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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대자연인 이백

안치 지음 | 이끌리오
영원한 대자연인 이백

안치 지음/신하윤․ 이창숙 옮김

이끌리오/2004년 3월/447쪽/16,000원



이백 李白(701~763)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淸漣居士). 두보와 함께 ‘이두(二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보통 762년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저자 안치는 새 학설을 따라 763년을 수용하였다.

1. 붕새처럼 만 리를 날아가리라

소년의 꿈

창명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평원이다. 민산(岷山)에서 발원한 부강(涪江)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동쪽에서부터 청련향을 감싸고 그 지류인 반강(盤江)은 서쪽에서부터 청련향을 감싸고 있다. 청련향은 이렇게 산과 물로 둘러싸인 평원의 중심이다. 개원 초년, 청련향에 한 떠돌이 도사가 나타나, 서역에서 돌아온 상인으로 이 고장에 우거(寓居)하고 있는 은사 이객(李客)을 찾았다. 도사 차림의 손님이 문에 들어서자 은사 차림의 주인이 놀랍고 기쁜 표정으로 “아!”하는 소리와 함께 내실로 맞아들였다. 바로 이때, 문득 옆방에서 한 소년이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鯤)이라.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이 붕(鵬)이다. 붕의 등은 몇천 리인지 모른다. 노하여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으니….” 분명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편이다. 책 읽는 소리가 또렷하고 유창할 뿐 아니라 높고 낮음에 운치가 있고 빠르고 느림에 절도가 있어 맛과 정이 묻어 나온다. 책 읽는 소년은 틀림없이 그가 읽고 있는 고대 신화 속에 완전히 빠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자네 아들인가? 올해 몇 살인가?” “바로 내 재앙의 화근이지. 곧 열다섯이라네.” “책 읽는 소리를 들어보니 이 아이가 배우기를 좋아하는구먼?” “배우기를 좋아하기야 좋아하지. 더구나 벌써 시문을 수백 편 지었다네. 다섯 살에 글을 깨치고 열 살 때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다 읽었으나 그 이후로 다시는 유가 경전은 공부하지 않고 그저 이것저것 잡다하게 기웃거린다네. 『초사(楚辭)』와 『장자』는 백 번 읽어도 싫증내지 않지만, 과거 공부는 하나도 모른다네.” 이객은 말하면서 책상에서 시문 원고를 한 권 꺼내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이 손 가는 대로 펼치니 「비 그친 후 달을 바라보며(雨後望月)」라는 시가 나왔다. 곧 시정을 이기지 못해 소리내어 읊조렸다.

사방 들녘에 어두운 안개 흩어지고

문을 여니 반달이 떠 있다.

만리에 펼쳐진 서리

한 줄기 강물이 비단처럼 가로지른다.

뜰 때는 산 속 샘물이 하얗더니

높이 솟은 뒤에는 바다 가운데가 환하다.

둥근 부채처럼 사랑스러우니

새벽까지 길게 읊조린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탄하였다. “막 깃털이 돋아난 새가 이미 봉황의 자태를 갖추었다고 해야겠군!” 마침 이때, 문득 정원에서 바람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은 괴이하게 여겼다. “방금 전까지도 붉은 태양이 하늘 가운데 있었거늘 어찌하여 순식간에 날씨가 변했단 말인가?”

이객은 웃으면서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손님이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니 한 소년이 정원 담장 아래 몇 그루 대나무 옆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눈처럼 흰 소매 긴 옷을 입고 이마에는 넓적한 붉은 띠를 매고 발에는 가볍고 편한 베 신을 신고 있었다. 가을 달 같은 얼굴에 눈썹 꼬리가 높이 솟아 있었다. 특히 눈동자에서는 열 길 남짓한 거리를 두고도 번쩍이는 섬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씩씩하고 힘찬 몸매는 용이 바다에서 춤추는 듯하였고, 민첩한 동작은 천마가 하늘을 나는 듯하였다. 검술이 비록 깊지는 않았으나 초식(招式) 하나 하나에 비범한 기개가 있었고, 공력은 아직 심후하지는 않으나 왔다갔다하며 살펴보는 눈빛에 신기(神氣)가 서려 있었다. 손님은 기뻐하며 주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런 아들이 있으니 자네는 인생에 여한이 없겠구먼.”

