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위기의 진실
잭 M. 홀랜더 지음 | 에코리브르
서문 : 환경비관론의 위기환경 위기가 이미 닥쳤거나 곧 다가올 것이라는 아주 극단적인 기사가 매일 아침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대부분 '사람이 환경의 적이다'라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부유한 생활 방식이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고, 우리가 사는 도시, 하늘, 바다를 오염시키고,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자연 자원을 낭비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 보도는 이미 환경에 관한 정설의 보증서가 되어버린 미래비관론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것의 주요 테마는 부유한 사회는 본질적으로 환경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사람이 환경의 적은 아니다. 그리고 부도 환경의 적이 아니다. 부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을 돌보게 만든다. 사람들이 점점 더 부유해질수록 환경의 건강과 아름다움에 대해 더 민감해지며, 부가 증대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마련된다. 물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 정치적 의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부는 미래 세대에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줄 핵심적인 요소이다. 환경의 진정한 적은 가난이다. 가난은 기아와 질병, 무지에 시달리는 세계 수십억 인류의 비극이다. 가난은 환경 오염의 원흉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희생물이다. 가난에 빠진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난이라는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긴 여정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국제 기구, 외국 정부 그리고 개인들로부터의 도움과 자국 정부의 성실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환경의 미래를 위한 핵심적인 필수 요건은 전 세계가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한 사회로 가는 것이며 더불어 자유민주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들을 특정한 자원과 중요한 환경 이슈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내가 주장하는 미래 환경에 대한 낙관주의는 대부분의 환경 단체나 언론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통념과는 크게 다르다. 환경비관론과 반대로 환경낙관론은 이러한 문제를 좀더 성공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할 수 있다'는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부유한 국가에 사는 국민들과 언론이 인구 과잉, 자원 고갈, 지구 온난화와 같은 문제를 당장 직면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절실히 해결해야 할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과 세계에서 가장 해결이 어렵고 널리 퍼져 있는 환경 문제인 빈곤과 같은 결정적인 문제로부터 지금 이 시대 인류의 관심을, 더욱 중요한 것은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풍요와 민주주의가 가난과 독재를 몰아내어 인류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면 세계 모든 곳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 미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건강한 환경을 위해 투자할 경제력이 있고, 또 그렇게 할 자유가 있는 사람은 만약 그들이 계속 해오고 있는 다른 사회적 선택과 비교하여 현실성 있는 대안들의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현명한 환경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역사의 순리에 따라 지구촌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계화는 수십 억의 사람들이 부의 증가와 민주적인 선택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세계화나 세계경제(예를 들어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의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노동 여건이나 상대적 수입과 같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는 21세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가구 수입이, 비록 특정 기간이나 일부 국가에서 속도가 다소 느리거나 변동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핵심 논쟁은 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이 논쟁은 부가 진정한 환경 보호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나의 주장과 부가 무분별한 소비주의를 조장하여 환경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을 양 축으로 한다. 두 입장 모두 명백히 미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지만, 증거에서는 부와 환경의 질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쪽이 우세하다. 또한 그 증거는 여기서 우리가 한쪽(부유한 국가)에서의 환경 개선이 다른 쪽(가난한 국가)의 환경 악화를 불러온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빈부의 두 세계현재 세계 인구의 6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약 10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다. 만성적 영양 부족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3분의 2(5억 2,500만 명) 정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산다. 만약 지구상에서 영양 부족 상태인 사람들을 모두 모은다면 그렇게 모인 '배고픈 대륙'의 인구수는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의 인구수를 초과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굶주리는 사람이 숫자 면에서나 인구 비율 면에서 끊임없이 증가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더없이 풍요로운 지금 세상에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는 이런 극도의 가난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환경 요인이 가난에 어느 정도까지 기여할까? 그리고 가난 자체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하지 않은 자연 조건, 많은 전염병, 땅을 황폐화시키고 사회, 제도, 가치를 손상시켰으며, 고유의 리더십과 민주주의의 전통에 완전한 공백을 남긴 수세기 동안의 노예무역과 유럽의 식민정책(단지 한 세대 이전에 끝났다)도 이들의 가난과 고통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최근의 가뭄과 농작물 재배 실패, 내전, 비민주적인 많은 정권들의 무감각한 정책들 역시 환경 악화와 실업과 불평등한 식량 배분으로 이어지는 사회 붕괴에 보탬이 되었고, 이러한 것들이 기아를 유발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부유한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시되는 지구 온난화나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라는 것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일부 지역에서 만연하고 있는 상황과는 반대로 다른 곳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생존의 장벽을 넘어서 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나라들은 산업화와 현대화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이루었다. 아시아 대륙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가장 눈에 띄는 '두 번째 단계'의 나라들이며,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나라 중 좋은 예이다.
