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의 재발견
애드리언 블루 지음 | 예담
본능으로서의 키스입술, 입, 혀와 이는 대개 양성적(兩性的)이며 실용적인 목적만 따지자면 남성과 여성의 입술은 실제로 똑같다. 키스라는 행위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존재로서 의사소통 한다. 그것은 남녀가 같은 기관으로 행하는 성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키스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태어나기 전부터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아기는 젖을 빠는 데에 필요한 모든 생물학적 준비, 즉 빨기, 삼키기, 헤적이기 등의 기술을 본능적으로 다 갖추고 태어난다. 단순하게 말해 키스는 젖 빨기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똑같은 세 가지 반사 운동을 사용한다. 태어나기 전 몇 주 동안 태아는 자기 손을 빠는데, 가끔은 너무 세게 빨아 물집이 생기기까지 한다. 아기는 이미 빠는 행위를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즉시 빨려고 애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단세포 원생동물처럼 거의 입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기의 삶은 세상을 빨고 맛보는 것이 전부이다. 뺨을 어루만지면 아기는 몸을 좌우로 뒤척이면서 작고 빠른 움직임으로 조급하게 젖꼭지를 찾아 더듬기 시작한다. 이것이 '헤적이 반사'라는 것이다. 젖꼭지나 젖가슴을 내밀거나 손가락으로 아기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기만 해도 헤적이 반사를 유도해 낼 수 있다. 아기는 머리를 그쪽으로 돌리고 입술을 삐죽 내민다.
키스는 열린 본능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0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의 개를 만나보아야 한다. 파블로프는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조건반사에 관한 사실을 증명해서 190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실험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음식 앞에서 종을 울린다. 개는 종소리와 음식을 연관시키도록 학습된다. 나중에는 음식이 없어도 종이 울리면 개는 침을 흘린다. 그 후로 왓슨주의자들(행동주의자), 스키너주의자들(행태주의자)과 실험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인간 행동이 학습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자료를 모아왔다. 아기는 젖가슴을 빨면서 쾌락을 느끼고, 그 쾌락을 주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를 '사랑'하도록 조건반사화 되었다(그렇게 학습되었다). 그 옹호자들은 정신분석학이 엉터리이며, 인간 진화는 생물학/본능/자연에 대한 문화/학습/양육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자연 대 양육 논쟁은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은 자연과 양육 모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정설이 되었다. 고등동물들의 많은 활동은 내재적인 요소와 학습된 요소들 모두를 가지고 있는 '열린 본능'이며 키스도 그 중 하나이다. 열린 본능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된 밑그림으로서, 학습으로 메워질 것이다. 더 복잡하고 더 지능이 높은 피조물일수록 이런 전반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 된다. 인간이 노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키스하는 활동들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키스는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힘들이 서로 작용한 결과이다.
욕망의 지리학오랫동안 일본인들은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었다. 일본인들 자신마저도 키스가 유럽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세의 한 문헌은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안에는 희열의 절정에서 애인의 혀를 깨물 수도 있기 때문에 혀 키스를 하지 말라고 일본 남성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키스는 성교에 앞선 전희로만 간주되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에서는 형식적인 키스나 인사차례로 하는 키스가 없어졌다. 한 문화역사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몸짓은 사실 자연에서 문화로, 즉 몸[성(性), 감각]에서 행동(집단정신의 전달자)으로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이다." 일본은 불가사의한 나라가 아니라 단지 신중할 뿐이며 일본 나름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일부 문화에는 키스가 없다는 잘못된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뉴기니 동쪽 트로브리안드 섬 사람들처럼 키스를 인류학자들이 설명하거나 묘사한 것과는 다른 무언가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인류학자 브로니수아프 말리노프스키는 처음에 트로브리안드 섬 사람들이 키스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후 그는 그들이 단순한 방법으로 키스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섬 사람들이 "자기 만족적인 행위로서의 성애적 애무"에 탐닉하지 않으며 키스는 "몸의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오랜 시간 들여서 하는 성교의 한 단계"라고 확신했다. 키스를 불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극소수의 아프리카 종족도 있다. 몇몇 공동체에서 그 관습은 이런 저런 문화적 이유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예를 들면, 여성의 입술에 링을 끼워서 상처를 내거나 음핵 절제나 정조대 착용 같은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관습을 행하여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를 거부하는 사회의 사람들도 성교 상대의 얼굴을 톡톡 건드리고 핥고 빨고 비비고 물었다.
