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이야기
다치바나 미노리 지음 | 뿌리와이파리
1. 인류 최초로 토마토를 먹은 사람들
콜럼버스는 정말 토마토를 만난 것일까?토마토의 원산지는 남미의 페루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페루의 들판에서는 토마토 야생종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남미 원주민인 인디헤나가 야생 토마토를 언제쯤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16세기의 아스텍 왕국(지금의 멕시코)에서는 토마토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옥수수 가루로 만든 토르티아(멕시코식 옥수수 빈대떡)와 함께 토마토를 일상적으로 먹었다는 것은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정복자, 즉 콩키스타도르(16세기 초의 스페인 모험가들.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에 남아 있다. 구대륙(유럽) 사람들에게 토마토는 감자, 옥수수, 고추 등과 더불어 '신대륙 발견'이 가져온 '새로운 식료품'이었다. 그렇다면 정복자들의 선구자였던 콜럼버스는 과연 토마토를 만났을까? 일설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2차 항해 때나 제4차 항해 때 토마토를 스페인으로 가져왔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콜럼버스가 우연하게나마 토마토를 보았다는 확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콜럼버스는 토마토에는 관심이 없었다. 콜럼버스가 주로 찾아 헤맨 것은 무엇보다도 황금이었고, 당시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인들은 황금의 고향을 찾아 속속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위대한 3대 문명인 멕시코의 마야 문명과 아스텍 문명, 그리고 페루의 잉카 문명을 접하게 된다. 코르테스(Herman Cortes)는 이들 모험가 중 멕시코의 아스텍 왕국을 정복하여 일약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토마토와의 첫 만남 - "첫인상이 좋지 않다."아스텍 문명은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정확하게 따져보면 몇 가지 그림 문자는 사용하고 있었다.) 문자로 된 것이라곤 정복자인 스페인인들의 손으로 기록된 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토마토에 관해 기록된 문헌도 이러한 보고서나 편지 형태로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 즉 문헌상으로만 보면, 가장 빨리 토마토를 만난 유럽인은 코르테스 일행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이들 문헌에 씌어진 '토마토'가 과연 우리들이 지금 먹고 있는 토마토와 같은 것인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마토라는 말의 어원이 된 것은 인디헤나 사람들의 언어인 나우아틀어의 '토마틀'(tomatl)이며 이것은 '불룩한 열매'란 뜻이다. 그런데 이 토마틀이란 말은 붉은 토마토와 식용 꽈리 양쪽에 모두 쓰였다. 따라서 '토마틀'이라는 말이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토마토라고 부르고 있는 불룩한 빨간 토마토를 그대로 지칭했던 것은 아니다.
껍질이 벗겨진, 배꼽이 있는 열매스페인인들이 남긴 고문서 가운데서도 수도사인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이 1547년부터 1569년에 걸쳐 기술한『신스페인 풍물의 역사』는 신뢰도가 매우 높다. 그 책의 제3권에는 "사자(死者)의 혼이 가는 또 하나의 '지상 낙원'은 즐겁고 먹을 것이 넘쳐흐른다. 푸른(어린) 옥수수, 호박, 푸른 고추, 피, 시토마테(xitomate, xitomatl이라고도 표기), 푸른 콩, 꽃 등이 끊이질 않는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토마테'란 현대의 '히토마테', 즉 '붉은 토마토'를 뜻하는 옛 나우아틀어다. 나우아틀어에서 'ji'(히)라는 것은 '껍질이 벗겨졌다'는 뜻이나 'xi'(시)는 '껍질이 벗겨졌다'는 뜻 외에 '둥글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즉 '껍질이 붙어 있지 않은 둥근 토마틀'이라는 뜻이 된다. 애초부터 껍질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꽈리는 아니다. 'xi'에는 '화산의 분화구'란 의미도 있다. 또한 'xi'는 'xill'(열매의 꼭지가 달린 부분, 배꼽을 의미한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배꼽이 있는 열매'가 아닐까라는 설도 있다. 과연 토마토의 꼭지를 따면 음푹 들어가 있어 배꼽처럼 보인다. 게다가 '토마틀'의 'toma'는 '열매의 집합체'를 의미하여, 'tl'은 '물'(水)을 나타내므로 '수분이 많은 열매'를 뜻하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토마틀'을 기본으로 해서 '시토마테'라는 말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원래 인디헤나 사람들에게 '토마테'란 녹색 토마토, 즉 식용 꽈리를 뜻하며, 이것은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따라서 식용 꽈리의 '껍질을 벗긴', 반들반들한 붉은 토마토는 식용 꽈리가 있고 난 뒤부터 먹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시토마테'야말로 붉은 토마토인 것이다. 필시 야생종 토마토거나 인위적으로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가장 오래된 토마토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토마토의 선조라 해도 좋다.
