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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1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2003년 11월/328쪽/12,000원



에셔(Maurits C. Escher,1898~1972); 네덜란드의 판화가.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 세계로 유명하다. 그는 교묘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상한 고리(뫼비우스의 띠)’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다룬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에서 에셔의 ‘이상한 고리’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을 함께 묶어 ‘영원한 황금실’이라 불렀다.

글머리에 - 별밭을 우러르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두 발로 설 수 있게 만든 건, 별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자주 별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우리와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말이다. 별을 보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달랐을 것이다. 북극성은 1,000광년 떨어져 있고 어쩌구 하는 실없는 얘길랑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하찮은 문제보다 별들이 그려내는 갖가지 모습에 매혹되기를 더 좋아했다. 그들의 눈앞에선 몇 개의 별들이 모여 아름다운 왕비 카시오페이아가 되고, 용맹한 장수 오리온이 되고, 무시무시한 전갈이 되었다. 넓은 밤하늘에는 무한한 상상이 펼쳐지고, 기나긴 겨울밤은 별자리들에 얽힌 사연과 함께 깊어갔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태도로 자연과 세계를 대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믿었고, 그 생명들과 언제든지 교감할 수 있었다. 무정한 밤하늘에서조차 그들은 별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고, 별들이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을 들었다. 상상해보라. 시시각각 움직이는 밤하늘의 거대한 형상들, 별자리의 인물들이 펼치는 극적인 이야기들, 울려퍼지는 교향곡을……. 언제부턴가 우리는 불행하게도 세계를 이렇게 느끼길 그만두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을까? 물론 그럴 순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삶의 한구석엔 고대인들의 심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선 아직도 그들처럼 세계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바로 예술의 세계다.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서 자란다/나는 죽어서/나무 위에/조각달로 뜬다. …… 저 먼 우주의 어느 곳엔가/나의 병을 앓고 있는 별이 있다.”



원시 예술 - 가상과 현실

예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왜 원시인들은 어두운 동굴 속 깊은 곳에 그림을 남겼을까?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끔찍한 살인 사건의 비밀을 캐야 한다. 여기서 가상과 현실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유년기 인류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함께 원시 예술의 비밀이 드러난다. 그 시절, 예술은 곧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 뒤 사람들이 점차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게 되자, 마법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이제 예술은 마법이기를 그치고 다른 게 되어야 한다.

벌거벗은 눈

19세기 말에 구석기인들의 동굴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그림이 위작(僞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1만 5,000년 전 구석기 시대의 미개인들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히 묘사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뒤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도 놀라운 사실성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발견되었다. 덕분에 이 그림들은 위작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예술이 탄생하자마자 이처럼 단번에 생생한 자연주의적 묘사 수준에 도달했다는 건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뒷날의 ‘개화’된 인간들도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천 년에 걸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지 않았던가. 유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 J. Gombrich, 1909~2001)에 따르면,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리는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시지각(視知覺) 자체가 벌써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린이의 그림에서 벌써 우리는 시지각에 미치는 이런 개념적 사유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어린이는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작게 그리거나 과감하게 빼버린다. 그들은 ’아는 대로‘ 그리는 셈이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까지 발달하진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개념적 사유로 무장하지 못한 이 ’벌거벗은 눈‘이야말로 그들의 놀라운 자연주의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구석기인의 ’높은‘ 수준의 자연주의가 그들의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설명된다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농경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농경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도의 추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농경은 인간이 이미 변화무쌍한 현상들 속에서 어떤 ’운행 질서‘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이미 변덕스럽고 혼란스런 자연 현상에 사계절이라는 ’도식‘으로 질서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 인간들은 외부세계를 파악하고 정복하기 위해 점점 더 추상적인 사유에 의존한다. 바로 이 추상적․개념적 사유가 신석기 시대의 추상적․기하학적 양식을 설명해준다. 추상적․기하학적 사유는 곧 자연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므로, 그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더욱더 두터워졌다. 그럴수록 그들은 구석기인들이 가졌던 ’벌거벗은 눈‘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눈은 점점 더 개념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럴수록 사물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되었다. 선사 시대부터 우리는 벌써 두 가지 대립되는 재현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자연주의적 양식과 신석기 시대의 기하학적 양식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미개 부족들은 신석기 단계에 있기에 대부분 추상적․기하학적 양식을 보여주는 데 반하여, 아직 구석기 단계에 있는 부시맨에게선 자연주의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이 두 양식의 대립은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하게 되는데, 이 대립이 인류 최초의 문명 세계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되풀이된다.

