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물원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 물병자리
제1장 부족과 초부족초부족에서는 구성원 각자가 더 이상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이렇게 군중들이 익명성에 감염되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은 무서운 비율로 늘어났다.
인위적으로 팽창한 초부족의 시대'도시 혁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이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도시 혁명'이라는 말은 마을과 도시들이 하룻밤 사이에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인상적이고 새로운 사회생활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 도시들은 아주 작았고, 커지는 속도도 매우 느렸다. 도시들은 저마다 부족 중심의 국지적인 조직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주변 농경지와 긴밀한 관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오늘날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도시는 약 8천년 전에 예리코(요르단에 있는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2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성서에서는 '여리고'라고 한다)에서 생겨났지만, 최초의 완전한 도시 문명은 예리코에서 시리아 사막을 건너 좀더 동쪽에 있는 수메르(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서, 기원전 3000년경에 도시 국가가 형성되었다)에서 발달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수메르의 도시들은 7천 내지 2만 명의 인구를 가진 소도시였다. 그들은 이제 초부족(超部族, super-tribe)의 일원, 즉 시민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초부족에서는 구성원 각자가 더 이상 개인적으로 직접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인 사회가 비개인적인 사회로 바뀐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회 생활이 초부족 수준으로 팽창한 것은 인위적인 결과였다. 그 결과, 급격히 팽창한 공동체를 단결시키기 위해 좀더 정교한 형태의 통제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생겼다. 사람들은 초부족 생활로 엄청난 물질적 이익을 얻는 대신, 엄격한 규율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도시 혁명'을 말하는 과정에서 고대 로마 이야기가 나오면, 이미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인간 공동체는 너무 커지고 혼잡해져서, 동물학적으로 말하면 그때 이미 우리 인간은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인구밀도는 더욱 높아졌고, 엘리트는 더욱 엘리트가 되었으며, 과학기술은 더욱 전문적이 되었다. 도시 생활의 좌절과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고, 초부족들 사이의 충돌은 더욱 잔인해졌다. 군중 속에서 실종된 인간관계가 비개인화 할수록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은 무서운 비율로 늘어났다. 정작 놀라운 일은 급속히 팽창한 초부족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것도 초부족이 훌륭하게 살아남은 것은 우리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창의력과 끈기와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증거다. 우리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원숭이의 사회 조직은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 힘이 약한 구성원은 무리에서 뛰쳐나와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독립하지 않고, 오히려 종속적인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집단에는 힘과 안전이 있기 때문이다. 집단에 대한 이런 충성은 단순히 우세한 수컷 지도자가 행사하는 폭압의 결과만은 아니다. 외부의 도전에 직면하면, 서열이 높은 수컷들은 내부의 다툼을 잊고 단결하여 외부의 도전에 맞서야 한다. 다시 인간이라는 동물로 돌아오면, 우리는 이 기본 체계 - 대외적으로는 협력하고 대내적으로는 경쟁하는 체계 - 가 우리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분열되고 있는 현대 사회현대의 초부족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으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쪼개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도시 거주자들은 친목 단체·계층 단체·전문가 단체·학술 단체·스포츠 단체·압력 단체 따위를 만들어, 다양한 형태의 부족적 일체감을 회복하려고 한다. 제국은 여러 개의 독립국가로 분열하고, 국가는 자치단체로 분열한다. 응집력을 발휘하는 전쟁의 압력을 받으면 동맹관계가 순식간에 형성될 수 있지만 평화로울 때는 이탈과 분열이 대세를 이룬다. 지구 전체가 하나의 초부족으로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꿈은 되풀이하여 깨지고 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위협만이 지구 전체를 단결시키는 데 필요한 응집력을 제공해줄 것 같다. 그나마도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흰개미처럼 기꺼이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부족 생활에 적합한 동물이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구 전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간헐적인 분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엄청나게 거대한 초부족 단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추세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 우리는 왜 그런 상황을 고집하고 있을까? 인간이라는 동물은 초부족의 혼란 속에 내던져지는 것에서 깊은 만족을 얻는 생물학적 자질을 타고났다. 그 자질은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 풍부한 창의성, 지적 활동성 등이다. 도시의 혼란은 인간이 이런 자질을 더욱 왕성하게 발휘하도록 부추긴다. 도시 공동체는 인간에게는 창의적인 생각을 낳는 번식집단이다. 이것이 도시 공동체의 유리한 점이다. 불리한 점이 그렇게 많은데도, 이 한 가지 이점 때문에 초부족 체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는 아무리 탐험해도 결코 한계점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사회의 응집력과 창의력 사이에 근본적인 충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응집력은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반복적이며 정적이다. 반면에 창의력은 새로운 발전을 위해 기를 쓰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낡은 방식을 거부한다. 경쟁과 협력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응과 혁신도 끊임없이 대립한다. 지속적인 혁신은 오직 도시에서만 진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모험의 흥분이야말로 오늘날 수많은 도시 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인간 동물원 속에 계속해서 갇혀 있게 만드는 요인이다.
