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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과 착각

퍼트리샤 브로진스키 지음 | 시아출판사
위선과 착각

퍼트리샤 브로진스키 외 공저/이채진 옮김

시아출판사/2004년 4월/288쪽/10,000원



서문

당신은 들짐승이었다. 어느 날 깊은 잠에서 깨어보니 이빨과 발톱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그렇지만 당신은 여전히 벌판에서 살아나가야만 한다. 어떻게 먹고살겠는가? 가지고 있던 방어 수단이 사라진 당신은 이제 권모술수를 연모하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당신은 사기술의 달인이 된다. 여기에 나오는 박물관은 지난 20세기를 안내하는 매개체를 의미하며, 관람객들 자신이 주요한 전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호모 사피엔스를 위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개관식

오늘은 ‘20세기 박물관’의 개관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이 웅장한 건물의 첫 입장객이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건물 주위는 2천 개의 계단이 에워싸고 있으며, 나선형의 테라스는 역사적으로 명망을 떨친 유명한 인물들의 흉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각각의 계단은 전체 2천 년 가운데 1년을 의미하며, 각 계단에는 그 해에 일어난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입장하시면, 먼저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지난 2천 년간의 영상이 관람객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미리 주의를 드리자면, 어떤 전시실에는 공포와 히스테리를 유발할 수 있는 전시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실물처럼 꾸며놓은 것에 불과하므로,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전시물들을 보고 공포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관람은 세 군데 전시관 안의 전시실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먼저 제1관의 주제는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이며, 제2관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제3관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제1관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재판정에 선 위선자

이 전시실에서 우리는 자신이 살인․강간․유괴 등의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 자체는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그 행위를 범죄라고 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들만의 특이한 점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본능적 행위를 규제하는 온갖 사회적․종교적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행위를 규제하는 수많은 법률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본 모습을 초월적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족속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습니다.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기자 우리는 지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천상의 정신과 세속적 육체를 가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에 도취해서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 그 힘을 남용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동물적 본성이 사라진 적은 없었습니다. 단지 의식 아래로 숨어서 더 파괴적으로 변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지난 2천 년간 서구에서 본능은 “배우자와 자손을 생산하는 일 외의 육욕은 금지한다.”라는 기독교의 원리에 따라서 의식의 수면 밑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런 금지령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기만하면서까지 순결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탄생 이후 2천 년이 지난 현재, 사람들은 본능이 억압받는 시대는 지났으며 오히려 축복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약적 변화를 비아그라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비아그라는 사람의 본능을 살리기 위한 신약으로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원치 않던 금욕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아그라는 “당신은 다시 섹스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당신 부인과 다시 섹스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아그라는 아무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타락의 시작

이번 관람은 우리 인간이 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지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과 비슷한 이 전시실의 천장을 올려다 보면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지 않고 낙원에서 생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뱀이 이브에게 지식이라는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브는 지식에 굴복했고 아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 낙원의 생활은 종말을 고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 인간의 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본래 우리는 결함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의존하는 법률과 규범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됩니다.

아무도 그러한 법률에 의존해서 삶을 영위할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류는 법률과 규범을 정해 놓고는 모든 생애를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며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률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유의 원칙과 내면적 지침에 따라 결단하고 행동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그들을 인용했으며 니체는 그들을 초인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전시실을 다 관람하시면 여러분의 뇌리에는 우리가 꿈꾸는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긴장감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살육하는 존재다