인도양을 건너 아시아로인도양에 진출한 포르투갈은 1511년 말라카를 점령하고, 1513년에는 마카오에 도착했다. 마카오를 식민지로 삼은 것은 1557년이다. 한편 스페인은 마젤란이 태평양을 횡단하여 1521년에 필리핀에 도착했고, 1571년 마닐라에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이윽고 멕시코의 아카풀코와 마닐라 사이에는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고, 스페인은 태평양을 경유하여 아시아와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카풀코와 마닐라 사이의 정기 항로가 개설되었다는 것은, 토마토를 늘 먹었던 멕시코에서 태평양 주변을 잇는 직항편이 빈번하게 일본 근해에 출몰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토마토가 1668년 이전에 일본에 전래되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17세기 중엽 동남아시아와 일본 사이에 긴밀한 무역 루트가 연결되어 있었으며, 쇄국령이 공포된 이후에도 류큐나 규슈의 다이묘 사이에 밀무역이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해볼 때, 토마토가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일본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을까? 중국 자료를 바탕으로 토마토의 전파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에 토마토가 전래된 것은 명나라 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서적에 토마토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명나라의 승정제 때 저술된 『군방보(群芳譜)』로, 여기에는 '번시(蕃 )'라고 씌어 있다.『군방보』의 첫 부분에 "서번(西蕃)에서 온 까닭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되어 있다. 중국에서 서번은 인도차이나를 말한다.
2. 토마토의 고향을 찾아서스페인인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멕시코 원주민은 그들이 말하는 토마토르 혹은 토마테를 먹었다. 이것이 실은 우리들이 현재 먹고 있는 붉은 토마토와 식용 꽈리 둘 다를 의미하지만, 붉은 토마토보다도 식용 꽈리 쪽이 훨씬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쓰였다. 현대 멕시코 가정에서는 돌 절구와 돌 곤봉이 한 세트로 되어 있는 '모헤카테'라고 하는 조리기구로 토마토와 식용 꽈리를 으깬 다음 거기에 고추를 섞어 살사를 만드는데, 그 모헤카테와 똑같이 생긴 것이 기원전 7000년경의 지층에서 출토되었다. 멕시코인들은 아득히 먼 9천 년 전의 그 옛날부터 변함없이 모헤카테로 식용 꽈리 살사를 만들어온 것이다. 이와 같이 식용 꽈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했다는 증거가 있지만, 정작 붉은 토마토를 식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똑같이 '토마테'라 불렸다 하더라도 식용 꽈리와 붉은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 엄연히 다르다. 같은 가지과 식물이긴 하지만 식용 꽈리는 꽈리(Physalis) 속에 속하기 때문에 토마토와는 먼 친척뻘일 뿐이다. 식용 꽈리는 멕시코에서는 단순히 '토마테'나 '토마테 베르데'(녹색 토마토)라 불린다. 한편 현재 우리들이 먹고 있는 토마토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는 재배종 토마토는 작은 열매를 맺는 체리 타입의 토마토며, 학명은 '리코페르시콘 에스클렌탐 셀라시포르메'다. 에스클렌탐은 '먹을 수 있는', 셀라시포르메는 '체리 같은 모양을 한' 이라는 뜻이다. 현 시점에서는 멕시코에서 붉은 토마토가 언제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종자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대 벽화나 토기류에서 토마토와 비슷한 것조차도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헌상으로도 스페인인이 침입한 16세기 전반까지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아스텍 문명은 독특한 그림 문자를 사용했으나, 문자로 된 상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멕시코와 페루에서 더욱 다방면에 걸쳐 유적 발굴이 진행되면, 언젠가는 붉은 토마토 종자가 출토되어 붉은 토마토가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토마토의 고향은 안데스인가, 멕시코인가?