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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탐험

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지음 | 아트북스
미술을 창작하는 다양한 목적미술작품을 창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린아이들은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부터 기회가 생기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생각을 이미지로 만드는 것처럼 그들도 뭔가 개인적인 감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에는 대개 문화적 의미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미술작품을 만들고, 주문을 하는지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대개 이미지를 제작하는 목적에 따라 이미지가 가지는 힘의 성격이 달라진다.주변환경을 장식하기 위하여요즘에는 미술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지만 학교 교육과 무관하게 예술가들은 훈련을 계속해왔다. 예술가들은 선배 예술가들의 조수로 일하면서 배우거나, 길드 또는 가족 작업장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수도원이나 아카데미에서 일했다.



· 길드와 수도원 : 중세의 예술가들에게는 두 부류의 후원자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왕실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였다. 몇몇 예술가들은 '친지(familiares)'라는, 왕실에서 가족처럼 대접받는 지위를 얻었는데, 이는 예술가의 재능으로 얻은 것이었다. 어떤 예술가들은 왕실의 공식 예술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교회의 후원 아래서 일하던 예술가들에는 조각가·화가·스테인드글라스 제작가들이 포함되었는데, 이들은 성당 건축에 참여하였다. 이들 외에도 수도원에 있는 필사실에는 필사본을 채색하는, 즉 하느님의 말씀에 '색을 입히는' 수도승들이나 수녀들이 있었다. 길드는 16세기까지 지속되었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도제 제도 안에서 일을 배웠다. 고딕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가면서(1150~1550년경) 예술가의 지위도 새로워졌다. 인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그리스와 라틴 문헌들이 다시 유행하고 새로이 번역되는 지적인 운동이 전개되었다. 또한 글을 읽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진보적인 학교에서는 고전을 가르치는 교과 과정이 생겨났다. 예술가들도 스스로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고, 자서전을 썼으며(자화상이 늘어난 시기와 일치한다), 지식인·젠틀맨과 같이 교양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 아카데미 : 예술가들이 장인에서 젠틀맨의 지위로 상승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아카데미의 성립을 들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에 있었던 플라톤의 아카데미를 본뜬 아카데미는 기술의 전수보다는 좀더 지적인 훈련을 위하여 세워졌다. 아카데미의 기원은 성 누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성 누가는 화가로 추정되며, 동정녀 마리아가 살아 있을 때 초상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1361년 피렌체에 설립된 성 누가회는 남녀 모두 가입이 가능한 예술가 협회였다. 1616년 성 누가회는 피렌체 디자인 아카데미로 바뀌고, 이는 후에 로마 아카데미 설립의 본보기가 된다. 이후 전 유럽에 걸쳐 설립되는 수많은 아카데미들은 로마 아카데미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미술의 다양한 주제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미적 맥락 안에서 작업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주재들이 있다. 어떤 주제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의 조건과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다양한 사회에서 제작한 신과 통치자들의 이미지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건축에서도 아치와 기둥 같은 특정한 구조 체계는, 그 세부적인 모습에는 차이가 있지만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인 원, 사각형, 삼각형 등은 다른 문화권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미술작품을 만들게 되는 동기 중 하나는 주변환경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꾸민다. 어울리는 색으로 벽을 칠하고, 거기에 그림을 걸고, 정원에는 조상을 세워놓기도 한다. 특히 정교하게 설계된 실내장식의 예로, 벨기에 건축가 오르타(Vitor Horta)가 1892년 브뤼셀의 타셀 가(家)를 위하여 설계한 아르누보(새로운 예술) 형식의 계단을 들 수 있다. 이 계단은 식물, 공작새의 꼬리, 곤충의 날개 등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 기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 아르누보 양식은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선호한다. 개인적인 공간뿐 아니라 공공장소 역시 건축물들과 옥외 조각, 표지판과 간판들, 색을 칠한 외벽 그리고 기타 도시계획을 위한 디자인들로 꾸며진다.과거를 기록하는 수단신성한 형태―원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신성한 공간을 만들 때 주로 원형을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원에는 성스러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원은 시작도 끝도 없어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대에는 신으로 숭배되었던 해와 달도 원형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하였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도 우주의 조화는 원과 사각형 같은 균형을 갖춘 형태들에 기초한다고 주장하였다. 플라톤은, 원에는 신성이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형태라 믿었다. 그는 원의 균형과 조화 속에 내재한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면서, 이를 완벽한 인체 비례와 연결시켰다.