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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탐험

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지음 | 아트북스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의 힘



회화, 조각, 건축 등의 시각예술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미지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이미지를 보고, 잘 때조차 이미지로 꿈을 꾼다. 시내에 나가보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이미지들이 상점 진열장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음식물 용기에 부착된 상표나 책 장정 같은 포장예술은 상품이 담고 있는 내용물 이상을 전달한다. 영화관에서는 영상 이미지가 우리를 즐겁게 하고, 가정과 사무실에서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통하여 이미지가 전달된다. 사람들은 이제 이미지들로 이야기한다. 이들이 전하는 시각적·언어적 메시지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술가들은 다양한 문화적·미학적인 이유들로 이미지를 창조해왔고, 이러한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언제나 중요했다.

오늘날 우리는 미화 1달러 지폐와 25센트 주화에 새겨진 워싱턴의 모습에 익숙하다. 잠시 멈추어 1달러짜리 지폐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별 뜻 없이 보아왔던 정치적인 이미지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구성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워싱턴을 1달러짜리 지폐 앞면에 그렸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가 미합중국의 첫 번째―1번―대통령임을 알 수 있다. 지폐의 뒷면에는 일(ONE)이라는 단어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고, 그 양옆에는 국새(國璽)의 앞면과 뒷면이 찍혀 있다. 국새는 1782년 고안되었으나 1달러 지폐에 들어가게 된 것은 1935년의 일이다. 모든 상징적인 문양이 그렇듯이, 국새는 말과 이미지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응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왼쪽에는 광채를 띤 눈이 이집트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빛나고 있는데, 눈은 신을, 피라미드는 영속성과 권력을 상징한다. 눈 위에 쓰인 라틴어 'ANNUIT COEPTIS'는 베르길리우스의「아이네이스」(로마의 건국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에서 따온 말로, '신(눈)은 비롯된 일(여기서는 미합중국의 건국)을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피라미드의 밑단에는 로마식 표기로 숫자 1776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쪽에는 또 하나의 라틴어구가 쓰여 있는데, 이 또한 베르길리우스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NOVUS ORDO SECLORUM'은 '세기의 새로운 질서'를 의미한다. 즉 1776년 독립한 미국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다. 국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길을 끄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미지에 풍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야 폭넓은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광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음식 이미지는 맛보는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맛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과거에 경험한 이미지들을 되살릴 수가 있다. 데자뷔(말 그대로 전에 본)라 알려진 이 현상은, 프랑스의 소설가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 먹었던 과자(마들렌)를 먹자 과거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고 말한 데서 잘 나타난다. 반면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오펜하임(Meret Oppenheim)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는 사뭇 다른 효과를 내는 조각을 만들었다. 1936년에 제작된 그녀의 작품「모피로 덮인 컵, 접시, 숟가락(모피를 입은 아침식사)」은 컵으로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나 숟가락을 입에 갖다대는 생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갖고 있는 기대를 뒤엎는 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기능이다. 즉 우리가 습관적으로 기대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으로 지각하고 사고하게 하는 것 말이다. 예술은 우리의 지성과 감각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삶을 더욱 폭넓게 경험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서양미술에서 인기 있는 하나의 주제는 초상화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는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16세기 초에 그린「모나리자」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의 모델을 안다고 확신한다. 이 여인을 소재로 엄청난 양의 글이 쓰였고, 그녀는 흡혈귀로, 산의 은유로, 다빈치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로,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임신한 여인으로, 여자가 변장한 다빈치의 모습으로, 그리고 단순한 피렌체 귀부인 등으로 묘사되어왔다. 그녀는 심지어 이 모든 정체성들의 혼합물로, 하나의 이미지가 다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형상일 수도 있다.「모나리자」같은 걸작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그림은 시각적으로 매우 복잡한데다 이를 설명하는 자료는 부족하기 때문에 수많은 해석을 낳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양방의 작업임을, 즉 감상자가 그들의 선입견이나 자신들이 처한 정신적·사회적인 맥락을 작품에 대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미지에 대한 반응은 감상자의 개인적·미학적·문화적인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1910년 프랑스 화가 루소(Henri Rousseau)는 그의 대표작「꿈」을 그렸다. 프로이트가『꿈의 해석』을 출판한 지 11년 후에 그려진 루소의 이 그림은, 꿈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은 서로 뒤섞여 있다. 즉 그림 속 여자는 자신이 꾸는 꿈의 등장인물인 것이다. 루소의 그림은 꿈속처럼 시간과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결합시킨다. 천으로 된 프랑스식 긴 의자가 정글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해가 아닌 달이 대낮 하늘에 떠 있다. 꿈속에서는 시간과 장소가 뒤바뀌고 중력은 무시되며 장면이 겹치듯이, 예술가들은 그들의 이미지를 원하는 대로 배열할 수 있다. 물론 예술가들은 의식적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이들의 작업은 스타일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에 꿈의 이미지는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지기에, 교양 있는 관객과 역사를 염두에 두고 이미지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의식적인 작업과는 다른 것이다.