5세기에 씌어진 고대 인도의 『카마수트라』에는 서른 가지 이상의 키스 유형이 상식으로서 열거되어 있는데, '카마Kama'라는 말은 욕망을, '수트라Sutra'라는 말은 소네트Sonnet나 오행속요 같은 운문 형태를 뜻한다. 이 산스크리트 성 지침서 『카마수트라』의 황금률은 바로 이것이다. "연인 중의 한 쪽이 상대에게 행한 것은 무엇이든 그 상대에게 똑같이 되돌려 받아야 한다. 즉 여자가 남자에게 키스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키스해야 하며, 여자가 때리면 남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여자를 때려야 한다." 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뜻은 육욕의 동등함, 상호성이다. 키스는 결코 서구 또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1992년에 조사된 것만 해도 168가지에 달하는 인간문화 중 87%에는 '낭만적인 사랑'이 존재한다고 한다. 뉴기니아의 벰벰족은 그런 사랑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곧 결혼할 소녀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사랑의 도주를 하는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세계 대부분의 종족들이 키스를 한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사람들 중 약 90%가 키스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원래 키스가 없었던 듯한 지역들은 팝 음악, 티셔츠, 맥도널드만큼이나 쉽사리 키스를 받아들였다. 소말리족, 남아프리카의 시리오노족의 생활이 서구의 폐품 문화 수입보다는 키스에 의해 훨씬 더 풍요로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위대한 사랑 이야기와 고전들이 성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성교 대신 키스를 자주 등장시키는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키스가 친밀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그런 확신이 들더라도 성 경험의 영원한 진실 같은 것은 없다는 미셸 푸코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한 일일 것이다. 푸코는 또 다른 명언을 남겼다. 성 윤리는 문화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빈에서 환자들과 상담하고 있던 19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은 문화적 구속이 아주 심했다. 성(性)은 문명사회의 불결하고 하찮은 비밀이었다.
나쁜 의사 프로이트프로이트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빌리자면 '새로운 기호법', 즉 새로운 시각의 제안자였다. 그의 관점은 순수의 상실로 이어져, 현대 생활을 특징짓고 동화에 대한 시각마저도 바꾸어버렸다. 프로이트는 창안 중이던 정신분석학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사례 연구들의 자료를 왜곡하고 위조하기는 했지만, 키스, 그리고 모든 성에 대한 이해를 크게 진보시켰다. 그는 유아의 구순기 경험이 이후의 애정 관계와 인간 관계의 모든 파괴와 만족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젖가슴(또는 우윳병)을 빨면 그냥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성적인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결국 성인의 키스가 될 터였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는 분명 옳았다. 과연 빠는 행위는 키스할 때와 똑같은 근육을 사용하고 똑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육체의 역학보다는 정신의 동기 부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의 몇몇 범주가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량 의사 프로이트는 모든 이의 첫 성적 대상은 젖가슴이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성애적 젖가슴의 존재를 의심스러워하는 이들에 대한 대답으로, 엄지손가락 빨기가 유아기의 성욕을 증명해 주는 명확한 예라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고무 젖꼭지, 손가락 등을 아이의 입에 밀어 넣어준다는 것은 그들이 그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프로이트 시절에 고무 젖꼭지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세계에 사는 아기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그 대상을 찾았다.
