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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편력 1

J. 네루 지음 | 일빛
세계사 편력 1

자와할랄 네루 지음/곽복희․남궁원 옮김

일빛/2004년 6월/564쪽/18,000원



지은이 서문

나는 이 편지들이 언제 어디서 출판될지, 아니 출판될지조차 알지 못한다. 오늘날 인도는 기묘한 나라여서 앞날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그렇지만 내 앞의 상황이 아직 급박하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역사에 관한 이 편지들에 대해서는 변명과 설명이 필요하다. 이 책을 다 읽는 수고를 감당할 독자들은 아마 그 변명과 설명을 책 가운데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혼란한 세상에서는 어쩌면 끝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 서한집은 딸의 성장과 함께 씌어졌다. 애초에 서한집에 대한 계획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많은 분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약 6년 전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딸에게 편지를 계속 쓰고 싶었지만 정치 활동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감옥에 가게 되면서 감옥에서의 시간을 편지 쓰는 데 활용하게 되었다. 감옥 생활에도 이렇듯 이로운 점은 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수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도 없으며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무엇에 대해 쓴다는 것, 더군다나 역사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다. 몇 권의 책이 차입되긴 했지만 계속 갖고 있을 수는 없었다. 책들은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 버린다. 그러나 12년 전, 수많은 우리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처음 감옥들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독서를 하면서 노트를 해 두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이 편지들은 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글 속에는 오직 딸에게만 할 수 있는 허물없는 말투들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지간히 애쓰지 않고는 이런 문투를 다 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들을 손보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육체의 부자유는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여러 감정들을 이끌어낸다. 이 자주 바뀌는 감정들이 편지들에 너무 뚜렷이 드러나 역사가의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나는 역사가로 자처할 생각은 없다. 이 편지들을 쓰면서 가끔 내 견해를 다소 거칠게 나타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의견을 갖고는 있지만, 이 편지들을 쓰는 동안에도 역사를 보는 관점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만약 지금 그것들을 다시 써야 한다면 다른 식으로 쓰거나, 아니면 어떤 부분들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에 쓴 것들을 찢어 버리고 새로 시작할 여유가 없다.



나이니 중앙 형무소에서

열세 번째 생일을 맞는 인디라 프리야다르시니에게

해마다 생일이 돌아오면 너는 으레 선물이나 축복을 받기 마련이었지. 축복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단다. 하지만 나이니 형무소에서 내가 무슨 선물을 해줄 수 있겠느냐. 나의 선물은 눈에 보이거나 손을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착한 요정이 네게 줄 수 있는 그런 공기나 정신이나 영혼으로 된 어떤 것, 형무소의 높은 담도 가로막을 수 없는 그런 것을 줄 수밖에 없겠구나. 네가 태어난 해(1917)는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동정하는 한 위대한 지도자가 그 나라의 인민을 지도해 고귀하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역사의 한 장을 쓰도록 이끈 기억할 만한 해였다.

네가 태어난 그 달에 레닌은 러시아와 시베리아 전체를 뒤바꾼 혁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인도에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가슴 깊이 사랑하며 그들을 돕고자 열망하는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고무되어 인도 인민은 다시 자유를 향해, 그리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나큰 노력과 고매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바푸지(Bapuji)는 지금 감옥에 갇혀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마법과 같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억 인도 국민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심지어 천진한 어린아이들까지 그들의 작은 껍질을 벗어 던지고 인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전사의 대열에 가담하려 하고 있다.

바로 지금 인도 사람들은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너와 나는 다행히도 그 사건을 바로 눈앞에 보면서 이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조금이나마 우리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위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또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나에게 어떤 운명이 돌아올지, 어떤 임무가 우리 어깨 위에 떨어질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 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거나 우리 인민에게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도의 투사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도의 명예를 깊이 간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약간의 시험을 권하겠다.

네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헤매게 될 때는 언제나 이것으로 시험해 보기 바란다.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숨기거나 숨기려 하지 말 것, 무엇을 숨기려 하면 언제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불안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거니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용감해지거라. 그러면 다른 일들은 자연히 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만일 네가 용감하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것이요, 부끄러울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너도 잘 알겠지만 바푸지의 영도를 받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해방 운동에는 아무런 비밀도 감출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이나 말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양과 빛의 한가운데에서 일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태양을 친구로 삼자. 그리하여 빛 속에서 일하며 무엇이든지 감추거나 남몰래 하지 말도록 하자. 물론 우리는 사생활을 가질 것이고 또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만약 네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보아라. 너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침착해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빛의 딸로 자랄 것이다. 나는 상당히 긴 편지를 썼다. 그래도 아직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구나. 그 말들을 한 통의 편지에 다 쓸 수는 없겠지.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유를 향한 투쟁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너는 행복하다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네가 행복한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너는 매우 건강하고 훌륭한 인도의 어느 여성을 어머니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망설일 때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너는 이 사람보다 더 좋은 벗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안녕, 작은 아가. 그리고 네가 인도를 위해 용감한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모든 사랑과 축복을 너에게 보낸다.

