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연인들
박정욱 지음 | 예담
제1부 첫 키스
황금빛 키스의 추억 - 클림트의 연인들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키스>의 원제는 '완성'으로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으로 그려졌다. 하나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벽화로 제작한 그림이다. 유화로 알려져 있는 <키스>의 모든 구상은 본래 벽화를 시초로 발전된 것이다. 사실은 벽화로 그려진 첫 번째 <키스>가 더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데, 과장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키스의 감정이 그 벽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벽화는 '완성'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미완성작이다. 더구나 마주 보고 있는 다른 작품인 <기다림>과 짝을 이루는 반쪽 그림이었다. <완성>은 훗날 두 번째 그림이 나오면서 '키스'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특징짓는 용어로 '호로 바쿠이(horror vacui)'란 말이 있는데, 그림의 배경이 인물과 한 몸을 이룬다는 뜻이다. 인물과 배경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므로 인물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듯 보인다. 배경의 벽과 몸을 감싼 망토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두 연인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인물을 배경 속으로 가져가 지워버리고 화려한 색감의 배경을 강조한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황홀경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황홀경에 접어들면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과 혼동되며,섞이고 자신은 주변의 모든 요소들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이처럼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영혼처럼 주변을 떠도는 해방감이 바로 황홀경의 시작이다.
키스를 통해 사랑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어느덧 감춰져 있던 세상이 열린다. 키스 속에 감춰진 환각적 세상, 그 황홀경을 클림트는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림에서 사용된 많은 원과 나선형, 그리고 눈의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배경의 나선형은 두 그루의 생명수를, 옷 위에 그려진 원형을 눈을, 배경과 옷에 그려진 직접적인 눈의 이미지들은 고대 이집트 벽화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대 벽화의 이미지를 그림 속에 집어넣는 것은 그림에서 표현하는 주제에 무게감을 주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유발한다.
의상을 통해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것 또한 클림트의 대표적인 화법이다. 포옹의 감정을 세밀하고 다양하게 묘사하기 위해 남자가 걸친 망토의 무늬와 그 뒤쪽으로 감춰진 여인의 의상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포옹은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의상의 무늬들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닌 추상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상의 다양하고 추상적인 무늬 덕분에 우리는 두 연인의 포옹이 매우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만약 같은 자세의 두 연인이 벌거벗은 채로 포용하고 있다면 그런 유의 전율적이고 낯선 감상은 전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사실상 미술을 장식적 역할로 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클림트의 작품 가치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약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빈을 중심으로 일어난 장식미술운동을 이끌며 그 속에서 자신의 회화 세계의 정체성을 추구했던 클림트에게 그림의 정의는 장식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장식으로 근저하면 할수록 순수한 추상성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추상에는 장식 이상의 요소인 강한 흡인력이 들어 있는데, 끊임없이 그 그림을 다시 바라보고 몰두하게 만드는 매력은 장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제2부 사랑의 진실, 사랑의 거짓말
전쟁의 시작이 된 연인들 - 파리스와 헬레나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 관한 일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시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건장한 미남 청년이 세 명의 미의 여신 중 한 명을 선택하고 황금 사과를 건네는 이야기, 그리고 파리스가 그리스 스파르타의 소문난 왕비 헬레나를 간음하고 납치하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화가들이 여러 화가들이 그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다비드의 1788년작 <파리스와 헬레나>는 두 사람이 처음 연인으로 맺어지는 밤을 묘사하고 있다. 침실의 배경에는 에렉테이온 신전을 모방한 건축물이 보이는데, 이것은 이곳이 그리스임을 보여준다. 여신의 모습으로 기둥을 만든 건물이므로 헬레나에게 신의 혈통이 흐르고 있음을 암시하기에 적당하다. 악기를 든 파리스는 헬레나의 팔을 잡아끌어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듯하다. 악기에는 세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고르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어 그가 파리스임을 알려준다. 파리스는 벌거벗은 몸에 잠잘 때 쓰는 모자를 쓰고 있다. 반면 헬레나는 아직 옷을 입은 채로 최면에 걸린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자세이다. 이런 의상은 파리스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헬레나가 그의 침실로 들어왔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녀는 한쪽 어깨의 옷자락을 내린 채 파리스를 유혹하려 한다. 