어쨌든 코르테스가 아스텍 왕국을 침략했을 당시, 원주민들이 이미 붉은 토마토를 먹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대체 그 붉은 토마토는 언제, 어디서 멕시코 고원에 전래된 것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멕시코에서 자생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 경로를 추적하려면 우선 토마토 야생종의 분포부터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페루나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에 걸쳐 있는 안데스 고원에는 8∼9 종류의 야생종 토마토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자생하고 있다. 한편 멕시코의 야생종은 핌피넬리폴리윰처럼 익으면 빨갛게 되는 종류만 확인되고 있다. 멕시코 만에 인접한 베라쿠르스 주의 산간 지대와 중앙 고원의 페브라 지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핌피넬리폴리윰은 식용으로 쓴다. 1978년 릭 박사는 유전자적으로 페루의 야생종보다 멕시코의 야생종 쪽이 재배종인 셀라시포르메에 더 가까운 종임을 증명했다. 세계 농학자들은, 토마토는 당초 안데스 고원 일대를 원산지로 하여 멕시코로 전래되었고 다양한 품종 개량을 거쳐 재배종 토마토가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일치시키고 있다. 어쨌든 최초의 재배종 토마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셀라시포르메는 식용 가능한 야생종 토마토의 변종으로 태어나 교잡에 의해 조금씩 변화해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토마토는 고향이 두 곳이다. 야생종의 고향은 안데스고, 재배종의 고향은 멕시코다.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남은 야생 토마토고원 도시 멕시코시티와는 달리 페루의 리마는 태평양에 인접한 해안 도시다. 리마 주변은 잉카 사람들이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르던 건조 지대이며, 원주민들은 정복자인 스페인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이 열악한 지역을 추천하여 그들의 도시를 건설하게 했다고 한다. 페루는 태평양에 인접한 해안 지대, 안데스 산맥의 산악 지대, 안데스 산맥 동쪽의 정글 지대 등 세 개의 기후 지대로 나누어져 있는데, 페루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차빈(chavin) 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7세기에 걸친 모체(moche) 문화, 그리고 1세기부터 8세기까지 존재했던 나스카(Nazca) 문화 등 고대 문화가 각지에서 꽃을 피웠다. 특히 기원전부터 서기 12세기에 걸쳐 안데스 고지, 티티카카 호 주변에서 번영했던 타아우아나코 문화는, 그후 잉카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산재해 있는 잉카 문명은 13∼15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152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불과 백 수십 명의 스페인인들에 의해 어이없이 멸망하고 만다. 안데스의 고대사와 토마토와의 연관성에 관해 고고학적인 증거가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여기는 야생 토마토의 고향이다. 야생 토마토는 남북으로 약 8,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안데스 고원에 광범하게 분포하고 있다. 비교적 높은 건조 지역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히르스텀과 '페루'란 이름이 붙여진 페루비아넘, 둘 다 핌피넬리폴리윰과 달리 식용으로는 적당치 않지만 유전자원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야생종이다. 라 페루라는 리마에서 찬카이 강을 따라 북쪽으로 150킬로미터 거슬러 올라간 해발 1,500미터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히르스텀과 페루비아넘의 자생지는 라 페루라 마을에서 다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아나스마이요 강의 상류, 안데스 산맥의 앞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2000미터 이상의 산악 지대다. 히르스텀은 잎과 꽃이 페루비아넘보다 크고, 열매에는 하얀 솜털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어 반짝반짝 빛이 난다. 큰 것은 열매가 3센티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 키도 커서 인간의 키를 훌쩍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종횡무진 힘차게 쭉쭉 뻗어 서로 뒤엉켜 있다. 히르스텀의 열매는 완전히 익어도 붉게 변하지 않으며, 식용으로는 쓰지 못한다. 잉카어로 쿨레브라미쿠나(뱀의 먹이)라 부른다고 한다.