새해 선물

2년 전 네가 무수리에 있을 때 내가 알라하바드에서 보낸 편지들을 기억하고 있느냐? 너는 그 편지가 재미있었다고 했지. 그러나 이제 그런 편지는 그만두고, 차라리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뭔가 얘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망설였다. 옛날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활약하던 훌륭한 남녀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일은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도 알고 있듯이, 역사는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인도의 과거는 기나긴 것이다. 그 시초는 태고의 어둠 속으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그 중에는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불행한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른 국가나 민족에게 자랑해도 좋을 만한 것이며, 후손인 우리가 기쁨을 느낄 만한 찬란한 것이었다.

이 편지들이 네게 재미있을지, 또는 네 호기심을 깨우게 될지 모르겠다. 실로 나는 네가 언제 이것을 받을지, 또는 도대체 읽게나 될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구나. 서로 가까이 있어야 할 텐데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네가 무수리에 있을 때 우리는 몇 백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지, 하지만 나는 아무 때나 너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못 견디게 보고 싶으면 너에게 달려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서로 줌나(Jumna)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구나.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지만, 나이니 형무소의 높은 담은 너를 만날 수 없게 가로막고 있다. 두 주에 한 번 편지를 쓰면 또한 두 주에 한 번 답장을 받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두 주에 한 번 20분간의 면회가 허용된다.

하긴 이런 제약도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을 때에는 좀처럼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형무소에 있는 기간이 좀처럼 얻기 어려운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의 수가 무려 몇 만에 이르고 있단다! 이 편지들을 보고 네가 마음에 들어할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낙으로 편지를 쓰기로 작정했단다. 편지를 쓰고 있으면 네가 바로 곁에 있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늘 너를 생각한다. 특히 오늘은 한시도 네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오늘은 설날이다. 이른 아침 침대에 누워 별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위대한 세월이 그에 따르는 온갖 희망, 고통, 기쁨과 함께, 또한 그 때 일어난 위대하고 눈부신 업적들과 함께 잇따라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 마법의 숨결로 우리 늙은 인도를 힘차게 소생시키고 지금은 예라바다 형무소의 한 방에 앉아 있을 바푸지를 생각하고, 다두(Dadu)와 그 밖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중에도 특히 나는 네 어머니와 너를 생각했다. 아침이 되고 나서야 네 어머니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즐거운 새해 선물이었다. 물론 이런 사태는 벌써부터 예상하던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 어머니가 진실로 행복해하며 또한 만족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너는 혼자 남았으니 오죽 쓸쓸하겠느냐? 두 주에 한 번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두 주에 한 번 나를 만날 수 있지만, 너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전령이 되어 주겠지. 하지만 나는 혼자서 펜과 종이를 앞에 놓고 너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어느새 살며시 내 곁에 다가와 우리는 많은 일들을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우리는 함께 옛 일을 회상하고, 미래를 과거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이제 설날을 맞이해 우리 약속하자. 이 해가 지나고 마침내 다 가기까지 우리의 찬란한 미래의 꿈을 한층 현재로 끌어당겨서 인도의 과거에 영광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덧붙이자고 말이다.

아라비아 해의 크라코비아 호 선상에서

아라비아 해에서

우리가 이 배 크라코비아 호로 봄베이에서 콜롬보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니 참 묘한 인연이구나. 나는 4년쯤 전에 베니스에서 이 배를 기다리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다두가 이 배를 타고 있었단다. 그 때 나는 너를 스위스 벡스(Bex)의 너희 학교에 맡긴 채 그를 만나러 왔었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다두가 유럽에서 타고 돌아온 것도 이 배였고, 나는 봄베이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온 몇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어서 다두를 잘 기억하고 있단다. 나는 어제 변화가 많았던 지난 석 달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지난 몇 주 전에 일어난 한 사건을 기억해 두기를 바란다. 인도는 앞으로 오래도록 그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콘포르시에서 인도의 용감한 투사 가네슈지 샨카르 비드야르티가 사망했다.