이백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태백성(太白星)이 품에 안기는 꿈을 꾸었으므로 아버지는 그에게 이름은 백(白), 자는 태백(太白)이라 지어주었다. 사실 그는 다른 갓난아기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도 그의 아버지는 진작 준비해 둔 뽕나무 가지로 만든 활과 쑥으로 만든 화살을 방 문에 걸어두고 아들이 천하에 뜻을 두고 아비처럼 억울하게 살지 않기를 축원하였다. 이백은 세 살이 되었을 때 어른들의 신선 이야기를 듣고는 달은 신선의 거울이며, 신선이 거울에 비친 것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웃으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으나, 유모는 외려 “제가 키우는 아이는 절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아요. 아기가 바람 분다고 말하면 곧 비가 내리죠. 커서 철이 들면 이런 ‘신통한 말’은 저절로 할 수 없게 되죠.”라고 했다. 그러나 이백은 한 해 한 해 자라면서 여전히 ‘신통한 말’을 하였으며, 심지어 더 심해졌다. 강가를 천천히 걸을 때면 또 늘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 사이로 “상제의 딸이 북쪽 물가에 강림하시니 아득한 눈길로 나를 근심하시는구나.”로 묘사된 사람을 보았다. 하늘에 오르고 땅으로 들어가는 ‘이소(離騷)’의 환상, 우주를 날아다니는 ‘장자’의 신화를 통해 그의 상상력은 천 년의 시간을 넘나들고 만 리 먼 곳을 내다보게 되었다.