꿈과 관련하여 신화는, 인류가 예술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미지의 소재를 제공해왔다. 모든 문화에는 신화가 있다. 신화는 대개 은유적으로 구성되며 회화적이다. 1622∼25년에 제작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조각가 베르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아폴론과 다프네」는 신화적 이미지의 한 예이다. 이 조각은 태양신 아폴론이 숲속의 요정이자, 강(江)신의 딸인 다프네에게 격정적인 열정을 품는다는 그리스 신화를 담고 있다. 아폴론이 다프네를 쫓아가자 그녀는 그의 구애를 거부하고 월계수로 변한다. 그래서 월계수는 태양신의 성수(聖樹)가 된 것이다. 베르니니는 두 인체의 유사한 곡선들과 우아하고 춤추는 듯한 움직임을 이용하여 이 둘을 결합하고 있다. 다프네에게서 잎과 가지가 돋아나고 있는데, 오히려 이들은 그녀의 뒤를 쫓는 아폴론을 향하는 듯하다. 조각은 다프네가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 즉 그녀의 몸이 숲의 일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세계를 표현하고 묘사하기 위한 이미지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떤 이미지들은 자연과의 연관을 끊는 의식적인 노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예술가에게 특히 어려운 작업인데, 왜냐하면 예술가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 안에 존재하고 이 세계와 일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험적인 예술가들은 나중에 추상예술이라 불리는 작업은 20세기 초반부터 선보이게 된다. 추상에서는 색, 선, 형태의 형식적인 배열이 물체를 알아볼 수 있게 재현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는 추상이 20세기 초 미술의 정신적인 소생을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칸딘스키의 믿음이 깃들어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1912)에 정리되어 있다.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은 존재한다. 예컨대 이 그림엔 색이 있고, 색은 자연의 일부이다. 또한 그림에는 활기찬 움직임과 다양한 공간, 리듬, 즉각성, 형태, 빛, 어둠 등이 표현되어 있고, 선과 붓질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질감은 보는 이의 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을 일컬어 미술의 형식적인 요소라고 한다. 1915년, 또 한 명의 러시아 화가인 말레비치(Kazimir Malevich)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유명한「검은 사각형」을 전시한다. 말레비치 또한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고, 절대주의라는 예술이론을 전개한다. 이는 그의 저서『비객관적인 세계』에 잘 나타나 있다. 즉 말레비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세계와의 연관을 단절함으로써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칸딘스키와 말레비치 같은 예술가들은, 이미지는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고정관념 너머로 우리를 데려다주려고 했던 것이다. 순수추상의 궁극은 무(無)이기에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재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예술적 형태로는 이에 가까이 가는 것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자연을 묘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불완전한 추상이며, 또한 자연의 불완전한 모방이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가의 능력에 따라 우리의 정신과 경험을 이 두 방향으로 더욱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미술을 창작하는 다양한 목적



미술작품을 창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린아이들은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부터 기회가 생기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생각을 이미지로 만드는 것처럼 그들도 뭔가 개인적인 감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에는 대개 문화적 의미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미술작품을 만들고, 주문을 하는지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대개 이미지를 제작하는 목적에 따라 이미지가 가지는 힘의 성격이 달라진다.

주변환경을 장식하기 위하여



미술작품을 만들게 되는 동기 중 하나는 주변환경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꾸민다. 어울리는 색으로 벽을 칠하고, 거기에 그림을 걸고, 정원에는 조상을 세워놓기도 한다. 특히 정교하게 설계된 실내장식의 예로, 벨기에 건축가 오르타(Vitor Horta)가 1892년 브뤼셀의 타셀 가(家)를 위하여 설계한 아르누보(새로운 예술) 형식의 계단을 들 수 있다. 이 계단은 식물, 공작새의 꼬리, 곤충의 날개 등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 기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 아르누보 양식은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선호한다. 개인적인 공간뿐 아니라 공공장소 역시 건축물들과 옥외 조각, 표지판과 간판들, 색을 칠한 외벽 그리고 기타 도시계획을 위한 디자인들로 꾸며진다.

