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연인들
박정욱 지음 | 예담
춤이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동시에 옷을 입은 채 이루어지는 가장 짜릿한 육체적 접촉의 순간이다. 춤은 연인들 간의 사회적 거리감을 단숨에 증발시키며 또한 심리적 거리감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흔들어놓는다. 이러 점에서 춤은 파괴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은 언제나 행복한 순간의 대명사처럼 묘사된다. 춤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에 속한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상징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1899년 작 <인생의 춤>은 춤 속에 내포된 모든 심리적 뉘앙스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춤의 자세는 지극히 단조롭다. 그 자세를 바라보는 순간 동작의 단순함으로 인해 모든 감정이 돌연 강렬하게 와닿는다. 핏빛 같은 붉은색으로 소용돌이치는 여인의 옷을 본다. 감춰진 욕망이 밖으로 용암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다. 그녀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상대방 남자는 마치 용암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둘의 사랑은 마주 잡은 손에서 강렬하게 부각된다. 수척한 여인의 손은 힘없이 밑으로 늘어져 있고, 주먹을 쥔 듯 보이는 남자의 손은 힘으로 가득 차 보여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에 그려진 연인의 손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묶인 두 연인이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구속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연인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사나운 격정과 잔인함과 강렬한 욕구로 두 사람의 얼굴이 얼룩져 있다. 깊어가는 단절의 상처처럼 붉은색 선이 두 연인을 묶어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며 동시에 낯선 방식으로 섞여들게 한다.
당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흔히 이런 식으로 인물들을 배경과 분리시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단절된 선이나 점을 사용한 데 반해, 뭉크는 구불구불한 선의 연속을 통해 인물들을 분리하고 있다. 그의 선은 서로 감정이 통하는 사람들을 묶으며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게 만든다. 뭉크의 선에는 대화와 소통의 열망이 배어 있다.
이 그림에 나타난 각기 다른 인물들의 자세는 춤이 가진 묘한 뉘앙스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인을 겁탈하려는 듯 감싸고 휘도는 무서운 얼굴의 남자는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추악한 욕구를 그대로 발가벗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화폭의 양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두 연인은 파수꾼처럼 춤추는 연인들을 지키고 서 있다. 그들의 흰 옷과 검은 옷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행복과 불행 등 대조적인 인생의 두 가치를 상징한다. 상징적인 두 여인과 연인의 춤으로 집약된 인생의 우여곡절은 과연 그림의 제목답게 '인생의 춤'이라 할 만하다.남편 헥토르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안드로마크를 그린 다비드의 그림에는 사랑의 잔인함이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은 사랑의 꿈이 깨지고 사랑의 비극에 눈뜬 여인의 모습, 즉 여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안드로마크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다비드 이전에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라신에 의해 고전주의 비극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되었다. 기품 있는 비극이었으므로 다비드의 그림은 그런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엄격하게 절제된 무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림 속 안드로마크의 하늘을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은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신에게 자신의 슬픔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손을 펴서 헥토르의 시신을 가리키고 있는 연극적인 자세에서 더욱 간절한 호소가 엿보인다. 그녀의 무릎에는 어린 아들이 매달려 어머니와 함께 슬퍼하고 있다. 죽은 남편으로 인해 이제 아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안드로마크는 아들 아스티아낙스와 함께 에페이로스 왕국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에페이로스는 그리스인들과 연합하여 트로이와 전쟁을 벌인 왕국으로, 트로이의 수장이었던 헥토르는 에페이로스의 왕 아킬레우스에 의해 전장에서 주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안드로마크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헥토르의 시신과 함께 에페이로스로 잡혀왔는데, 그리스인들은 헥토르의 아들인 아스티아낙스를 죽이고자 에페이로스 왕국으로 보냈는데, 헥토르와 싸우다 전장에서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페이로스의 왕이 된 푸로스가 안드로마크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푸로스는 약혼녀 헤르미온이 있었지만 자신과 결혼하면 아들을 에페이로스로 보내지 않겠다며 안드로마크를 위협했고, 결국 그녀는 푸로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한편 헤르미온은 안드로마크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 오래 전부터 자신을 사랑해온 아리오스트에게 안드로마크의 아들을 납치해 에페이로스의 왕 푸로스와 안드로마크가 결혼하는 날 푸로스를 살해하면 그와 함께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모든 일은 그녀의 뜻대로 진행되었는데, 이 그림은 이처럼 가장 극적인 운명의 장난에 빠진 안드로마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헥토르와 안드로마크의 사랑이 가장 애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림의 중앙에 묘사된 두 사람의 손이다. 서로 마주 잡았다가 놓친 듯 보이는 두 손은 두 사람의 끊어진 인연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두 사람이 지극히 다정한 연인 사이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어린 아들의 손에도 슬픔이 잔뜩 묻어 있다. 