스무 살, 시편 두루마리를 올리다

개원 8년(720년), 스무 살의 이백은 처음 성도(成都)를 여행하였다. 성도의 역사는 유구하여 장안에 버금간다. 진(秦)나라 혜왕이 촉나라를 멸하고 장의(張儀)에게 성도성을 쌓게 하여 처음 촉군(蜀郡)을 설치하였다. 진나라 효문왕은 이빙(李冰)을 태수로 삼아 흙더미를 파내어 수해를 해결하고 관개시설을 활용하였다. 이에 촉 땅은 비옥한 들이 천 리에 달해 ‘하늘의 창고(天府)’라고 불렸다. 이백은 성도의 수려한 풍광과 명승고적을 오랫동안 동경해 왔다. 이백이 성도에서 40여 리 떨어진 신도 경계에 들어섰을 때, 마침 예부상서 소정(蘇頲)이 익주 대도독부의 장사(長史)에 임명되어 성도로 오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역정에서 쉬고 있었다. 소정은 조정의 대신으로 허국공(許國公)에 봉해졌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대문호로서 병부상서 연국공(燕國公) 장열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람들은 ‘연허(燕許) 대문장’이라고 불렀다. 이백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오늘 하늘이 좋은 기회를 내려주었으니 어찌 이를 놓치랴? 때마침 「明堂」과 「大獵」두 편의 부를 정서하여 몸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이백은 곧장 역정으로 가서 면회를 청하고 부 두 편을 바쳤다. 소정은 웃음 띤 얼굴로 앉으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몇 마디 간단하게 물은 뒤에는 바로 몸을 돌려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청년은 얼마나 재기가 있는가! 붓을 들자 쉬지 않고 거침없이 휘둘러 천여 자를 썼구나. 명당의 제사와 위수의 사냥을 통해 우리 대당 제국의 위풍을 생생하게 그렸어.” 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이백에게 “그대의 문체는 볼 만하나 풍골(風骨)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네. 계속 노력한다면 장차 반드시 큰 그릇이 되어 그대와 동향인 사마상여와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될 걸세.”라고 하였다. 이백은 몸을 굽혀 대답하였다. “선배님의 격려와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마상여는 문장을 잘 쓰는 사람에 불과하며 한무제 역시 광대로 여기고 길렀을 뿐입니다. 소생이 재능은 없으나, 대장부의 뜻은 경국제세에 있어 벼슬에 나아가 관중과 제갈량이 될 수 없다면 물러나 노중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문은 단지 잔재주일 따름입니다.” 소정은 이 말을 듣고 그릇이 크고 의기가 드높은 이 청년이 더욱 달리 보았다. 이백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큰 뜻을 품은 데다 재능과 학문도 출중하구먼. 지금 천자가 온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려 조정에서 인재를 동용하고 있으니 내가 임지에 도착하면 표(表)를 올려 자네를 천거하겠네. 그대는 성도로 가서 관역에서 머무르면서 소식을 기다리라.” 이백은 뜻밖의 결과에 크게 기뻐하였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어느새 한 달이 넘었지만 대도독부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백이 여러 차례 가보았으나 경비가 삼엄하고 저택이 바다처럼 넓어 장사 대인을 다시 만나기는 고사하고 아전조차 만날 수 없었다. 개원 12년 봄. 스물넷의 이백은 만 리 여행을 시작했다. 스물넷의 이백은 비범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키는 썩 큰 편은 아니었지만 하늘을 향해 머리를 곧게 세우고 있었고, 체구도 우람하지는 않았지만 대범하고 시원스러웠으며 용모도 준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기상이 드높았다. 특히 양쪽으로 날카롭게 치솟은 눈썹과 사람을 쏘는 형형한 호랑이 눈은 그의 영웅적 자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허리에 석 자 길이의 용천검을 차고 손은 은 안장을 얹은 준마를 끌었으며, 열여덟의 서동(書偅) 단사(丹砂)는 등나무로 만든 가벼운 책 상자를 메고 있었다. 주인과 시종은 청련향을 나오고 또 창명현을 나왔다.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감흥을 쏟아내다

이백은 유주와 기주 등지를 거쳐 삼협을 내려왔다. 오는 길에 산수의 아름다운 경치가 곳곳마다 그를 잡았고, 그곳 사람들의 노래도 시시때때로 발을 묶었다. 이 때문에 개원 13년 봄이 되어서야 겨우 삼협을 나왔다. 이백은 강릉에서 가요를 수집하면서 장대까지 말을 타기도 하고 성 남쪽으로 가서 꿩을 사냥하기도 했다.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고 심지어 무당의 굿을 보러 가기도 했다. 어느 날 벗 오지남(吳指南)이 와서 이백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도교의 대사 사마승정이 남악 형산으로 가는 길에 마침 이곳을 지난다는 것이었다. 이백이 그를 만나고자 한다면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이백은 광산에서 공부할 때 사마승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가 자미(子微)고 자호는 白雲子라고 하며, 줄곧 천태산 옥소봉에 은거하면서 도가의 진전을 얻고 단약을 먹는 방법을 알았다.

사마승정의 집 문 앞은 연일 시장 같았고 손님이 자리에 가득했는데, 문득 도동(道童)이, 도형(道兄) 오지남이 손님을 모시고 와서 뵙기를 청한다고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사마승정이 명함을 올려 보니 “아미산 布衣 이백, 자 태백”이라고 씌어 있었다. 사마승정은 곧 “모셔라.” 분부하였다. 곧 오지남이 한 청년 공자를 데리고 들어오는데 사마승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눈을 크게 떴다. 자세히 보니 이 사람은 홀로 서 있는 소나무처럼 우뚝하고, 바람 부는 강가의 버들처럼 두드러졌다. 사마승정은 연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처럼 오묘하게 이해해야 더불어 도를 말할 수 있소이다!” 또 이백을 바라보며 “그대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을 타고났으니 함께 우주를 노닐 만하오이다.”라고 말했다. 또 덧붙이기를 “그대 눈에는 영기가 발발하고 담론 중에 억조창생과 사직을 잊지 않으니 필경 경국제민에 뜻을 두었구려. 그대의 재능으로 이 개원의 성세를 만났으니 분명 붕새처럼 만 리를 날아갈 것이오. 임금을 섬기고 부모를 영광되게 한 다음 다시 천태산으로 나를 찾아오시오.” 하였다.