과거를 기록하는 수단



이미지는 과거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사진과 사진보도가 생겨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평원 인디언들은 그림문자로 전쟁의 이미지를 기록했는데, 그 방법으로 옷을 이용하였다. 전투 장면은 색칠한 방패, 온갖 색깔을 칠한 말, 활과 화살, 깃털이 달린 머리 장식, 총들을 묘사해 활기를 띠고 있다. 이 그림에는 무리를 지어 싸우는 것뿐 아니라,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까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그림은 구전(口傳) 전통에서 비롯된, 문화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전쟁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 경우에 그 보조 수단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예술



현재와 연관된 과거 사실에 관한 기술이 역사라면, 종교적인 믿음은 미래와 연관된다. 많은 문화권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앞서간 선조들을 기억함으로써 종교와 역사의 연결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원후 1세기에 만들어진「선조의 흉상 두 개를 든 로마의 귀족」이라는 대리석 조각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귀족의 머리 부분은 나중에 새로 제작한 것이지만, 선조의 흉상들은 원작 그대로이다. 이 흉상들은 몸통에서 분리되어 있고, 고인들이지만 살아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이렇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제작함으로써 흉상은 삶에서 죽음로의 이행을 나타내고, 후손들에게 가계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 건축 또한 이러한 이행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종교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12세기 말부터 16세기까지의(지역에 따라서 다르다) 서유럽 고딕 성당은 기독교 건축의 절정이다. 1140년경 시작하여 1150년 완공된 샤르트르 대성당은 첨탑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운동감과 그 뾰족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성당 앞면의 수식적인 동세는 상징적인 것으로, 이는 천국은 하늘에 있다는 믿음과 사후에 구원을 바라는 신도들의 염원을 나타낸다.

치유하고 파괴하며, 보호하고 경고하는 이미지



"치료는 예술이다"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쓰이지만, 그 기원은 오래되었다. 모든 사회에는 무당과 여러 형태의 주술사들이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백신과 항생제의 발견과 정교한 의술의 발달을 목격한 우리도 아직 치료는 예술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어떤 질병을 치유하는 데는 과학기술 이상의 무엇이 작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과학과 실험으로 규명될 수 없는 현상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아왔다. 이 정의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시각예술은 전통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다. 그리스의 메두사 신화―머리에 뱀이 달린 고르곤을 쳐다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돌로 변한다―는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보면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경고하는 이야기이다. 메두사는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머리가 잘렸는데, 그는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그는 자른 머리, 즉 고르고네이온(Gorgoneion)을, 전쟁과 지혜와 직조의 여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에게 바쳤다. 아테나는 그 머리를 자신의 흉갑(胸甲)에 붙여놓았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그녀의 적들을 겁에 질려 '돌처럼 굳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고르고네이온은, 서양에서 방패와 갑옷에 새겨 적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미지가 되었다.

일하는 예술가 - 관습과 훈련



예술가는 미적·문화적 맥락 안에서 일한다. 이는 그들이 시대와 장소, 그리고 이전 시대와 동시대 작가들에게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 장에서는 예술가가 놓인 환경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하나는 관습적인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가 받는 실질적인 훈련이다. 이에 관련한 문제들로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위치, 그리고 예술가와 그 작품이 인식되는 방식 등이 있을 것이다.

미학적 맥락―관습



'관습'이라는 용어는 어떤 일을 할 때 표준이 되는 방식을 일컫는다. 관습은 또한 시각예술의 한 측면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정한 토대를 제공하며 감상자와 예술가에게 공통적인 시각언어를 마련해준다. 어떤 이미지를 읽을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어떤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했는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신부의 색은 흰색이지만 중국에서는 빨간색이다. 중국에서는 상복이 흰색이지만 서양에선 검은색이다.

· 이집트 : 고대 이집트의 왕실 예술은 형태와 비례에 관한 관습적인 체계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그 결과 예술가의 개인적인 취향은 관습이 요구하는 사항들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회화에서 재현에 관한 어떤 관습들은―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과 같은―상형문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사람 머리는 옆모습인 반면, 눈은(이를 가리키는 상형문자처럼) 정면을 향하고 있다. 사람의 어깨와 가슴 또한 정면을 향하고 있어, 그의 화려한 목걸이를 확실히 볼 수 있다. 그의 발은 다른 신체 부위들처럼 옆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므로 신체는 자연스럽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으며, 우리가 개별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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