프로이트의 관점을 따르자면, 키스는 최후의 심판의 날, 즉 젖을 떼는 날이 있기 때문에 탄생했다. 갓난아기는 자기나 다른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빠는 방법을 알지만 젖가슴이나 우윳병을 빠는 것보다는 덜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로이트는 입술이 언제나 차선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태어나서 18개월 정도까지 유아의 가장 큰 쾌락은 젖을 삼키고 진짜든 고무로 만든 것이든 젖꼭지를 빨고 깨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단계에서 만족을 얻으면, 아기는 다음 단계로 행복하게 넘어가고 다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하지만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구순기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인격은 구순 성격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의존성, 수동성, 그리고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등의 '구순기적 습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젖가슴, 우윳병, 또는 어머니까지 신통치 못해 구순 가학 단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지 못하면, 정말이지 큰일이다. 프로이트는 젖가슴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어머니 자체에 대한 열정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명의 존속을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순화시키고 억압해야 했다(융은 그에 해당하는 소녀들의 감정을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명명했다).
새와 보노보심리분석학 이론이 먼저 나왔지만 행동학의 자료가 더 광범위한 것도 사실이다. 둘 모두 성애의 키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에서 비롯되었으며 아기의 빠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유아의 성욕과 세대 간의 성욕에 대해서 좀 더 과감한 태도를 보였다. 억압이나 금기가 없는 사회에서는 그런 성욕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종족중의 하나인 쿵족이 입술로 아이의 벌어진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것을 목격했고, 파푸아 사람들과 슈바르츠발트 근처를 포함한 독일 일부 지역의 어머니들이 그와 같은 '입으로 음식 먹이기'를 행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 씹지 않은 음식을 입술 사이에 담고만 있어도, 어머니의 입에서 음식을 받아먹어 온 생후 3개월 된 아기는 입술과 혀를 쭉 내밀 것이다. 많은 동물과 새들도 새끼에게 입으로 먹이를 먹인다. 침팬지는 바나나를 씹지 않은 채로 새끼들에게 입으로 먹여주고, 심지어는 어른 침팬지에게도 가끔 그렇게 입으로 먹이를 먹여준다. 오랑우탄과 고릴라 역시 새끼들에게 입으로 먹이를 먹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몇몇 서구인과 많은 아프리카인은 후체위로 성교하며, 고양이부터 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포유류의 암컷들이 이 체위에서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증거가 있다. 대면 체위 성교가 여성의 오르가슴에 가장 좋은 체위는 아니지만, 널리 보급되어 있을뿐더러 인간들만의 체위도 아니다. 지능이 가장 높은 침팬지 종인 보노보와 몇몇 오랑우탄도 그 체위로 교접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최초의 대면 체위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한번 추측해 보자. 나는 키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호리호리하고 털 색깔이 짙은 침팬지 종인 보노보는 놀라울 정도로 인간과 닮았으며, 혀를 깊숙이 집어넣어 키스를 한다. 성애적 키스와 대면 체위는 최초의 인간이 땅을 걷기 전에, 600만 년 전 인간의 혈통이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에게서 갈라져 나오기 전에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침팬지는 좀 더 고등한 보노보에 비해 성에 대해 잘 모른다. 일반적인 침팬지는 혀가 아니라 입으로 키스한다. 우리의 영장류 친척 중에 가장 똑똑한 보노보는 혀로 키스하는데, 특별히 감정이 생겨나서 하는 것도 아니다. 보노보는 대개 대면 체위로 교접하고, 암컷들은 서로 성기를 비벼대기도 한다. 인간 여성처럼 보노보의 질구(膣口)는 후체위보다는 대면 체위에 알맞게 앞으로 향해 있다. 그들은 아주 다양한 체위로 교접하는데, 둘 중 어느 한쪽의 제안으로 시작된다. 보노보의 성생활은 생식과는 "대개 관계가 없으며" 다른 기능도 많이 한다. 그 중 하나가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과 긴장을 해결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포를 느끼면 암컷은 수컷에게 달려가고, 둘은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여기에서 입맞춤은 아기가 젖가슴을 만지면서 느끼는 것과 같은 안정감을 회복시켜 주며, 공동의 결합에 대한 인식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성적이지 않은 어떤 이유로 깜짝 놀라거나 공포를 느끼거나 흥분할 때마다 침팬지들은 이 '접촉 추구 행위'에 몰두한다.