그것도 남을 구하려 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다. 가네슈지는 내 친구이며 내가 자랑스러워하던 고결하고 사심 없는 동지였다. 지난 달 콘포르에서 난동이 일어나 인도인끼리 다투지 않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다. 그는 몇 백 명의 생명을 구했으나 자기 자신은 구하지 못했고, 또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구하려고 한 그들에게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콘포르와 우리 지방은 빛나는 별을 잃었고, 또 우리의 많은 동지들은 친근하고 현명한 친구를 잃었다. 그러나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군중과 맞서서, 위험과 죽음의 한가운데서도 오직 그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구하려고 애쓰던 그의 죽음은 얼마나 빛나는 것이냐!

덧없는 석 달! 유구한 시간의 대해에서는 한 방울의 물과 같고, 한 나라의 생명에 비하면 한 순간과 같은 시간이다! 3주쯤 전에 나는 모헨조다로의 유적을 보러 신드(Sind)의 인더스 계곡으로 갔다. 나는 땅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 대도시를 보았다. 튼튼한 벽돌집들, 폭넓은 대로(大路), 이런 것들이 모두 5000년 전에 만들어졌구나. 또 이 고대 도시에서 발굴된 아름다운 보석과 도자기도 보았다. 남녀가 밝은 옷차림으로 크고 작은 길을 오가고, 어린이들은 저마다 뛰놀며, 시장에는 상품으로 흘러 넘쳐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사고팔고, 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옛날 모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 5000년 동안 인도는 생명을 이어 오면서 온갖 변화를 겪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유구하지만 또한 그토록 젊고 아름다운 우리의 어머니 인도는 자식들의 성급함과 사소한 다툼, 일시적인 기쁨과 슬픔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바레일리 형무소에서

남인도가 많은 왕과 전사 그리고 한 사람의 전사를 낳다

나는 이 편지에서 잠시 번영의 시대를 누리다가 사라져 잊혀지고 만 국왕과 왕조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나 그들 이상으로 주목해야 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인도의 생활에 어떤 왕, 어떤 황제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떠맡을 운명을 갖고 있었다. 이 젊은이는 상카르아차리아(Shankaracharya : 아차리아는 위대한 교사라는 뜻)라는 사람이다. 아마 그는 8세기 말에 태어난 듯하다. 그는 놀라운 천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힌두교, 아니 사이비즘(Shaivism : ‘시바교’라고 일컬어진 변형된 힌두교의 지성적인 일파)의 최고신인 시바 숭배의 부흥에 착수했다. 그는 지성과 추리력을 구사해 불교와 싸웠고, 마치 불교의 상가(Sangha : 불교 승려의 공동체 집단, 즉 四衆.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말한다)처럼 모든 카스트에 개방된 산야신(Sanyasins : 수행자) 조직을 만들었다. 이 산야 조직을 위해 인도의 동서남북 네 귀퉁이에 위치하는 네 군데의 중심지를 마련했다. 그는 온 인도를 편력(遍歷)하며 도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정복자로서 베나레스에 들어갔다. 다만 정신과 토론의 정복자로서 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오지의 만년설 밑자락에 있는 케다르나트까지 갔으며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그 때 그의 나이 겨우 32세 안팎이었다. 상카라의 업적은 눈부셨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던 불교는 이제 인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힌두교 또는 그것이 변형된 사이비즘은 전국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온 나라에서 상카라의 저서와 주석서의 논증을 통한 사상적 선풍이 일어났다. 그는 브라만 계급의 대 지도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상상력을 휘어잡았던 것 같다. 한 인간이 주로 자신의 강인한 추리력으로 대 지도자가 되고, 그러한 인물이 몇 백 몇 천만 인민과 역사에 자기의 그림자를 새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걸출한 군인과 정복자가 두뇌가 명석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인기를 누리거나 증오를 받으며 역사를 만들어간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도 대중을 움직이고 그들의 정열을 불태우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신앙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감정에 접하여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지성에 호소해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고 감정이 내키는 대로 느끼고 움직인다. 그런데 상카라의 호소는 지성에, 그리고 이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논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의 여부는 잠시 논외로 하자. 흥미를 끄는 것은 종교 문제에 대한 그의 이성적인 접근이며, 또 그렇게 접근했는데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당시의 지배계급의 지성 상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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