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신탁소는 옴팔로스라 부르는데, 이는 세상의 배꼽이란 뜻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중심성·형태·대칭에 대해 고대인들이 가졌던 자연스러운 호감을 알 수 있다. 원을 시간이나 우주적 질서와 관련시키는 또 하나의 예는 불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원전 537년 인도의 왕자 싯다르타는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그는 사르나트에 있는 바라나시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에서, 새로운 철학적 질서와 진리를 따르는 삶의 길을 담은 첫 번째 설법, 즉 법륜(Wheel of the Law(Dharmachakra))을 전하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우주 전체를, 신이 컴퍼스로 그린 원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딕 건축에서 신성한 원의 개념은, 성당 입구 위에 거대한 둥근 장미창으로 형상화된다. 지름 12미터가 넘는 샤르트르 성당의 장미창에는 원의 장엄함이 살아 있다. 큰 원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다른 규칙적인 형태와 결합한 열두 개의 원이 배열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이 문양을 디자인할 때 컴퍼스가 사용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확인되는 듯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인간의 형태와 성격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소묘「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양팔과 다리를 벌린 사람의 주위로 원을 그리면 배꼽은 원의 중심과 일치할 거라고 말한 것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그림은 또한 사각형을 그렸을 때도 중심과 모서리가 같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기둥기둥은 건축에서 지주와 상인방으로 구성되는 수직적인 지지구조를 일컫는다. 하나의 삼석탑이 단위 구조인 스톤헨지 같은 신석기시대의 구조물에서 볼 수 있은 기둥은 이러한 건축의 기본 단위이다. 이 구조는 개념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지주가 기둥이라는 구조로 진화하여 좀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 그리스 :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둥을 인체의 형태 그리고 비례와 관련시켜 생각하였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인간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건축의 주요 양식인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이 나타났는데, 페르시아와 이집트식 주두와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주두는 비례식에 기초하여 배열된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결과 이들은 각 부분들간의, 그리고 전체에 대한 균형 잡힌 관계를 보여준다. 도리아식으로 지어진 사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전 시기인 기원전 5세기 건축물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이 양식의 개별적인 부분은 복잡한 기하학적인 관계를 고려해 배열되어 있는데,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많이 손상되었지만―조화로운 평온함과 함께 힘과 안정감을 전달하여 강한 인상을 준다. 엔타시스(그리스어로 '늘이다'라는 뜻)라 불리는, 도리아식 기둥의 볼록 나온 부분을 통해 우리는 기둥이 유기적인 형태에서 착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독립 기둥 : 고대 로마인들은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인들이 제작했던 거대한 독립 기둥을 변형시켜서, 특정한 황제의 포럼 안에 세웠다. 이러한 기둥은 원래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는데, 로마인들은 여기에 황제의 승리를 기록하는 나선형의 장식띠를 첨가하였다. 1810년 나폴레옹은 예술작품을 이용해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려고 거대한 독립 기둥을 세웠다. 그는 파리의 방돔 광장에 도리아식 기둥을 제작할 것을 명하였고, 이 기둥은 월계관 모양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승리를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나폴레옹은 자신이 쳐부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무기를 녹여 장식띠를 만들었다.



· 지속되는 그리스 양식 : 그리스 조각의 고전양식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에서 형성된 건축양식은 서양미술사에 길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에 그리스 양식의 사용은 의식적인 고전부흥의 일환이었는데, 여기서는 주로 두 가지 이상의 양식이 혼합되어 사용되었고, 골이 있던 기둥의 주신도 매끄럽게 변했다. 서양 건축에서 나타나는 고전양식을 통해 그리스 건축양식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영국의 팔라디오 양식, 프랑스·독일 그리고 다른 지역의 신고전주의, 미국의 연방 양식 등은 모두 그리스 양식을 변형시킨 예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골이 없는 매끈한 기둥을 사용해 이오니아식 신전과 같은 정면을 갖추었다. 균형과 대칭 그리고 안정성을 모두 갖춘 국회의사당은 도시를 굽어보는 조금 높은 곳에 지어졌다. 이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로마 공화정의 민주적인 전통을 연상시키는, 오랜 세월 지속되는 고전양식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 브란쿠시의「키스의 문」: 20세기 초 전위예술은 서양의 고전주의 전통에서 탈피하려고 했다. 1935년 파리에 살던 루마니아 예술가 브란쿠시(Constantin Brancusi)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는 그의 고향인 티르구지우에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고, 중심이 되는 구조물은「키스의 문」으로, 여기서 기둥은 상단부를 지지하는 직사각형 입방체로 탈바꿈하였다. 브란쿠시의 지지대는 둘로 나뉜 원형을 포함하는,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수직 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둥은 브란쿠시의 대표적인 조각「키스」를 추상화시킨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1912년 작품은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로 제작된, 껴안고 있는 남녀 한 쌍을 표현하고 있다. 