인간의 행동은 어느 정도까지는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 에이브러햄 링컨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보편적인 약점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날고 싶어하는 돼지나 풀을 뜯고파 하는 호랑이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임신한 어느 호랑이가 새끼를 낳으려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지치고 배가 고픈 호랑이는 양떼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양떼는 흩어졌고 사냥할 기력도 없던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낳은 뒤 출혈로 죽었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양들의 틈에서 자라게 됩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새끼 호랑이는 양들 틈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채식 생활을 하는 동물이 아니었던 새끼는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어느 날 건장하고 힘센 호랑이가 숲 속에서 나와 양떼들을 보다 그 속에서 새끼 호랑이를 보았습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매.” “매? 매라니. 너는 호랑이지 양이 아니야.” “매.” “문제가 있구나. 날 따라 오너라.” 호랑이는 새끼 호랑이를 연못으로 데려가 자신과 새끼 호랑이가 똑같이 생겼다는 걸 보여주고 진짜 호랑이가 되라고 합니다. 호랑이는 자신이 사냥한 영양의 살점을 뜯어 새끼에게 주었습니다. “자, 입을 벌려라, 아가야. 바로 이것이 진짜 호랑이들이 먹는 음식이다.” “싫어요.” “이건 호랑이라면 누구나 먹는 거다. 입을 열어라.” 호랑이는 새끼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고깃점을 넣었습니다. 아, 풀이 아닌 고기 덩어리의 맛이라니. 처음으로 호랑이는 고기를 삼켜 보았습니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고기가 다 소화되었습니다. 새끼 호랑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새끼 호랑이는 호랑이의 포효를 했습니다. “어흥!”

우리는 모두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인간은 양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육하는 존재입니다.

찬성과 반대

선과 악의 이분법을 보여주기 위한 간단한 장치가 설치된 곳을 안내합니다. 이것은 양면 포스터로서, 각 면에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포스터는 5분 간격으로 회전하는데, 5분 동안 영상과 음향을 통해 한쪽 진영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칩니다. 5분이 지나면 180도로 포스터가 회전하고 그 전과 반대되는 주장에 관한 영상과 음향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전시실을 떠날 때 즈음이면 세상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 여러분이 접하게 될 주장들을 몇 가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 낙태 반대와 낙태 찬성

․ 총기 자유화와 총기 규제

․ 전통교육과 대안교육

․ 사형제 찬성과 사형제 반대

․ 안락사 찬성과 안락사 반대



선악의 이분법

선이 우리들의 본성이라면 왜 우리는 어두움과 퇴폐에 마음이 쏠리는 것입니까? 폭력과 무자비한 살인, 사디즘이 횡행하는 영화와 게임, 연극 등은 우리의 실제 삶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존경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 대상자가 권력이 있기 때문이지 실제로 훌륭한 인격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적인 인간,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늘 선의와 정의를 외칩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한 번도 선하게 산 적이 없습니다. 19세기 미국의 강도 귀족들이 이런 마키아벨리적 인물의 대표주자입니다. 이들 열 명 남짓한 자본가들은 남북전쟁 기간 중 3백 달러를 주고 다른 사람들을 군대로 보냈으며, 북군을 상대로 수백만 달러를 사기 쳐서 빼돌렸습니다. 그것도 수천 명의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채 말입니다. 그 후 약 2, 30년 후에 이 도적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소위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잔혹한 범죄 행위를 미화시키고 그 시대의 휴머니스트인 양 행세했습니다. 그 중 유명한 재단이 록펠러 재단, 멜런 재단, 카네기 재단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박물관의 각 전시실을 둘러볼 때마다 여러분은 인류의 역사를 목격하고 자신이 살아온 역사도 반추하게 됩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미신 가운데 하나가 나이를 먹으면 지혜도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는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관람을 계속하다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제2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인류학적 결론

인간에 대해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분석의 근거는 하나하나 사라진다. 그리고 곧 인간의 본성이라는 무시무시한 보편적 속성에 이르게 된다. - 오스카 와일드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실존의 의미에 대해 탐구했으나 실상 그리스인의 가장 큰 문제는 전쟁과 병마였습니다. 이들 학자들이 무엇을 탐구하든 인간에 대한 살육과 착취는 계속되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의 행위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심리학자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행위를 분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찰 행위가 정확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며, 그 분석이 틀림없이 맞는 것인지는 더욱 불확실합니다.

1200년에 파리 대학교가 설립되고 난 후 수많은 대학에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찰과 분석으로 인해 변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세기 동안 인간의 행위는 더욱 공격적이고 잔혹해졌습니다. 훈족이 서구 세계를 초토화시켰다고 하지만, 이것도 1945년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하나보다는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석이 아니라 폭력적인 인간의 본성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20세기만 하더라도 300,000,000명의 인간이 전쟁과 살육으로 죽어갔습니다.