유희, 노동, 주술

유희 : ‘유희 기원설’이라 할 수 있는 가설에 따르면, 벽화나 집단무(集團舞) 같은 원시 예술은 ‘남아도는 에너지의 방출 통로’다. 말하자면 근질거리는 몸을 풀기 위한 한가한 소일거리라는 얘기다. 예술은 결국 여기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과연 구석기인의 생활이 남아도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안달할 정도로 편안했을까? 자연의 횡포 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이들의 삶이?

노동 : 여기서 다른 가설이 나온다. 예술은 노동에서 비롯되었다. 가령 수렵무나 전쟁무를 보자. 그 춤은 당연히 수렵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한 거다. 또 원시인들의 음악을 보자. 그건 노동 과정에 뒤따르는 노동요로,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한 거다. 회화를 보라, 회화는 원래 의사 소통을 위한 신호에서 나온 거다. 수렵 단계의 구석기 벽화에는 사냥감이 되는 동물만 나타난다.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는 신석기 벽화에는 동물 대신에 나무나 농작물, 해와 달처럼 농경과 관계 깊은 자연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예술은 유희가 아니라 노동에서 비롯된 게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설명도 아직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왜 원시인들은 그 힘겨운 삶 속에서도 예술을 해야만 했을까? 벽화를 그리거나 수렵무를 춘다고 짐승이 더 잡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주술 : 동굴 벽화엔 대개 창이나 도끼로 가격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들은 왜 애써 그린 그림을 거리낌없이 훼손했을까? 그건 그림 속의 들소를 죽임으로써 살아 있는 들소를 잡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술이라는 쓸모없는 짓거리에 귀중한 시간과 정열을 투자한 것은,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벽화나 수렵무 속의 ‘가상’이 그들에게는 곧바로 ‘현실’이었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수우족의 한 인디언은 어느 탐험가가 들소를 스케치하는 걸 보고 이렇게 불평했다. “저 사람이 들소를 여러 마리 자기 책 속에 넣어 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들소를 구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가령 그림을 그린다고 들소의 수가 늘거나, 수렵무를 춘다고 들소가 더 잘 잡힐 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 왜?

그들은 알지 못한다 : 놀랍게도 주술이 실제로 효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동굴 벽화는 원시인들이 경험에서 얻은 동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구석기 벽화가 그토록 뛰어난 사실성을 보여주는 건 아마도 동물을 쫓는 예리한 ‘사냥꾼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동물의 동작과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 가령 급소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들은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이었다. 부정확한 묘사는 곧 잘못된 지식을 의미하고, 사냥을 망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동물의 신체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묘사해야 했을 거다.

그들이 춤을 추는 것은 물론 더 많은 동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춤의 실제 기능은 다른 데 있다. 이 춤을 통해 그들은 사냥의 절차와 테크닉을 반복 학습할 수 있었다. 또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극의 구조는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격렬한 동작은 사냥에 필요한 신체 단련을 대신해주었다. 이렇게 보면 당시 그들의 주요한 경제 활동이었던 수렵에 필요한 모든 지식, 모든 정신적․신체적 준비와 훈련이 바로 이 예술 형태 속에 집약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예술이 주술이고, 주술이 예술이었다. 둘 사이엔 아무런 구별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지식 체계이자 정보 저장과 전달의 수단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고달픈 삶 속에서도 예술 활동을 계속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고대 예술과 미학 - 가상의 탄생

인간들의 삶 속에서 저렇게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면, 드디어 문명이란 것이 시작된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최초의 문명 세계와 만나게 된다. 먼저 이집트 예술에 대해 알아보고, 그 다음 그리스 예술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원시 예술에서 보았던 두 가지 양식의 대립이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어서 최초의 미학자들이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예술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가상’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상’에 대해서 두 사람은 생각이 서로 달랐다.

오시리스의 땅

거꾸로 흐르는 땅 : 그러니까 약 3,000년 전 일이다. 이집트인들이 메소포타미아에 당도했을 때 크게 놀랐다고 한다. 강물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이라곤 나일 강만 보고 살아왔던 그들에게, 강이라면 마땅히 남에서 북으로 흘러야 했다. 근데 이 강은 뻔뻔스럽게도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잖은가! 하류에서 상류로 흐르는 이 괴상한 강에 깊은 인상을 받은 투탕카멘 1세는 친히 비석에 이런 글귀를 새겨, 유년기 인류의 미숙함을 영원히 기념하게 된다. “유프라테스 강은 물의 흐름을 일변하여 거꾸로 상류로 향한다.”

