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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여유, 그리스

권삼윤 지음 | 푸른숲
육체가 넘실대는 아테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아테네엔 육체가 넘실댔다. 여인들이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로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스 곳곳에 남아 있는 인체 조각상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몸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날씨가 그들을 벗도록 했겠지만 남들에게 내놓아도 좋은 만한 신체 조건을 가졌던 것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니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기만 해도 주제가 몸이나 몸이 즐거워할 것 같은 것에만 맴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이상학이다, 철학이다 하며 골치 아픈 것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을 지배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도시국가에 살았기 때문에 늘 전투에 대비해야 했고, 자연히 신체의 단련을 게을리 할 수 없었으니 김나지움(체력 단련장)과 스타디온(달리기 경기장)이 곳곳에 들어섰고, 그래서 알몸으로 뛰고 달리고 던지는 경기로 이루어진 올림픽 제전이 천 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열렸던 것이리라.

다시 찾은 아테네는 2004년 제28회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 준비로 매우 부산했다. 길을 넓히고 새로 단장한답시고 여러 곳이 파헤쳐져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주경기장과 선수촌 공사장 일대는 먼지가 풀풀 났다. 고대 올림픽 제전의 발상지이자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는 그리스는 2004년 올림픽의 주제를 '올림픽의 귀향'으로 정했다. 대회 엠블렘도 '코티노스'라 부르는 월계관을 디자인으로 삼았고, 마스코트는 고대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아테나와 페보스 남녀 한쌍으로 정했다. 페보스는 오빠이고 아테나는 누이동생이라 형제애와 남녀평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렇게 엠블렘과 마스코트로 장식된 포스터, 기념우표, 주화, 각종 기념품, 선전물들이 거리에 넘쳐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테네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시외버스터미널은 불을 꺼버려 깜깜했고, 큰길에서도 얼마간 떨어져 있어 초행이 아닌데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다행히 그 시간에도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고 나는 오모니아 광장으로 갔다. 광장의 골목에서 이 집 저 집 두드리다 주머니 사정에 맞는 호텔을 찾아냈으나 그것은 나의 치명적 오산이었다. 아테네의 여름 더위가 살인적인 데다 에어컨이 없어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아예 찬 바닥에 누워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스탄불에선 그 정도 가격이면 에어컨이 돌아가는 큰 방에다 공항까지 차를 보내주는데….물가가 비싼 유럽이라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아테네의 첫 밤이 기울어갔다.

돌들의 잔칫집



아크로폴리스란 원래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으로, 그곳에선 물질보다는 정신이, 인간보다는 신이 존경의 대상이 된다. 나는 정상을 향해 한 발 두 발 떼어놓는 알피니스트처럼 아크로폴리스로 올랐다. 우람하기 짝이 없는 프로필레아(현관이란 뜻)를 통과한 순간부터 내가슴은 끓어올랐다. 그것은 파르테논 신전의 늠름한 자태를 맞이하기 위한 내 나름의 준비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전 앞은 늘 멋진 포즈를 취하려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하긴 역사적인 건축물인 파르테논 앞이니 그럴듯한 증명사진 한 장 없어서야 되겠는가. 아크로폴리스는 말그대로 돌 천지다. 바닥도, 성벽도,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하여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박물관 등 모두가 하나같이 돌로 되어 있다. 어느 한 군데도 목재나 철제가 쓰인 곳이 없다. 심지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유물들도 돌덩어리다. 그리스는 대리석의 나라라 모든 건축물은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대리석은 우리네 산야에 흔한 화강암에 비해 다루기가 쉽고 표면이 반듯하여 무언가를 정교하게 새길 수 있다. 게다가 다듬은 면은 공기와 오래 접촉하면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어 조각의 재료로는 최고다. 그들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스인들은 피라미드 같은 거석 축조물을 세우기보다는 도리아식, 코린트식, 이오니아식 등의 다양한 기둥 양식을 개발했다. 그리고 신전 지붕 밑의 삼각형 부분인 박공(페디먼트)과 띠 모양의 장식 벽인 프리즈, 기둥과 기둥 사이의 메테프 등에 옷의 주름은 물론 힘줄까지 그대로 드러낸 신상 또는 인물상을 만들거나 새겼다. 고대 그리스의 사실주의는 대리석이란 소재의 특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바닥 역시 돌이지만 표면이 배우 울퉁불퉁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면 다니기 쉽게 바닥을 반듯하게 해둘 만도 한데 그들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질반질 윤이 나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녔으면 그러할까.

걷기에 좋은 도시 아테네



아테네는 걷기에 좋은 도시다. 인구 4백만의 대도시이긴 하나 볼거리의 대부분은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반경 3km이내에 몰려 있다. 근대 아테네의 출발점인 신타그마 광장 일대와 교통의 요지인 오모니아 광장, 아테네의 밤의 여왕으로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프시리 지구, 여행자라면 꼭 찾게 마련인 아테네 박물관,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등이 그것인데, 특별히 서둘러야 할 처지가 아니라면 나는 그 정도 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건물과 함께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예전에 그리스엔 소요학파라는 게 있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고 강의도 하는 일군의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천천히 걷는 것만큼 사고 작용에 좋은 것은 없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세운 아카데미나 그들의 후예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설립한 박물관 겸 도서관인 뮤제이온에도 산책로가 있었다고 하니, 그리스인들은 어쩔 수 없는 철학자였던 모양이다.