이백은 도사의 하얀 수염을 보다가 얼굴에 한 줄기 의문이 스쳐갔다. 사마승정은 불자를 한 번 흔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산 위의 흰 구름, 소나무 사이의 밝은 달, 가서 만나지 못할 것이 없다오.” 이백은 곧 크게 깨달아 말하였다. “공을 이루고 이름을 높인 뒤에는 물러나라. 이것이야말로 소생의 평소 뜻입니다.” 그러고는 기쁘게 인사하고 떠났다. 이백은 처소로 돌아와 며칠 동안 사마승정의 가르침과 칭찬을 돌이켜 음미하였다. 그는 표연히 구름 위로 솟는 기개를 누르지 못하고 상상의 날개를 폈다. 곧 「신이경(神異經)」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곤륜산에 큰 새가 사는데 이름이 희유(希有)이다. 왼쪽 날개는 동왕공(東王公)을 덮고 오른쪽 날개는 서왕모(西王母)를 덮었다. 등에는 조금도 깃털이 없는 곳이 없는데 길이가 일만구천 리나 된다. 서왕모는 일 년에 한 번 날개 위로 올라가 동왕공을 만난다.” 이에 이백은 「대붕이 희유를 만난 부」를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아예 「대붕부(大鵬賦)」로 바꾸었다. 「대붕부」를 다 쓰고 나서 이백은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느꼈다. 소년기 이래로 늘 가슴속에 용솟음쳐 왔으며 갈수록 강렬해지는 호방한 감흥을 이제야 비로소 남김없이 모두 쏟아낸 것이다.

재상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다

안륙에는 대대손손 고관을 지낸 명문망족(名門望族) 허씨가 있었다. 증조부 허소(許紹)는 당 고조와 동문 수학한 사람이고, 조부 허어사는 당 고종 때의 재상이었으며, 부친도 당 중종 때 원외랑을 지냈다. 허 재상이 죽은 뒤로 허 원외랑 역시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원외랑의 슬하에는 무남독녀 외딸만 있었다. 재색을 겸비하고 성품도 현숙하였다. 다만 존귀한 가문이라 사위를 고르는 데 엄격하지 않을 수 없어 혼기를 놓치고 말았다. 딸이 어느새 스물다섯을 넘기자 허 원외랑도 이제는 사방에 부탁을 하여 격을 낮추어서라도 사위를 맞이하려 하였다. 맹소부는 허씨 집안의 부탁을 받고는 이백에게 이 혼사의 운을 떼었다. 이백은 “대장부가 공을 이루기도 전에 어떻게 가정을 이룬단 말이오?”라고 하고 싶었으나 친한 벗이 누차 권하는 데다 갈 데도 없어 잠시 흘려듣는 수밖에 없었다.