이 모든 비극적 분위기는 균형 잡힌 구도 안에서 은밀하지만 매우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비드가 일상생활을 얼마나 고전적 취향으로 격상시키며 기품 있게 표현했는지, 또 이 그림에 그려진 풀어진 두 손이 얼마나 기품 있는 슬픔을 표현했는지는 그가 그린 또 다른 그림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과 비교해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에서도 두 연인의 감정은 손의 묘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자세와 글을 쓰고 있는 남편의 손 옆에 다정하게 손을 가져가는 부인의 모습은 다정하고 사랑에 찬 부부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화학자였던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의 왼손은 아무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의 자상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 또한 남편의 검은색 옷은 부인의 흰색 드레스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고, 아내의 사랑스럽고 천진한 눈길과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흠모하는 눈길은 둘의 관계가 매우 품위 있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들 부부의 초상은 평범하지만 한번 보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네덜란드의 화가 얀 베르메르의 여인들은 모두 한쪽 창에서 어렴풋이 들어오는 빛에 희망을 걸고 산다. 빛은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세계에 대한 설렘을 방 안으로 가져다주지만 여인은 자신의 연인을 기다리며 그 안에 갇혀 있다. 베르메르의 여인들은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자유를 그리워하다 하녀가 들고 온 연인의 편지를 들고 이내 창가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 못 박힌 듯 서서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그녀의 영혼을 자유의 세계로 데려가는 그 편지는 곁에 없는 연인의 또 다른 실존이다. 편지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연인의 애무를 받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 자체로 매우 에로틱하다.
편지를 읽거나 쓰는 여인, 음악을 연주하는 여인과 그의 연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다. <편지 읽는 여인>, <편지를 쓰는 연인>, <기타 연주자>, <피아노 앞의 연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음악과 편지의 테마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도 종종 그려지던 소재였다.
연인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배경의 상세한 묘사 역시 베르메르 그림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베르메르는 특히 정밀한 배경 묘사뿐만 아니라 인물 묘사에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탁월한 화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베르메르의 작품들에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몽상적이며 모호한 것은 그림에 암시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지도는 그림의 주제를 보충하며, 어떤 사연을 암시하고, 악기와 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사랑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기 위해서다. 이런 암시 기법은 후에 도덕적 암시, 즉 사랑의 위험에 대한 경고로 발전했다. 이것은 베르메르가 인물과 소재, 배경 등의 간격과 상호 연관성을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여 구성했음을 보여주며, 그의 그림은 바로 이런 치밀한 구성에서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베르메르는 그 속에서 연인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으로 기하학적 틀을 그림 안에 반복해서 집어넣고 있다. 예를 들면 90도 꺾인 선의 반복과 전체 그림의 정확한 대각선 분할 구도, 수직 또는 수평적 대조, 대칭성 등을 들 수 있다. 의자나 테이블, 열린 문, 창문, 그림 등은 모두 90도로 꺾인 선과 함께 사각의 틀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형식미와 엄격한 짜임새를 중요시하는 화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이것은 실내에 갇힌 여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이며, 외부를 향한 강한 동경을 증폭시켜 여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품고 있는 연정을 더욱 감동적으로 느끼게끔 유도한다.
베르메르는 생존 당시 네덜란드에서 잘 알려진 화가였지만 대가로는 인정받지 못했다가 반 고흐 외에 몇몇 인상파 화가들이 비로소 베르메르의 그림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마르셀 프루스트, 폴 클로델 같은 저명한 프랑스 작가들에게 그의 그림이 깊은 영향을 끼치면서 점점 대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 1632년 네덜란드 남부 로테르담 근처의 작은 운하 도시 델프트에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또 다른 델프트의 화가 파브리티우스의 밑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과 목판화 등의 미술 작품을 거래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1672년부터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재정고를 겪었고, 결국 아내와 열한 명의 자식들에게 빚만 남긴 채 1675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실외 풍경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두 작품 <델프트의 풍경>과 <골목길>을 제외하고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모두 왼쪽에 창이 나 있는 실내의 작은 구석과 벽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실내에 갇힌 여인들을 그리고 있다. 베르메르에게 사랑은 일종의 감옥처럼 보인다. 항구의 여인들은 연인을 따라 떠날 수가 없다. 여인들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사랑은 지독한 감옥이다. 연인이 돌아올 그 장소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조차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다.햇살 가득한 날 오후, 그대의 얼굴 - 마네와 모리조화가가 연인을 그릴 때 그중 한 명은 반드시 화가가 아는 사람일지 모른다. 비록 얼굴 모습이 다르더라도 화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 사람의 얼굴에 투영시킨다. 아무도 모르지만 화가만 알고 있는 비밀이 두 연인의 감정 속에 숨쉬고 있는 것이다.