제2장 지위와 초지위사회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지위 경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좌절도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지위 문제는 순식간에 초지위의 악몽으로 확대되었다.
초부족은 초월적인 통제력을 필요로 한다근래의 인간 지도자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는 분명 많은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 부족의 지도자는 집단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초부족의 지도자는 초지위라는 높은 위치 때문에 고립되어 있고, 권력 기구에만 열중하여 급속도로 집단 구성원들과 단절된다. 오늘날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최소한의 정보로 주요한 결정을 내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초부족을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지만,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합리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지도자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는 옛날의 부족 시대에나 걸맞는 존재이니까 그가 속해 있는 과거로 쫓아보내고, 그 대신 서로 의존하는 전문가들이 컴퓨터로 관리되는 조직을 구성하여 초부족을 다스리는 것이 최상책이다. 사실 초부족은 초월적인 통제력을 필요로 한다. 한 사람이 통제하기가 벅찰 때는 강력한 조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백성들의 생물학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이성은 초부족적일 수 있지만, 그들의 감정은 아직도 부족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한 개인의 형태를 갖춘 진정한 지도자를 계속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근본적인 행동 유형이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한 개인이 지도자의 지위에 앉을 수밖에 없다.
지위 획득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다위에서 짓누르는 지배의 무게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무겁고, 이것은 초부족 상태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 무게가 우리한테 어떤 희생을 요구했는가를 알 수 있다. 불과 몇 천 년 전만 해도 단순한 부족 사냥꾼이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초부족은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이 비정상은 비정상적인 행동양식을 낳았다. 우위 흉내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폭력 행위를 보고 흥분하는 것, 동물이나 어린이 같은 하위자들을 고의적으로 학대하는 것, 살인 행위,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두 실패했을 때 자학과 자살 행위로 치닫는 것 등이 모두 초부족 상태가 낳은 비정상적인 행동양식이다. 자연 서식지에 사는 야생동물의 경우,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극한까지 치닫는 일은 결코 없다.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한테서만 인간과 어느 정도 비슷한 상태를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허덕이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여러 종류의 이상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놀랄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인구에 비해 그런 이상 행동이 지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더욱 놀랄 만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엄청난 인내력과 유연성과 창의력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증거다.
제3장 섹스와 초섹스'섹스'라는 생존의 기본적 메커니즘이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파멸의 메커니즘으로 바뀌고 있다.
점점 격렬해지는 초섹스화우리가 음식을 입에 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 동물원에서는 먹고 마시는 행위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행동양식을 여러 기능에 활용하는 것은 동물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인간 동물원에서는 인간의 독창적 기회주의가 이 과정을 연장하고 확대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초부족 생활의 이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서투르게 다루면 바람직하지 못한 점이 생길 수도 있다. 곤두선 신경을 달래기 위해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증에 걸려 건강을 해친다.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까닭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행위의 주된 기능인 영양 섭취와 영양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음식 섭취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당히 조심하면, 몸에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는 먹고 마시는 행위의 다양한 기능에 탐닉할 수 있다. 성행동에 관해서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훨씬 복잡하고,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인간은 성행동의 기본 기능인 생식과 생식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성행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종종 있지만, 이 사실은 인간 동물원이 섹스를 여러가지 기능을 가진 초섹스(super-sex)로 바꾸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초섹스로 나아가는 추세에는 여러 가지 영향력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작용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거대한 두뇌의 발달이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을 길게 연장시켰고, 길어진 자녀 양육기간은 다시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진 것을 의미했다. '짝짓기를 위한 섹스'와 '짝을 유지하기 위한 섹스'가 기본적인 '생식을 위한 섹스'에 추가되었다. 