신타그마 광장은 교통의 요지다. 버스나 지하철도 이곳을 통해 들고 난다. 그런데다 최근 개통된 지하철 신타그마 역은 '언더그라운드 갤러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드넓은 바닥을 모자이크 타일로 처리했고, 눈길이 자주 가는 곳엔 조각을 세워놓았으며, 지하 1층 작은 전시관에는 역 공사 때 발굴된 유물들을 모아놓았다. 광장의 북쪽에는 담황색의 기다란 3층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왕궁이었다. 의사당 앞에는 독립전쟁으로 산화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어 매 시간마다 근위병의 교대식이 행해지는데, 빨간 베레모, 카키색 또는 검정색 상의, 흰색 타이즈와 미니스커트, 털 방울이 달린 검은 구두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어깨엔 총을 맨 키 큰 근위병이 그 특유의 걸음걸이로 행진한다. 그것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라 사람들은 어쩌다 이곳을 지나가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발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곤 한다. 특히 일요일 오전 10시 45분에 있는 성대한 의식은 빠뜨리면 후회가 될 정도이다.

밤이 흥겨운 플라카



아테네의 밤은 화려하고 길다. 인공의 불빛이 밤을 환하게 밝혀주는 21세기라는 현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먼 옛날에도 아크로폴리스 기슭의 헤로디스 아티쿠스 야외극장에서는 밤마다 공연이 있었다. <일요일엔 참으세요>란 영화로, 그리고 1980년대 초 문화부 장관 시절 영국을 향해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그리스 조각품을 되돌려달라고 공식 항의한 일로 유명해진 멜리나 메르쿠리의 조각상이 입구 노릇을 하고 있는 플라카 지구는 아테네 최고의 환락가다.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일대를 구경하고 아크로폴리스 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다 들를 수도 있고, 아테네의 밤을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위해 찾아도 좋은 곳이다.

저녁 7시인데도 벌써 길가의 타베르나(그리스식 간이음식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방 앞의 윈도에는 문어와 오징어, 조개, 생선을 비롯한 해물과 붉은색을 띤 육류, 피망과 같은 녹색 야채와 토마토처럼 빨간 과일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길거리를 향해 '오늘의 메뉴'라고 쓴 광고판도 보인다. 가격은 대개 1인당 10에서 12유로 정도. 물론 음료는 별도다. 나는 그 가운데 그럴듯해 보이는 한 타베르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는 그리스식 샐러드와 수블라키 한 접시와 우조 한 잔을 시켰다. 수블라키는 생선이나 돼지고기 또는 양고기 등을 쇠꼬챙이에 꿰어 숯불(또는 가스불)에 구운 다음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우리네 산적 같은 것을 말한다. 수블라키의 묘미는 굽는 방법에 달렸는데, 통돼지 바비큐를 구울 때처럼 쇠꼬챙이를 돌려 고기가 골고루 익도록 하는 것이다. 우조는 포도즙을 증류시킨 다음 거기에 아니스 열매의 향료를 곁들여 만든 것으로, 우리의 소주처럼 투명한 색깔을 띠고 있다. 예로부터 주신(酒神)디오니소스를 숭배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포도주 다음으로 즐겨 마시는 술이다. 그리고 그리스 샐러드는 싱싱한 양상추와 오이, 녹색 피망, 토마토는 기본 재료이고, 여기에 요구르트와 올리브 열매, 페타치즈가 첨가된다. 양이나 산양 또는 염소 젖으로 만든 저지방 흰색 치즈인 그리스 특유의 페타치즈는 보통 야채 위에다 마감재로 올려놓는데, 그 모양이 우리의 두부와 너무나 흡사하다. 그리고 독특한 짠맛을 내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어서, 여행에 지친 나는 자꾸만 그쪽으로 손이 갔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이 페타치즈를 좋아할까 생각하며.

밤이 무르익어가자 그리스 전통 현악기 부주키가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시작하고 마주한 나이트클럽에선 현란한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도 타베르나의 손님들은 자리를 뜰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포도주 잔을 한 손에 쥔채 이야기에 열중이다. 그런 그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 것은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늦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대개 8시까지는 직장에 도착한다. 아침은 집이나 직장 근처의 베이커리 또는 타베르나에서 꿀을 바른 빵과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하고, 정오가 될 때까지 부지런을 떨다가 정오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는 늘어지게 낮잠(시에스타)을 잔다. 이들의 점심시간은 그래서 보통 3시간이나 된다. 그리고 긴 햇살이 얼마간 기울어지면 다시 일터로 나가 마저 일을 끝낸다. 이런 시에스타는 온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도 계속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습관이자 문화인 셈이다.

그리스인들은 아무래도 '일'보다는 '즐기는 삶'에 치중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고정된 것으로 자신을 속박하는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지배자이기를 원한다. 그들의 휴머니즘이 인간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는 것이었고, 그들이 씨 뿌린 민주주의 또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즉 자기 지배 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그리스에 가서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 해도 너무 타박해서는 안 된다.