1874년 살롱전에 출품된 마네의 그림 <아르장테유>는 모네와 함께 아르장테유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인상파 화가들의 여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의 남자는 마네의 처남인 조각가 루돌프 린호프이며, 그림 속의 여인은 직업 모델이다. 그러나 마네는 그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 두 인물을 모델로 하여 센 강에 보트를 타러 나온 다정한 한 쌍의 연인을 그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강변의 풍경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특별한 구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소박함,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인 깊이 없이 단순히 표면에 머무는 그림이 주는 쉬운 감상, 햇살이 일으키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감성 등이 이 그림을 특징짓는 요소들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의 중심이 되는 연인들도 이런 소박한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네의 특기는 아름다움의 전형을 평범한 얼굴에서 찾는 데 있다. 바로크나 로코코 시대의 연인들은 지나치게 신화적이다. 그러나 아르장테유의 연인들의 얼굴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연인들 또는 여인들은 결코 젊거나 예쁘지 않다. 오히려 낭만적인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의 연인들이며, 가끔 뚱뚱하고 나이든 아줌마 티가 배어나오는 여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 과감히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들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어쩌면 그 따뜻한 마음에서 진정한 20세기의 시작이 싹트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그림 속에서 인간을 초월한 이상의 가치를 찾는 귀족들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이상적인 사랑은 똑같은 고통 속에 있는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 신분과 나이가 모든 것을 초월해 공감에 이르는 그런 사랑이다.
그런데 과연 실제의 삶에서 마네는 어떤 사랑을 했을까?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당시 마네는 베르트 모리조(1841∼1895)와의 사랑의 추억 속에 빠져 있었다. 모리조는 인상파 화가들 중 유일한 여성 화가로 마네의 모델이 되면서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이다. 또한 아직도 아틀리에에서 모델과 컴컴한 실내만 바라보며 아카데믹한 그림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마네에게 야외의 햇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야외에서 전개되는 풍경들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 속삭여주었던 여인이었다. 모리조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네는 야외에 나가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네와 모리조의 연정은 깊어갔지만 정작 모리조는 마네와 결혼하지 않고 그의 동생인 외젠과 결혼했다. 헤어지는 것보다 가족으로 마네 옆에 남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르장테유에 와서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네덜란드에서 그린 그림이 큰 성공을 거둔 뒤였으므로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때마침 모네와 함께 작업하며 야외 작업에 대해 진지한 실험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가 아르장테유의 센 강변을 거닐며 물과 빛의 황홀한 결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때 그의 머리를 스쳐가는 것은 모리조와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모델에게 꽃을 선사하고 파라솔을 들어주고 있는 그의 사촌을 보았을 때 마네는 자신의 모델이었던 모리조와의 추억이 생각났고, 그들을 그림에 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들 연인의 그림자 속에 자신과 모리조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모리조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그녀 역시 센 강변을 산책 나온 평범한 연인들로만 생각하고 말지 모른다. 사랑은 비밀 속에 있을 때 더욱 강하고 비밀 속에서만 깊은 숨을 쉬는 법이다. 사랑은 비밀의 행복이다.제3부 사랑의 계곡을 지나는 빛과 구름
춤추는 연인들 - 뭉크의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제4부 이별하는 연인들
풀어진 손의 비애 - 안드로마크와 헥토르제5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의 추억
편지 읽는 여인들 -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키스>의 원제는 '완성'으로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으로 그려졌다. 하나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벽화로 제작한 그림이다. 유화로 알려져 있는 <키스>의 모든 구상은 본래 벽화를 시초로 발전된 것이다. 사실은 벽화로 그려진 첫 번째 <키스>가 더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데, 과장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키스의 감정이 그 벽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벽화는 '완성'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미완성작이다. 더구나 마주 보고 있는 다른 작품인 <기다림>과 짝을 이루는 반쪽 그림이었다. <완성>은 훗날 두 번째 그림이 나오면서 '키스'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특징짓는 용어로 '호로 바쿠이(horror vacui)'란 말이 있는데, 그림의 배경이 인물과 한 몸을 이룬다는 뜻이다. 인물과 배경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므로 인물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