중국의 경제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중국 도시들의 환경은 심각하게 곤두박질쳐왔다. 가장 눈에 띄는 환경 문제는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석탄 연소로부터 발생하는 아주 높은 수준의 대기오염이다. 대부분 급속한 산업화, 급증하는 전력 사용량, 그리고 전력 생산을 전적으로 석탄에 의존하는 것이 오염의 원인이다. 문제는 발전소의 배출 가스를 정화하는 기술을 적용해야 함에도 그 설치비와 가동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중국이 그것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중국의 성장 단계에서는 충분하지 못한 예산을 배분할 때 깨끗한 공기(또는 다른 환경 이득)를 얻으려는 것보다는 과거부터 사용해오던 석탄으로 더 싸고 풍부한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더 우선적이었다. 그러나 중국 국민들의 환경 의식도 경제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여 이러한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대기오염 규제법을 제정 중이며, 더욱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질 것이다. 청정 석탄 기술을 도입하고, 수백만 톤의 공업용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고 있으며, 청정 대기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의 크기와 지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중국이 부유한 국가로 변해가고 국민들의 환경 의식이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세계 환경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 된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이나 중국 또는 그 외의 어떤 곳이라도 만성적인 가난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돌보고 부양하게 하는 인센티브와 경제적 수단을 빼앗는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이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에 따르면 가난은 단지 재정 수입이 부족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기본 자유의 박탈 개념으로 특징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서 개발은 저개발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디고 있는 부자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부자유에는 가난 외에도 건강 관리의 결핍, 공중 위생의 부족, 교육으로부터의 소외(특히 여성), 시장 활동으로부터의 배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제상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기본권이 박탈되는 전제 정권이 포함된다. 센의 관점에서 보면 개발에는 민주적 선택의 자유도 포함되어야 하는데, 이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정부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 같은 삶의 질을 위해서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개인의 상당한 경제력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이나 가족 또는 사회를 위해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자유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또한 그러한 자유는 정부 규제와 시장 원리의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 가치와 환경 윤리의 발전을 부양한다. 이러한 가치와 윤리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하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지금까지의 사실을 보면 20세기 후반에 서구 사회와 일본에서 환경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고 현재 중국에서도 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미래에 이러한 변화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식량 문제많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가에서는 매일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자급자족 농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의 가장자리로 이주하여 수입과 식량을 얻고자 산림을 벌채한다. 그들에게 급선무는 살아남는 것이며 적어도 눈앞의 생존이 산림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보다는 확실히 우선순위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산림 파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위협받고 있는 자연 자원의 보호에 대한 이 명백한 포기는 왜 가난이 환경 문제에 그렇게 결정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다.
사실 1970년대 이후 세계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을 생산해오고 있다. 그러나 식량이 얼마나 많아야 '충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총 세계 식량 필요량은 1인당 칼로리에 세계 인구를 곱해서 구할 수 있다. 만약 세계 인구가 93억이고, 매일 한 사람이 3,000칼로리의 음식을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총 세계 식량 필요량은 약 {10}^{16}칼로리가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식량을 현재 경작 중인 농경지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는 경작지 1헥타르당 연평균 약 700만 칼로리를 수확해야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작물에서 1헥타르당 1.8톤의 수확량과 맞먹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은 지금도 수확률이 이보다는 훨씬 높다. 그리고 향후 몇십 년 안에 새로운 농업 기술과 향상된 농업 경영 시스템이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성을 높여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세계 농작물 수확률이 오늘날 미국의 밀 수확률(1헥타르당 3톤)에만 도달한다면 세계의 90억 인구는 매일 3,000칼로리의 식량을 맘껏 소비할 수 있고, 현재 경작지의 3분의 2도 채 안 되는 면적만 사용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식량의 필요량을 계획할 때는 식량 생산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소비의 효율성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벨기에,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계속 식량의 60퍼센트 정도를 낭비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낭비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세계 식량 필요량은 7퍼센트 이상까지 감소하게 될 것이다.
식량이 풍부한데도 넓은 지역에 걸쳐 불균형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식량 문제는 소득 수준으로 결정되는데, 이것은 지역적인 문제이다. 두 번째, 저소득은 개발도상국의 문제 중 일부라는 점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무능력이 일부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기아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다. 세 번째, 가난한 나라에서는 물과 땅, 숲 그리고 물고기 같은 부족해지기 쉬운 자연자원이 한계 용량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과 정치적 힘이 없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은 자원을 사용하는 데 더욱 극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가장 광범위하고 결정적인 기아의 원인은 아마 내란과 전쟁일 것이다. 이 전쟁으로 전투 때문에 직접적으로 죽은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굶어죽었다. 내란이나 전쟁을 제외하면 가난이 기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적절한 기아 방지 시스템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농업 기술의 발전과 상당한 수준의 정치 상황의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정치 상황의 개선은 "사회의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기초가 되며 나아가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식량 생산이 증가한 것은 주로 농경지 면적의 확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개발도상국에서 엄청난 식량 증산을 이룩한 녹색혁명은 경작지 면적을 늘리기보다는 주로 주어진 경작지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 생산력 강화로 이루어졌다. 미래에도 농업에서는 녹색혁명에서 시작된 생산력 강화가 계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2의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농업 생명기술의 혁명은 선진국에서 지금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생명기술을 자신들이 당면한 농업 문제 해결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정도가 개발도상국에서의 생명기술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비해서는 미미하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정부, 기관, 기업, 개인)이 함께 돈과 힘을 투자하여 이 중요한 과제를 지원해야 한다. 만약 가난한 나라의 소규모 농민들이 생명기술로부터 파생되는 혜택을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면 선진국들은 도움의 손길을 뻗을 의무가 있다.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에게는 분명 이러한 권리가 있다. 농업기술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점점 쌓여가고 인체나 환경에 무해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부유한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소비자들도 결국 유전자 변형 식품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반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십억에 달하는 개발도상국의 농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제2의 녹색혁명은 그들 식탁에 음식 몇 가지가 더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다. 그것은 더욱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일등공신이자 수억의 생명을 살리는 구세주가 될 수 있다.
지구 온난화기후 변화가 이 책의 주제인 가난과 부 그리고 환경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화석 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지구 온난화 논쟁의 주범이고, 이것은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모두에서 주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선진 산업국가와 개발도상국의 환경 정책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에서 이 책의 주제와 관련을 찾아볼 수 있다.
선진 산업국가의 정부들은 대체로 인간의 화석 연료 사용이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입장을 받아들여왔다. 그리고 1997년 선진 산업국가들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예방책으로 화석 연료 사용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교토 의정서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어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지구 온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