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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문화사

구드룬 슈리 지음 | 이마고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피의 신비주의욕망과 죽음토마스 만의 『바뀐 머리들』을 보면 "죽음을 가져다주며 삶을 선사하는" 신의 초상화가 인상 깊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들은 길을 잃고 원시림의 한가운데서 칼리의 바위 신전에 다다르게 된다. 신전 한가운데에는 슈리다만이 끔찍한 얼굴로 신전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해골과 잘린 팔, 다리로 만들어진 둥근 문틀에서 걸어 나온 우상은 모든 빛을 잡아채어 집어던져 버린 색깔이었다. 그리고 생물의 다리와 사지를 이용해 묶어 장식한 번쩍이는 왕관 장식을 하고 열여덟 개의 팔을 빙빙 돌리며 바위벽에서 튀어나왔다. 칼과 횃불이 어머니 주위를 빙빙 돌았고 그녀의 한 손이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뇌 속에서 피의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그녀의 발치에도 피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여신이 서 있는 곳은 생명의 물결의 바다, 피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였다. 바위동굴, 지하 도살장의 숨막히는 공기 속에는 달콤하게 진짜 피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동굴의 바닥에는 잘린 머리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즙이 흘러나갈 수 있도록 배수구가 있었지만 그 배수구는 끈적끈적하게 꽉 막혀 있었다. 유리알 같은 눈을 번쩍 뜨고 있는 동물머리들이 … 제단 위 그녀의 초상 앞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있었고, 목을 쳐서 자른 칼은 날카롭게 번쩍이며 마른 피 얼룩을 묻힌 채 조금 떨어진 곳 석판 위에 놓여있었다." 이 칼의 다음 희생자는 바로 자신 슈리다만이 될 것이다.



힌두교를 믿는 일부 지방에서 아직도 종교의식 때 피를 동반한다는 사실은 10월에 어쩌다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두르가 푸자 축제를 구경하게 되는 요즘의 관광객들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물로 사용된 동물의 목 동맥에서 솟구쳐 나온 피가 길가 웅덩이에 고이면 사람들은 할머니, 아이, 개, 집, 자동차 할 것 없이 다가올 해에 행운을 바라는 모든 것에다 그 피를 바른다.