권하고 싶은 신혼여행지, 타소스



타소스는 카발라 앞에 있는 섬이다. 그곳에선 여름철 주말이면 노천극장에서 고대 비극이 상연된다고 하였는데,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바로 부두로 향했고 도중에 들른 관광안내소에서 배는 늦게까지 다니지만 그날은 공연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깜깜한 밤바다를 사십 분이나 항해하여 도착한 타소스의 프리누 마을은 불빛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는 '유로파'란 호텔에 짐을 풀었다. 타소스의 볼거리는 프리누에서 24km쯤 떨어진 리메나스에 집중돼 있다 하여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길에는 올리브 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에게 해 위로는 하얀 요트가 떠 다녀 별세계 같았다. 나는 고대 비극이 상영되는 극장부터 찾기로 했다. 꽤 먼 길을 걸어 그곳에 도착했으나 공사 중이라며 입구를 막아놓았다. '포기'라는 말을 잊어버린지 오래인 나는 울창한 숲을 헤치며 극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극장은 크지 않았고, 복구하느라 장비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작고 외딴 섬에 2천 년 전에 극장이 세워져 비극이 상연되곤 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극장은 그들 공동체에게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로, 그곳에 올려졌던 비극은 그들에게 의미있는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 촌구석까지 극장을 지었고 자유시민이라면 누구나 비극 공연을 감상했는데, 그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비극을 통해 형식상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에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지금 극장은 상당부분 허물어져 수리를 받고 있었다. 텅 빈 극장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어 해변가로 갔다. 그곳에 있는 타베르나에서 식사를 하고 프리누행 버스에 올랐다. 대낮인데도 만원이었다. 수영복 차림이 많은 것으로 보아 금방 내릴 것 같더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들이 내린 곳 가운데 하나는 깎아지른 벼랑 위. 그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수건 한 장 크기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삼면이 막혀 호젓하기 짝이 없는.

어릴 때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아내와 단둘이만 지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곳을 보자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 내게 신혼여행지로 어디가 좋겠느냐고 물으면 타소스 섬의 저 이름 없는 해변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프리누에서 카발라로 가는 배는 전날 밤에 보지 못했던 북 에게 해의 푸른 바다와 바위로 된 섬들, 진초록의 소나무, 하얀 집 등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수채화로 그린 듯한 풍경이 눈 앞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타소스를 찾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카사 비앙카와 부겐빌레아



몇 시간을 망망대해 위를 달리다가 깎아지른 수직의 벼랑이 빚어내는 흑색과 적색의 단층, 그 위로 드러나는 하얀색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어느 순간 멈춰버린 듯하여 어떤 신비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곳은 산토리니, 그리스인들이 '테라'라고 부르는 화산섬이었다. 사라져버린 아틀란티스의 일부분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는 그 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사십대의 미국인 부부를 만났다. 남편 되는 이는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오이아 마을에서 붉게 타오른 석양을 즐기다 아내를 처음 만났다며 지금 결혼 7주년을 기념해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글거리는 바다와 함께 하얀 그리스식 가옥이 붉게 물든 모습이 장관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오이아의 석양을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섬에 닿는 것이 그때쯤이고, 그곳에서는 하룻밤밖에 머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가 그렇게도 찬탄해 마지 않던 석양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포도주 빛 바다와 서쪽 하늘에 엷게 드리운 조각구름이 금세 금빛으로 물드는데, 그 사이로 때마침 불을 환하게 밝힌 여객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이아의 것은 저보다 더 황홀하다면 도대체 어떻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산토리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이고, 그들은 오래지 않아 그 남쪽의 크레타 섬의 미노아 왕국으로부터 유럽 최초의 문명을 받아들여 일찍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다 기원전 1450년경 연이어 터진 화산 폭발로 모든 것이 땅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섬 또한 검붉은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전혀 다른 경관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인 기원전 4세기,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에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그 일부가 산토리니라는 주장을 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교대로 수놓인 단층 구조를 하고 있는 이 섬은 바다와 맞닿은 곳에선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이루고 꼭대기에선 카사 비앙카, 즉 하얀 집들이 수평을 그린다. 에게 해의 여러 섬들을 다녔지만 이런 섬은 보지 못했다. 산토리니는 그만큼 특이한 경관을 자랑했다. '에게 해의 진주'란 별명은 그래서 붙은 것이리라.

나는 산토리니 최대 마을 피라에서 얼마간 떨어진 작은 펜션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 방을 배정받았다. 밤의 피라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서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벽과 길바닥은 하얗고, 골목을 향해 나 있는 쇼윈도에는 산토리니의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장신구 등 예쁜 공예품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제우스같은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영웅의 이름을 내건 타베르나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세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차버리는 길을 나귀와 말도 지나다녔다. 그중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카페테리아 자포라 앞에서 바라보니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불빛까지 보이고 그 야경이 이 세상의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체 주민이라야 고작 8천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 마을 하나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품격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임을 말해주는 확실한 물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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