두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듯 붉은 커튼으로 가려진 기둥의 부조장식에는 벌거벗은 청년과 옷을 입은 여인이 서로 열정적으로 애무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두 연인의 정사의 결과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부도덕한 이야기는 그림의 소재로 환영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남편을 배신하고 남편에게 선물받은 귀금속과 재산을 모두 챙겨 시녀들과 함께 단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자를 따라간 헬레나에 대한 남편 메넬라오스의 분노는 곧 그리스의 전체의 분노로 화했고, 마침내 파리스와 헬레나의 괘씸한 행적에 대한 복수가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10년 동안의 잔인한 전쟁이 끝난 후 헬레나는 메넬라오스의 다정한 연인이 되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국으로 귀환했고 그후로도 메넬라오스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리스는 트로이를 정복했지만 헬레나는 다시 메넬라오스를 정복했던 것이다. 헬레나는 아름다움이 도덕과는 관계없는 것이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파렴치하고 사악한 여인이었지만 아름다웠으므로 그 모든 단점들을 용서받을 수 있었다. 헬레나는 제우스와 인간인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헬레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제우스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반신반인으로, 이미 피 속에 바람둥이 신에게서 물려받은 부도덕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제우스 신이 가진 매력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남편 메넬라오스가 매번 헬레나 앞에 힘없이 굴복하는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제우스 신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파리스는 그리스의 세 여신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하는 자격을 부여받았던 신화적 인물이다.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네 세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자가 나를 소유하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황금 사과를 주었다. 즉 아름다움은 소유하기 위한 것이다. 세 여신 중에서 파리스가 선택한 것은 성적인 매력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였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성적인 매력에 넘어가게 마련인 약점을 가장 잘 꼬집어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은 결국 헬레나의 성적인 매력을 증명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는 연애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제3부 사랑의 계곡을 지나는 빛과 구름
춤추는 연인들 - 뭉크의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춤이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동시에 옷을 입은 채 이루어지는 가장 짜릿한 육체적 접촉의 순간이다. 춤은 연인들 간의 사회적 거리감을 단숨에 증발시키며 또한 심리적 거리감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흔들어놓는다. 이러 점에서 춤은 파괴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은 언제나 행복한 순간의 대명사처럼 묘사된다. 춤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에 속한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상징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1899년 작 <인생의 춤>은 춤 속에 내포된 모든 심리적 뉘앙스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춤의 자세는 지극히 단조롭다. 그 자세를 바라보는 순간 동작의 단순함으로 인해 모든 감정이 돌연 강렬하게 와닿는다. 핏빛 같은 붉은색으로 소용돌이치는 여인의 옷을 본다. 감춰진 욕망이 밖으로 용암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다. 그녀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상대방 남자는 마치 용암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의 사랑은 마주 잡은 손에서 강렬하게 부각된다. 수척한 여인의 손은 힘없이 밑으로 늘어져 있고, 주먹을 쥔 듯 보이는 남자의 손은 힘으로 가득 차 보여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에 그려진 연인의 손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묶인 두 연인이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구속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사나운 격정과 잔인함과 강렬한 욕구로 두 사람의 얼굴이 얼룩져 있다. 깊어가는 단절의 상처처럼 붉은색 선이 두 연인을 묶어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며 동시에 낯선 방식으로 섞여들게 한다.
당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흔히 이런 식으로 인물들을 배경과 분리시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단절된 선이나 점을 사용한 데 반해, 뭉크는 구불구불한 선의 연속을 통해 인물들을 분리하고 있다. 그의 선은 서로 감정이 통하는 사람들을 묶으며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게 만든다. 뭉크의 선에는 대화와 소통의 열망이 배어 있다.
이 그림에 나타난 각기 다른 인물들의 자세는 춤이 가진 묘한 뉘앙스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인을 겁탈하려는 듯 감싸고 휘도는 무서운 얼굴의 남자는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추악한 욕구를 그대로 발가벗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화폭의 양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두 연인은 파수꾼처럼 춤추는 연인들을 지키고 서 있다. 그들의 흰 옷과 검은 옷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행복과 불행 등 대조적인 인생의 두 가치를 상징한다. 상징적인 두 여인과 연인의 춤으로 집약된 인생의 우여곡절은 과연 그림의 제목답게 '인생의 춤'이라 할 만하다.