피는 손을 얹거나 물을 뿌리는 행위와는 달리 일정 기간 눈에 보이는 마법이다. 피부에 말라붙은 자신의 피만 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뜩해지는데 다른 생물의 피를 이용한 의식은 그보다 더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그리스의 타우로볼리온 제식에서는 피로 세례를 한다. 요즘 카톨릭의 사제가 아기에게 내리는 세례 정도의 가벼운 의식이 아니라 완전히 몸을 강물에 담그는 원래의 세례 형식을 생각하면 된다. 로마에서 시작된 키벨레와 아티스의 제식에서는 타우로볼리온과 말 그대로 수소와 숫산양 제물의 피로 완전히 목욕을 한다. 348년에 태어난 로마의 라틴 시인 프루텐티우스는 순교자에 대한 찬가인 「영관」에서 이 피의 목욕을 이렇게 묘사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제사장이 서품을 받기 위해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그 위에 발판을 설치하고, 목조 구조물 나무 판 사이로 틈을 만든다. 그리고 바닥에 추가로 날카로운 공구를 이용해 여러 개의 구멍을 뚫는다. 화환으로 장식한 큰 수소를 데려와 구덩이 위에서 창으로 가슴을 절개한다. 상처에서 뜨거운 핏줄기가 흘러나온다. 수천 개의 구멍에서 피의 비가 내리고 구덩이 속에 있는 제사장은 그 핏방울을 몸과 옷을 이용해 받으려고 애쓴다. 고개를 뒤로 젖혀 뺨과 귀, 콧구멍, 입술을 피로 적시고 눈을 핏줄기로 목욕시키고 혀를 축이며 온몸이 어두운 빛의 피를 빨아들인다. 피가 멎으면 제사장은 끔찍한 모습으로 구덩이에서 걸어 나와 젖은 머리, 뻣뻣해진 수염,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 장식과 옷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구절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돌비석의 글귀들로 미루어보건대 이 의식은 부활의 신비를 상징한다. 구덩이 속으로 내려간 다음 피를 온 몸에 맞은 후 결국 다시 구덩이에서 걸어 나오는 과정을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보았던 것이다. 수소의 피에 목욕을 한 사람, 즉 타우로볼리아투스는 그 의식을 통해 신의 일부를 얻게 되고 그 자신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이제 성스러운 피의 본질을 민중들의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생각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면 잠시 바흐와 그의 작품을 떠올려 보아야 할 것 같다. 관념적이긴 했지만 역시 피로 얼룩졌던 흔적들은 높은 교양을 자랑하던 바로크의 시인들과 작곡가들에게서 시작되어 경건주의를 거쳐 클레멘스 브렌타노라는 한 남자가 성흔을 띤 수녀의 머리맡에서 시각적 영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던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바흐가 <마태 수난곡>에 두 번이나 삽입한 성가는 명확한 언어로 이렇게 노래한다. "오, 피와 상처/고통과 경멸로 가득 찬 머리여!/오, 가시관에 묶여 조롱당한 머리여! … 나의 인사를 받으라." 1653년에서 1656년 사이에 처음을 인쇄된 이 노래의 가사는 파울 게르하르트가 썼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카타리아 레기나 폰 그라이펜 베르크가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사랑하는 나의 예수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시로 바로크를 풍미했던 피의 신비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주었다. 숭고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조히스트적인 예수의 얼굴을 그리며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구세주의 피와 상처 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한편 아우구스트 랑겐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독일 경건주의의 어휘』라는 책에서 번역이 필요할 정도의 비술(秘術)적인 언어들을 수집하였다. 예수의 고통에 대한 깊은 관심의 차원에서 그의 상처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의 온갖 복합어들이 탄생했다. "예수의 가득한 피" 속에서 "헤엄을 치고 목욕을 하고 그것을 마실" 때, "피의 신랑" 예수의 "피 흘리는 상처"를 "핥고", 그렇게 하여 "상처의 꿀벌"이, "상처의 잠수부"가, "상처의 구더기"가 될 때 사람들은 "피 상처의 낚시꾼"처럼 느끼게 된다.

말더듬이 같은 황홀경의 연도(가톨릭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만이 "피 분노의 지옥"을 모방 체험하는 데 몰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상처 상처 상처의 물결, 상처여! 상처여! 상처 상처 상처의 토지가 상처 상처 상처의 용기를 준다. 상처, 마음의 상처,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상처여! 오, 상처여!"일본어에는 스페인어에서 빌려온 특이한 말이 있다. 독일에서 <감각의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고 197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포르노그라피라는 의혹 때문에 상영되지 못했던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는 원제가 <사랑의 코리다>였다. '사랑의 투우'라는 뜻이다. 엑스터시와 교살, 신체의 절단으로 끝난 강박관념에 가까운 성적 탐닉의 이 이야기는 한 신문기사가 발단이었다고 한다. 주머니에 절단한 애인의 페니스를 넣고 도쿄 거리를 방황하다 경찰에 체포된 한 게이샤의 기사였다. 코리다(corrida, 투우)에서는 항상 한 쪽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보통 살아남는 쪽은 두 발 달린 짐승이다.



카르멘은 돈 호세를 위해 그를 떠나 꿋꿋하게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토레로, 그는 아름다움과 자부심과 용기와 에로틱, 죽음을 상징한다. 도나 마리아 피아 다 크루스의 가슴은 딱 두 번 물결친다. 한 번은 "장난과 피와 기도가 절묘하게 뒤섞인 분위기에서" 소가 죽었을 때, 또 한 번은 어린 토레로 펠릭스가 그녀와 단둘이 있었을 때이다. "'홀레! 헤오! 아헤!' 그녀는 힘찬 환호성을 질렀다. … 그리고 나는 이베리아의 피의 경기 때 보다 더 격렬하게 물결치던 가슴을 불타는 애정으로 바라보았다." <사기꾼 펠릭스 크롤의 고백>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을 맺는다.