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 중에서 보노보가 성적으로나 지적으로 가장 발달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지능을 과시한 것은 키스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즉, 성행위를 단순한 생식 수단 이상의 무언가로 수정하고 그것을 친밀감과 쾌락의 열쇠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잠자는 미녀와 왕자잠자는 미녀는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성이다. 잠자는 미녀가 등장하는 초기의 동화들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아주 명백하다. 소녀는 '백지 상태'이고, 젊은 남자가 그 위에 자신의 환상을 새긴다는 것이다. 17세기에 한 나폴리 여행가가 수집한 이야기들로 엮어진 『펜타메로네Pentamerone』에서 잠자는 미녀의 이야기에서 대영주의 딸인 탈리아는 손가락에 가시가 찔리자 마법에 걸려 깊은 잠에 빠진다. 남자 주인공은 이미 결혼한 왕으로,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잠들어 있는 탈리아를 발견하고는 그 상황을 이용해 "그녀에게서 사랑의 열매를 땄다." 탈리아는 임신하고, 그녀의 아기가 우연히 - 프로이트라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 그녀의 젖가슴 대신 손가락을 빠는 바람에 가시가 빠져 그때서야 잠에서 깨어난다.
야콥과 빌헬름 그림 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의 제1권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던 1812년 겨울에 베를린에서 출판되었다. 그림 형제의 아내들에게는 늙은 마리라는 유모가 있었는데, 『잠자는 미녀』는 이 늙은 유모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왕자는 성 안으로 들어가 "브라이어 로즈가 누워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아주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어린 소녀들은 연애담의 원형인 이 이야기를 믿도록 교육받았다.
그 뒤로 수세기 동안 문학과 영화에서 좀 더 현대적인 키스는 욕망을 일깨우지만, 여 주인공의 주된 덕목은 여전히 미모와 고분고분함이다. 잠자는 미녀는 점점 깨어나고 있는 성욕을 받아들이는 사춘기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들에게는 얌전히 순종하라는 무감각한 교훈이며, 그것은 기다리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월트 디즈니의 만화로만 알고 있는 『잠자는 미녀』동화는 지구르트와 브룬힐트, 큐피드와 프시케에 관한 외설스러운 신화들을 순화시킨 것이다. 사실 브룬힐트는 날 수 있었고, 프시케는 열정적이고 활동적이었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의 그녀들은 오직 자면서 기다리는 역할만 할 뿐이다. 잠자는 미녀의 키스는 키스의 희화화이며 세계에서 가장 비낭만적인 키스이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그녀는 키스에 동참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초기 형태인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뵐숭가 무용담」에서 발키리(전투적인 여신)인 브룬힐트는 어떤 남자에게 놀라는 바람에 신성(神性)을 잃고 만다. 그러자 그녀와 그녀의 여덟 자매들은 발할라에서 멀리 날아가 지상에 내려서 깃털 옷을 벗어버린다. 아그나르 왕은 그 발키리들을 잡아 자기 수하에 둔다. 여신으로서 브룬힐트는 활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한 여성으로서 결혼을 해야 한다. 미래의 남편이 어느 정도 고난을 겪어야 하니, 브룬힐트는 불에 휩싸인 암석으로 추방된다. 운명의 주인공이 불을 뚫고 들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기 때문에, 브룬힐트의 아버지는 딸의 손가락을 가시로 찔러 잠들게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과 젊음이 변치 않도록 말이다. 영웅은 지구르트 -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지크프리트이다 - 인데, 그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손가락에 입을 맞춤으로써 그녀를 발견한다. 지구르트는 당장 달려가 그녀를 찾아내고 불길을 제압한다. 그들은 키스를 나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나고, 다른 어떤 곳에서 마법의 저녁을 보낸 후에 다른 누군가와 결혼한다. 브룬힐트는 잠자는 미녀처럼 운명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수에 나서 지구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곧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세에서는 그와 함께 하리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그녀는 그의 시신을 태우는 장작더미로 몸을 내던진다. 몰론 최선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는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