인간은 색다르고 새로운 경험을 하려는 충동이 강해졌고 호기심과 창의성도 풍부해졌다. 이것이 '탐험적 섹스'를 크게 증가시켰다. 거대한 두뇌는 인간의 생활을 효율적으로 체계화했기 때문에 인간의 여가는 점점 늘어났고, 그리하여 '섹스를 위한 섹스'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남아도는 시간이 너무 많으면, '직업적 섹스'가 그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초부족의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너무 강해지면, 언제든지 긴장을 풀어주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섹스'가 있었다. 초부족 생활은 더욱 복잡해져서 생산 활동과 상업이 더욱 세분되었고, 여기에도 성적 활동이 '상업적 섹스'의 형태로 관련되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초부족 체계에서 지배와 지위 문제가 확대되자, 섹스는 어디에나 퍼져 있는 '지위 섹스'로서 성과는 관계없는 상황에도 점점 많이 차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성적 문제는 주로 생식과 관련된 범주와 주로 생식과는 관계없는 범주의 충돌이었다. 피임약의 발명이 방종한 난교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인간의 성교는 여전히 기본적인 '짝짓기'의 성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인간은 진화 때문에 부모의 의무가 크게 늘어났고, 거기에서 남녀가 짝을 이루려는 강한 충동이 생겨났다. 앞으로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 아무리 완벽한 피임법이 생겨난다 해도 지속적인 짝짓기 충동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성행동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다. 피임법의 개선, 성병의 감소, 인구의 증가라는 세 가지 압력이 서로 협력하여, 생식과 관계없이 쾌락에 탐닉하는 비생산적 형태의 성교를 극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동물적 본성은 우리가 그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영원히 방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리의 유전자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때까지는 그것을 방해할 것처럼 보인다. 초섹스는 인간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가장 강렬한 보상을 줄 수 있다. 또한 일이 잘못되면 인간에게 최대의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인간은 초섹스를 확대하고 정교하게 다듬고 조종했듯이, 초섹스가 갖고 있는 상벌 양면의 잠재적 가능성도 확대했다. 우리는 인간 행동의 많은 분야에서 그와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보상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는 의료 분야에서도 벌이 존재한다. 의료 발달은 인구 과밀을 쉽게 초래할 수 있고, 인구 과밀은 새로운 스트레스 질병을 만연시킨다. 인구 과밀은 고통에 대한 과민증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 민감해진 우리의 감수성이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제 문제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아니, 우리 두뇌에 달려 있다. 유일한 장애는 부족이 초부족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우리의 생물학적 안전망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제4장 내집단과 외집단"인간의 본성은 비슷하다. 서로를 멀찌감치 떼어놓는 것이 인간의 관습이다."
텃세권을 두고 위협적인 폭력이 시작되다진화론적 주장에 따르면, 두 집단이 충돌하여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파멸시킨 경우에는 이긴 쪽이 진 쪽보다 생물학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주장은 편협한 관점이다. 오히려 두 집단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했다면 인류 전체는 그만큼 더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보다 넓은 관점이다. 우리는 바로 이 넓은 시야를 갖도록 애써야 한다. 그런데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1830년부터 1945년까지)에 무려 6천만 명의 인간이 집단 사이의 충돌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이 살육을 두고 인간이 '짐승처럼' 행동했다고 묘사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그런 동물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이 행동은 현대인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독특한 동물로 만드는 또 하나의 기묘한 특성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세 가지 것 - 자신·가족·부족 - 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타고났다. 인간은 짝을 짓고 텃세권을 갖고 집단 생활을 하는 영장류로서 그 자신이나 가족 혹은 부족이 폭력으로 위협을 받으면 공격을 물리칠 가능성이 있는 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동원하여 반격을 시도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상황에서는 상대의 위협과 거의 같은 정도의 위협으로 응수하는 게 보통이다. 상대의 위협보다 더 폭력적인 동물은 모두 절멸해버린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교훈이다.
지난 2천 년의 인류 역사는 우리가 진화를 통해 물려받은 유산에 지나친 부담을 주었다.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고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지만 부족은 이제 초부족이 되었다. 국가간·이념간·민족간의 갈등이 보여주는 독특한 잔인성을 이해하려면 이 초부족 상태의 본질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 인류가 처음으로 내디딘 중요한 발걸음은 항구적인 주거지에 정착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지켜야 할 명확한 대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원숭이와 유인원은 대개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생활을 한다. 각 무리는 서로 마주쳐도 사태가 심각하게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초기 인간이 좀더 엄격한 텃세적 습성을 갖게 되자 방어 체계를 단단히 다져야 할 필요가 생겼다. 지도자들은 집단 사이의 싸움에 훨씬 직접적으로 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