남녀는 모두 직사각형 형태인데, 여자는 곡선이 강조된 몸매와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통해 남자와 구분될 뿐이다.미술작품의 환경적 맥락미술작품이 놓이는 환경은 냉장고 문에서 벽, 천장, 건물 바닥, 비디오나 컴퓨터 스크린, 도시 또는 시골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예술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놓였던 자리에서 옮겨지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예술가가 애초부터 의도했던 장소에 계속 남아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톤헨지는 영국 정부가 원래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기에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중세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던 대성당은 오늘날엔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에 둘러싸여 애초의 빛을 잃고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다. 이러한 모든 경우에 작품의 위치는 감상자의 지각에 영향을 준다.서사적 맥락영화와 마찬가지로 회화 또한 서사적인 순서에 따라 벽에 고정되어 있을 때, 그림이 놓인 환경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보존이 잘 된 서사적 회화의 좋은 예로, 이탈리아 파도바의 아레나 교회당에 있는 14세기 초 조토가 그린 프레스코화를 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삶을 묘사한 이 벽화들 중 각 장면은 각기 다른 의미가 있으며 전체 줄거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심리묘사에 특히 능했던 조토는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가 대면하였을 때 파생된 둘 사이의 긴장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두 프레스코화를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우리는 인물들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함」에서 상실의 체험으로 동요된 모습이,「나는 만지지 마라」에 오면 고요하고(천사들), 텅 빈(하늘), 그리고 잠들어 알지 못하는(잠든 병사들) 상태로 변한다. 맨 오른쪽에서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영원한 신이 되기 위하여 떠날 채비를 할 때 마리아는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건축적 맥락애초에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의 예를 하나 더 들면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다의 코르나로 교회당에 위치한, 베르니니의「성 테레사의 황홀」을 들 수 있다. 이는 베르니니가 조각뿐 아니라 조각이 놓인 교회당까지 디자인한 경우이다. 베르니니는 아빌라의 성 테레사와 그녀의 가슴을 황금 화살로 뚫으려는 천사를 묘사한 조각에 합당한 성스러운 환경을 창출한 것이다. 또한 이 교회당에는 다양한 시간적 차원이 존재한다. 천국은 영원을 상징하는데, 이는 지상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매개자를 통하여 성 테레사는 신성과의 시간적인 합일을 이루어낸다. 돌로 조각된 코르나로 가족은 교회의 원형이 보존되는 한, 성자를 응시하고 있으리라. 반면 교회당을 찾는 방문객들은 현재에만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베르니니는 일부는 조각, 일부는 건축, 일부는 기독교의 기적, 그리고 일부는 극장인 예술 공간을 창조해낸 것이다.환경적 맥락으로서의 미술관미술관은 성격이 복잡한 시설물이다. 미술관(museum)은 무세이온(mouseio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 뮤즈의 집을 일컫는 말이다. 뮤즈는 예술과 역사의 여신들이었으므로, 이들의 '집'은 예술과 역사를 보존한 것이 된다. 예술적으로 제작된 기념상을 대중에게 보이는 것은 오랜 전통이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미술관은 비교적 새로운 형태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중요한 미술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술관에 있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한때는 다른 환경적인 맥락에 놓여 있었음을 잊는 경향이 있다.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 원래의 맥락을 벗어났다는 것과 함께 지적해야할 사실은 어떤 현대미술관은 특별 전시를 위해서 일차적인 환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미술관의 내부 공간과 그 디자인은 예술가가 창조하는 일종의 공연무대 구실을 한다. 대표적인 옐,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던〈백남준의 세계〉라는 전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은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이 건물의 둥근 내부를 주공간으로 작품을 설치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의 비디오 작품과 음악을 수반한 레이저, 춤 이미지,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복잡하게 설치하였다.미술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이미지에는 다면적인 성격이 있다'는 말은, 하나의 예술작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러한 방법들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이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작품을 보는 방식은 감상자가 맥락을 보는 방식, 즉 해석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처럼, 예술적인 의미에 관한 견해는 감상자의 이론적 관점의 영향을 받는다. 예술작품은 접근방법에 따라서 감상자의 사회적, 정치적, 성(Gender)적, 경제적, 지적, 미학적 맥락에 따라 달리 읽힌다.형식주의형식주의적인 접근방법에서는 이미지를 선, 형태, 색 등과 이들의 배열이 자아내는 미적인 효과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접근방법을 통해 고흐의 나막신 그림을 보면, 신발이 놓인 표면이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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