문자의 전당

‘문자의 전당’ 통로의 길이는 대략 2천 5백 미터입니다. 언어는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지만,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각을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식은 항상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에 의해 감각 기관에 투사된 의미는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알파벳 스물여섯 자가 조각된 대형 모형 사이를 걷고 있습니다. 벽에는 지난 2천 년 동안의 명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저명한 정치적 교의를 그 주장의 배경이 되는 원문에 비교할 때, 거기에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대부분의 저작들이 그 주장하는 바가 서로 모순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결국 그 어떤 학설이나 원칙도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은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Z자에 도달할 때쯤이면 새로운 시각에서 언어를 조망할 수 있는 눈을 얻게 될 것입니다.

타인의 진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 자명한 진실임을 믿는다.”라고 한 미국독립선언문은 자명한 진실이 무엇인가 잘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집단적 기만’에서 보았듯이 여성들은 141년 동안 투표권을 부여받지 못했고 흑인 노예는 자산의 일부일 뿐이지 인간으로 간주되지도 않았습니다. 자산이 없는 백인 남성들도 선언문이 나온 지 40년 뒤에야 투표권을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바뀌어야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모든 백인 남성 자산가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독립선언문은 모두 기만이었으며 미국인들은 그러한 기만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될 부분은 우리가 개인적 삶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자명한 진실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앞의 세대에게 자명한 진실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반드시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진실들은 여러분에게는 허위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자명한 진실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진실은 자신의 진실이 아니라 타인의 진실일 뿐입니다.

자명한 진실은 부모들만이 전수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종교와 학교, 그리고 국가 또한 일조를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현실을 자시의 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도심 지도를 보고 해수욕장을 찾아가는 행동과 같습니다. 자신의 단 한번뿐인 인생을 타인의 현실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그것은 마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서 자신의 식단을 다른 사람이 선택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여러분은 짜장면을 먹고 싶어 졸랐지만 부모님이 잡채밥을 먹으라고 했던 적이 없었습니까?)

정장(正裝)을 입은 야만인

공격적인 에너지는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러니 지구상에서 늘 전쟁이 계속되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지금도 전쟁과 종족학살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전'으로 서로 살육하는 서아프리카의 사람들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 나라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내전에 휩싸인 나라가 자기 땅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며 인터넷이나 주식시장에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그러나 ‘내전’은 서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자와 경영자들은 늘 내전을 치릅니다. 이 전투에서 노동자는 잔혹하게 착취당합니다. 노동자들은 시뻘건 피를 내뿜으며 감원당하는 반면, 경영자들의 임금은 대폭 상승됩니다. 이 전쟁도 승자와 패자로 나뉩니다.



제3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선택의 문제

여러분의 성격이 예민하다면 그 예민함에 집착하든가, 아니면 단순하게 예민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또 우울하다면 왜 우울한지 고민하거나, 아니면 아주 단순히 우울한 상태를 용인하고 다른 일을 찾으면 됩니다. 또 겁쟁이라면 나는 왜 겁쟁이일까 하며 집착하던가, 아니면 겁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면 됩니다. 신경쇠약증이 있다면 이를 물고 늘어지든가, 아니면 신경쇠약증을 인정하고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당신이 화가 치민다면 왜 화가 나는지 생각하든가, 아니면 간단히 화가 난 상태를 받아들이고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삶이란 이처럼 단순합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너무 복잡한 것을 좋아합니다.



정신 에너지의 분배

새롭게 시작된 시대에는 선택과 자극의 홍수에 대비하지 못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디에 나의 시간과 돈,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사회적 규정을 따르기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덕이나 법률 외에도 관습이라 불리는 많은 사회적 규정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을 올바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평가 지침을 소개합니다. 각자의 반응에 따라서 점수의 폭은 최고 +2이며 최하 -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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