3. 과연 독초인가 약초인가?
생명의 기원인 '물'의 식품4 원소설이란 "모든 물질은 4가지 원소로 구성된다."는 사고에 입각해 자연계의 다양성과 변화를 설명한 것이다. 4 원소란 불, 물, 흙, 공기지만 각각이 구체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은 빛을 상징하며, 뜨겁고 건조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은 유동성과 액체의 상징이며, 차고 습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흙은 고체의 상징이며, 차고 건조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기는 휘발성과 기체의 상징이며 뜨겁고 습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약초학자들의 이론은 4원소에 인간의 기질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질(쾌활, 성급함, 우울, 무기력), 신체를 구성하는 네 가지 체액(혈액, 황담즙, 흑담즙, 점액)을 첨가시켜 인간의 건강에 대해 연구했다. 즉 상기한 네 가지 기질, 네 가지 체액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편 동양에서는 어땠는가. 한방의 기본이 되는 음양오행설에서는 질병은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오행은 오장, 오부, 오근 등과 대응한다. (오장(五臟)은 심(心), 간(肝), 비(脾), 폐(肺), 신(腎), 오부(五腑)는 소장(小腸), 담(膽), 위(胃), 대장(大腸), 방광(膀胱), 오근(五根)은 감각을 생성하는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의 감각을 뜻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로 보며, 거기서 뜨거운 것, 차가운 것, 마른 것, 습한 것은 균형 있게 섭취한다는 생각을 이끌어냈다. 이 생각이 본초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토마토를 '물(水)'의 식물이라고 한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약제 처방전에서도 토마토는 여름에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신체의 열을 식히고, 진정, 소염 작용이 있는 '찬' 식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마토에서 약효를 찾아낸 사람들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명으로 파견되었던 의사 에르난데스는 1570년부터 1577년까지 멕시코에 머물며 저술한『신스페인 자연사』에서, 신스페인(멕시코)에는 토마틀이라 불리는 차고 신맛 나는 식물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약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에르난데스는 토마틀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시토마테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이어서 밀토마틀, 코스토마틀, 코요토마틀, 에파토마틀 등 몇 종류의 토마틀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삽화에는 우리들이 식용으로 하고 있는 붉은 토마토(시토마테)는 없고 녹색 토마토, 즉 식용 꽈리만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엔 식용 꽈리만 주목한 듯하다. 어쨌든 에르난데스는 붉은 토마토와 식용 꽈리를 일괄적으로 '토마토'라 기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코르테스의 스페인 정복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에 멕시코에서 현지 조사를 담당했던 왕실 주치의가 썼던 글이라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았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토마토가 다양한 생리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마토는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하는 카로틴과 비타민 B군, C, E 등이 함유되어 있고, 미네랄 또한 균형 있게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A는 점막을 보호하는 작용이 있고, 비타민 B군은 인체에 필요한 3대 영양소인 당질, 지질, 단백질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C와 E에는 항산화 작용이 있고, 나아가 토마토의 붉은 색소인 '리코핀'도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또한 식이섬유는 변비를 개선하고,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작용도 한다. 어쨌든 토마토에 독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여전히 뿌리 깊게 만연해 있던 시대에 모종의 약효가 있음을 알고 연구했던 식물학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