이백은 허씨 집안과의 혼사를 망설였으므로 안주를 돌아 양주의 중심지 양양으로 가서 오랫동안 흠모해 온 시인 맹호연(孟浩然)을 찾아갔다. 그는 이백의 비범한 재능과 자유분방한 성격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첫 만남에도 마치 오랜 친구 같았다. 이에 며칠 동안 손뼉을 치며 시를 이야기하고 무릎을 맞대고 문장을 논하였다. 이백은 맹호연을 당대의 도연명이라 칭송하였고, 맹호연은 이백의 시가 맑은 물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다고 찬양하였다. 맹호연은 잠시동안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간알에 매달려 자신을 알아줄 사람을 구하느라 수만 금을 쓰고 심지어 파산에까지 이른 사람이 아우 한 사람만이 아니오. 지금 안륙에 가서 허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소. 허씨 집안은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안주의 명문으로 본래부터 명망이 높았소. 허 원외랑은 사람됨이 관대하고 장서가 많기로는 천하에 드물 정도요. 안륙으로 가면 아우는 첫째로 몸을 의탁할 곳이 생기는 것이요, 둘째로 학업에서도 다시 나아갈 수 있으며, 셋째로 허씨 집안의 그늘에 힘입어 간알도 비교적 유리할 것이요.” 이백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데릴사위로 들어갈 마음을 반은 정했다.

이백은 결국 안주의 중심지 안륙에 도착했다. 맹소부가 허씨 집안에 사위를 추천하는 편지는 이미 허 원외랑의 수중에 들어갔고, 개원 15년, 스물일곱의 이백은 허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부인 허씨는 과연 재색을 겸비하고 현숙하였으나 다만 몸이 좀 허약하였다. 장인 허 원외랑 역시 확실히 사람됨이 관대하고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딸에게 많은 지참금과 혼수를 주어 사위가 뜻을 펴는 데 쓰게 하였다. 이백은 부인 허씨와 상의하여 맑고 조용한 곳을 찾아 공부하러 가기로 했다. 허씨는 성 서북쪽 60리쯤 되는 북수산에 집안의 별장이 한 채 있다고 했다. 조부 허어사의 독서당으로, 오래 돌보지 않아서 사람이 살 수 없을 터이니 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백은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수리할 것도 없이 바로 간단한 짐을 꾸려서 단사와 집안 사람 한 명만 데리고 다음 날로 바로 북수산으로 떠났다. 산중턱에 있는 노재상의 독서당은 낡아 부서지긴 했어도 아직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아서 손을 좀 보면 지낼 만하였다. 이에 이백은 함께 간 사람들과 힘을 모아 해가 저물기 전에 대강 정리를 마쳤다. 이후로 이백은 그곳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였다.



2. 시와 술을 빌려 시름을 삭이며

술을 빌려 시름을 삭이며

이백이 집에서 무료하여 답답해할 때 벗 원연이 편지를 보내 함께 태원으로 가자고 초청하였다. 원연의 아버지는 태원 부윤으로서 북방 변경 수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원연은 하남 박주(亳州)에서 녹사참군(綠事參軍)이란 이름을 걸어놓고 사시사철 바깥을 나돌며 이백이 늘 그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태원으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이백에게 동행하기를 요구한 것이었다. 두 벗은 황하를 건너고 태항산(太行山)을 넘어 택주, 노주를 지나 반 달 만에 태원부에 다다랐다. 태원부는 변방의 군사 요충인 데다가 당 고조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원연의 부친은 변방을 여러 해 지키는 장수였다. 그는 무인이었으나 문사를 좋아하였으며, 이백의 시와 문장이 좋다는 말을 듣고 상객으로 대접하며 여러 날 붙잡아 두었다. “북도로 와 세월이 깊으니 의를 중히 여기고 황금을 가벼이 여기는 그대의 정에 감격하였다. 좋은 술, 기름진 음식, 맑은 옥 쟁반에 배부르고 취하여 돌아가길 잊었노라.” 몇 년 후, 이백은 이때를 회고하며 주인의 열정에 감사하였다. 다음 해 초가을, 이백은 원연 부자와 이별하였다. 떠날 때 부윤은 선물을 매우 많이 주었다. 천금의 값이 나가는 여우 갑옷, 유명한 오화마(五花馬) 한 필과 노자를 넉넉히 주었다. 이리하여 이백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최소한 고개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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