2001년 6월 1일 호세 토마스가 페리아 데 산 이시드로에서 그랬듯, 그가 투우 경기장에서 소를 죽이지 못하자 2만 4,000명의 관중이 야유를 보냈고, 그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높은 벌금형을 내리겠다는 협박도 받았다. 토레로는 돈 후안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페인인이다. 스페인의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를 종교보다 숭배한다. 아마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성자가 아닌 투우사를 성인 명부에 올릴 것이다."



1986년 알모도바르는 <마타도르(Matador)>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마타도르는 당연히 투우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죽음과 결합된 성적 쾌락이라는 두 테마를 다루기 위해 투우의 의식과 두 사람의 내밀한 관계를 대비시켰을 뿐입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를 투우와 투우사처럼 생각한다. 여성성과 남성성, 그것은 치명적인 쾌락, 성적 흥분의 유발제인 죽음 뒤로 모습을 감춘다. 이 게임에서 소가 되는 것은 치욕이 아니다. 그 사실은 "토레로를 모방하여 모리핀으로 그들을 죽이면서" 성행위를 하는 여성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정열, 피, 불의 색," 빨간색은 알모도바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남작 질 드 라이스의 이야기는 <푸른 수염>의 한 모델이 되었다. 그를 비롯한 피와 섹스의 사제들은 문학적 형상의 극단적인 방식을 자극했다. '미덕의 불행'과 '악덕의 번영'. 이것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아주 드문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두 소설 『쥐스틴』과 『쥘리에트』의 부제이다. 『쥐스틴』에서 사드는 악마 같은 수많은 인물 중 하나에 불과한 마르키 제르낭드를 통해 미덕을 경멸하는 한 남자, 악덕과 악의 초인을 그려냈다.



『쥘리에트』의 경우 남성의 오르가슴에 화음을 맞추려고 16명의 처녀를 동시에 16가지의 다른 방법으로 고문하고 살인하여 온 방안이 피로 넘쳐나게 만드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광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측량술의 숭배자인 사드는 '기계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 인간을 성기의 기계와 사육의 기계로 만든다. 아이들이 전화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려고 전화기를 해체하는 것처럼 사드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신체를 쾌락을 준비하는 잔혹한 기술의 규칙에 따라 해체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호기심을 느낀다.



『계몽의 변증법』은 이렇게 설명한다. "칸트가 선험적으로 설명했던 것, 눈 깜짝할 순간 철저하게 이성화되어 버린 시민적 실존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합목적성의 성격을 찍어버린 인식과 계획의 친화성은 백 년보다 더 전, 사드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경험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이성의 시대, 사드는 보편적인 허무주의를 단순히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정확하게 규정되고 실행에 옮겨지며 설명되는 경악에 대한 권태로움을 이용하는 철저하게 비도덕적인 철학을 포고한다. 사드의 원작을 영화화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은 사건의 시점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가 망하기 직전으로 옮겨놓으면서 원작의 정치적·계몽적 의도를 확인해 주었다. "사드의 경우 개인의 악덕은 … 전체주의 시대의 공적인 미덕을 선취한 역사 기록이다."사드와 아폴리네르의 사디즘 뒤에 숨겨진 의미피의 목욕으로 새롭게 태어난다이 책은 각 시대와 민족, 국가, 책과 영화, 미술 작품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라 할 피의 흔적을 추적한다. 마피아든, 인디언이든, 드라큘라 백작이든 적십자든, 오페라의 무대든 공포영화든 간에 피는 아주 특별한 액체이며 물보다 진하다. 인간의 경우 피의 양은 약 4∼6리터이다.