세계 최초로 기하학을 만든 이집트인들의 추상 능력에도 이런 한계가 있었다. 이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바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통해 우리는 추상적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다양한 사물들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 ‘개념’을 만들고, 다양한 현상들 사이에 되풀이되는 안정적 연관은 찾아내 ‘법칙’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영원을 향하여 : 이집트 예술은 그리스 예술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집트의 벽화나 회화에 그려진 인물은 대개 머리는 옆을 향하고, 상체는 앞을 향하며, 다시 발은 옆을 향한다. 이런 특이한 묘사 방식에 학자들은 ‘정면성의 원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원리가 노리는 건 뭘까? 사물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측면에서 묘사하여, 되도록 사물의 형태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었나 보다. 그들은 사물을 묘사할 때, 그들이 이미 여러 각도에서 보았던 시각적 정보를 분석하여 그 사물의 본질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하나의 그림 안에 시각적 종합을 제시했다.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인물의 동작이나 자세는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인물의 모습을 제시하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예술은 하나의 시각적 추상인 셈이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영감에서 테크네로 : 우리는 예술을 정서나 감수성 따위와 관련 짓지만,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합리적 제작 규칙을 가진 모든 활동, 즉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 학문까지도 예술(테크네)로 간주했다. 한편 시는 음악과 무용, 연극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 시는 ‘영감’ 또는 ‘광기’의 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시인들은 예언자(무당)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리스인들이 시인의 광기를 멸시한 건 아니다. 광기는 오히려 어떤 신적인 ‘예언 능력’이었고, 이 신비한 능력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멸시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을 거다.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써서, 시에도 합리적인 제작 규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비로소 시는 어두운 마술의 세계에서 벗어나 테크네가 될 수 있었다.

제의에서 비극의 탄생 : 아리스토텔레스가 옳다면, 비극의 기원은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불리던 합창가다. 지휘자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대화가 점차 발전해서 극적인 대화가 된 거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 기원전 525?~456)는 배우의 수를 둘로 늘리고 코러스를 줄여 대화가 극의 중심이 되게 했고, 이어서 소포클레스(Sophocles, 기원전 496~406)는 배우의 수를 셋으로 늘리고 무대 배경을 도입했다 한다. 과거 합창가 속의 신화적 사건들은 참가자들에 의해 현실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에 이르면 이미 디오니소스 숭배와의 연결고리는 끊긴다. 말하자면 제의가 예술이 된 거다. 비극은 이제 제의 기능을 위해 신화를 정확히 재현할 필요성에서 해방되고, 더욱더 무대의 요구에, 말하자면 예술적 창조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올림푸스 산꼭대기의 맑은 햇살, 이 축복받은 땅에 살았던 그리스인들이 도대체 왜 비극을 만들어냈을까? 신의 동반자로서 그 어느 민족보다 자유롭게 살았던 그들에게 왜 그토록 우울한 기억이 필요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1844~1900)는 이 의문을 추적한다. 빙켈만은 그리스 예술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특징지었다. 니체는 그리스 예술의 이런 특징에 ‘아폴론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예컨대 그리스의 조형예술은 밝고 명랑한 아폴론 정신의 산물이다. 하지만 비극은? 비극의 우울한 그림자까지도 이 명랑한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 예술을 지탱해준 또 하나의 힘을 찾아낸다. 그게 바로 저 깊은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광포한 힘, 바로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다. 조형예술의 맑고 투명한 정신인 아폴론과 깊고 어두운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정신 디오니소스! 그리스 예술, 아니 인류의 모든 예술이 서로 대립하는 이 두 가지 충동으로 말미암아 발전했다.



중세예술과 미학 - 가상을 넘어

여기선 중세의 미학을 소개한다. 먼저 플로티노스가 등장한다. 그는 고대에 살았고 고대인이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중세에 더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미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기독교적으로 해석된 플라톤주의가 몇 백 년 동안 중세 미학의 골격이 된다. 중세가 저물어갈 무렵 토마스 아퀴나스가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즐겨 읽었던 그의 미학은 중세 초의 미학보다 훨씬 더 경험적인 양상을 보인다. 중세 예술의 특징은 감각세계의 ‘가상’을 포기하고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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