업자, 무역업자 등으로 크게 성공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후 공산주의 시대에도 유태인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암시장에서 지하경제의 동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는 공산당 정치국의 실세들을 제외하고는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없었으며 유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탈소비에트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1990년대 동안 7명의 기업가들(그들 중 6명이 유태인이었다)이 러시아의 광대한 천연자원 대부분을 포함해서, 사유화로 전환된 러시아 경제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글라스노스트(개방)이전에 작은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이들 유태인 올리가르흐(과두 재벌)들 대부분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전환하는 시기 동안 그 간극을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경쟁에 뛰어들어 억만장자가 되었다. 올리가르흐들은 정부에 정치자금과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러시아 경제의 노른자인 천연자원 및 에너지 자원의 독점권을 보장받았다. 특히 1996년 보리스 엘친이 재선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배할 것으로 보이자 올리가르흐들은 엘친 선거운동에 수 백만 달러를 쏟아붓고 텔레비전 공중파를 장악하여 친엘친 뉴스로 넘쳐나게 했다. 그리고 엘친의 승리와 함께 그들이 도입을 주장했던 주식담보대출 거래가 제도적으로 정식 승인됨으로써 이들 소수 그룹의 백만장자들은 일약 억만장자로 단번에 승격했다. 몇 년 후 올리가르흐들은 블라드미르 푸틴을 엘친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시켜주겠다고 보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이들 유태인 올리가르흐들 중 언론재벌 두 명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 푸틴을 비판하는 방송을 공공연히 내보내자 푸틴은 2000년 3월 26일 대통령 선거가 있기 일주일 전에 러시아의 신흥 재벌들에게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푸틴이 당선되자 두 사람은 즉시 해외로 망명 길에 올라야만 했다. 유태인 올리가르흐 중 한 명이자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회사인 유코스의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역시 조세 포탈 등 7개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이제 유태인 올리가르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푸틴의 처분대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소비에트 유태인 연합은 푸틴이 "공공연하게 미움을 받아온 유태인들인 신흥재벌들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최근 공산당과 결합한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반유태인적 공격을 노골적으로 표면화하고 있어 정치적인 반유태인주의가 러시아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시장 점유 소수 집단들의 경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 유태인들까지 러시아의 반유태인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오늘날 러시아의 웹사이트들은 "경제를 쥐고 흔드는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의 부를 약탈하는 시온주의자들, 피를 빨아먹는 유태인놈들"이라는 문구로 가득 차있다. 러시아에서 아직 반유태주의가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2001년 순수 러시아 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러시아의 부를 훔치는 유태인들의 독주를 막기 위한 극우 신당이 창당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시장점유 소수 집단들전 세계에서 시장 점유 소수 집단들이 가장 많고 다양한 곳은 식량과 가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이다. 소수 집단이 누구든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극심한 원한과 분노의 대상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가장 두드러진 남아프리카의 경우 소수의 백인들이 그 지역의 천연자원과 인력을 착취하고 엄청난 부와 현대화를 이룬 자신들만의 제한 지역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은 토착민 흑인 다수 집단 사이에 점점 커져가는 이유있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증오의 전형적인 결과는 끔찍한 폭력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구분포는 미국과 정반대로 인구의 77%가 흑인이고 11%가 백인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흑인 다수 집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를 지배하게 된 주된 이유는 처음부터 백인들이 엄청나게 유리한 출발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세대 전 그들의 선조들이 흑인 다수 집단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박탈하고 교육도 받지 못하게 하면서 대규모의 노동력으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경찰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의 65%가 절대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고 80%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수백인이 자행한 극단적 인종차별 및 인종격리정책의 총칭)가 종식되고 7년이 지난 지금도 백인들은 여전히 남아프리카공화국 땅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경지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세계화 덕분에 성공을 거머쥔 사례들도 일부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정책들이 수천 명의 성공담을 만들어 낼거라고 기대하는 이 순간에도 흑인들의 실업률은 48%를 육박하고 있고 빈민가 인구는 매년 1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은행, 주요 기업들은 거의 전부가 여전히 백인들의 소유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남아프리카공화국뿐만 아니라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 전역에 만연되어 있다.
제2부 세계화가 정치에 미친 영향세계시장의 확산은 폭발 위험의 잠재성을 안고 있는 민족적 부의 불균형을 낳았다. 그와 동시에 세계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선거와 민주화를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민주화의 세계적 확산은 시장과 민주주의가 협력하여 작용한다는 서방의 경제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점유 소수 집단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시장과 민주주의의 접목이 평화와 번영을 확산시키는 게 아니라 사회불안과 격변, 민족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충돌을 촉발시켰다. 시장 점유 소수 집단과 가난한 토착민 다수 집단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민주화와 시장의 힘이 직접 충돌한다.
시장이 시장점유 소수 집단들을 잘 살게 만들어줄 때 민주화는 좌절감에 빠진 다수 집단의 정치적인 발언권과 힘을 증가시킨다. 민주화에 의해 실시되는 선거전은 다수 집단의 굴욕을 끝내고 그 국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