'푸른 피'라는 표현은 스페인어 'sangreazul'에서 온 것이다. 스페인 카스티야의 귀족들이 자신들이 흑인이나 유대인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흰 피부 때문에 두드러지는 자신들의 푸른 혈관에 주목했던 것이다. 프랑스어에도 'sangbleu'라는 말이 있고, 독일에서도 1810년부터 '푸른 피'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왕가'를 'blood royal' 혹은 간단하게 'the blood'라고 부른다. 곤충의 피는 무색이다. 그래서 인간과 더불어 살기가 쉽지 않다. 파리나 거미를 죽였을 때 붉은 피가 툭 튀어나온다면 지금처럼 마음 편하게 파리채를 휘두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렇듯 피는 붉은 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힐데가르트폰 빙엔은 피는 원래 초록색인데, 유기체 안에서 혼합되어 붉은색을 띠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지금 트레키(Trekky, 미국에서 30년 동안 인기를 유지해온 TV 공상과학 시리즈 <스타트렉>의 열렬한 팬들)들은 불칸족의 피가 초록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냉혈한이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단순한 체액병리학적인 이론이 공상과학 드라마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는 듯하다.



체액 병리학은 미국에서만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드라코 말포이는 순수혈통이 아닌 마법사를 'mudblood', 즉 '진흙피'라고 부른다. 고대 중세의 4체액설과 『해리 포터』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점액질과 진흙피가 서로 어울린다. 하지만 늘 투덜대는 미르테, 모우닝 머틀은 피 색깔이 은빛이다.

「차이트(Zeit)」 지의 미하엘 베첼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문화학의 문화사』를 계기로 지금이야 말로 문화학의 홍수시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마추어들이 기술사나 생활사와 사회사를 찔끔 건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사회사를 썼다고 우기고 있다고 말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괴테 역시 딜레탕티슴(예술이나 학문을 정립된 입장 없이 그저 즐기려는 태도)의 원인을 "졸렬한" 서툰 솜씨, 기계적인 현학,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는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 싶다는 어리석은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괴테 역시 - 스케치에서 기상학, 고전학, 동양학을 거쳐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 다방면에 도전한 인물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위대한 문화학자의 반열에 낄 수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책의 딜레탕티슴은 이런 의미로 이해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사의 시금석은 여러 특수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나 수집열, 세부에 대한 집착보다는 철학적인 진리애, 탐정에 버금가는 예민한 감각, 과감한 발상이다.한 문명의 신앙에서 피가 큰 역할을 한다는 또 다른 증거로 헬레니즘 문명을 들 수 있다. 피와 관련된 그리스인들의 종교 관습은 다른 민족과 아주 상이했지만 고대 그리스 종교 역시 사자(死者) 숭배 사상이 존재했다. 아르코나우테스의 전설은 살인으로 가득하고 『오디세이아』와 『일리아드』에는 살인과 제물, 피의 관습이 수없이 언급되고 있으며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역시 잔혹한 부분이 적지 않다. 아르테미스의 인간 제물들도 슬픔을 토해내었으며 제물로는 처녀나 총각, 그리고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그 중에는 아버지 탄탈로스가 죽여 신들의 식탁에 바쳤다는 티에스테스의 세 아들이 있다). 또한 피는 마력을 지닌 물질로 생각되어왔다. 메데이아의 마력은 프로메테우스의 피 때문에 생겼다고 하고, 헤라클레스는 아내가 사랑의 비방으로 잘못 알고 건네준 네소스의 피에 담근 옷을 입었기 때문에 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피의 의식은 명부를 바라보는 그리스인들의 관념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하데스의 혼령들이 피를 마시면 잠시 동안 다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오디세우스는 테이레시아스에게 예언을 듣기 위해 깊은 대양의 끝에 구덩이를 파고 우선 꿀과 우유, 포도주, 물, 밀가루로 구덩이를 채운다. 그런 다음 진짜 의식을 지냈다. "간청하며 사자의 무리를 처벌한 후 나는 양을 잡아 구덩이 위에서 목을 땄다. 검은 피가 솟구쳐 흘렀다. 그리고 에레보스(Erebos, 카오스의 자식으로 어둠을 뜻한다)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나와 칼에 베인 사자들 위로 달려들었다. … 영혼들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사방에서 구덩이를 향해 달려들어 무시무시한 공포가 나를 덮쳤다."



오디세우스는 칼을 들어 피에 굶주린 혼령들을 물리쳤다. 어머니의 혼령도 뿌리쳤다. 그러자 테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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