제4부 이별하는 연인들
풀어진 손의 비애 - 안드로마크와 헥토르남편 헥토르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안드로마크를 그린 다비드의 그림에는 사랑의 잔인함이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은 사랑의 꿈이 깨지고 사랑의 비극에 눈뜬 여인의 모습, 즉 여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안드로마크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다비드 이전에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라신에 의해 고전주의 비극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되었다. 기품 있는 비극이었으므로 다비드의 그림은 그런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엄격하게 절제된 무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림 속 안드로마크의 하늘을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은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신에게 자신의 슬픔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손을 펴서 헥토르의 시신을 가리키고 있는 연극적인 자세에서 더욱 간절한 호소가 엿보인다. 그녀의 무릎에는 어린 아들이 매달려 어머니와 함께 슬퍼하고 있다. 죽은 남편으로 인해 이제 아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안드로마크는 아들 아스티아낙스와 함께 에페이로스 왕국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에페이로스는 그리스인들과 연합하여 트로이와 전쟁을 벌인 왕국으로, 트로이의 수장이었던 헥토르는 에페이로스의 왕 아킬레우스에 의해 전장에서 주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안드로마크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헥토르의 시신과 함께 에페이로스로 잡혀왔는데, 그리스인들은 헥토르의 아들인 아스티아낙스를 죽이고자 에페이로스 왕국으로 보냈는데, 헥토르와 싸우다 전장에서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페이로스의 왕이 된 푸로스가 안드로마크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푸로스는 약혼녀 헤르미온이 있었지만 자신과 결혼하면 아들을 에페이로스로 보내지 않겠다며 안드로마크를 위협했고, 결국 그녀는 푸로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한편 헤르미온은 안드로마크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 오래 전부터 자신을 사랑해온 아리오스트에게 안드로마크의 아들을 납치해 에페이로스의 왕 푸로스와 안드로마크가 결혼하는 날 푸로스를 살해하면 그와 함께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모든 일은 그녀의 뜻대로 진행되었는데, 이 그림은 이처럼 가장 극적인 운명의 장난에 빠진 안드로마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헥토르와 안드로마크의 사랑이 가장 애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림의 중앙에 묘사된 두 사람의 손이다. 서로 마주 잡았다가 놓친 듯 보이는 두 손은 두 사람의 끊어진 인연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두 사람이 지극히 다정한 연인 사이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어린 아들의 손에도 슬픔이 잔뜩 묻어 있다. 이 모든 비극적 분위기는 균형 잡힌 구도 안에서 은밀하지만 매우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비드가 일상생활을 얼마나 고전적 취향으로 격상시키며 기품 있게 표현했는지, 또 이 그림에 그려진 풀어진 두 손이 얼마나 기품 있는 슬픔을 표현했는지는 그가 그린 또 다른 그림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과 비교해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에서도 두 연인의 감정은 손의 묘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자세와 글을 쓰고 있는 남편의 손 옆에 다정하게 손을 가져가는 부인의 모습은 다정하고 사랑에 찬 부부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화학자였던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의 왼손은 아무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의 자상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 또한 남편의 검은색 옷은 부인의 흰색 드레스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고, 아내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눈길과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흠모하는 눈길은 둘의 관계가 매우 품위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들 부부의 초상은 평범하지만 한번 보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제5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의 추억
편지 읽는 여인들 -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네덜란드의 화가 얀 베르메르의 여인들은 모두 한쪽 창에서 어렴풋이 들어오는 빛에 희망을 걸고 산다. 빛은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세계에 대한 설렘을 방 안으로 가져다주지만 여인은 자신의 연인을 기다리며 그 안에 갇혀 있다. 베르메르의 여인들은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자유를 그리워하다 하녀가 들고 온 연인의 편지를 들고 이내 창가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 못 박힌 듯 서서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그녀의 영혼을 자유의 세계로 데려가는 그 편지는 곁에 없는 연인의 또 다른 실존이다. 편지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연인의 애무를 받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 자체로 매우 에로틱하다.
편지를 읽거나 쓰는 여인, 음악을 연주하는 여인과 그의 연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다. <편지 읽는 여인>, <편지를 쓰는 연인>, <기타 연주자>, <피아노 앞의 연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음악과 편지의 테마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도 종종 그려지던 소재였다.
연인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배경의 상세한 묘사 역시 베르메르 그림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베르메르는 특히 정밀한 배경 묘사뿐만 아니라 인물 묘사에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탁월한 화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베르메르의 작품들에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몽상적이며 모호한 것은 그림에 암시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지도는 그림의 주제를 보충하며, 어떤 사연을 암시하고, 악기와 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사랑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기 위해서다. 이런 암시 기법은 후에 도덕적 암시, 즉 사랑의 위험에 대한 경고로 발전했다. 이것은 베르메르가 인물과 소재, 배경 등의 간격과 상호 연관성을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여 구성했음을 보여주며, 그의 그림은 바로 이런 치밀한 구성에서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베르메르는 그 속에서 연인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틀을 그림 안에 반복해서 집어넣고 있다. 예를 들면 90도 꺾인 선의 반복과 전체 그림의 정확한 대각선 분할 구도, 수직 또는 수평적 대조, 대칭성 등을 들 수 있다. 의자나 테이블, 열린 문, 창문, 그림 등은 모두 90도로 꺾인 선과 함께 사각의 틀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형식미와 엄격한 짜임새를 중요시하는 화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이것은 실내에 갇힌 여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이며, 외부를 향한 강한 동경을 증폭시켜 여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품고 있는 연정을 더욱 감동적으로 느끼게끔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